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명강의 이야기
황창연 신부님의 강의를 듣다가 갑자기 밀려오는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늘 웃음과 행복을 전해주시는 신부님께서 오늘은 “사람이 죽기에 딱 좋은 나이”라는 강의를 하셨기 때문이다.
신부님 생각에는 그저 더도말고 덜도말고 “87세“까지 살다가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하신다.
87세가 넘으면 잘 보이던 것도 잘 안보이게 되고, 잘 들리던 것 또한 잘 안들리게 된단다. 그러다보면 정말 모든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니까 87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는 신부님의 말씀에 지극히 공감은 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 스며들어오는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 자신이 없다.
1941년생인 우리 집 양반을 생각하니, 아무리 만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87세까지는 불과 삼년도 채 안 남은 것이다.
평소에 워낙 건강한 사람이다보니 한 번도 남편이 이렇게까지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살아왔다. 아직까지도 그 힘든 정원 일을 손수하고,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그런 건강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인데다가, 다행히 장수 유전자까지 있는 것 같애서 크게 염려를 안하고 살았다.
이 세상에 올 때는 순서대로 태어났지만, 이 세상 하직 인사를 하는 것에는 정해진 순서라는 것이 없다보니, 요즘 이상하게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가 왔다고는 하지만, 누구나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간다는 보장 또한 없는 것이다.
늘 골골한 내가 먼저 갈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도 괜히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 우리 집 양반만큼은 100세까지 건강하게 잘 살다 갈 것이라는 나만의 확신과 주문을 외우면서 살고 있다.
나 역시 칠십대에 접어들고 나니까 요즘 들어서 꽤 많이 유행하고 있는 노인에 대한 책을 아주 열심히 읽고 있다.
현명하게 나이들어 가고 싶어서이다.
이제는 완연한 노인이라는 대열에 끼어든 우리 노부부의 행복한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나 만이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하루하루 그저 나이만 먹어갈 수는 없는 일.
“87세”가 아무리 죽기 딱 좋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집 양반만큼은 최소한 십년은 더 살다가 갔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평생을 죽기 살기로 일만 한 사람, 놀아 본 적이 없어서 놀 줄도 모르는 그런 불쌍한 사람이다. 지금부터라도 최소한 10년, 아니 5년만이라도 제대로 인생에도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나서 보내고 싶은 것이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우아하게 와인 한 잔 곁들인 식사도 해보고, 예쁘고 경치 좋은 곳 찾아가서 추억에 남을 사진도 찍어보고, 더 이상 힘든 일 안 해도 된다는 그런 편안함을 실컷 누리고 난 다음에 떠나보내고 싶다.
우리 집 양반 한테 죽기 딱 좋은 나이는 “87세”가 아니라 “97세”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다.
태어난 환경도 다르고, 타고난 유전자도 다르고, 성격또한 다 다르듯이, 가는 순서 또한 다 다른 것 같다.
부디 남편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매일 같이 하는 기도에 하나 더 보태야겠다.
부디 우리 남편
97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가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