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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ul 09. 2024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조이엘)

업글할매의 책방 이야기

 《 아내를 우러러 딱 한 점만 부끄럽기를 》이라는 책으로 조이엘 작가님을 처음 만났다. 완전 딴 세상의 부부를 보는 것 같아서,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책이기도 했다.


이런 조이엘 작가님의 신간인,  《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이라는 아주 멋진 제목을 가진 책이 또다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대를 다니시면서 “인생의 책”을 만나 독서인으로 변신했다는 조이엘 작가님의 전공은 인문학이지만,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책을 집필하신다.


조이엘 작가님의 저서로는  《 아내를 우러러 딱 한 점만 부끄럽기를 》,  《 1센티 인문학 》,   《 인문학쯤 아는 어른이 되고 싶어 》 등이 있다.


어려운 인문학적 지식을 아주 쉽게 풀어내서,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그런 따뜻한 마음을 지니신 분이다.


신간인 《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 역시,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면서, 조선 시대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통해 독자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아주 색다른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받는 순간, 그 책표지에서 전해져오는 느낌이 참 색달랐다. 처음에는 약간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요즘 책들이 갖고 있었던, 한눈에 확 들어오게 하는 화려한 표지가 아니라, 뭔가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그 옛날의 흑백으로만 나왔던 신문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책 맨 위를 장식한 메모 형식의 “퇴계 이황에서 윤선도까지 한 번 읽으면 멈출 수 없는 통쾌한 지식의 향연“이라는 문구도 너무 색다르고 멋있었다.


”한 줄 요약의 힘”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깨닫게 해준다.


아마도 양복 차림인 것 같은데, 거기에 붓이 아닌 볼펜을 들고 삿갓을 쓴 서양인의 모습 또한 너무 재미있다.


ZYGMUNT BAUMAN / TREMENDUS MYSTERIUM이라는 어려운 영어도 등장을 하는데, 업글할매답게 부지런히 검색을 해봤다.


ZYGMUNT BAUMAN은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란다.

TREMENDUS MYSTERIUM 라틴어로 “엄청난 신비”를 뜻하는 말이라는 정도로만 일단 알아두기로 했다.


경복궁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뜬금없이 예쁜 여인의 모습 또한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이 그림은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아내분을 살짝 그려 넣으신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품어본다.


인문학 책답게, 참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책 표지인 것 같다.


가방끈이 짧은 나로서는 그 깊은 뜻을 잘 알 수가 없지만, 조선 시대와 현재를 연결하면서,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조이엘 작가님의 깊은 뜻이 이 책 표지에 다 담겨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책 표지만 들여다보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마도 이런 일은 처음인 것 같다.


사춘기 때 삼촌이 그러셨단다.

열일곱 살이면 반드시 미치는 나이라고.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이라는 책에 “반드시 미치는 나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온다고 하신다. 인문학적으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 책으로, 청소년은 물론 어른도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작가님은 소개하신다.


“반드시 미치는 나이”


개인의 사회의 틀을 벗어나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두 번 이상은 미쳐야 할 것 같다.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가능할 수가 없다.


그런 뜻에서 “반드시 미치는 나이”라는 것은 단순한 혼란과 광기의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과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나는 “미친 듯이 한다“라는 말이 참 좋다.


조이엘 작가님처럼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내면서, 뭐든 열심히 하던 것이 몸에 배어있다 보니,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는 반드시 미쳐서 하는 버릇이 생겼다.


미국에서 처음 설거지로 일을 시작했을 때도 그야말로 미친 듯이 그릇을 닦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때도 역시나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미쳤나 봐!라는 소리를 참 많이도 듣고 살았다. 지금 칠십 대에 들어섰는데도, 내 정신은 너무도 말짱하다. 그렇게 수도 없이 미쳤다는 소리를 꽤 오랜 세월 듣고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정신 줄을 놓지는 않았던 것이다.


미친 듯이 뭔가에 몰두하면서 살아온 지금의 내 인생은 너무도 평온하다.


“반드시 미치는 나이!”라는 것이 꼭 정해져 있지는 않을 것 같다.


각자의 삶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할 때가 오면, 그때는 한 번쯤 미쳐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허균은 어릴 때부터 입맛이 하이엔드였다고 설명하시는 조이엘 작가님의 표현이 너무도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었다.


어쩜 이리도 인문학을 재치 있게 풀어나가시는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허균은 정치 쪽으로는 뛰어나지 않았지만, 허구의 이야기를 꾸며내며 망상하는 것에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고 한다.


캐릭터가 조이엘 작가님의 눈에 딱 들어올만하다.


작가님은 허균을 “먹방러 허균”이라고 칭하신다.


어느 날 허균이 감히 이조판서에게 청탁을 한단다. 음식 맛있기로 소문난 전라도 남원에 가서 맛있는 것을 원 없이 먹으면서 먹방이나 찍으면서 살고 싶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남원 수령만 될 수 있다면 이조 판서를 준다고 해도 노 땡큐란다. 덧붙여 하는 말이 더욱더 가관이다.


용을 고삐와 쇠사슬로 묶으려 하지 말라면서, 용은 가스라이팅이 불가능한 존재라고 했단다.


이렇게 쉽고 알아듣기 쉬운 인문학 강의가 어디 또 있겠는가?


옷깃을 여미고 차분히 책상에 앉아서 듣는, 살짝 졸리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그리도 문장 하나하나가 톡톡 튀면서 재미있는지, 이런 글을 쓰시는 작가님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서울대 출신에 대한 고정 관념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윤선도는 몸집이 작고 체질도 연약했지만 용모와 몸가짐이 단정하고, 눈으로 레이저를 쏘는 꼬장꼬장한 선비였다고 또 재미있는 설명이 등장한다.


하늘이 나라를 세우고 임금을 세운 것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임금은 백성을 무시하면 안 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늘 심부름꾼인 임금이 민심을 잃으면,
하늘도 임금을 버릴 겝니다.


꼬장꼬장한 윤선도가 목숨을 걸고 올린 상소이다.


이렇게 진실만을 말하고, 빠짐없이 말하고, 목숨이 위험해도 말하는 사람이 바로 “조선의 소크라테스” 칭호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라고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이황이 찾던 17세기 조선의 소크라테스는 바로 윤선도였던 것이다.



“노력도 재능이다!“


롤즈가 쓴 ”정의론“에 나온단다. 너무 어려운 책이라서 감히 읽어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이 책안에 ”노력도 재능이다’라는 기가 막힌 말이 들어있단다.


난 이 말을 듣고는 그야말로 뛸 듯이 기뻤다.


가방끈이 짧아서인지, 특별한 재능이라는 것이 나한테는 없다고 늘 약간 기가 죽어있었는데, 노력도 재능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늘 노력 하나만큼은 타고났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이것이 나의 뛰어난 재능이라는 사실은 모른 채, 그저 타고난 것인 줄만 알았다.


나의 트레이드 마크인 “죽기 살기로 열심히!”가 바로 나의 재능이었던 것이다.


정말 모든 것에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

오죽하면 절대 칭찬이라고는 안 하는 우리 집 양반이, 어느 날 나보고 존경스럽다고까지 했겠는가. 엄청나게 노력하는 것 하나만큼은 자기도 인정을 한단다.


컴맹 세대였던 내가, 디지털 포메이션을 외쳐대면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노력의 대가였던 것이다.


타고난 재능을 미처 몰라봤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소크라테스가 어느 시인을 인용해서 말했단다.

좋은 사람도 때로는 나쁘고, 때로는 좋단다.


하지만 조이엘 작가님은 2,500년 전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요즘엔 다르다고 하신다. 좋은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단다. 그래서 이렇게 고쳐 보신단다.


“모든 사람은, 때로는 좋고 때로는 나쁘다.“


나 역시 작가님의 말씀에 한 표를 던진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모습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나쁘게 보일 수도 있고, 나쁘게 보이던 사람도 어떨 때는 아주 좋은 모습으로 다가올 때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때로는 좋을 수도 있고, 때로는 나쁠 수도 있다는 작가님 말씀만 명ㅎ심하면서 살면 될 것 같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다.


청개구리가 우는 정확한 이유를 지금까지 한 번도 알려고 한 적도 없었다.


귀에 익은 이름인 “이괄 스토리”가 바로 청개구리가 우는 이유랑 연결이 돼있을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이괄은 엄마 말이라면 무조건 거꾸로 했던 지독한 청개구리 아들이었단다. 죽어가는 엄마 청개구리가 아들의 이러한 성격을 역이용해서, 내가 죽거든, 내 무덤은 강가 모래톱에다 만들라고 유언을 하셨단다.


사실은 앞이 훤히 트인 산에 묻히고 싶었는데, 늘 엄마 말이라면 반대로만 하던 아들이니까, 이번에도 강가에 묻으라고 하면, 분명히 반대로 산에다 묘를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웬걸, 엄마 주검 앞에서 갑자기 지난 삶을 반성한 아들이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 말에 순종해서 그대로 강가에 묘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고선 비만 오면 행여 무덤이 쓸려 내려갈까 봐 개골개골 슬피 울었단다.


청개구리가 우는 사연이다.


웃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슬피 울 수도 없는 일이다.


인문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을 왜 진작 몰랐을까?




윤선도의 “오우가”로 이 책을 마무리하신다.


내 벗이 몇이냐 하니
물, 돌, 소나무, 대나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이면 그만이지
더해서 무엇하리.
(오우가)



참 운치 있고 멋있다.

인문학적 사랑을 맘껏 누리면서 예쁘게 살아가시는 조이엘 작가님과 아내 되시는 분의 삶이

너무도 부럽다.


이번 생은 아무래도 틀린 것 같으니까, 다음 생에서라도 이런 인문학적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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