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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Dec 21. 2023

 남편이 위암이란다

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한국으로 돌아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신랑이 위암 판정을 받았었다.그것도 3기에서 4기로 접어들었다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50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의 생활이 적응도 되기 전에 이런 엄청난 사건이 생긴 것이다.


그래도 너무도 다행이었던 것은 그나마 한국으로 돌아왔기에 위암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아마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병원비 때문에 무서워서 병원을 안 다녔을 것이다. 그러다가 위암을 발견했을 때는 아마도 거의 말기가 다 돼서 일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 사는 많은 이민자들이 병원비를 아끼다가 너무 늦게 병을 발견하고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고 살아왔다. 우리 집 양반은 아마도 살려고 한국에 돌아온 것 같다.


50년이라는 생활을 외국에서 살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미국 생활이 더 편하다고 생각했는지 처음에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약간 두려워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내가 워낙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니까 마지못해 따라는 왔다가 영 적응을 못해서 고생을 했었다.그런데 평생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사람이 갑자기 위암이라니,… 그것도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라는 말에 완전히 기운을 놓아버리던 그때의 남편의 모습이 영 잊히지를 않는다.


그래도 내 나라 대한민국이었기에 진단받고는 일주일 만에 수술 날짜 잡고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무사히 수술을 안전하게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이렇게 전문의 찾아다니고 검사받고 수술 날짜 기다리다가 지쳐서 죽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을 하고 살았다.


그 잘 산다는 미국에서도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참 많다.상상을 초월하는 병원비에  X-Ray 하나 찍기 위해서 차를 타고 먼 곳까지 가야 하고또 다른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다시 또 차를 타고 역시 다른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검사 몇 가지 받으려면 완전히 지쳐서 다녀야 한다. 한국처럼 한 빌딩 안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이 되는 곳이 우리가 살던 곳에는 없었다. 알래스카에서 약사로 일하면서 살고 있는 큰 딸한테 물어봤더니 아마도 미국의 거의 모든 도시들이 그럴 것이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모든 것이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는데 얼마나 마음이 놓이고 감사했던지…그때만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 양반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위암 진단이 떨어지자마자 의사 선생님께서 바로 5대 암이라는 것에 등록을 해주셨다.그때부터 모든 병원비는 그야말로 거의 무료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미국에서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받았더라면 아마 우리는 망했을지도 모른다. 세계 최고의 의료보험을 자랑한다는 그런 혜택을 우리가 바로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정말 잘했다.


우리 남편을 다시 살게 해 준 것에

너무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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