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제주도 이야기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오일장은 매달 1일 하고 6일로 끝나는 날짜에 장이 선다. 마지막 날짜인 31일에 장이 서면 그다음 날 1일은 장이 안 선단다. 처음에는 이런 것도 많이 헷갈렸는데 살다 보니 적응이 된다.
제주도 우리 집에서는 제주도에서 가장 크다는 제주시 민속 오일장에 가는 것이나 이렇게 서귀포시 입구에 있는 대정 오일장에 가는 것이 시간상으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나는 이왕이면 이렇게 대정으로 장을 보러 간다.
제주시에 있는 민속 오일장이 제주도에서는 가장 큰 곳이니까 당연히 그곳으로 가야 물건도 더 많고 볼거리도 더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마어마한 사람들로 붐비다 보니 가끔은 차 댈 곳이 없어서 뱅뱅 돌다가 그냥 돌아온 적도 있다.
그나마 얼마 전에 새로 증축 공사를 하면서 주차 빌딩도 들어서곤 했지만 희한하게도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진다. 정말 왜 그러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온 탓도 있겠지만 너무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이상하게도 머리도 아프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괜히 주눅조차도 든다. 방향 감각조차도 잊어버리게 된다.
한국에 돌아와서 아직도 많이 힘든 부분 중의 하나가 서로 지나가다가 부딪히면 나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데
상대방은 전혀 부딪혔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다.
최소한 서로 얼굴 쳐다보면서 괜찮냐? 미안하다!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지나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도 이상하고 속상했다.
다행히 지금은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다.
그래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살게 마련인 것이다를 뼈저리게 절감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너무 복잡한 곳은 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용하고 조금은 덜 바쁜 곳으로 가게 된다.
내가 자주 다니는 대정 오일장 근처는 근사한 바다 뷰를 끼고 있는 곳이라서 드라이브 삼아 가기에도 좋은 길이다.
비록 규모상으로나 물건 종류로 봐서는 제주 민속 오일장보다는 훨씬 작지만 주차 전쟁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사람도 덜 붐벼서 천천히 장 한 바퀴 돌아보는 재미도 더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오일장에 장도 보러 오면서 바로 옆에 있는 바닷가 산책도 하고 그야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셈이다.
대정 오일장 주차장은 역시 제주도답게 바로 앞에 바다를 끼고 있다. 또한 걸을 수 있는 해안도로 역시 같이 있다.
대한민국 오일장중에서 이런 기가 막힌 뷰를 갖고 있는 주차장이 또 있을까? 오일장에 장 보러 가는 즐거움을 배가 되게 하는 곳이다.
오일장 안을 들어가는 바깥쪽에 임시 텐트를 치고 계시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시장 밖에서 노점을 하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꽤 많다.
날씨가 좋은 날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행여 비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어쩌려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전에 비 오는 날에도 한 번 들렸더니 여전히 밖에서 행상을하시는 분들이 꽤 많았던 기억이 난다.
난 웬만하면 조금 비싸거나 물건이 안 좋아도 이런 곳에서 하나씩은 꼭 산다. 특히나 할머니들이 앉아계시면 무조건 가던 걸음 멈추고 사드린다. 우리 집 양반 엄명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나마 시장 안에 자리 잡으신 분들은 아마도 경력이 오래되셨겠지… 시장 안에까지 진출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어딜 가나 선후배가 따로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또 깨닫는다.
어느 시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대정 오일장 시장 입구역시 동서남북 사방으로 열려 있어서 아무 데나 편한 곳으로 다니면 된다.
늘 호떡집은 시장 정문 입구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다.국민 간식인 떡볶이 집도 마찬가지이다.
호떡집에 불난다는 말처럼 아무리 더워도 늘 호떡집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유난히 호떡을 좋아하는 나는 어떨 때는 이 호떡이 먹고 싶어서 일부로 오일장을 가기도 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호떡을 먹은 경력이 만만치 않은데도 왜 매번 먹을 때마다 그 뜨거운 설탕에 입안이 데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입안이 데거나 말거나 정말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욕심에 몇 개를 더 사서 집에 가져가면 희한하게도 그 맛이 안 난다.
바로 오일장 시장 바닥에서 입천장 델세라 조심조심 훅훅 불어가면서 서서 먹어야 바로 제맛인 것이다.
오일장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코스가 떡볶이 / 순대 / 튀김 /어묵이다. 국민 간식인 이 네 가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분의 차이도 넘어서 누구나 다 좋아하는 음식일 것이다.
왜 배는 부른데도 이 앞을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는지…
이것 또한 모를 일이다.
요새는 이런 것을 인식해서인지 한국의 높으신 양반들도 시장에 오면 꼭 떡볶이를 먹는 것을 방송으로 내 보낸다.
확실히 국민 간식인 것은 틀림없나 보다.
싱싱한 생선이 진열돼 있다.
이런 생선대를 갖고 계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남편분들이 배릍 타고 나가 잡아온 것들을 아내 되시는 분들이 장사를 하는경우가 많단다.
한 세월을 자식을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하셨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가슴 아프다.
바로 그 유명한 제주 은갈치가 반짝반짝 자태를 뽐내고 있다.
유명한 만큼 가격 또한 엄청나다. 그래도 확실히 맛은 다르다.
다른 생선은 잘 안 먹는 남편이 유독 이 갈치는 좋아해서 가끔 한 번씩 큰 맘먹고 산다.
생선은 짜야 맛있다는 남편을 위해서 소금을 살살 뿌려서 갈치구이도 하고, 맛있기로 유명한 제주도 무로 갈치조림도 만든다.
이제는 어느새 노인이라는 대열에 들어서고 보니 좋은 옷, 좋은 가방 이런 것보다는 좀 더 맛있는 것, 좀 더 싱싱한 것 이런 것에 관심을 더 두게 된다. 다소 비싸더라도 정말 신선하고 맛있는 것에는 이제는 지갑을 연다.
이럴 때 동반하는 감정이 또 새로운 즐거움이다.
나 출세했네…
대부분의 오일장들은 통로가 좁아서 다니기가 조금 불편하다. 게다가 바닥이 평평하지가 않고 울퉁불퉁해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가 힘들다. 그 바람에 종종 캐리어가 넘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는 바닥이 물로 늘 젖어있다 보니 어르신들 조심을 요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오일장을 주로 이른 아침에 다닌다.
그 덕분에 붐비지가 않아서 맘껏 한가로이 헤집고 다닐 수가 있다.
여기저기 눈을 부릅뜨고 다니다 보면 온통 사방천지가 맛있는 것으로 도배를 해놓은 것 같다.
빈대떡 집도 있고, 제주 빙떡이라는 것도 있고, 그리운 맛인 붕어빵과 찐 옥수수, 김밥, 떡등이 진열돼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노인이라서 이제는 마음 놓고 소화시킬 수 없다는 현실이 서글퍼져 온다.
비록 아무리 소화가 안된다고 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소가 또 하나 있다. 옛날 식 꽈배기랑 단팥이 잔뜩 들어간 도넛을 파는 곳이다.
요즘 사람들은 다이어트에 지나치게 신경들을 써서 아마도 이렇게 설탕 범벅인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하더라도 설탕 없는 도넛을 먹는다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이랑 다를 바가 없을 것 같다.
어쩌다 우리 집 양반이 오일장을 같이 오는 날이면 그날은 반드시 이런 연장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철물점에 가도 없는 것이 없지만 이상하게 오일장에서 파는 것이 더 정이 가서 좋단다.
이것 또한 추억놀이인 듯…
사진에 표시돼 있는 것이 호미 두발 괭이라는 것인데 전원생활의 필수품이다. 마당에 잡초를 뽑을 때 아주 유용하게 쓰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주변의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이런 것이 있는 것조차 몰랐단다.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우리가 잡초 캐는 것을 보고는 그게 뭐냐고 놀라서 묻는다. 자기네들도 집에 돌아가자마자 당장 구해서 써봤더니 이렇게 펀하고 좋은 것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잡초 뽑느라고 고생만 죽도록 했다면서 너무너무 좋아한다.
전원생활도 이런 노하우가 없으면 로망이 아니라 고생길에 접어든다.
재미있는 것은 전원생활의 천국이나 다름없는 미국에서조차도 호미라는 것이 없어서 한국의 호미를 보고는 인터넷으로 주문들 하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단다.
그야말로 아마존에서 대박이 난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전원생활 용품들이 있지만 이렇게 우리나라 호미처럼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는 물건은 없었단다.
좌우지간 한국 사람들의 손재주는 따라올 재간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집 양반 같은 경우에는 거의 50년이라는 세월을 외국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전원주택이라는 곳에서 살다 보니 저절로 전원생활에 대한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워낙에 좋아하고 잘한다.
그야말로 팔십 대 맥가이버가 따로 없다.
일명 효리 방석으로도 더 유명해진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이 빨강 방석이 우리가 한국에 와서 가장 감동스러웠던 물건 중의 하나이다.
소길댁 효리가 콩밭에서 일하면서 엉덩이에 걸치고 나와서 더 유명해졌단다. 그래서 효리 궁둥이 의자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궁둥이”라는 말이 참 정겹다.
마당에 주저앉아서 일할 때 얼마나 편하게 받쳐주는지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나한테는 이제는 이 방석 없이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참으로 신통하고 재미있는 발상이다.
제주도 오일장을 다니다 보면 또 재미있는 것이 있다.
바로 제주도 패션이다.
제주도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안 입은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특히 작업하시는 분들이 많이 입는 것 같다.
우리 집 양반 보고 하나 입어보겠냐고 했더니 질색을 한다.
평생을 청바지만 입고 살았던 사람이라 팔십이 넘은 할배인데도 청바지만 입는데 생각보다는 잘 어울려서 다행이다.
제주도 해가 워낙 뜨겁다 보니 팔 토시 또한 필수품이다.
또 하나의 전원생활필수품이다.
햇빛 가리개 모자 또한 제주도 전원생활의 필수품이다. 일반 모자를 쓰면 어깨 위로 내리쬐는 햇볕을 도저히 피할 재간이 없는데 이걸 쓰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단지 하나 이상한 것은 왜 전부 울긋불긋 꽃무늬일까?
그냥 깨끗하게 단색으로 해도 좋을 텐데…
지난봄에 알래스카에서 온 큰 딸애도 오일장에서 이 궁둥이 의자랑 호미랑 팔 토시 그리고 햇빛 가리개 모자를 사 갖고 갔다.
자기 아빠랑 똑같은 DNA를 갖고 있는 딸답게 워낙에 전원생활을 즐기고 정원 가꾸기를 아주 잘한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을 안 주더니 이런 잡동사니에 완전히 꽂혀서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 집 양반하고 알래스카 딸이 몸소 보여준다.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는 것 같다.
또 하나 재미있고 유용한 것을 발견했다. 발 각질 제거제인데 역시 제주도답게 화산석으로 만들었단다.
제주도에 사니까 이런 것도 한 번 써봐야지 하는 생각에 무조건 하나 사봤다. 화산석이라 곰팡이도 안 필 것 같다.
요즘처럼 야채값이 금값일 때는 무조건 기다렸다가 오일장에 와서 산다. 물건도 싱싱하고 가격은 반값밖에 안 된다. 없는 것이 없다. 주인아저씨가 직접 담가서 더 맛있다고 자랑하는 오이지도 정말 맛있고 무엇보다도 아저씨가 직접 만드신다는 시골 촌 두부가 너무너무 맛있다.
고급 마트 같은 데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아주 귀한 토종음식이다.
우리 집 양반이 좋아하는 옛날 사탕도 샀다. 사탕도 이렇게 옛날 사탕이 더 맛있다고 한다.
팔십 대에 접어든 남편의 취향이 갑자기 젊어질 수는 없는 것이니까 일단은 모든 것을 신랑이 좋아하는 쪽으로 맞추게 된다.
역시 우리 집 양반이 좋아하는 센베 과자가 또 눈에 띄었다.
옛날 사람들이라 아직도 센베라는 일본식 이름을 쓰고 있는데 한국말로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가끔 백화점에서 그것도 아주 고급스러운 제과점에서 최상의 재료로 만들었다는 이 센베 과자를 사 오기도 했었는데 우리 집 양반은 이렇게 오일장에서 파는 것이 제일 맛있단다.
내가 먹어봐도 그렇다. 더 바삭바삭하고 고소하다.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옛날의 정겹던 추억과 함께해서일까… 어쨌거나 추억을 먹고산다는 것은 참 즐겁다.
제주도에서 나는 귤은 다 똑같은 줄 알았다. 제주도 도민들은서귀포시에서 나오는 귤만 최상으로 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서귀포 동쪽의 더 따뜻한 지역의 귤이 더 맛있다고 한다. 귤 종류도 하도 많아서 다 못 외울 정도이다.
매 철마다 바뀌어 나오는 귤을 그때그때 사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난 원래 한 군데 정해놓으면 그 집만 다니다 보니 가게 주인장들한테 인기가 있다. 주인이 단골 오셨다고 아주 맛있는 것만 골라서 주신다. 오늘은 추천해 주는 대로 황금향을 샀다. 역시 맛있다.
자주 다니는 건어물 집 역시 단골집이다. 주인아주머니가 인상도 좋으시고 인심 또한 푸짐하다. 제주도에 처음 오면 사람사귀기가 많이 힘든데 이렇게 한 번 정이 들면 그다음에는 친척보다 백배 낫다.
건어물과 땅콩 그리고 과일 말린 것들을 파는 집이다.
오늘은 옥수수 젤리랑 망고 젤리가 새로 들어왔다고 해서 신랑 주려고 샀다.
왜 이렇게 신랑 좋아하는 것만 사는지 내가 생각해도 참 많이모자란다^^ 그렇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쇼핑할 때는 늘 우리 집 양반 것만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해서 사 갖고 가면 영락없이 혼이 나면서도 참 못 말린다.
모든 오일장에는 간단한 식사랑 막걸리도 한잔할 수 있는 간이식당이 마련되어 있는데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깜짝 놀랐다.
우리가 한국으로 역이민을 결정했던 이유는 이런 한국의 정감 어린 모습이 그리워서였다. 옛날 우리가 살 때는 그야말로옆집의 숟가락이 몇 개인 줄도 알았고 엄마들이 무슨 급한 일이 생기면 동네에서 알아서 애들 밥도 챙겨주던 시절이었다.
그런 정이 그리워서 한국에 돌아왔는데 막상 돌아오니 미국이나 별 차이 없이 각자 문 꼭 잠그고 이웃하고는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는 모습에 많이 놀라고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바뀐 것에 적응하고 사는 수밖에…
그래도 다행히 아직은 이런 오일장 같은 것이 남아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오래오래 안 변하고 이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오일장 다니는 재미를 느끼면서 살고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