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업글할매 May 17. 2024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

업글할매의 책방 이야기

《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 》

책 제목부터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한참을 웃었다. 제목만 봐도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실버 센류”는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의 주최로 2001년부터 매년 열리는 “센류”공모전의 이름이기도 한데 어르신들의 일상과 고충을 유쾌하게 담아낸 것이란다.


이 책은 2011년과 2012년의 입선작을 포함해서 여든여덟 수를 모은 “실버 센류” 걸작선이다.


“실버 센류”라는 조금은 낯설은 이름에 대해서 부지런히 찾아보았더니 ”센류“라는 말이 짧은 시를 의미한단다.


일본 시에 대해서는 ”하이쿠“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센류”는 처음 들어본다. “하이쿠“나 ”센류“모두 5,7,5 글자수로 이루어지는 짧은 시인데, ”하이쿠“보다는 ”센류“가 좀 더 직설적이면서 밝고 재미가 있어 대중에게 좀 더 친밀하게 다가가는 것 같다.


”실버 센류“

우리 말로 바꿔보면 ”어르신 시조 대회“에 해당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협회의 20주년 기념사업으로 한 번만 열고 끝내려고 했던 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예상밖의 호응을 얻자, 그 후로 매년 경로의 날이 있는 9월에 행사를 계속하게 되었단다.


반드시 어르신들만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서 최 연소 응모자는 여섯 살이었고, 최고령 응모자는 백 살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누구나 관심만 있으면 참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대간의 느끼는 감정들도 천차만별이다.


《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 》

일본 전역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대단한 책이다.


읽다보면 저절로 웃음이 빵하고 터지지만, 그 웃음과 함께 찾아오는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그 쓸쓸함에 마냥 속절없이 웃지만도 못한다.


책 제목만 사람을 웃게 한 것이 아니었다.

책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또 한번 빵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한 페이지를 시조 한 편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나 큼직하고 시원시원한 글자였는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맘에 드는 글씨체는 없었던 것 같다. (ᵔ ̮ ᵔ)͜


아니나다를까, 58페이지에 “내용보다 글자 크기로 고르는 책”이라고 쓰여 있다.


나이가 들어가니까 무엇보다도 큰 글자로 쓰여져 있는 책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 갑자기 이 세상 모두가 한 마음이 된 것 같다.


지금처럼 전자책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돋보기를 써도 잘 안보이고 피곤해지다 보니 저절로 손에서 책을 놓게되는 부작용또한 생긴 적도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밀리의 서재라던가 교보문고등 많은 곳에서 전자책을 볼 수가 있어서 다시 부지런히 책을 읽을 수 있음에 너무도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렇게 큰 글자로 쓰여진 책을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유쾌해지면서 기분또한 너무도 좋아진다. 어르신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이런 큰 글자에 행복해하는 영락없는 어르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겠다.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들은 병명 ”노환입니다“


무슨 큰 병이나 생겼는줄 알고 큰 맘먹고 병원가서 이것 저것 다 검사하고 나더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노환입니다”라는 소리를 아마도 시니어가 되신 분들은 이미 한 번 쯤은 다 들어봤을 것 같다.


정말로 까무러칠 노릇이다. 그 말 듣자고 온 것은 아닌데, 하나같이 돌아오는 답이 노환이란다. 이래서 나이 칠십이 넘으면 병원에도 자주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많은 어르신들이 늘 살만큼 살았다면서 언제 죽어도 여한은 없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조금만 아파도 병원문이 닳도록 찾아다니는 것이 인지 상정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그다지 지진에 대한 염려를 안하고 살다보니까 “지진 나자 제일 먼저 줄행랑”이라는 말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지만, 막상 큰 일이 벌어졌을 때는 지진과 마찬가지로 “나 살려라”라고 죽어라고 제일 먼저 줄행랑 칠 것 같다는 생각에 공감하고 또 공감을 해본다.


닥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만큼, 미련은 없다는 말도 너무 쉽게 하지 말아야겠다.



“찾던 물건 겨우 발견했는데 두고 왔다.“

잘 안 웃는 우리 집 양반이 이 말을 듣고는 빵 터졌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우리 부부는 크게 잊어버리는 일이 아직은 별로 없다. 오히려 주변의 젊은 사람들한테서 이런 일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늘 기억하려고 애쓰고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결코 게을리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누라나 남편만 두고 오지 않으면 될 것 같다.


”할멈, 개한테 주는 사랑 나한테도 좀 주구려“

왜 이리도 짠한지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도 사람보다 강아지가 우선인 사람들이 있다. 물론 말 못하는 애들이라 더 정성을 쏟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강아지 보다는 남편이 우선이라고 말하면 꼰대 소리를 들으려나.


”나는 개 보다도 못한 인생이야“라는 말을 하는 남편을 둔 부인이, 과연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름이 생각 안나서 “이것” “저것” “그거”로 볼일 다 본다.

우리 집 양반의 단골 멘트이다.


큰 딸 이름 하나 대는 데 온 가족들의 이름이 다 동원되기도 한다.

우리 말에 “거시기”라는 말처럼 급할 때 쓰기 딱 좋은 말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거시기 해서 거시기하다보면 거시기 하더라는 식이다.


그런데 참 희한 한 것이 부부가 오래 살다보면 아무리 거시기라고 해도 그냥 알아듣게 되고, 이것, 저것, 그거하더라도 다 알아서 척척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냥 이래저래 살아가기 마련이다.

거시기 하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냥 거시기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비상금 둔 곳 까먹어서 아내에게 묻는다.”

이 말을 듣는 우리 집 양반의 표정이 약간 이상하다.


우리 같은 노인네한테는 은행이 제일 안전하니까 절대로 혼자 몰래 비상금 만들지 말라고 그렇게도 이야기했는데, 아무래도 어딘가 나 몰래 비상금을 숨겨 놓은 것 같다.


비상금 둔 곳을 까먹을 나이가 된 것이다. 괜히 나중에 남 좋은일 시키지 말고. 그저 이실 직고 해서 광명찾는 것이 나을 듯.



“경치보다 화장실이 신경쓰이는 관광지”

어쩜 이리도 나의 처지를 꼭 집어서 이야기를 하는지 그저 신통할 뿐이다.


그렇게 멋있다는 유럽 여행을 나는 감히 꿈도 못꾼다. 무릎이 안 좋아서 장거리 비행을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유럽은 화장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아예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유럽은 커녕, 어디 국내 가까운 곳에만 가더라도 화장실이 어디있나를 먼저 살피고 다닐 정도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많은 위안을 받는다.

“눈에는 모기를, 귀에는 매미를 기르고 있다.”

이 말이 온전히 이해가 된다면 이미 시니어의 대열에 들어선 것 같다.


눈 앞에 뭔가 어른거려서 손으로 눈을 있는대로 비비고 다녔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안과를 찾아갔더니 요상한 병명이 나왔다.


”날파리증“이란다. 그렇지 않아도 벌레라면 질색히는 사람인데 그 많고 많은 병명중에 날파리증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이해가 안 간다.


마치 눈 앞에 파리가 날라다니는 듯한 느낌이라서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파리에 비교한 것을 아마도 일본에서는 모기가 날라다니는 듯한 느낌으로 묘사한 것이다.


눈에 파리나 모기를 기르고 있다는 것은 이미 노안이 시작된 것이다. 완치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 또한 죽을 때까지 같이 데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매미는 안 기르고 있으니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자.


“ 요전에 말이야, 이렇게 운을 뗀 오십년 전 이야기 ”


우리 남편의 전매특허이다.


한 번 이야기를 꺼내면 태평양 전쟁때부터 시작해서 해방이 되고, 6.25전쟁때 피난살이하던 그때로 돌아간다.


어쩜 그리도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면서 막상 본인은 기억을 못하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그 모진 세월을 오로지 죽기 살기로 일을 했던 기억밖에 없으니 달리 할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세대인 것이다.


요즘처럼 자고나면 정신없이 바뀌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오십년 전의 이야기는 기억할래야 기억조차 못할 것 같다.


그래도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더라도 그때만이라도 좋은 추억거리가 남아있다면 할 수 있을 때 원없이 하도록 내버려두고 싶다.


진정 불쌍한 세대인 것이다.




《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 》

이 책은 초고령 사회 일본의 축소판이자 메시지 집이다.

실버 세대라고 불리는 어르신들과의 생활을 더욱 친근하게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 깃들어 있는 책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누구나 가는 길을 걷는 길이라는 말이 너무도 마음에 와 닿는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가는 것이다. 나이를 먹었기에 보이는 풍경또한 있는 것이다.


첫 페이지를 열고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게 되는 책이다.

저절로 빵 터지게 웃다가는 갑자기 눈물이 팽 돌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숙연해 지기도 한다.


이래서 연륜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나보다.


시간이 날 때 마다 한 번씩 다시 들여다보고 싶다.

점점 더 늙어갈 일만 남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그런 따뜻한 위로 또한 받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꽃은 누구에게나 핀다 / 오은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