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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ul 24. 2024

형사 박미옥

업글할매의 책방 이야기

우연히 형사 박미옥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고는, ​그냥 그 카리스마에 꽂혀서 무조건 구매한 책이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멋짐이 형사 박미옥 작가님한테 느껴져서, ​일단은 책부터 읽자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도 어쩜 이리도 심플하고 멋있을까…

표지 또한 얼마나 재미있는지혼자서 킬킬거리고 웃었다.

마치 응답하라 1988을 보는 듯…

때로는 이런 약간의 촌스러움이 주는 마음 따뜻함이 그리워진다.

한국 경찰 역사상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 ​최초의 여성 강력반장, ​양천서 최초의 마약수사팀장, ​수많은 최초라는 기록과 함께 여형사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신, ​너무나도 멋진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시다.​

너무나도 유명했던 드라마 시그널과 괴물, 영화 감시자등, ​수많은 작품을 자문하기도 했고, 극의 모티브가 됐던 ​형사 박미옥이다.

프로파일링 공부를 거쳐 대학원에서 법의학까지 전공으로 하셨단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열심히 달리다가 ​총경이 될 수 있는 자리에서 정년 8년을 놔두고 명예퇴직을 하셨단다.

평생을 범인 잡는 이야기만 하다가 형사 박미옥의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으셨단다.

범인 잡는 현장이 아닌 일상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으셨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싶으셨단다.​

그래서 그만두셨단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명퇴 후에 작가님의 경험담을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책, 형사 박미옥이다.


형사 박미옥 책에서 찍었음

1987년에 순경 공채에 합격하셨다.

위 사진은 1990년 교통 순찰대 근무 시절의 모습이다.

참 멋지고 예쁘시다.

형사 박미옥 책에서 찍었음

현재는 제주에서 후배와 함께 마당을 공유하며, ​각각의 집을 짓고 살아가고 계신다.

마당 한쪽에는 두 여자 형사의 서재 겸 작은 책방이 있다.

이곳에서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 바로 “형사 박미옥”이라는 책을 쓰신 것이다.

지금은 일과 사람과 도시에 지친 지인들이 내려와서,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같이 읽고, 쉬고, 맘껏 우는 곳으로 쓰이고 있단다.

머지않은 시기에 모르는 손님들도 불러 모아 “마음 아픈 사람들의 책방”을 열려고 하신단다.

어쩐지 인터뷰에서 느껴지던 그 멋진 포스와 카리스마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멋진 분이셨다니…

이 책을 선택한 지금의 내가 너무도 대견할 정도이다.

형사 박미옥 작가님의 현재 제주에서의 살아가시는 모습만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지닌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 자신 있게, ​자신은 매우 철학적이고 매우 인문학적이면서, 형사를 감성으로 했다고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이 마음의 책방을 오픈하셔서, ​하루라도 빨리 이 책방을 방문하고 싶다.

제주에서 살기를 잘했다.

이런 분들이 같은 제주 하늘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로가 된다.


형사 박미옥 작가님은 오로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경찰이 되셨단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란 건 아예 없었던 시절이라, ​드라마 수사반장을 보면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에, ​그저 감동을 받는 것이 경찰에 대한 모든 정보였단다.

경찰은 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지키려는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선비 같은 마음으로 경찰을 시작하셨단다.

다만 착하게 사는 데도 기술과 맷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모르셨다고 한다.

하지만 기술과 맷집은 키워나가면 된다면서, ​무서움을 떨치고 도망가지 않으신 결과, 오늘의 형사 박미옥이 탄생한 것이다.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 형사로서 첫 단속을 나간 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으시단다.

반드시 여자 형사가 필요한 곳이기도 했다.

여성 전용 사우나에서 고액의 판돈을 걸고 도박하는 현장이었단다.

벗은 몸의 여자들이 거친 입담으로 욕지거리하면서, 화투장을 내리치는 곳에서의 ​사투를 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 아수라장의 아비규환의 지옥에서 땀범벅이 된 상태의 형사 박미옥은, ​그때서야 비로소 작가님은

완전히 딴 세상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실감하셨단다.

단속을 마치고 경찰서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방금 체포한 한 여자분이 형사 박미옥을 보고는, ​이렇게 어린 형사님이었냐고 하면서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고 하더란다.

어렸을 때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던 낯설고 위험천만한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으셨단다.

시험 삼아 3개월만 해보자고 했던 여자 강력계 형사를, ​형사 박미옥은 꼬박 30년을 형사로 살아오신 것이다.


현장에서 애통하게 떠난 동료 두 형사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날, 형사 박미옥 작가님은 진혼시를 낭독했단다.

모든 형사들의 영혼이 같이 목놓아 울었다고 회상하신다.

경찰과 형사라는 신분이, 실은 언제 칼 맞고 총 맞을지 모르는 운명이라는, ​작가님의 이 말씀이

왜 이리도 가슴이 아플까.

대한민국의 국민을 위해서 주야장천 목숨 걸고 일하시는 ​경찰분들의 노고가,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형사 박미옥 작가님은 늘 기도하신단다.

오늘도 그 긴장 속으로 들어가는 이 땅의 형사들이 부디 안전하기를, 그리고 죽지 않기를 기도하신단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최소한 이런 아픔은 온 국민이 함께 나누고 싶다.



아저씨, 내 목소리 기억하죠.
그날 저하고만 통화했으니
분명히 기억하실 텐데…
( 형사 박미옥 )


형사 박미옥은 단지 이 말 하나로 범인의 마음을 움직여서 사건을 마무리할 수가 있었단다.

​그때부터 형사 박미옥은 내가 확신할 수 없을 때는, 상대에게 물으라는 방식으로 취조를 하셨단다.


다그치면 마음이 닫히지만
질문하면 열린다.
형사는
그 변화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 형사 박미옥 )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 새로 발령받아서 갔는데, ​그곳에 계시는 서장님께서 기어코 한 말씀하더란다.

참 보이시해 보이시는데 시집은 가셨나요?

“보이시는 산업재해고요, 시집은 제 집이 있어서 안 갔습니다.”

참으로 시원한 한 방을 날리셨다.

예나 지금이나 왜 그렇게 남의 결혼 문제에 그리도 관심이 많은지…

제발 꼰대 좀 되지 맙시다.

형사 박미옥의 앞에 앉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이란다.

그런 그들에게 비록 찰나일지라도 마음 놓을 수 있는 한순간을 마련해 주는 것, ​진심으로 그와 대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결국 형사라는 업의 기본이라고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그래서 형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란다.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잘못했다는 사람한테 가서, 등짝부터 때리기 전에, 힘드냐고 물어볼 수가 있는 것이다.

형사란 남을 대하는 만큼 자기 성찰 또한 꾸준히 필요하단다.

이다음에 범죄자를 다시 만났을 때, ​서로 악수할 수 있을 정도의  따뜻한 형사 박미옥으로 늙어가고 싶으시단다.

이미 충분히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계신다.

너무도 멋지게 사람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감싸안아주는, 그런 삶을 살고 계신다.


형사란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단다.

형사 박기옥 작가님은, ​형사 시절에는 늘 아슬아슬하게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걸으셨단다.

어설픈 경험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려서 피해자에게 한 번 더 죄짓는 일이 없도록, ​과도한 감정이입으로 오판하는 일이 없도록, ​나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이 억울하게 망가지거나 위험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며 교도소 안과 밖을 가르는 담장 위를 걸으셨단다.

실수하면 나 또한 교도소 안으로 굴러떨어질 것이라는 각오로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걷고 또 걸으셨단다.


형사 박미옥 작가님은 형사 생활하신지 일 년쯤 됐을 때 한 번, ​그리고 서른여덟에 다시 한번, ​이렇게 두 번을 출가하기 위해 절로 가신 적이 있으시단다.

처음에는 형사로 살면서 들여다보게 된 세상이 ​좋은 삶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삶에 지쳐서 찾아갔었고, ​두 번째는당시 출가 연령 제한이 40세였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가 보자는 생각이었단다.

절친인 비구니 스님을 찾아가서 받아만 주신다면 정말로 열심히 따르겠노라고 간곡하게 청해보았단다.

스님 말씀이 어차피 형사 박미옥 님은 출가를 하신다고 해도, ​여기서도 스님들 상담해 주고 살 팔자이니까, ​그냥 세상에서 살면서 수행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셨단다.

결국 형사 박미옥 님이 계실 곳은 절이 아니라, 현장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절친 스님과 곡차 한잔 나누고 그냥 돌아오셨단다.

비구니가 되신 작가님을 생각해 보다가 혼자서 킥킥거렸다.

속세로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이다.


형사 박미옥 작가님은 현재 제주에서 ​책과 사람과 마음이머물다 가는 공간을 열어놓고, ​육지에서 온갖 일로 시달리는 지인들이, 제주에 오면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삼고 있단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울다가 웃다가, ​마음을 토로하다가, 책을 뒤적이다가, 그렇게 쉬었다 간단다.

무엇보다도 이 서재에서 작가님이 제일 많이 만나는 사람은, ​역시 작가님 자신이란다.

이 공간에서 형사 박미옥 작가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작가님 자신을 쓰는 일이었단다.

형사 박미옥의 철학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고 하신다.

하루빨리 작가님의 책방이 일반인들에게도 공개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본다.

그날이 온다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갈,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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