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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un 17. 2024

내  인생은 고진감래와 고진통래이다.

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내 인생은 확실히 “고진감래”와 “고진통래”의 인생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소위 은퇴라는 것을 하기 전까지 정말로 미련 스러 우리만치 내 몸을 보살피지 않고 죽기 살기로 일만 하고 살았다.


솔직히 그때는 지금처럼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던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서라는 그런 건방진 생각을 할 겨를 조차 없었다.


그저 단지 오늘을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것 외에는 생각이라는 것을 별로 해 보지도 않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묵묵히 내게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저 나를 위한 일 있은 줄만 알았다.


유영만 교수님의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라는 책에 등장한 “고진감래와 고진통래”라는 말이 어쩌면 이리도 지나온 내 세월과 그리도 똑같은지 웃음도 나고 눈물 또한 났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와 고생 끝에 아픈 것 밖에 남아 있지를 않다는 “고진통래”중에서 교수님은 “고진통래”라는 말에 더 중점을 두셨지만, 지나온 내 인생은 반드시 “고진통래”만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죽기 살기로 일했었기에, 지금 이렇게 그토록 그리던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가 있었고, 지금 아픈 것만 빼고는, 아주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고진감래”가 그동안 고생한 대가로 우리를 찾아와 준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열심히 일한 대가로 온몸에 성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전혀 반갑지 않은 “고진통래”라는 부작용 또한 같이 동반을 한 것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처럼 과연 지나온 내 인생에서 무엇이 옳고 잘못됐을까에 대한 해답은 얻지를 못하겠다.


젊어서 힘든 일 안 하고 내 몸 편하게 만들면서 살았더라면 지금은 다소 몸이 아프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요즘처럼 마음이 편안한 내 나라에서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은 결코 누릴 수가 없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행복한 노후도 즐길 수 있고, 아픈 곳도 하나도 없이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가 있다면 그 이상 축복받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는 없는 일.


다행히 오랜 세월 스스로 무수리로 칭하면서 살아온 덕분에 과분한 욕심은 안 부리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 된 지금도 그다지 크게 원망은 안 한다.


무릎도 탈이 난지 오래이고, 허리도 나가고, 손목도 탈이 나더니, 이제는 어깨까지 탈이 나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눈에도 노화가 오더니 병명도 희한한 “날파리증 ”이라는 것이 생겨서 늘 눈을 비비고 다니다가 얼마 전에는 백내장 수술까지도 받았다.


미국에서 오십견이 생겼을 때는 병원에도 못 가고 밤새 엄청난 통증에 울다시피 하느라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는 그 길로 일터로 향했던 서글픈 기억이 떠오른다.


오랜 시간 미련하게 참기만 하다가 어깨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게 되면서 증상이 많이 호전됐었는데, 갑자기 또 찾아온 어마어마한 통증에 어제 병원을 찾았더니, 이번에는 어깨 회전근개 파열이라는 무시무시한 병명까지 듣게 됐다.


검사결과를 보면서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상태에 비해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심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그동안 아주 열심히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온 덕분이다는 말씀에 다소 위안을 받는다.


그래도 뭔가 열심히 한 보람은 있구나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이다.


무릎은 이미 미국에서 살 때부터 탈이 났었다. 내가 갖고 태어난 내 체력을 무시한 채 힘에 겨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당연히 양쪽 무릎의 연골이 다 닳아 없어졌단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르신들의 구부정하게 걷던 모습이 나한테도 나타난 것이다. 무릎을 제대로 못 피다 보니 자연히 두 다리 사이가 벌어지는 오다리 형태로 걷게 되었다.


이런 모습의 나를 보고는 평생 무릎 아픈 것을 모르고 살아온 우리 집 고약한 양반은 좀 예쁘게 걸으라고 뒤에서 잔소리 꽤나 했었다.


그래도 뭐든지 죽기 살기로 해대는 성격 탓에 수술을 하라는데 비싸서 병원은 못 가고, 열심히 걸으면서 운동을 한 덕분에 수술을 안 하고도 어느 정도 걸을 수가 있게 됐다.



이제 세계적으로 의료보험이 잘돼있다는 우리나라로 돌아오고 나니, 일단은 병원비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가 있을 것 같다.


갑자기 많이 아플 때가 생기더라도 미국처럼 병원 문을 두드리는 것이 그다지 두렵지가 않아서인지, 비록 “고진통래”가 찾아왔어도 그다지 큰 슬픔은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아직도 미국에서 살고 있었더라면 아마도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워낙 병원비가 비싸다 보니 웬만해서는 그냥 집에서 참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넓고 좋은 집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고통을 참으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자연히 삶의 질도 떨어뜨렸을 것 같다.


“고진감래”와 “고진통래”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면 무조건 “고진감래”를 택하겠지만, 아무런 고생 없이 “고진감래”가 올 수는 없으니까 그때의 내 환경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이 “라떼“같은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주어진 내 환경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또 열심히 살다 보면 “고진통래”도 어느 정도 “고진감래”로 바꿀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또한 품어본다.




“고진통래”를 “고진감래”로 바꾸기 위한 공부를 해 봐야겠다.


우선은 그동안 아주 열심히 지켜왔던 나의 제2의 인생이었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변화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은퇴 후의 시들해져 가던 나를 끌어올려줬던 나의 루틴들을, 이제는 아쉽지만 칠십하나라는 나이에 어느 정도 맞추어가야 할 것 같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 무척이나 열심히 외면하고 살았었는데, 이제는 병원을 갈 때마다 “퇴행성”이라는 너무도 슬픈 단어가 따라다닌다.


아무리 내가 부정하려고 해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사주팔자가 안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라서 죽기 살기로 “팔자”를 “구자”로는 바꾼 것 같은데, 이 징그러운 “퇴행성”이라는 단어만큼은 내 의지로 고칠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없앨 수는 없어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할 수가 있다는 말에 새로운 용기가 생긴다.


열심히 하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으니까 많은 위로를 받게 된다.


아프다고 인상 써봤자 내 얼굴 주름만 더 늘어날 것이고, 신경 써봤자 밥 맛만 떨어질 것 같으니까 그냥 주어진 대로 살려고 한다.


아무래도 치료를 위해서 당분간 금주를 해야겠다는 말에 평소에 잘 웃지 않는 딸내미가 박장대소를 했다.


엄마처럼 그렇게 조금 마시는 사람이 무슨 금주가 필요하냐는 말에 웃고 넘겨야 하는지, 아니면 그래도 당분간 만이라도 실천을 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주사 치료를 하는 동안 만이라도 실천을 해 볼까 한다.


우선 냉장고에 차갑게 보관한 맥주랑 와인을 다 치웠다. 그리고 하이볼을 위해서 장만했던 위스키는 되도록이면 안 보이는 곳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백 프로 장담은 못하겠다. 우리 삼식이 아저씨가 얼마나 협조를 잘해주느냐라는 변수가 늘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을 다녀와서 용기를 내서 남편한테 한 마디 했다.


의사 선생님이 힘든 일은 일절 하지 말라고 하는데, 아마도 그동안 내가 너무 무수리로 고생만 하고 살아서 하느님이 불쌍하게 여기사, 이제부터는 왕비 마마로 살으라는 뜻인 것 같다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있는 대로 눈을 부릅뜨고 째려본다.


그래도 지금의 이 아픈 시련을 기회로 잡아봐야겠다.


신분 상승을 도모할 것이다.

무수리에서 왕비마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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