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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an 25. 2024

커피 한 잔의 행복! 소확행!

업글할매의 그냥 사는 이야기

내가 이렇게 커피를 직접 원두를 갈아서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은 시골로 이사 오고 나서부터이다. 그전에는 원두를 간다거나 커피 머신에서 직접 내리는 과정 자체가 너무도 번거로워서 감히 집에서 원두커피를 내려 먹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를 못했었다.


거의 평생을 일을 하면서 한국 사람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으로 밥도 대충 물 말아 먹거나 건너뛰기가 일쑤였고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그저 간단하게 커피믹스로 때우는 것이 전부였었다.


그러다 보니 여유롭게 커피를 제대로 내린 다는 것은 나한테는 사치라고 미련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왜 그리도 스스로를 무수리라고 칭하면서 바보처럼 살았는지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그때만 생각하면 괜스레 눈물이 난다.


미국에서 20년 이상을 소위 말하는 브런치 카페라는 것을 운영하면서도 손님들을 위한 블랙커피는 늘 만들어 놓으면서도 왜 나는 굳이 몸에 안 좋다는 커피믹스만 달고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


미국에서 한국 식품들은 비싸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도 내 나라에 대한 그리움의 하나였는지 다른 것 쓰는 것을 줄여서라도 먹는 것만큼은 똑 한인마트에 가서 한국 식품들을 잔뜩 사 오는 것이 유일한 사치이고 낙이기도 했었다.


커피믹스라는 것이 희한하게도 마시면 그 달달함이 힘들고 고단함을 위로해 주는 마치 마법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인들이 운영하는 병원이나 변호사 사무실 한인 교회 같은 곳을 가면 늘 커피믹스가 함께 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한인들은 커피믹스랑 블랙커피가 있으면 커피믹스를 집어 들었다. 아마도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커피믹스에 중독되다시피 했던 나의 커피 문화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계속되다가 몸이 안 좋아진 것을 계기로 잠시 커피믹스를 끊고는 블랙커피로 갈아탄 것이다.


처음에는 쓰기만 해서 별로 맛을 느끼지 못하다가 우연히 드라마에서 근사한 배우가 집에서 원두를 갈아서 직접 내려먹는 모습에 그대로 꽂혀서는 큰 맘먹고 커피 머신부터 구매를 했다. 그러고는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까지 했다. 폼 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커피 한 잔의 여유와 매력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이라는 단어에도 완전히 매료되었다. 내가 꽤 멋져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원두를  봉지에서 꺼내는 순간부터 나의 행복이 시작된다. 커피콩 냄새가 그렇게 구수할 수가 없다. 커피 냄새가 너무도 기가 막히게 좋아서 잠시 하던 것을 멈추고 그냥 향기만 맡아본다, 그 자체로 이미 너무도 행복하다.

그러다 원두를 갈다 보면 그 구수한 냄새가 향기를 더해간다. 그러고는 바리스타 학원에서 배운 솜씨를 발휘해서 탬퍼를 이용해서 제대로 탬핑이라는 것도 한다. 이왕 폼 잡으려고 작정을 했으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다. 그러고는 드디어 커피를 내리면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기다리는 그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소확행”인가 보다.


거의 평생을 커피 믹스만 먹고 살아왔다. 그것도 그냥 마신 것도 아니고 물 대신 하루 10잔 이상을 마셔댔다. 이렇게 커피믹스만 마시다 보니 조용히 커피향을 음미한다는 것은 아예 모르고 산 것이다.


그런데 막상 커피를 직접 내려보니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리고 그 커피향을 들이키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하루 한두 잔씩 커피를 내리는 순간이 나의 새로운 소확행으로 작지만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것이다.


사랑하는 내 책상에 앉아서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에 맛있는 쿠키 한 조각,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싶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이 아마도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느긋하게 바라본 시간이었을 것이다.

늘 뛰어다녔다. 그래서 환갑이 될 때까지도 별명이 토끼였었다.


왜 그리도 뛰어다녔는지…

불쌍하고 애처롭다.


그래도 지금 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복받은 인생인가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 또 우리 집 양반의 잔소리에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다. 그냥 간단히 커피믹스나 마시면 될 것을 뭐 그리 요란 떠나면서 기어코 한 마디 한다.

우리 남편은 아직도 블랙커피를 까망커피라고 하면서 여전히 싫어한다. 50년이나 미국에서 살았던 사람이 맞나 싶다.


아무리 미국에서 오래 살았어도 뼛속까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먹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도 연구 대상인 우리 집 양반의 또 희한한 점이 잔소리는 해 대면서도 내가 꼭 하고 싶다면 한참 두고 보다가 사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그 심한 잔소리도 노랫소리로 들으려고 노력한다.


오랜 세월을 미친 듯이 일만 하고 사는 우리 부부를 보고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일만 하면서 사냐고 뒤에서 흉들을 많이 봤었다. 그때는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참으로 속상하고 자존감도 떨어져서 혼자 많이도 울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이 행복한 노후가 주어진 것이다. 그것도 많은 이민 1세들이 그토록 원하던 내 나라 대한민국으로 돌아와서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이 악물고 살아온 결과물이다. 물론 젊은 시절에 누렸어야 할 것들을 못 누리고 산 것도 많지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우리는 노후에 편안해지는 쪽을 택했다. 전략은 성공한 것 같다.


비록 젊어서는 남들 다 하는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살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헛된 세월은 아니었다는 안도감 또한 든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이 소박한 여유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요즘에는 모든 것이 참 좋다.

편안하다.

심지어 우리 집 양반의 잔소리까지도 그리 불편하지가 않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소중한 감정인지 모르겠다.

너무너무 소중해서 도둑맞지 않게 꼭꼭 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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