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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Dec 29. 2023

더 이상 영어를 안 써도 된다

행복한 역이민 생활

우리 집 양반은 거의 50년 만에 내 나라로 돌아왔고 나는 25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우리가 역이민을 결정하고 미국을 떠나면서 드디어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을 듣는 순간 갑자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희한하게도 더 이상 영어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다, 기쁘다 이런 생각들이 아닌 영어를 안 써도 된다는 왜 그런 희한한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도 말 안 통하고 완전히 문화가 다른 그런 미국에서의 생활이 그만큼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얼마나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으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에 나 자신이 너무도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그래도 그토록 원하던 내 나라 내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내 자신을 보담아 주고 달래주었다.


완전히 역이민을 오기 전에도 그동안 몇 번은 한국에 왔다 가곤 했었다. 그때는 잠시 들리러 온 것이었기에 더 이상 영어를 안 써도 되는 구나라는 그런 이상한 생각은 품지를 않았었다.


그런데 막상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정말로 내 나라로 완전히 돌아왔다는 생각을 하니까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으면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을 듣자마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영어를 안 써도 된다는 그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많은 이민 1세대들한테는 무엇보다도 언어의 장벽이 가장 클 것이다.

그 머나먼 낯 선 땅인 미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해서도 가족들 먹여 살리기 바빠서 어디 가서 느긋하게 영어 공부할 시간조차 없었던 사람들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는 선진국답게 이민자들한테 자기네 나라말인 영어를 배우게 하는 교육기관들이 기가 막히게 잘 돼있었다. 그것도 무상 교육이다.


영어를 못하는 이민자 가정의 어린아이들한테는 학교에서도 따로 영어 공부를 시켜주기도 했다. 심지어는 방과 후에 집으로 영어 선생님들을 보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잘돼있는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일터로 나가서 벌어야만 자식들 공부시킬 수 있다는 그 일념하나로 이민 1세대인 부모들은 공부하러 다니지를 못하고

바로 일터로 뛰어든 것이다.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간신히 영어를 구사하면서 그 힘든 세월들을 견뎌왔던 것이다.


그래도 웬만큼 큰 도시에 사는 한인들은 한인 커뮤니티들이 잘 돼있어서 영어 한 마디 못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마트도 전부 한인들이 운영하고 약국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부동산도 있고  식당은 물론 병원까지 전부 한인들이 운영하다 보니 영어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고 사는 것이다.


이런 사정들을 잘 모르는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왔다고 하면 무조건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줄 안다. 이런 것이 한국에서 살면서 새로운 스트레스로 자리 잡을 줄은 미국을 떠나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이다.




미국에서 가까이 지내던 우리보다는 많이 젊은 부부들이 얼마 전에 우리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무사히 자리 잡고 잘 지내고 있는 우리가 부러워서 자기들도 한국으로 역이민을 나가고 싶은데 한국에 갈 때마다 조카들이 어려운 영어문제집 들고 와서 가르쳐 달라고 하는 통에 난감해서 죽을 뻔했다는 소리를 하더라.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영어 못해서 쪽팔려서 한국으로 못 나가겠단다.


같이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가 눈물이 나도록 배를 잡고 웃었지만 마냥 웃을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동안 무거웠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심각한 문제였다.


미국에 살면 무조건 영어를 잘한다는 생각도 일종의 고정관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미국에서 살려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해야 하지만 미국에서도 미국 사람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지 않고는 그야말로 영어 한 마디 쓸 일이 없다 보니 그나마 조금 알고 있던 영어도 금방 다 잊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그래도 정말 한국 사람들이 대단한 것은 아무리 영어를 못하더라도 그 낯선 땅인 미국에서 다들 열심히 자기 비즈니스들을 하고 산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손짓 발짓 온갖 바디랭귀지를 다 동원하면서 영어 잘하는 미국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장사들 하면서 사는 것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존경심마저 든다.


오죽하면 미국 사람들도 신기해한다. 어떻게 영어를 잘 못하면서도 장사는 그렇게 잘할 수가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파워인 것 같다. 어디 내놔도 결코 기죽지 않는 것이 한국 사람들한테는 있다.



이러한 언어 장벽을 안고 살아가던 이민 1세대들이 오랜 이민 생활을 접고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을 오게 된다면 고정관념 같은 것은 버리고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만 바라봐줬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어쨌거나 한국에 돌아와서 살다 보니 너무도 편하고 좋다.


우리 집 양반 표현에 의하면 앞을 봐도 똑 같이 생긴 한국사람이 있고 뒤를 봐도 또 똑같은 사람이 있으면서 다 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단다.


그래도 미국에서 오랫동안 미국 사람들 상대로 카페테리아를 운영하면서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하던 영어가 이제는 그야말로 한 마디도 생각이 안 난다.


하기사 전혀 쓸 일이 없다 보니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영어를 잊어버릴 까봐 나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전혀 써먹을 일이 없는 영어 공부가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만두고는 그 대신 이제는 미국에서는 감히 꿈조차 꾸지 못했던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까짓것, 영어 좀 못하면 어때?

그런 대견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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