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업글할매 Mar 06. 2024

갑자기 늙은 남편을 바라보며

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모처럼 모임에 나갔다가 갑자기 회식을 하기로 했다.


언제나 이런 자리는 늘 유쾌하고 행복하다. 너나 나나 할 것없이 같은 마음으로  뭉친 동기들이기에 더 즐거운 것 같다.


돼지 갈비를 맛있게 한다는 곳에 가서 다들 맛있게들 잘 먹고 있는데 왜 갑자기 집에 두고 온 남편이 생각이 나는지 내가 생각해도 참 주책이다.


사람마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알고도 모르겠다. 늘 집에서만 하루 세끼를 먹으려고 하는 신랑이 그리도 못마땅하더니 막상 이렇게 혼자 맛있는 것을 먹으려니까 또 눈 앞에 밟힌다.


신랑 말마따나 내가 어디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나보다.


나 없으면 아무리 진수 성찬을 차려줘도 혼자서는 도무지 먹으려고 하지를 않는다. 전기 레인지 작동하는 법을 몰라서 혼자서 끓여먹지도 못한다.


아무리 가르쳐 줘도 금방 잊어버린다. 아마도 배우기가 싫어서 일 것이다. 배워서 잘 하게 되면 혼자 먹을 날이 늘어날까봐 미리 머리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너무 떠 받들어 모셨다.


칠십이 넘어서도 남편 밥 챙기느라고 이렇게 집에 갇혀 살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미리 미리 가르쳐서 최소한 간단한 것은 손수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요즘에는 컵 라면 같은 것도 아주 맛있게 잘 만들어 나오니까 급할 때는 어쩌다 한 번쯤은 이런 컵 라면으로 한 끼 정도 해결해주면 너무 고맙겠는데 우리 집 양반은 면순이인 나와는 정 반대로 국수 종류를 일절 안 먹으려고 한다.


전쟁을 겪으면서 너무도 지겹게 먹었던 보리밥과 국수, 수제비가 그렇게 싫단다. 그 때가 생각이 나서 넘어가지를 않는단다. 다른 사람들은 그때 고생하면서 먹었던 추억에 그 음식들이 더 생각이 나서 일부러 찾아다닌다는데 좌우지간 우리 집 양반은 여러모로 참 별나다.


이래서 혼자 두고 나오면  제대로 챙겨 먹을까하는 걱정에 맘이 편하지 않다.


그렇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늘 신랑걱정이 먼저인 것을 보면 이것이 사랑인지 미움인지 또 헷갈린다. 그야말로 미운 정 고운 정 다들어서 이제는 측은지심만 남은 것 같다.




인터넷에 떠도는 재미있다는 글 중에 남편에 대한 글이 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다고 웃기만 했던 것이 이제 서로가 늙어갈 일만 남은 시점이다보니 마냥 웃고 넘길 수만도 없다.


남편은 집에두면 근심 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짐 덩어리
마주 앉으면 웬수 덩어리
혼자 내보내면 사고 덩어리
며느리에게 맡기면 구박 덩어리

- 인터넷 재미있는 글 -


구구절절 맞는 말 같으면서도 왜 이리도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오는지 모르겠다. 그 오랜 세월을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마다않고 오직 가족들을 위해서 일만하던 남편들이다.


아무리 미워도 이런 식으로 대 놓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남편에 대한 도리는 아닌 것 같다.하지만 표현하는 말마다 어쩌면 그리도 중년이후의 주부들의 마음을 꼭 집어서 헤아렸는지 참으로 신통하다.


아마도 요즘의 남편들은 해당이 안 될 것 같다. 최소한 60대는 접어들어야 이런 남편이 있을 것 같다. 요즘 남편들은 혼자 노는 것도 좋아하고 혼자서 못해 먹는 요리도 없을 정도이니까 이런 유머라는 것이 이해가 안갈 것이다.


그런데 옛날의 남편들은 정말로 이랬다. 이래저래 근심덩어리 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세상 떠나시고 혼자 남은 할머니는 어디를 가나 환영이란다. 애도 봐주도,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 주고 심지어는 자식들 여행갈 때 집도 봐준다. 하지만 어머니가 먼저 가시고 혼자 남게되는 할아버지는 어디에서도 반갑게 오라는 소리가 없다는 말씀이 참 서글프게 와 닿는다.


그래서 며느리한테 못 맡기는 것이다. 행여 구박 받을 까봐…


그저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하늘이시여, 부디 남편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게 해주소서.




답답하고, 고약하고, 미워죽겠다는등 온 갖 말들을 다 갖다 붙이면서 남편 흉을 참 많이도 봤었다. 세상 재미있는 일 중의 하나가 남편 흉보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면서 주부들은 그 한 많은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남편 흉을 보면 볼 수록 왜 더 남편이 불쌍해보이는지…


이런 것을 두고 측은지심이라고 하나보다.


어쨌거나 둘이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도 오래 살아내다보니 이제는 그야말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그냥 짠한 마음만 남는 것 같다.


어느날 문득 남편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힘없이 앉아서 티비만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이 어찌나 가여워 보이던지 일하다 말고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나오는 눈물이다.


아마도 지나온 세월의 무게일 것이다.


그저 불쌍하게 생각하자.

서로가 불쌍한 것이다.


아무리 고약해도 그런 남편이 옆에 있음에 감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튜브를 다시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