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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an 22. 2024

미국 이민 생활에 꼭 필요한 세 가지!

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미국이라는 나라는 주마다 법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절대로 미국 전체에 해당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하지만 대등소이하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약간의 차이만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아무런 문제 없이 제대로 정착해서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아주 돈이 많거나
둘째: 영어를 원주민처럼 유창하게 말하거나
셋째: 특별한 재주를 한 가지 이상 갖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세 가지 중의 하나만 갖추고 있으면 미국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오랫동안 이민 생활을 해온 경험자들이 직접 털어놓는 이야기이다. 물론 개중에는 이 세 가지를 다 갖추고 완벽하게 미국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런 케이스는 거의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세 가지 중의 한 가지만 완벽하게 갖추고 있으면 미국에서 편하게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돈이 많거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거나, 아주 뛰어난 재주가 하나만 있다면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가 있단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이상한 점이 많다. 일단은 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다. 돈에 대한 존경심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돈이 아주 많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약간 다른 것 같다. 아무래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빌 게이츠를 비롯해서 워렌 버핏 같은 진짜 부자들이 사회에 재산을 기부하는 그런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영어가 서투르고 별 볼일 없어 보이던 사람도 비즈니스를 직접 운영한다거나 뭔가 재력이 탄탄하다고 느끼면 함부로 하지를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한 태도 자체가 바뀌어 버린다. 그 위치까지 온 것을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그래서 미국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사는 이민 1세대들은 아주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 머나먼 낯 선 땅에 가서도 자식들 공부시키고 가족 부양하느라고 영어 공부라는 것을 할 시간들이 없었다. 그냥 죽기 살기로 일만 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언어 장벽에 부딪혀서 고생들을 더하게 된 것 같다.


미국에서도 영어를 원어민처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의 삶은 아무래도 그 수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선 영어를 잘하니까 변호사도 될 수 있고, 회계사도 되고, 의사도 되고 간호사도 되고, 약사도 되고, 사업을 하더라도 영어를 못하면서 하는 사업이랑 제대로 영어를 구사하면서 하는 사업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내가 직접 미국에서 비즈니스라는 것을 해 보니까 더더욱 절실하게 느꼈었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 특유의 배짱과 오기로 다른 장애물들을 잘 넘기는 재주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영어 못하면서도 잘들 살아가고 있다. (ᵔ ̮ ᵔ)͜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손재주가 좋아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손재주 좋은 사람들이 환영을 받는다. 옷 수선이나 미용실, 네일숍들은 거의 가 동양인들이 운영을 하다시피했다. 워낙 한국 사람들이 꼼꼼하게 잘하니까 같은 동양 사람이라도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을 더 많이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다 보니 너무 경쟁들이 치열해서 이제는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많이 주도권이 넘어갔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같은 기술이라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인기가 치솟는 것은 바로 한국 요리 전문가나 한국 빵을 만들 수 있는 제빵사들이 아닐까 싶다. 그 옛날에도 이런 기술자들은 모셔갔다고 한다. 이민 비자 따는 것이 하늘의 별 만큼이나 어렵다는 미국에서도 이런 기술자들의 비자는 금방 나왔단다. 아마도 지금은 k-문화의 영향으로 더 인기가 치솟을 것 같다.



한동안 미국에서 유행하던 것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3D 직업》이었다. ( Dirty / Dangerous / Difficult)이다. 아무래도 말 안 통하고 서로 문화가 다른 낯선 땅에서 살아남으려니까 이민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미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이런  《3D 직업 》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빌딩 청소가 아닌가 싶다. 미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이 빌딩 청소라는 것이 우리도 막상 해보니까 이민자들에게는 그렇게 나쁜 직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워낙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한테는 영어  못해도 되고 저녁에만 일하면 되는 이런 빌딩 청소라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초창기 때는 보수도 상당히 높았다. 빌딩 안에서 자기한테 주어지는 분량을 시간 안에만 끝내면 되니까 가족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상당히 유리했다.


우리는 가게를 속아서 잘 못 사는 사람에 쫄딱 망했을 때 잠시 했었지만 부부만 하다 보니 그렇게 큰돈은 안됐는데 아들, 딸 다 데리고 사는 한인들은 그 식구들이 총동원돼서 하다 보니까 제법 큰돈이 됐었다.


가족이 하다 보니 손발이 척척 맞아서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아버지는 걸레질을 하고 아들딸은 쓰레기통 비우고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순식간에 일을 끝내서 우리 같은 사람은 한 층만 할 수 있는 것을 그런 가족들은 다섯 층 이상도 할 수 있으니까 돈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 것이다.


빌딩 안에 있는 사무실 직원들이 5시 이전에는 전부 다 퇴근들을 하니까 오후 다섯시 조금 넘어서 시작해서 저녁 12시쯤이면 거의 끝낼 수가 있으니까 집에 와서 쉬고는 애들은 학교 가서 공부하고 어른 들은 골프 치러 다니면서 청소만 하면서도 제법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이런 청소 업도 하도 경쟁이 붙어서 옛날 같지 않다고 한국 사람들은 많이 떠났단다. 이제 어느 정도 한인들이 자리를 잡아가니까 이런  《3D 직업 》에서 슬슬 발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 이민 온 가족들한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물론 모든 가정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미국에 와서는 한국에서 그렇게 큰소리치던 남편들이 영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기가 죽어서 뒤로 살살 빠지고, 집에서 살림만 하면서 남편한테 꼼짝 못 하던 부인들은 애들 키우면서 억척스럽게 살아온 경력이 있어서인지 영어도 더 빨리 배우고 미국 사람들 상대로 못 하는 영어도 손 짓 발 짓 다 해가면서 미국 손님들 상대로 카운터도 보고 그야말로 한 사람이 열 사람 몫을 하면서 살더라.


아마도 한국에서는 체면 때문에 못 했던 것을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미국 땅이다 보니 용기가 더 생긴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민 온 한국 남편들이 우리 집 양반만 빼고는 마누라한테 거꾸로 꼼짝 못하고 잡혀 사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민 초창기 때, 아마도 2000년도 초까지는 미국에 도착할 때 누가 공항에 마중을 나오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앞으로 미국에서 살아갈 종교라던가 직업이 거의 결정이 되던 때도 있었다.


마중을 나온 사람이 교회를 다니면 십중팔구 그 사람이 다니는 교회에 같이 나가야 했고, 세탁소를 하던 사람이 마중을 나오면 이 또한 세탁소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라는 것도 없었고 미국에 대한 정보도 달리 얻을 길이 막막해서 그랬었던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다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는 세상이 되어서 이런 이야기 또한 이민자들 사이에서 그저 추억거리로 남아있을 뿐이다. 물론 이것도 특별한 재주를 갖고 이민 오는 사람들한테는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미국에서의 교회 생활은 한국의 교회와는 완전히 다르다.  성당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야말로 사랑방이다. 꼭 종교를 떠나서 이민자들한테는 없어서는 안되는 절대적으로 소중한 곳이다.


힘든 이민 생활을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교회나 성당을 가야만 다른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 미국 생활에 필요한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직장을 잃으면 직장도 얻어주고 통역이 필요하면 2세들이 나서서 변호사 역할도  해주고, 먹을 것이 없으면 서로 서로 도와주면서 살았다.


이런 교회나 성당들이 없었다면 많은 이민자들이 그 힘든 이민 생활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 같다.




아주 돈이 많거나, 영어를 원주민처럼 유창하게 말하거나, 특별한 재주를 한 가지 이상 갖고 있으면 미국 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들 하는 데 아무것도 해당 안 되는 우리는 그야말로 지문이 닳도록 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오랜 이민 생활을 겪어내면서 깨달은 것은 아무리 위에 열거한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도 결국은 그 사람이 얼마나 진실되고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가진 돈도 없고, 말도 잘 안 통하고, 이렇다 할 내세울 만한 특별한 기술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많이도 기가 죽고 초라했었다.


이민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되는 그러면서 반드시 인지하면서 살아야 하는 “한인사회”라는 곳에서도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격차에서 많이도 힘들고 외로웠던 적도 많았다.


오죽하면 한인사회에서 끼어 사는 것이 더 고통이고 스트레스라고 여겨저셔 아예 한인사회를 등한시하고 숨어서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한 가지 희한한 것은 나이 들고 외로워지니까 결국은 다시 한인사회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자식들 하루빨리 영어권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한인들이 별로 없는 곳에 가서 영어만 쓰고 살다가 아이들이 성장하고 완전히 미국 사회에 발을 내딛고 나니까 그때부터는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완전히 내 자식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너무도 외로워지기 시작했다는 이민 1세들이 참 많으시다.


물론 모든 분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극히 일부에 해당되는 일이겠지만 오랜 세월을 외국 땅에서 살면서 직접 보고 들어온 것이기에 마냥 남의 일 같지만 않았다.


결국 나중에 한인사회로 다시 돌아오면서 느끼게 되는 그 감정들은 오래오래 상처를 받았던 사람일수록 더 클 것이다.


아무리 웬수같이 지냈다가도 다시 돌아온 사람들한테 그동안의 감정 다 잊어버리고 그야말로 따뜻한 밥 한 그릇 지어서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이 진정한 한인사회이기도 했다.


아! 내가 한국 사람이었구나! 이게 바로 한국 사람의 정이었구나! 이런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면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두 번 다시는 떠나지를 않게 되는 것을 많이도 보아왔다.




요즈음은 한국에서 도시의 웬만한 아파트 한 채만 팔아도 미국에서는 어마어마한 돈이 되니까  이렇게 이민 오시는 분들은 오랫동안 이민 1세대로 살아오신 분들하고의 이민 생활하고는 전혀 다른 삶이 주어진다.


이민 1세대들이 평생을 걸려서 간신히 마련하는 집 한 채를 이미 충분한 여유자금을 갖고 오는 새로운 이민 세대들은 한국에서 아파트 판 돈으로 오자마자 집 사고 비즈니스도 하나 사고 그러고는 주말에는 골프 치러 다니면서


아주 편한 이민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많이 생겼다.


이래저래 이민 1세들한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제는 내 나라 대한민국으로 돌아와서 더 이상 궂은 일을 안하고  살고 있음에 너무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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