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역이민 생활
구리 성당 성 베드로 노인대학에서, 수업 전에 학생들이 소리 높여 외우는 ‘노인 십계명’이 있다고 한다.
노인 십계명
1: 당황해하거나 성급해 하지 말고 뛰지 말라.
2: 자식이 무엇을 해줄까를 기대하지 말라
3: 고집부리지 말라.
4: 시샘하지 말라.
5: 공치사하지 말라,
6: 날마다 샤워하라.
7: 날마다 속옷을 갈아입어라.
8: 많이 듣고 조금만 말하라.
9: 많이 움직이고 많이 걸어라.
10: 욕심을 줄이고 나누어 주어라.
늘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해 주고,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해 주시는 황창연 신부님께서 이 노인 십계명에 대한 강의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주셨다.
노년기를 맞이한 우리들한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행복해야 하는지,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신부님의 조언이, 어쩔 수 없이 늙어만 간다는 쓸쓸함을 많이 달래준다.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매일 다짐하면서 노인 십계명을 외우다 보면, 우리가 나이 들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신부님은 말씀하신다.
굳이 노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한테도 적용이 될 것 같다.
1: 당황해하거나 성급해 하지 말고 뛰지 말라.
이 말은 단순히 행동 지침이 아니라,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담고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뛰었는지…
오죽하면 60세까지도 별명이 토끼였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살면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느긋하기로 유명한 미국 사람들은 늘 한 마디 한다.
“Come Down ~~”
천천히, 쉬엄 쉬엄하라는 소리가 그때는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의 허세인 줄만 알았다. 귓전으로 흘려보내고 쉬지 않고 뛰어다니다가, 족저근막염도 생기고, 무릎 관절염도 생기고, 허리도 나빠지고 그야말로 골병이 든 것이다.
젊었을 때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뛰는 게 일상이었지만, 이제는 변해야만 하고, 다행히 변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이지만, 더 이상의 소는 안 잃을 것 같다.
골다공증 중증 진단을 받고 나니, 이제는 몸이 경고를 보낸다.
무작정 뛰는 것은 더 이상 용감함이 아니라, 무모함이다. 이제는 넘어졌다 하면 곧장 응급실행이다.
이제는 무조건 천천히 걷는다. 앞뒤 좌우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발아래 또한 찬찬히 살피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걷는다.
이렇게 천천히 걷다 보니, 그전에는 잘 안 보였던 주변의 풍경들도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예쁘게 피기 시작한 동백꽃, 오래된 동네 간판, 지나가는 길고양이의 귀여운 뒤태, 그동안 뛰어다니면서 놓쳤던 것들이다.
당황해하지 않고, 성급해 하지도 않으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매 순간을 음미하며, 진정한 인생의 맛을 느낄 것이다.
2: 자식이 무엇을 해줄까를 기대하지 말라
행여 자식이 무엇을 해줄까를 아예 기대하지를 말라는 말은, 처음 들을 때는 다소 냉정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로서의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으라는 따뜻한 메시지가 함께 하는 것 같다.
황창연 신부님이 늘 강조하시는 것이 있다.
바로 “거지 근성을 버려라 ”이다.
자식이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기다리는 삶은, 어쩌면 스스로를 거지처럼 만드는 길이 아닐까라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지 말고, 자식에 대한 기대치도 내려놓으면서, 자식들한테는 자유를 주고, 스스로한테는 삶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그런 부모가 돼야 할 것이다.
“내 삶은 내가 만든다”
자식이 아닌 나를 위해 하루를 살아가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그 순간, 나이와 상관없는 새로운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고집은 종종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것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내 말이 맞아!”라는 태도는 대화를 막고,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기회를 놓치게도 만든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많은 경험과 지혜를 얻는 동시에, 더 유연해질 기회를 얻는 것이기도 하다,
고집을 내려놓는 것은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집을 부리기보다, 삶이 주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이기는 것이다.
고집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 마음에는 더 많은 행복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4: 시샘하지 말라.
조용한 줄만 알았던 노인정에서도 가끔 시비가 붙는단다.
바로 서로 시샘하는 데서 비롯되는 일이다.
누구는 얼마가 있고, 누구는 매달 자식이 와서 용돈을 얼마를 주고 가고, 내 차는 벤츠이고, 저 차는 BMW, 우리 손녀는 어디 대학교에 들어갔고, 저기 손주는 대 기업에 취직했대~~
훈훈함과 따뜻함이 있어야 할 이곳이, 시기와 질투로 얼룩이 지고 만 것이다.
시기와 질투는 늘 비교에서 비롯되는 것이란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상대방의 빛나는 부분만을 바라볼 때, 불행의 씨앗은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비교는 한도 끝도 없다.
내가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이고, 남의 성공이 내 실패처럼 느껴질 때, 질투는 나를 갉아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질투라는 것은, 내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나를 더 부정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하면서 살자.
남과 비교하는 그런 못난 인생은 살지 말자.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5: 공치사하지 말라,
공치사하는 것처럼 피곤한 일도 없을 것 같다.
“아이고, 내가 그때 해줬잖아~~”
“아이고, 내가 작년에 선물 준 거 기억나? 그거 구하느라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
늘 듣게 되는 고약한 공치사의 대표적인 말들이다.
이런 공치사를 듣는 순간, 받았던 사람의 마음속엔 부담감만 쌓인다.
고마웠던 마음이 이제는 그만 얘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지만, 그렇다고 내색도 할 수 없어도 더 머리가 아픈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도움이나 선물을 준 뒤 그 사실을 반복해서 말하면, 그 순간 감사했던 마음이 감정의 짐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안 받고 말지~~”라는 마음까지도 들게 만든다.
진정한 선물과 도움이라는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때, 이미 도움을 준 그 순간이 기쁨이어야 한다.
공치사하지 말자.
주고 욕 먹지는 말자.
6: 날마다 샤워하라.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것이 변한다. 피부는 예전보다 더 얇아지고, 예민해진다. 그래서 샤워를 자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한다,
노인일수록, 날마다 샤워를 하는 것이 건강과 삶의 질에 중요한 것이다.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면 혈액순환이 촉진되어, 근육의 긴장이 완화되고 몸이 가벼워진단다.
징글징글한 노인들의 질병인 관절통이나 근육통도, 샤워를 통해 불편함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많은 노인들이 날마다 샤워는 귀찮아서 못하겠다고 한다. 몸이 약해져서 힘들다고도 한다.
노인이 되다 보니, 어떨 때는 작은 불편함도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매일 샤워를 하면서 몸을 가볍고 산뜻하게 유지를 한다면, 그 하루가 훨씬 더 활기차고 기분 좋게 시작을 할 것 같다.
깨끗한 몸은 삶의 의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인들이여, 귀찮다고 뒤로 미루지 말고 “날마다 샤워하라!“를,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실천하자.
7: 날마다 속옷을 갈아입어라.
나이가 들수록, 몸을 돌보는 작은 습관 하나하나가 건강과 행복의 열쇠가 된다.
속옷을 날마다 갈아입는 일은 단순한 위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깨끗한 속옷은 마음을 가볍게 하고,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게 해주는 것이다.
일부 노인들 중에서 귀찮다고 매일 갈아입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는데, 우리 집 양반 같은 경우에는 귀찮아서가 아니라, 물값이 아깝다고 하루 입은 러닝 같은 것을, 다음 날에는 뒤집어서 입으려고 하는 바람에 수도 없이 싸운다.
1941년생이다 보니, 해방도 겪었고, 공산당이 싫다고 이북에서 남한으로 온 가족이 야반도주도 했고, 살 만할 때 6.25 전쟁도 터지다 보니, 물 한 방울이라도 아끼는 습관이 오랜 세월 몸에 밴 것이다.
충분히 이해는 하고도 남지만, 세상이 변했다.
더 이상 보릿고개도 없고, 도망갈 일도 없다.
이제부터는 그저 남은 인생, 어떻게 하면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만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제발 속옷 뒤집어 입는 것은 그만뒀으면 좋으련만, 팔십이 넘도록 해 온 습관이 어디 하루아침에 고쳐지겠는가…
그냥 보기만 해도 짠하다.
그러니 옷에 짠 내가 배일 수밖에…
8: 많이 듣고 조금만 말하라.
“노인이 될수록 입에는 지퍼를 달고, 지갑은 열어라!”
이 말은 단순한 행동 지침을 넘어서, 노년기에 삶을 더 아름답고 품격있게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어쩌다 한 번씩 블로그 모임에 나가는 날이면, 영락없이 우리 집 양반한테 듣는 말이 있다.
공부하러 가면,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얌전히 앉아서 가만히 듣기만 하다가, 밥은 나보고 사란다.
나 빼고는 전부 40대 젊은 사람들뿐인데, 칠십 대 할매가 주책없이 끼어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무게만 잡고 있다면, 그 누가 나를 상대해 주겠는가.
여고시절부터 “무드 담당”이라는 직책이 주어졌었다.
우리 남편의 표현에 의하면 얼굴에 철판을 깔았단다.
무거운 분위기가 싫어서, 일부러라도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 어떨 때는 본의 아니게 말을 많이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맹세코 단언컨대, 내 말만 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남의 이야기 또한 아주 경청을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한테 오늘의 일과를 보고하면서, 당신이 시킨 대로 아주 얌전히 앉아만 있다가 왔다고 하얀 거짓말을 한다.
물론 우리 집 양반 사전에는 이런 선의의 거짓말도 용납이 안되지만,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보니, 때로는 알고도 모른 척 넘어가야 할 일도 많은 것이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신랑하고 나하고 잘 맞는 코드가 “밥 사주기‘이다.
입에 완전히 지퍼를 다는 것은 아직은 망설이고 있지만, 지갑을 여는 것만은 그 누구보다도 빠를 자신이 있다.
경청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시작이다.
이미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살아왔던 노인은, 이제는 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이야기가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살아온 세월에 대한 경험과, 산지식, 이런 것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당히 ~~”라는 말이 살다 보니 참으로 어렵더라.
적당히 말하고, 잘 들어주자.
“라떼는 말이야~~”는 절대 사절!
9: 많이 움직이고 많이 걸어라
황창연 신부님의 강의를 듣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해가 뜨면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라!”
노년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라는 것은 굳이 말을 안 해도 실감하고 있다. 이런 노인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움직이고 걷는 것‘이다.
노년기에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편안해 보이지만, 이는 근육 감소, 관절 경직, 심혈관 건강 저하라는 엄청난 병을 키우는 지름길이란다.
기억력도 떨어져서 까딱하면 치매 위험까지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에 정신이 번쩍 난다.
정말 치매만큼은 피해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기도는 하고 있지만, 기도만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기에, 노력 또한 게을리하지 않는다.
치매 예방을 위해서라도, 황창연 신부님 말씀처럼 해만 뜨면 나가고 싶지만,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다 보니 이것 또한 여의치는 않다.
비록 멀리는 못 나가더라도, 집 마당이라도 매일 같이 나가서 걸으려고 한다.
“걷기만 해도 병의 90%는 낫는다”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10: 욕심을 줄이고 나누어 주어라.
노년은 인생의 황혼기라 불린다.
그동안 쌓아온 삶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관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시기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며, 오직 자기 것만 챙기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베푸는 즐거움을 아는 노인도 있다.
큰 것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작고 따뜻한 말을 비롯해서, 예쁜 미소, 정성이 담긴 밥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는 그런 마음 또한 나눔의 실천인 것이다.
욕심만 부리는 노인은 비록 소유는 늘어날지 모르지만, 정작 마음의 평화는 줄어드는 것이다. 반면 나눌 줄 아는 노인은, 물질적으로는 부족할지라도,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 것 같다.
각자 자기가 잘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노래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며, 또 어떤 사람은 아주 재치 있고 유머 있게 말을 잘한다.
이런 자기만의 재능을 살려서 재능기부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밥 사주는 것이다.
밥 사는 것이 무슨 재주냐면서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밥을 사줘 본 적이 없어서 일 것이다.
밥을 산다는 건, 단순히 밥 값을 내는 것이 아니다. 그건 사랑과 관심, 그리고 관계를 돈독히 만드는 나의 철학인 것이다.
“우리 언제 밥 한 번 먹자!”
이 말을 나는 유난히도 좋아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말이 주는 의미가 옛날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
우리 때는 “밥 한 번 먹자”라고 하면 반드시 날을 잡아서 꼭 같이 밥을 먹었다. 이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사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에, 나처럼 밥 같이 먹는 것 좋아하는 할매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그래도 난 여전히 누군가가 나한테 “밥 한 번 먹자”라고 인사를 한다면, “좋아요, 이번 주 언제 시간 되세요?”라고 물으면서, 스쳐 지나가는 인사말이 아닌,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그런 기회로 만들 것이다.
밥 한 번 먹자!
이제는 진짜로 먹자!
인간은 살아있는 한, 기필코 노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황창연 신부님의 말씀이, 나이를 먹고 나니 더더욱 절실하게 가슴에 와닿는다.
각기 연령층에 따라 특별한 은총을 갖고 있기에, 늙는다는 것을 굳이 슬퍼할 이유는 없단다.
늙어서는 새롭게 만나게 되는 사람도 점점 더 적게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에게 더욱 애정을 쏟으면서, 만났던 것을 아름다움으로 간직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황창연 신부님의 가르침대로, 지금 이 순간을 값지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