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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an 26. 2024

나도 B.M.W. 를 누리고 싶다.

업글할매의 그냥사는 이야기

나도 B.M.W. 를 누리면서 살고 싶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언제 운전을 못하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꼬부랑 할머니라도 운전대만 잡을 힘이 있으면 운전면허 반납하라는 소리는 못 들어봤다. 지금은 한국도 집집마다 성인마다 자기 차 한 대씩은 갖고 있는 세상이 됐지만 미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자가용이라는 것이 재산의 표시가 아니라 그저 운동화대신 어디를 다닐 수 있는 그런 교통수단의 일부였던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국처럼 대중교통이 잘 돼있지를 않아서 내 차가 없으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다. 마트를 가더라도 차를 타고 가야 하고, 병원이나 관공서도 무조건 차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출퇴근도 자기 차외에는 다닐 방법이 없다 보니 자연히 성인 사람 수대로 차를 갖게 되는 것이다.


사치품이 아니다. 그냥 필수품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만 16세가 되면 운전면허를 딸 수가 있다. 이것도 물론 주마다 법이 다르기는 하다. 만 16세라는 것은 고등학생이라는 것이다. 고등학생들이 운전 면허증을 쉽게 딸 수 있도록 아예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해 준다. 학생들이 일일이 운전 면허장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자들이 학교를 방문해서 교육을 시켜주는 것이다. 이것 또한 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렇게 운전면허를 따면 그때부터는 고등학생이 자기 차를 타고 학교를 다닌다. 그래서 미국의 고등학교에는 운동장만 한 주차장이 있다. 학생들한테도 자가용은 사치품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인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대중교통이 잘돼있는 나라도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지인들도 일단 인천 공항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자그마치 지하 4층까지 가야 공항철도 승강장이 있었던 것 같다. 공항철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무려 5개의 환승선이 같이 있단다. 그러니 이렇게 복잡할 수밖에 …


미국에서 모처럼 한국을 방문하는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미국 촌놈들은 여기서부터 기가 죽고 정신이 나간다. 그 넓은 미국땅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잘만 다니던 사람들이 한국에만 오면 바보가 된단다. 지하철을 어떻게 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려서는 어떻게 나가야 하는 지도 도저히 감을 못 잡겠단다. 왜 동서남북조차 가늠이 안되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서로 바라보면서 웃기만 한다.


옛날에는 길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줬었는데 이제는 전부들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걸어서 함부로 물어볼 수도 없단다. 이래저래 여러모로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대한민국이다.


인천 공항철도라는 것을 타보고는 기절초풍들을 한다. 어마어마한 시설에 놀라고 깨끗한 지하철에 놀라고 심지어는 의자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진다는 그런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고마운 사실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미국의 큰 도시 같은 곳에서는 지하철이라는 것은 더럽고 무서워서 감히 탈 생각을 못한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의 지하철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빠르고 안 가는 곳이 없이 기가 막히게 연결이 잘 돼있다.


대형 백화점하고도 바로 연결이 되고 지하철에서 내리면 바로 다른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버스가 수시로 다니고 이런 편한 곳에 살면서 왜 도시 사람들은 굳이 자가용을 갖고 다니는지 조금 이해가 안 간다. 도로가 막혀도 너무 징그럽게 막히는 곳에서 나 같으면 늘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 같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운전대를 안 잡아도 되고, 길 막힌다고 짜증 안 부려도 되고, 무엇보다도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잠시 책을 본다거나 아니면 피곤하면 잠시 눈을 붙여도 되고, 그러다가 밖이 내다보이는 곳에서는 바깥 풍경 구경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을 것 같다.



사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 되도록 차를 갖고 다니지 말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서 그 복잡한 도로에서 운전을 안 하고 싶었다. 미국에 비하면 한국의 도로는 폭이 굉장히 좁다. 그래서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도로를 달리면서 옆에 바짝 붙어 다니는 차하고 부딪힐까 봐 초 긴장을 하면서 타게 된다.


게다가 운전들은 앞 차하고 왜들 그리 바짝바짝 붙어서 가는지 이해를 못 했다.  갑자기 앞 차가 브레이크라도 밟는 날에는 그대로 들이받기가 십상이다. 미국에서는 워낙 경찰이 무서워서 앞 차하고의 정해진 간격을 제대로 지키면서 다닌다. 이런 오랜 습관이 몸에 배어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앞 차하고의 간격을 유지했더니 뒤에서 울려대는 크락션 소리에 혼이 나갈 정도였다.


나중에 뉴스에서 보니까 보복운전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길래 그다음부터는 우리 또한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한국 도로 사정에 맞춰서 살고 있다.


우리는 어디를 떠나면 새벽에 일찍 나간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빨간 불 앞에서 당연히 멈춰있는 우리를 보고 뒤에서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난리를 치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야말로 멘붕이 오기도 했다.


신호등이 없는 사거리가 나오면 미국에서는 일일이 누가 말을 안 해도 자연스럽게 도착한 순서대로 하나씩 나간다. 한국에서는 차를 먼저 디미는 사람이 우선이란다. 이래저래 너무도 다른 도로 사정에 어떨 때는 정말로 운전을 하기가 싫다.


그래서 Bus. Metro. Walk라는 B.M.W. 를 나도 누리고 싶은데 이게 또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소위 말하는 “역세권‘이라는 곳이 우리가 미국에서 집 팔고 온 돈으로는 도저히 집을 살 수가 없다. 비싸도 너무 비싼 가격에 그야말로 자존감이 곤두박질을 친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이 정도 돈이면 나름 성공했다고 큰 소리 빵빵치고 주위에서 부러움도 많이 받았는데 막상 한국에 나오니까 그야말로 수고권에서는 집을 사기는커녕 전세조차 못 구하는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많은 이민 1세들이 그렇게도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못 돌아오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말도 안 되는 비싼 주택값과 상상을 초월하는 고물가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 집 양반은 복잡한 곳을 싫어하고 사람 없는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조금 시골로 들어가니까 그래도 우리 형편에 맞는 예쁜 집을 구할 수가 있었다. 그 대신 그토록 바라던 B.M.W. 는 포기해야만 했다. BMW 나 벤츠같은 차였으면 포기하고 자시고도 없다. 애당초 관심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버스가 집 앞에 없다는 것이 너무도 속상하다.


어차피 제주도에는 지하철이 없다. 그래서 그나마 B.M.W. 중에서 메트로는 저절로 상관이 없게 됐다. 그러나 Walk는 그냥 건강 삼아 걷는다는 것은 제주도처럼 좋은 곳이 없으니까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운동이 아닌 볼 일을 보러 다니는 것을 그냥 무작정 걷는다는 것은 힘들어도 너무 힘든 일이다.


게다가 장바구니까지 든 상태라면 생각도 하기 싫다. 지하철을 타러 간다거나 버스로 이동하면서 한 두 정거장 걷는 것은 몸에도 좋다지만 제주도는 한 번 이동하는 거리가 엄청 길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 낫다.


나도 B.M.W. 를 누리면서 살고 싶다. 역세권에 살면서 마냥 즐기고 싶다. 나도 걸어서 에어로빅 배우러 다니고도 싶고, 버스 타고 요가학원도 가고 싶다. 그냥 밥 하기 싫을 때는 집에서 입은 채로 걸어 나가서 집 근처에 줄지어 서있는 식당 아무 데나 들어가서 간단히 밥도 사 먹고 싶고, 그 많은 것 중에서도 특히 너무 하고 싶은 것은 집 근처 치킨 집에 가서 바로 튀겨서 나온 바싹바싹한 치킨에 시원한 생맥주 한 잔 하고 기분 좋게 조금 거닐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가장 먼저 나를 설레게 한 것이 이런 역세권에 대한 로망이었던 것 같은데 철저하게 무너져버렸다. 대한민국의 집 값이 이럴 줄은 미처 몰랐다. 이럴 때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정보에 대한 공부 부족이다. 그러면서도 또 자연스럽게 포기가 되는 것은 아무리 공부를 하고 왔어도 어차피 우리 집 양반은 이런 역세권에서는 복잡해서 살지를 못한다. 그냥 공기 좋은 시골에서 맘껏 자연을 누리고 사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


미국에서 왔다니까 주변의 가까운 사람조차도 미국에서 무슨 떼 돈을 벌어갖고 온 줄 안다. 이런 역세권에서 살고 싶어도 못 살고 있는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를 한다면 아마도 소통이 좀 더 쉬어지지 않을까라는 아쉬운 생각도 든다.


미국에서는 온전히 미국 사람이 될 수 없었는데 막상 한국에 오니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알게 모르게 미국의 문화에 젖어있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한국사람이 한국에 살면서도 온전한 한국 사람이 아닌 약간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이래저래 서글프다. 그래도 내가 태어난 내 나라여서 그런지 처음 미국에서 겪었던 것보다는 모든 것이 수월하다. 그리고 몇 가지만 감수하면 너무도 편하고 행복하다.



한국에 돌아오니까 노인들의 운전미숙으로 인한 사고들이 종종 일어나는 것을 뉴스에서 자주 듣게 된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의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권하는 소리가 자주 들려서 알게 모르게 이것 또한 우리 같이 역이민을 온 사람들한테는 새로운 스트레스로 자리 잡는다.


미국에서는 딱히 노인이라서 운전 미숙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만 16세가 되면 미국에서는 운전 면허증을 딸 수가 있다. 그때부터 거의 평생을 운전대를 잡고 살다 보니까 운전 미숙이라는 소리를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의 노인들의 운전 미숙이라는 말은 아마도 거의 노인이 된 후에 운전면허를 딴 사람들이 많아서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경험 부족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런 노인들의 경험 부족보다도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노인이라서 무조건 운전대를 내려놓으라는 소리는 안 듣고 싶다. 언젠가는 운전대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올 것 같은데 그때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B.M.W. 를 누릴 수 없는 형편에서 운전대를 놓을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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