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이번 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주도의 유채꽃밭을 원 없이 보고 말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들은 척도 안 하면서 한 귀로 흘려버리던 신랑이 웬일로 같이 가주겠단다.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좋아서 손뼉을 쳐대는 나한테 아니나 다를까 같이 가는 대신 조건이 있단다.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인가 싶어서 조건이 뭐냐고 물어봤다.
거마비로 십만 원을 달란다. 하도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온다. 아마도 유튜브를 보다가 맘에 드는 연장을 하나 골라놨나 보다. 얄미워도 같이 가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가 없는 처지라서 할 수 없이 십만 원을 주고 드디어 가파도 여행길에 올랐다.
작년에 미국에서 동생이 놀러 왔을 때 가파도를 난생처음 가 봤다. 첫인상이 너무 좋아서 지난가을에도 홀로 여행을 실천해 보고자 다시 한번 찾아가 봤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사진을 보고 그냥 무작정 갔던 것이다.
고대하던 코스모스는 다 지고 없었고 겨울을 준비하는 썰렁한 들판만 남아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파도라는 섬은 언제나 아름답고 정겹다. 그래서 시간만 허락하면 언제든지 찾아오고 싶은 곳이다.
늘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다니다 보니까 가끔이 아니라 자주 실패를 한다. 정확한 정보들이 아니고 지난 사진들을 올리면서 선전을 하는 경우도 많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운진항에 직접 전화를 걸어서 지금 가파도에 유채꽃 상태가 어떤지 확인을 해봤다.
다행히 지금 예쁘게 피어있단다. 우리 집 양반 마음 변하기 전에 가야 한다. 무조건 예약부터 했다. 그래야만 남편하고 같이 갈 수가 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랐다고 마음먹었을 때 앞뒤 좌우 살피지 않고 그냥 떠나는 것이다. 유채꾳의 상태는 그 날의 운수에 맡기기로 했다.
가파도는 봄,여름.가을.겨울 아무 때나 찾아와도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함께 선물해 주는 곳이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1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는 제주도 특유의 거센 바람이 불어대서 이때는 별로 추천을 안 한다. 워낙 세게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제대로 가파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들뜬 마음으로 방문한 3월 9일 역시 아니나 다를까, 하늘은 맑게 개어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엄청난 바람이 불어댔다.
아직은 청보리로 유명한 4월과 5월도 아니어서 그다지 사람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을 안 했다. 우리 집에서 불과 30분밖에 안 걸리는 운진항에 막상 도착을 했더니 웬걸 주차장이 꽉 차 있었다. 차를 댈 곳이 없어서 한 바퀴 돌았더니 임시 주차장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지난 5월에 왔을 때도 이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었는데 확실히 유채꽃의 인기가 청보리보다 높은 가보다. 남편하고 둘이서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냐고 놀라면서 차를 대고는 매표소로 향했다.
머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불어대는 세찬 바람에 얼른 우리 집 양반의 눈치를 살펴봤다. 그래도 십만 원이라는 거마비를 준 효과가 있어서인지 웬일로 아무 말이 없다.
간단히 승선 신고서를 적성하고 어제 전화로 예약한 표를 구했다. 가파도를 구경하러 가기 위해서는 늘 왕복 표를 끊어야 한다. 운진항에서 떠나는 출발 시간에 맞춰 가파도에서 떠나는 출발 시간도 정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운진항에서 9시에 배를 탔으면 가파도에서는 11시 20분에 떠나야 한다. 우리는 11시에 떠나는 배를 타니까 오후 1시 20분에는 떠나야 하는 것이다.
지난번에 갔을 때 돌아다니다 보니까 두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결국 점심도 못 먹고 온 것이다, 그래서 이 번에는 한 시간을 더 머물 수 없냐고 물어봤더니, 예약으로는 안되고 현장에서는 돌아오는 배 시간에 좌석 여유가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좌석이 있어서 1시간을 연장해 오후 2시 20분에 가파도를 떠나기로 했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오기로 한 것이다.
오후 3시하고 3시 50분에 운진항에서 출발하는 것도 있는데 이건 왕복이 불가하단다. 돌아오는 배편을 못 구하니까 가파도에 사는 주민들 아니면 숙박하는 손님들이 이용하는 것 같다.
지금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이 되고 있는데 청보리 축제가 열릴 때는 30분 간격으로 다닌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때는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나 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왕복 가격이 천 원이 올랐다. 요즘 하늘 모르고 치솟는 물가에 비하면 그래도 천 원만 올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왕복 요금이 한 사람당 11,600원밖에 안 한다. 경로 혜택이란다.
이럴 땐 나이 들은 것이 참 좋다. (ᵔ ̮ ᵔ)͜
일반 성인들도 왕복이라고 해봤자 15,500원이다. 크게 부담 없는 가격이라서 여행이 더 즐거워지는 것 같다.
뱃삯도 안 비싸고 시간 또한 두 시간 남짓이면 갔다 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가파도 가는 사람 또한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배는 들어오지도 않았는데도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드디어 배가 도착해서 가파도로 출발을 했다.
만석이었다.
우리 집 양반 또 한소리 한다. 아니 요새 제주도 경기가 안 좋다더니 이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왔냐고 한다. 막상 제주도 사람들은 가파도를 안 가본 도민들이 많다고 들었다. 아마도 거의가 다 관광객일 것 같다.
아무리 경기가 안 좋다고 해도 어쩌다 한 번씩 나들이를 해보면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것을 보면 참 희한하다.
안내표시에 쓰여있던 대로 정말로 10분밖에 안 걸린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안 하던 멀미를 했다. 우리 집 양반도 웬일로 생전 안 하던 멀미를 약간했단다.
요즘 들어 갑자기 늙은 것 같은 신랑 바라보는 마음이 영 안 좋다.
섬의 모습이 헤엄치는 가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가파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실제로 지도를 보니 정말로 가오리를 닮아서 신랑하고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이게 뭐 그리 웃을 일인가 하면서, 그러면서 또 웃었다.
이래저래 늙나 보다.
가파도에 도착을 하니 입구에 인증샷 찍는 곳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그러고는 늘 그렇듯이 자리다툼이 시작된다.
섬 중의 섬이라는 가파도에 도착을 해보니 정말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지금부터 점심 먹는 시간 빼고는 이 모진 바람을 맞으면서 걸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신랑 눈치 보느라고 걱정이 앞선다.
그냥 혼자 오면 비바람 상관없이 맘껏 다닐 텐데 사서 고생이다. 혼자 다녀오라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지 걷게 하려고 거마비까지 주면서 함께 온 것이다.
겨울이 되면서 정원일도 안 하다 보니까 그야말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서 텔레비전 아니면 유튜브만 보고 있다. 이제는 치매를 걱정해야 할 나이인 남편이 걱정이 돼서 어떻게 해서든지 무리수를 둬서라도 같이 다니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기예보하고는 상관없이 어마어마하게 바람이 불고 있다.
드디어 가파도의 유채꽃밭이 등장했다.
저절로 함성이 나오는 순간이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아름다운 유채꽃밭이 어마어마하게 펼쳐진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봐온 유채꽃밭 중에서 단연코 가파도의 유채꽃이 최고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겠다.
노란 물결을 이루는 유채꽃밭과 제주도 특유의 에메랄드빛을 자랑하는 예쁜 바다, 그리고 아무리 바람이 불어대도 여전히 예쁜 제주도의 하늘이 함께하는 이곳 가파도의 유채꽃밭은 달라도 완전히 다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어머나, 세상에, 온갖 감탄사를 다 불러오면서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는 나하고는 다르게 역시나 우리 집 양반은 혼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래도 마누라가 브런치 한다는 바람에 그나마 봐 주고 있는 것이다.
참 예쁘다.
엄청난 바람이 부는 덕분에 그 바람결에 흩날리는 유채꽃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것 같다.
가장 예쁠 때 잘 온 것 같다.
4월 까지는 이 아름다움이 유지될 것 같다.
날씨가 좋으면 이곳 가파에서는 제주도의 유명한 산들을 다 바라볼 수가 있다고 한다. 오늘 비록 엄청난 바람은 불어 대지만 그래도 하늘만큼은 맑게 개어 있었다. 그 덕분에 샛노란 유채꽃을 바라보면서 그 유명한 산방산도 바로 코앞에서 바라볼 수가 있고, 한라산의 아름다운 자태 또한 함께 볼 수가 있었다.
이런 모습을 사진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아야만 온전히 그 느낌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섬으로 유명한 제주도에는 8개의 유인도와 71개의 무인도가 있다는데 그 많은 섬 중에서 우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 바로 이곳 가파도란다.
그런 가파도에서 바다를 보고 드넓게 피어있는 유채꽃의 아름다움이 색다르다.
예쁘고 화사하게 피어있는 유채꽃밭 맞은편에는 그 유명한 청보리가 기지개를 피고 있다. 다음 달인 4월부터 5월까지는 이 청보리가 또 대세를 이룰 것 같다.
엄청나게 불어대는 바람을 맞으면서 흐느껴우는 듯한 청보리의 물결이 색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놀면 뭐하니~~”
“고두심이 좋아서~~”
이렇게 두 군데서 방송이 될 만큼 유명한 곳이란다.
이렇게 유명한 해물 짜장, 짬뽕 집을 지난번에 왔을 때는 두 시간 코스로 온 바람에 도저히 시간이 안돼서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오늘은 남편하고 온 덕분에 한 시간을 더 늦출 수가 있어서 드디어 소원을 풀었다.
꼭 먹어봐야 한다는 해물 짬뽕을 시켰다. 일단 비주얼부터가 달랐다. 역시 가파도 답게 큰 소라가 떡하니 올라와 있는 것에 이 해물짬뽕의 이름값은 한 것 같다.
국물은 얼큰한 것이 매운 것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한테는 좋을 것 같았는데 우리한테는 좀 매웠다. 약간 덜 매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면은 청보리를 이용한 것인지 초록빛을 띄워서 신선했다. 면발은 쫄깃한 면이 조금 부족한 듯.
어디를 가나 일단은 그곳의 유명하다는 것은 한 번쯤은 먹어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라고 하지 않던가.
가파도의 또 다른 명물이라는 청보리 호떡을 시켰다. 우리 집 양반하고 나는 둘 다 유별나게 호떡을 좋아한다. 우리 세대에 호떡을 싫어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워낙 호떡을 좋아해서 어떨 때는 호떡을 먹기 위해서 일부로 오일장을 가기도 한다. 지금까지 호떡이라고 하면 늘 그릴에다 기름 잔뜩 두르고 지져낸 그런 호떡만 먹었었는데, 가파도의 호떡은 기름을 안 두르고 구운 호떡이다.
다른 것에는 눈길조차 안 주던 남편이 호떡은 먹어보겠다고 해서 주문을 했는데, 먹어보더니 우리 집 양반이 너무 맛있다고 감탄을 한다. 청보리로 만들어서인지 호떡 역시 초록색이었다. 아주 쫄깃쫄깃하고 맛있었다.
늙은 남편은 어린아이와 같다더니 뜨겁다고 뭐라하면서도 맛있게 먹는 신랑의 모습이 꼭 어린 자식 입 속에 밥 들어가는 것 쳐다보듯이 기분이 참 좋다.
다시 또 먹고 싶을 만큼 아주 맛있는 호떡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두 시간이라는 것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 또 모자라는 듯해서 이번에는 세 시간을 잡고 왔는데, 남편하고 와서 그런 지 한 시간이 그냥 남았다.
워낙 바람도 차가운 데다가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점심 먹고 나니까 그냥 대합실로 가잖다. 가뭄에 콩 나듯이 떠나는 여행길의 마지막에 늘 나오는 단골 멘트라서 놀라지도 않는다.
아까운 시간을 대합실에서 할 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있으면서 우리 집 양반한테 가파도에 온 소감을 물어봤더니 기가 막힌 대답을 해줬다,
바람이나 쐴까 하고 왔다가 원 없이 바람 맞고 간단다. 일 년 치 바람을 한꺼번에 다 쐰 것 같으니까 앞으로 일 년은 바람 쐬러 안 다녀도 될 것 같단다.
벌써부터 안 나갈 핑계를 만들고 있었다.
어쨌거나 이 모진 바람에도 불구하고 가파도까지 와서 원 없이 바람맞고 간다는 우리 집 양반이 새삼 고맙다. 다니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나들이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을 알기에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마 당분간은 집에서 또 꼼짝을 안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난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