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책방 이야기
《 즐거운 어른 》, 이 책의 저자이신 이옥선 작가님은 1948년 진주에서 태어나셨다. 괜히 진주라고 하면 무조건 박경리 작가님이 떠올려져서 그냥 반가워지는 것도 참 이상하다.
76세라는 나이에 쓰신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친근하고 정겹게 다가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젊은 시절에 교사 생활을 3년 정도 하셨단다.
남편분께서 교사 생활을 하시는 부산으로, 돌 지난 아들을 데리고 이사한 후로는, 스스로를 그때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말인, “경단녀”라고 여기면서 살아오셨다고 본인을 소개하시는 말씀에, 76세라는 연세가 이상하게 다가올 정도로 너무도 신박하다.
“여둘톡”이라는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팟케스트에서 우연히 이옥선 작가님의 《 즐거운 어른 》이라는 책에 대해서 인터뷰하시는 것을 듣고는, 완전 찐팬이 됐다.
같은 칠십 대라는 유대감이 주는 편안함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유쾌하고 즐겁게 살아가시는 노후의 모습이 바로 내가 꿈꾸던 그런 어른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라는 책으로 이미 많은 분들한테 사랑을 받고 있는 김하나 작가님이 바로 이옥선 작가님의 따님이시다.
그 따님이 “여둘톡: 여자 둘이서 톡 하고 있습니다“의 진행을 맡고 계신다.
“뉴욕타임즈”에까지 소개가 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한 채널이다.
책의 표지를 바라보는 순간, 얼마나 정겹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마치 가까운 동네 사우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할머니들의 친숙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할머니 세 분이 나란히 앉아 뒤통수를 보이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목격했을 그런 정겨운 광경이다.
가운데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의 등에는 부황을 뜬 것 같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시다가, 이제서야 편안하게 사우나에서만이라도 몸을 쉬게 하고 싶으신 그런 심정들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기도 했지만 보는 내내 안쓰러운 마음 또한 가시지를 않는다.
아마도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오신 세 분의 할머니들이지만, 이 사우나라는 공간에서만은 탁 터놓고 숨김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면서, 위로를 받는 그런 소중한 공간이 아닐까 싶다.
표지 하단에 쓰여있는 문구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나는 바로 이런 할머니를 기다려왔다”
《 즐거운 어른 》, 이 책은 단순히 나이 든 어른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유머와 지혜를 통해서 독자들이 인생의 참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즐거운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즐거운 할머니로 이 생을 마감하고 싶다.
“즐거운 어른”이라는 책 제목과 너무도 잘 어울리게, 잘 늙어가시는 현명한 어른의 참 모습을 보여주시는 이옥선 작가님이시다.
《 이야기장수 》라는 출판사 이름도 너무 정겹고 예쁘다. 마치 옛날 장터의 보따리장수를 연상시키기도 하면서, 저절로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질 것 같은 그런 암시를 주는 아주 재미있는 이름이다.
‘여둘톡“에 《 이야기장수 》의 대표님께서 나오셨는데, 역시나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시는 분답게 입담 또한 대단하시다.
나대란다.
나대면 나댈수록 나댈 일이 생긴다는 말씀에 혼자서 얼마나 배를 잡고 웃었는지, 속이 다 후련했다.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오지랖도 넓고 무척이나 나대기를 좋아했었는데, 워낙 엄하고 고지식한 남편 모시고 살다 보니, 이제는 많이 사그라지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나대는 것이 그립다.
나댄다는 것 자체가 정이 넘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워낙 요즘 세상에서는 너무도 완벽하게 자기 관리를 하다 보니, 이렇게 나댄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아직은 젊디젊은 대표님께서 이렇게 나댄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시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우시고 사랑스럽다.
대표님의 이 나대는 성격 덕분에 《 즐거운 어른 》이라는 책 또한 탄생하게 됐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역시 너무도 재미있다.
아무나 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차례
1부 : 인생살이, 어디 그럴 리가?
2부 : 나에게 관심 가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음에 안도하며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작가의 말이라고 하면서 “한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의 변명“이라고 약간은 의아한 문구로 시작이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빅토리 노트”라는 에세이를 쓰셨단다. 김하나 작가님을 비롯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쓴 육아일기를 에세이로 만드신 것이다. 그때 여러 번의 북토크를 진행하면서, 누군가가 앞으로 다시 에세이집을 내실 생각이 없으시냐는 질문에 이옥선 작가님은 단칼에, 다시는 나무를 잘라서 책을 낼 일은 없을 것이라고 대답을 하셨단다.
남들이 작가님이라고 칭하면서 떠받들어 주는 것이 너무나도 오금이 저리셨단다. 어쩜 그리도 말씀을 시원하게 하시는지 저절로 웃음이 난다.
그렇게 책에 대해서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던 어느 날, 그것도 제일 더운 8월에 따님하고 대표님, 그리고 단짝인 황선우 작가님, 이렇게 셋이서 부산으로 쳐들어 오신 것이다.
다짜고짜 “즐거운 어른”이라는 제목으로 에세이집을 내자고 물고문을 하더란다. 자기들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차를 갖고 오신 이옥선 작가님은, 운전 때문에 그 시원한 맥주를 못 마셨으니 물고문이 따로 없는 것이었다.
나 같으면 그냥 대리 불러서 같이 마셨을 지도 모르겠다. 행여 누군가가 나한테 책을 내자고 한다면 너무도 영광스럽고 송구스러워서, 맥주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신나서 마셨을 것 같다.
그렇게 두 시간을 시달리시다가 맨 정신으로 허락을 하셨단다.
나이를 먹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나이 많은 사람도 뭔가 할 말이 쌓여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고는 약속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책의 시작에다 “한입으로 두말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라고 변명을 늘어놓으셨단다.
시작부터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하시는 작가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이옥선 작가님의 첫 번째 책인 “빅토리 노트” 북토크가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열렸단다. 그때 그 바쁘시기로 소문난 “이야기장수” 대표님께서 일부로 찾아와주신 덕분에, 이옥선 작가님하고 따님이신 김하나 작가님,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너무나도 재미있고 유쾌한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정말 너무나도 우연히 “즐거운 어른”이라는 표현이 나왔단다.
역시나 베스트셀러 메이커이신 대표님이신지라, 그 “즐거운 어른”이라는 단어를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셨다가, 어느 날 김하나 작가님을 대동하고, 이옥선 작가님이 살고 계시는 부산으로 무작정 쳐들어 가셨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베스트셀러인 《 즐거운 어른 》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 이노무 자슥들아~~ ”
장 자크 루소, 톨스토이, 헤밍웨이, 버트런드, 러셀,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유명하고 고귀한 찰학자와 과학자 같은 분들이다.
인간들의 마음속을 그렇게나 잘 들여다볼 줄 아는 소설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 왜 그 모양인가를 아주 통쾌하게 꼬집어 주신다. 하나같이들 비열하고, 바람둥이고, 호로자식까지도 있다.
이옥선 작가님은 냉철한 시선으로 이러한 천재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신 것이다.
천재라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다는 이유만으로, 나머지 인간으로서 익혀야 할 덕목들은 전혀 신경을 안 쓰면서 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서 교양이나 예의, 그리고 인격 같은 것을 갖추어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은, 다 같이 모여 사는 공동체에 무언의 상식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작가님은 열변을 토하신다.
헛소리 헛짓거리를 남발하는 인간들에게, 이 나이에 내가 못 할 말이 뭐냐며 호탕하게 일침을 날리시는 작가님이 너무도 부럽다.
감히 그 누가 이 고명하신 철학자님들을 솔직하게 평할 수 있을 것인가?
76세라는 나이가 주는 용기가 있었을 것 같다.
그것도 아무한테도 눈치 받지 않는 본인만의 자유로움이 한몫한 것 같다.
이옥선 작가님의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설명이 참 가슴에 와닿았다. 아무런 기대 없이, 스스로의 명랑성과 가벼운 마음가짐인 평온함에 기대는 것이, 바로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지름 길인 것이다.
이렇게 지구 한 귀퉁이에서 덤덤하고 조용하게 사는 즐거움을 저렇게 요란한 유명인들은 모를 거라는 말씀에 이상하리만치 통쾌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옥선 작가님이 아니면 그 누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네 사우나에서의 광경들이 참으로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달목욕”이라는 단어도 처음 접해본다.
한꺼번에 한 달 치 목욕값을 내고 매일 가는 목욕 시스템을 “달목욕”이라고 한다는 말이 참 재미있다.
주로 “멤버십”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이것 또한 지역마다 달리 부르는 것 같기도 해서 신기하기까지 했다.
매일 같이 거의 같은 시간대로 다니다 보니, 저절로 새벽반, 오전 반, 오후 반, 저녁반으로 나누어진단다. 몇 년을 그렇게 다니다 보면 서로의 사정도 잘 알게 되면서 금방 친밀한 관계로 변하는 것이란다.
사우나 안에서는 이 세상 모든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 맛집 이야기, 건강 이야기, 어디 병원이 잘하더라는 등,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멈추지가 않는 곳이 바로 목욕탕 담화인 것이다.
이렇게 거의 매일 사우나를 가시는 작가님이신지라, 여자들의 가슴을 관찰할 기회가 많으셨는데, 사우나에서의 여자들은 의외로 솔직하고 화통하단다.
하루는 60대쯤 되어 보이는 사람과 둘만 온탕에 있다가 자칭 오지랖이 좀 넓다는 작가님께서 “나이에 비해서 몸매가 아주 좋으시네요~~”라고 했더니, 상대방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또 걸작이다.
자기는 젊어서 가슴 성형을 했다면서,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다른 곳은 조금씩 나이에 맞게 변해가는데, 가슴만 유독 원기 충천 봉긋하게 솟아 있는 것이, 이제는 오히려 어색해서 보기 싫어진다고 했단다.
나 역시 가끔 사우나에 자주 들리곤 하는데, 유난히 이상하게 눈에 띄는 노인들이 한 둘은 반드시 있다.
목에 있는 주름과 손을 보면 영락없는 할머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 데다가, 반짝반짝 윤기까지 난다.
괜히 힐끔 곁눈질을 해보기도 하지만, 절대로 그 사람이 예쁘고 아름답게 보여서가 아니다. 뭔가 부자연스럽고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칠십 대에 접어들고 보니, 그저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어색했던 흰머리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고, 온 얼굴을 덮고 있는 잔 주름 또한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있는 나의 일부로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늙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다 보니, 모든 것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억지로 되돌리려고 하지 말자.
그냥 순리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이옥선 작가님의 소원은 “고독사“라고 말씀하시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나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가,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공감을 했던 부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노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하루 더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드는 것이다.
작가님은 요즘 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심장마비로 고독사 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란다.
혹시라도 작가님이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때 누군가 옆에 있어서 괜히 119라도 부르게 되면, 다른 건 몰라도 구급 출동 시스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되어있는 것이 우리나라이다 보니, 마음 놓고 죽지도 못하고 다시 또 살아난다는 것이다.
죽으려고 하는 순간에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된다고 하신다. 그래서 고독사를 해야만 한다는 이옥선 작가님의 말씀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결코 웃어넘길 수 만도 없는 우리 같은 노인들의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구구팔팔일이삼사“라는 노래가 유행이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드러눕고는 그냥 죽으면 된단다.
이런 행운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죽는 순간, 누구한테 민폐 끼치지 않고 조용히 가는 것이 소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님 말씀처럼 ”고독사“가 최선의 답인 것이다.
혹시 몰라서 이미 “연명치료 거부”도 신청해 놓았다.
가망도 없는 상태에서 서로가 힘들어지는 상황을 만든다는 것이 너무나도 싫다.
이 모든 것이 반드시 내 뜻대로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지켜나가고 싶다.
“죽을 때가 되면 집에서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라는 작가님의 말씀이 가슴을 후비고 들어온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매일 아침 열심히 기도를 하는 것뿐이다.
제발 죽을 때 남한테 민폐 끼치지 않고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뿐이다.
“여둘톡”이라는 팟케스트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마지막에 이옥선 작가님이 직접 쓰신 유언장을 작가님이 직접 낭독하시는 시간이 마련이 됐다.
그냥 생각난 김에 한마디 하고 싶어서 만든 유언장이시란다. 이제까지 작가님의 인생은 대충 즐겁게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신다면서, 너희도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 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소확행”을 강조하시기도 한다.
절대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란다.
다행히 남겨줄 재산이 많지 않아, 형제간에 싸울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신단다.
아들딸 며느리 손자 손녀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했다면서, 화장을 해서 아빠를 장사 지낸 것처럼 해달라는 당부 또한 잊지 않으셨다.
제사는 지내지 말고, 그날 시간이 나면 너희들끼리 모여서 맛있는 밥을 먹으라고 하신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마지막까지 조용히 듣고 계시던, 그 멘탈 강한 김하나 작가님께서 결국 오열을 하셨다. 엄마의 마지막 유언장을 마주 보면서 듣고 있는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그래도 이옥선 작가님은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는, 그런 훌륭한 작가님을 따님으로 두셔서 너무도 행복할 것이다.
김하나 작가님 역시, 이런 훌륭한 어머니의 딸이라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울 것 같다.
참 보기 좋은 엄마와 딸의 북토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