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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Dec 11. 2023

우리 집 양반의 못 말리는 트로트 사랑

행복한 역이민 생활

우리 집 양반이 한국을 떠난 것은 1967년이었다.

그리고는 거의 50년 만에 그토록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오랜 이민 생활을 겪어내면서 힘들고 괴로울 때 이민자의 설움을 달래주던 것이 바로 이 트로트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살 때는 트로트라는 말은 거의 안 쓰고 대중가요 아니면  “뽕짝”이라는 말을 많이 썼던 것 같다.

그 당시만 해도 스마트 폰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도 훨씬 전이라서 미국에서 이렇게 한국 음악을 들으려면 “비디오 가게”라는 곳을 들려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와서는 텔레비전랑 연결된 기계에다 넣고 TV를 보면서 한 많은 이민살이의 설움을 달래곤 했었다.한 번 빌려오면 일주일을 사용할 수 있어서 매일같이 보고 또 보고를 반복했다. ​지금 트로트라고 불리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가왕 조용필의 테이프도 있었고 또 다른 엄청난 가왕 나훈아의 테이프도 있었다.

그래도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이민자의 설움을 달래기에는 트로트만 한 것이 없었던 것 같다.​우선 가사 그 자체가 너무도 기막히지 않은가…​제목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들어가면 그건 무조건 대히트였다.


불효자는 웁니다! 어머님 전 상서! 마치 지금의 내 심정을 그대로 토해내는 듯한 가사에 많은 이민자들이 웃었다가 울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래도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에 사는 잘 나가는 한인들은 가끔 한 번씩 미국으로 공연하러 오는 가수들을 무대에서 직접 보기도 하고 악수도 교환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우리 같이 같은 미국에 살면서도 약간 시골 같은 곳에 살던 한인들은 그런 공연을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미국에서 살 때는 비디오테이프로만 보던 트로트를 한국에 돌아오니  여기 틀어도 트로트 저기 틀어도 트로트 ​우리 집 양반 좋아서 입이 귀에 걸렸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시작된 트로트 열풍에 우리 집 양반의 한국 생활 적응이 좀 더 쉽게 자리 잡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어도 중장년 시절 거의 대부분인 50년이라는 그 긴 세월을 살아왔던 미국에서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의 역이민 생활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미국에서 이민자의 설움을 달래줬던 트로트가 이번에는 거꾸로 역이민자의 허전함과 외로움을달래주는 치료제가 된 것 같다.


“내일은 미스 트롯”이 시작되면서 우리 집 양반의 송가인에 대한 사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ㅋㅋ. ​송가인이 부른  “단장의 미아리 고개” 가 시발점이었다. 6.25 전쟁을 직접 격은 사람이라 이 노래를 받아들이는 감정이 일반 사람들하고는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우리 집 양반 표현에 의하면

송가인의 목소리에는  “한 恨 “ 이 서려 있어서 더 가슴이 메어 온단다.

송가인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 낯선 이국땅에서 죽어라고 함께 고생만 했던 마누라의 생일은 기억도 못 하는 사람이  ​송가인에 대해서는 어디서 태어났으며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고… 심지어는 송가인의 조카까지도 일일이  꿰고 있다.


참 신기하다. 자기 전화번호도 못 외우고 집 주소도 모르고 마누라 생일까지도 기억을 못 해서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을 때 오죽하면 치매가 의심되니까  언제 한 번 제대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다행히 치매는 아니었지만… ​이런 양반이 자기가 좋아하는 송가인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안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아마도 관심사의 차이 아닐까…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일만 하고 살아오느라 제대로 된 취미 하나 없고 놀아 본 적이 없어서 놀 줄도 모르는 노인네한테 이런 즐거움과 행복을 전해주는 송가인 씨한테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천지가 개벽할 만한 사건이 생겼다. ​오로지 집에만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진도로 여행을 가잔다. ​송가인 집에 가보겠단다.유튜브에서 송가인 집 방문했다는 사람들 영상을 보고는 자기도 가보고 싶었나 보다. ​얼마나 놀랬던지…

나야 뭐…누이 좋고 매부 좋고…

어차피 여행이라고는 안 다니는 사람이니까 난 이참에 여행도 하고…맛있는 것도 먹고…덕분에 나는 신났다. ​송가인 집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기념사진을 찍는 신랑을 보면서 이 사람한테도 이런 면이 있었나 하면서 속으로 내심 많이 놀랐다. 이제야 좀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내친김에 이번에는 송가인 콘서트까지 보러 갔다.약간 민망해하는 남편한테 송가인 컵도 사주고 송가인 부채도 사주고송가인 쿠션도 하나 사서 차 뒷자리에 놔줬다. ​아무런 내색도 안 했지만  속으로는 꽤나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지금도 매일 아침이면 송가인이 그려진 머그컵으로 보리차를 마신다.


그냥 이렇게 늙어가는 것도 참 좋다.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옆에서 함께했던 지인들한테 송가인 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전부들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뻔했단다. ​완벽주의자에다가 절대로 남한테 민폐 끼치는 일은 안 하고오로지 성실하게 일만 하던 사람의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었다.​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하나보다.

아무리 트로트가 좋다고는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하루 종일 틀어대는 것은 좀 심하다. ​오디션이 시작된다거나 새로운 방송이 나오면 두세 번까지는 그럭저럭 참겠는데 주야 장청 보던 것 또 보고 그다음 날도 또 똑같은 것 보는 것은 본인처럼 트로트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선 이것 역시 고문이다 ^^  ​하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측은지심“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시끄럽고 짜증 나더라도 이 양반한테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얼마나 심심할까…라는 생각에 ​오늘도 여전히 나는 신랑과 함께 몇십 번째 인지도 모르는 트로트 재방송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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