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유튜브를 다시 시작했다.
망한 채널을 접고, 아주 용감하게 열흘전에 또 새로운 채널을 만들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말이 너무 멋있어서 작년에 겁도 없이 일단 시작은 했었다. 유튜브 강의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이 정도 정성이면 고시에도 붙을 것 같다.
하나같이 강조하는 것이, 유튜브를 시작하려면 자기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단다. 그래야 살아남는단다.
칠십할매가 무슨 대단한 컨셉이 있겠는가?
그래도 나도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냥 또 무작정 덤벼들었었다. 특별한 주제도 없이 멋진 풍경이 있으면 찍어서 올리고, 어쩌다 맛집이라도 가게 되면 부지런히 사진이랑 비디오를 찍어서 영상을 만들었다.
그래도 들은 것은 있어서 “숓츠”라는 것도 만들어보라고 해서 명언을 “숓츠”로도 만들어 봤다.
참 가지가지 구색을 잘도 맞추었다.
처음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나서는구독자 한 명이 아쉬운 때라, 가족들과 가까운 사람한테 알린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화근이었다. 격려와 응원보다는 야유에 가까운 자존감 깍아내리기 경쟁 같았다.
유투브는 아무나 하냐, 지나가는 개가 보고 웃겠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평가만 해대는 주위사람들의 시선도 따가왔지만, 그런 식으로 하면 돈을 못 번다는 유튜브 강사님들의 한결같은 소리에, 결국 나름 애정을 갖고 진짜 열심히 했던 내 유튜브 채널을 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날 얼마나 혼자서 울었는지 모른다. 자존감도 팍팍 떨어지고, 자존심도 상하고정말 많이 아팠다.
유튜브를 하려는 이유가 돈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쓸쓸하고 외로웠다.
그래서 망한 것 같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넘어가도, 여전히 나의 구독자는 1명에 멈춰있었다. 그러다가 같이 공부하는 동아리에서 너도 나도 구독을 눌러준 덕분에 간신히 10명을 마련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 지속 가능한 시청이 아니다 보니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었다.
내가 볼 때는 참 괜찮은 영상들이었다. 왜 아무도 안 보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또 나의 관심사에서 사라져간 것이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채널은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이 험난 한 것을 또 다시 하려고 한다.
칠십 할 매가 번아웃이 와서 뭔가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는데, 이때 잠깐 든 생각이 유튜브를 제대로 해볼까?라는 것이었다.
한 번 내렸던 계정을 다시 시작하려니까 용기와 열정은 아직 남아있는데 이 체력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따라와 주지를 않는다.
이제는 아무리 흑역사라도 내가 만든 것은 소중히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칠십 하나라는 나이가 되고보니 에너지가 충전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주 열정적으로 채널을 두 개나 만들었다.
하나는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을 담아내자는 뜻에서 “ 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열심히 글을 쓰고 올렸던 것들을 자료 삼아 “업글할매 책방 이야기”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지워줬다.
내가 생각해도 대책 없이 일을 잘 벌린다. 우리 집 양반 말에 의하면 정말 가지가지 한단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제발 국제적으로 망신 당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란다.
그래도 이번에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혔다는 것이 나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은 주제가 잡혔다는 것이다.
일 년 전에 시작을 했을 때는 블로그라는 것도 몰랐고, 더더군다나 브런치 작가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을 때였다. 단지 하나, 망한 인스타 채널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블로그도 하고 있고, 브런치 작가가 돼서 글도 쓰고 있다. 여전히 인스타는 그 자리에 머물고 있지만 참 많은 발전을 한 것이다.
이렇게 그동안 아주 열심히 책을 읽고 정리를 한 것들이 이제는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영상을 올리는 것보다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덧붙이더라도 진정성 있는 글을 토대로 말을 할 것 같다.
이번에는 절대로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안 알리려고 한다. 망하든 말든,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보고 싶다.
영상을 계속 만들고 싶다. 글을 쓰는 것 하고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서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에 힘이 없어지는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좋다고 해서 요새는 일부러라도 소리 내서 읽고 있다.
기운 있는 목소리를 만드는 데 유튜브가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남편 외에는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냥 친구 삼아 영상을 만들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활력이 생긴다.
아마도 여전히 구독자는 별로 크게 늘 것 같지는 않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컨셉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블로그나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처럼, 지금 당장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이다. 내 나이, 팔십이 되고 구십이 됐을 때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한 것이다.
나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내가 만든 것들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글 하나, 영상 하나를 허투루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참 대단하지 않은가?
칠십하나인 업글할매가 블로그도 하고 브런치 작가도 되고, 인스타도 하면서 이제는 유튜브까지 한다니 정말 대견스럽다.
아마도 지금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현재와 다가오는 나의 미래의 노후에서도 아주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면서 “도서 인플루언서”라는 말이 너무 멋있어서 자격도 안되는 사람이 잠깐 욕심을 냈었다. 세 번 떨어지고 나니까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마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이제는 나한테 맞는 속도로 가고 싶다.
거의 7개월을 1일 1포스팅을 해왔다.
그것도 거의 다 책 리뷰였었다.
대단한 무리를 한 것이다.
그야말로 다른 것에는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간신히 우리 삼식이 아저씨 하루 세끼 준비하는 것 외에는 오로지 책만 읽고 글을 썼다. 우리 남편 말대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왜 그리 죽기 살기로 했는지 참 못 말린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동안 아이폰이랑 아이패드의 새로운 업데이트들이 어마어마했다. 그때그때 했어야 할 것들을 놓치다 보니 이제는 너무 뒤처져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순간의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서는 안될 것 같다.
이제는 1일 1 포스팅을 접었다.
괜히 1일 1포스팅에 목숨 걸어서 대충 쓰는 것보다는, 일주일에 하나를 올리더라도 정성을 다하고 싶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여유가 있는 시간을 이제는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싶다. 그렇게 열심히 했던 것들이 안 쓰다 보니 다 잊어버린다.
이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지나간 것들을 다시 공부하면서 지켜나가는 것 또한 소중할 것 같다.
천천히, 내 체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글도 쓰고 영상도 만들고 싶다.
이렇게 난, 또다시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할매의 번아웃을 통쾌하게 물리쳤다. 넥스트 “번아웃”이라는 나쁜 친구가 다시 나를 찾아올 때까지는 “잇츠 오케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