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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an 18. 2024

가끔은 이런 호사도 누려보자!

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9

우리 집에서 15분 정도에 ”포도호텔“이라는 곳이 있다. 제주도에서 방 잡기가 제일 어려운 곳이라고 해서 더 유명하단다. 거의 호텔에서 잠을 잘 일이 없는 우리한테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가 얼마 전에 지인이 다녀오고는 너무 좋다고 어찌나 자랑을 하는지 유튜브에 검색을 해봤다니 장난이 아니다.


일단은 너무 비싼 것에 우선 놀래고 그다음에는 아주 근사하게 운치 있으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심 있게 본 이 호텔의 레스토랑의 시그니쳐 메뉴인 우동과 짬뽕의 엄청난 가격에 또 한 번 놀란 것이다.


자그마치 우동 한 그릇이 24,000원이고 짬뽕은 무려 35,000원이나 한다.

식전 죽이 나오고 그냥 우동 한 그릇에 엄청난 크기의 새우튀김 하나가 전부이다.


나한테 우동과 짬뽕은 분식집 아니면 동네 중국집에서만 먹어보던 것이 전부라서 아무리 그래도 무슨 우동과 짬뽕이 그렇게 비쌀 수가 있냐는 생각에 전혀 올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2023년이 지나간 지도 어느덧 2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는 늘 새로운 2024년 새해가 이미 시작이 된 것이다. 크리스마스 때도 집에만 있었고 연말에도 집에서 하루 세끼를 먹었다. 그리고는 새해 첫날에는 신랑이 떡국을 안 좋아하는 덕분에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떡국도 못 먹었다.


그전에는 한식을 파는 곳을 가면 으레 떡국과 만둣국을 팔았었는데 요새는 떡국 파는 곳을 가려면 시내에 있는 분식집이나 가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제주도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횟집과 제주도 흑돼지집은 사방에 천지로 널려있는데 떡국 파는 집이 안 보여서 참 속상하다.


거의 일 년 365일을 집에서만 먹으려는 우리 삼식이 아저씨 비위 잘 맞추고 살다가도 가끔 한 번씩 너무 힘들고 속상할 때가 있다. 먹는 것에 정말로 진심인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집이라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산다. 그런데 가뭄에 콩 나듯이 내가 반기를 들을 때가 있다, 바로 내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이다. 감기 몸살기가 있을 때 나는 병원은 안 가도  맛집에 가서 맛있는 것 하나만 먹으면 따로 약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럴 때 이해 못 해주는 남편이 너무도 야속해서 가끔은 큰맘 먹고 혼자서라도 먹으러 간다. 살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링거 맞는다고 생각하고 기운 차리기 위해 혼자서 밥을 사 먹으러 간다.


처음에는 혼자 외롭게 먹는다는 것이 너무도 남 보기 창피스럽고 먹는 것 자체도 쓸쓸했었는데 이제는 많이 초월을 했다. 어차피 안 갈 남편을 설득하느라고 더 비참해지는 것보다는 그래도 혼자라도 가서 내 몸보신을 위해 먹고 싶은 것 원 없이 먹는 것이 내 몸에도 좋고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나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 날인 것이다. 비싸기로 소문난 포도호텔에서 점심을 먹기 전에 포도호텔에서 꾸며놓은 “포도올레“길도 걸어보고 사진도 찍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만 나는 모처럼의 고급 짬뽕을 먹기 위해 준비운동까지 했다.


이런 것이 바로 나하고의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것을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배우게 됐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나하고의 데이트란다. 비록 혼자 와서 홀로 음식을 시켜 먹는다는 것이 어쩌면 약간 처량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를 위한 ”아티스트 데이트“라는 말을 갖다 붙이니까 청승맞기는커녕 오히려 굉장히 근사해 보인다.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사람은 홀로서기에 성공할 때 그때 비로소 인생의 가치또한 높아진단다.


포도호텔의 비싸기로 유명한 레스토랑이다. 생각보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한 분위기에 아주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분위기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역시 호텔이라서 그런가 보다.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인 이타미 준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곳곳에 약간 일본 분위기가 느껴진다.


평소에 자주 다니는 제주도의 일반적인 곳에서는 이런 서비스를 전혀 받아보지를 못해서인지 너무 친절한 배려에 촌스럽게도 몸 둘 바를 몰라하는 내가 참 우습다.


오늘은 특별히 나를 위한 날이니까 있는 대로 폼 잡고 대망의 짬뽕을 시켰다.


메인이 나오기 전에 자그마한 그릇에 홍합죽이 나왔다. 역시 맛있었다. 그날그날 재료에 따라서 죽이 바뀌는 것 같았다. 전복죽이 나오려나 하고 기대했다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홍합죽이 나와서 약간 실망을 했는데 먹어보고는 그 맘이 싹 가셨다. 그만큼 맛있었다는 뜻일 거다.


말로만 듣던 포도호텔의 짬뽕이 드디어 나왔다. 끝내주는 비주얼이다. 싱싱한 해산물로 가득한 엄청난 크기의 짬뽕 그릇에 먹기도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과연 이걸 내가 다 먹을 수 있을까 …


제법 큰 새우튀김 하나가 같이 나왔다. 우선 튀김부터 먹어봤다. 얼마나 바삭바삭하고 맛있던지 일단은 새우튀김 하나만으로도 대 만족이었다.


드디어 먹어보는 짬뽕은 싱싱한 해산물이 주제인 것 같다. 그 비싼 전복에다 낙지, 가라비등  들어간 재료들이 엄청 신선하고 좋은 것들로 만들었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포도호텔 짬뽕 한 그릇이 왜 그렇게 비싸야 했는지 들어간 해산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해가 간다.


해물을 잔뜩 넣고 고기 베이스로 만들어서 그런지 짬뽕 국물 맛은 확실히 다른 집들하고는 달랐다. 진하고 맛있었다. 하지만 워낙에 양이 많아서 반도 못 먹고 남긴 것이 너무도 속상했다. 이게 돈이 얼마인데 하면서 아까운 생각에 오히려 기분이 더 울적해졌다.


면발은 중국집에서 즐겨 먹던 그런 국수가 아니고 조금 색다른 면이었다. 쫄깃한 면발을 자랑한다. 아주 쫄깃하고 특별한 느낌은 있는데 왜 나는 이곳에 비하면 훨씬 초라한 일반 중국집의 짬뽕면이 더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분명 다른 집 면보다 쫄깃쫄깃한 것은 사실인데 이 면발 때문에 다음에도 이 비싼 짬뽕을 먹으러 오겠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내 답은 “NO!”이다.


그냥 내 생애 처음으로 비싼 짬뽕 한 번 먹어본 것으로 족할 것 같다. 그냥 고급이 아닌 일반 식당에 이미 혀가 길이 들어졌나 보다. 참 불쌍한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맘 편히 후루룩후루룩 별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일반 중국집 짬뽕이 더 정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왕 저지른 것 디저트까지 먹어보기로 했다. 콩가루 아이스크림이다. 기가 막히게 맛있다. 짬뽕보다도 이 아이스크림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고소한 콩가루에 아이스크림을 같이 떠서 먹는데 그 맛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제법 양이 많은데도 다 먹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포도호텔의 특제 흑설탕 시럽이 뿌려져 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듬뿍 덮은 콩가루가 그냥 콩가루가 아니다. 그 진한 맛이 달라도 아주 달랐다. 고소함의 극치를 이루면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내내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마법 같은 것도 있었다.


우동이나 짬뽕을 먹으려는 안 올 것 같은데 이 아이스크림은 지나가다가  시간이 나면 일부러라도 들러서 다시 먹고 싶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만원이면 이 정도의 호사는 괜찮을 것 같다.




포도호텔의 음식값이 상당히 비싼 것은 아마도 특급호텔이 지닌 일종의 프리미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포도호텔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분위기와 그에 걸맞은 최상의 서비스가 함께 하는 데다 좋은 경치까지 구경하면서 가볍게 운동도 할 수 있다는 그런 장점이 가격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많이 비싸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일단은 식사를 하는 동안 일반 제주도 고급식당에서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제대로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하지만 오늘 먹은 짬뽕과 디저트인 아이스크림값을 지불하고 나오면서 들은 생각은 100% 만족은 하면서도 속으로 “미쳤다”하면서 나왔다. 나를 위한 보상이라는 근사한 타이틀을 만들어서 기껏 즐긴다고 해놓고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과 집에서 혼자 간단히 먹고 있을 우리 집  삼식이 아저씨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마 이 양반이 알았으면 난리가 날 것이다. 이 마누라가 미쳤나? 할 것이다. 물론 있는 사람들한테는 세 발의 피이겠지만 조금은 호사를 부려보자고 했던 것이 나한테는 지나친 호사였었다.


그냥 생긴 대로 살자.

음식도 내 수준에 맞는 것을 먹어야 탈도 안 나고 맛도 더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좋은 경험 했다. 두 번 다시는 이런  호사는 안 누려도 된다는 깨달음 또한 얻었다. 집에서 김치 썰어놓고 끓여 먹는 우동 또한 맛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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