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책방 이야기
《 아버지의 해방일지 》라는 눈물 나도록 재미있던 소설을 쓰신 정지아 작가님이, 이번에는 《 정지아가 들려주는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로 돌아오셨다.
이 책의 표지 또한 한없이 따뜻하고 정감 있는 느낌을 전해준다.
한적한 시골집 앞마당에 앉아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고, 그 뒤로는 푸른 하늘과 구름, 그리고 둥근 보름달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빨간 지붕과 하얀 벽돌로 이루어진 소박한 집은 과거의 정겨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주변의 화사한 꽃과 나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 있다.
마당에서 노란 꽃을 물고 있는 강아지는, 이야기에 따뜻함을 더해주는 것 같다.
이미 표지에서 풍겨 나오는 느낌이, 마치 동화책의 한 장면처럼 잔잔하고도 깊은 감동이 전해져온다.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그림책 같은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책 속의 이야기가, 순수하고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책을 펼치기도 전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나신 정지아 작가님은,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다.
그 유명한 《 아버지의 해방일지 》를 비롯하여, 《 빨치산의 딸 》, 《 숲의 대화 》를 쓰셨으며,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 하늘을 쫓는 아이 》, 《 노구치 이야기 》등이 있다.
《 아버지의 해방일지 》에서 이미 작가님의 입담을 너무나도 깊이 마음속에 새겨두었던 터이라, 이번 이야기에서도 얼마나 재미있고 감동스럽게 풀어나가실지에 대해서는 아무 이견이 없었다.
그저 이번에도 얼마나 우리를 감동시키실까에 대한 기대감만 있었던 것이다.
정지아 작가님이 바라보시는 동화 작가 권정생은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았기에,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모든 존재를, 하물며 쥐나 개구리까지도 따스한 마음으로 품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가장 슬픈 삶을 살았기에, 모든 존재의 슬픔을, 친구 잃은 닭의 슬픔까지도 함께 슬퍼할 줄 아는 그런 분이셨으며, 가장 사람다운 사람, 가장 작가다운 작가였다고, 진심을 담아 이 책에 소개를 해 주신다.
이러한 권정생의 삶은 우리들에게 오늘날,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정지아 작가님의 말씀처럼, 반드시 높이 올라가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낮은 데에도 생명이 살고, 못났든 잘났든 누구나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낮은 곳의 슬픔과 고통을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지도 모른다는 작가님의 생각에 무조건 한 표를 던진다.
권정생 작가님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던 것 같다.
권정생 작가님께서 어떻게 작고 소외된 존재들과 함께 인연을 맺을 수 있었을 까에 대한 답이 있었다.
쥐라면 기절초풍을 하던 나는, 처음에는 어떻게 생쥐랑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권정생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오죽하면 그 쥐랑 함께 하실 수가 있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되면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매서운 바람이 문틈을 세게 때리던 어느 겨울밤, 춥고 외로운 밤을 보내시던 권정생 할아버지는, 어디선가 ’사각사각‘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단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몰라, 이불 속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소리는 바로 생쥐가 이불 속으로 몰래 들어와 몸을 녹이고 있던 소리였다.
처음에는 권정생 작가님도 놀라서 후딱 일어나셨지만, ’아이고, 너도 추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고쳐먹고, 같이 지내자고 하셨단다.
’그래 같이 있자. 나도 외로우니까~~‘
작은 생쥐는 마치 그 말을 알아듣는 듯, 이불 속에서 할아버지 곁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단다. 그렇게 두 생명체가 한 이불을 나누며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는 한 가족, 한 식구가 된 것이다.
왜 굳이 생쥐를 돌봐줬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겠지만, 권정생 할아버지는 우리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들의 존재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그런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이신 것이다.
누구보다도 소박하고 진실하게 살았던 권정생 할아버지께서 세상에 남긴 유언장은, 작가님의 삶만큼이나 따뜻하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린이’를 사랑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남기겠다는 결정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보여주셨다.
권정생 할아버지께서는 평생을 가난하게 사셨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쓸 돈은 넘치도록 있었단다. 하지만 별로 쓸 데가 없으신 것이다.
허름한 집에서 살다 보니, 전기세도 별로 안 나가고, 옷이야 바람만 가리면 되는 것이고, 신발은 고무신이 제일 편하다고 하신다.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책을 수십만 부나 팔았지만, 여기서 생긴 돈이 작가님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으시단다.
매일매일 가슴에 샘물처럼 솟아나는 이야기를 글로 썼을 뿐이고, 아이들이 그 책을 사서 읽었으니, 그 책으로 인해서 남은 돈은 당연히 그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란다.
아무나 하는 생각이 아니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어린이들의 미래까지도 걱정해 주는, 그런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 한 것이다.
유언장이라는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죄송스럽지만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어본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낭만적으로 죽고 싶다는 것에 나 역시 지극히 동감한다.
권정생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언장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작가님의 한결같은 삶과 마음이 담긴 ‘사랑의 기록’인 것이다.
마지막까지도 자신을 위해 무엇을 남기기보다는,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어린이들을 사랑하셨던 분이다.
아마도 오랫동안 세상의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따뜻한 울림으로 남을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
권정생 할아버지의 엉뚱한 소망에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는다.
늘 엄숙하고 조용한 분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작가님의 글 한 켠에 적힌 이 한마디가 유쾌한 면모를 지니신 권정생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으시단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은데, 그때는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 같다는 말씀에,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권정생 할아버지의 소망은 다소 엉뚱하고 재미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꿈꾸겠는가?
아직까지는 그 옛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너무도 힘들고 고달팠던 그 시절로 행여 다시 돌아갈까 봐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그냥 지금 이대로 살다가 가고 싶다.
너무도 평온하고 행복한 오늘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1937년생인 권정생 작가님은,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1945년 8월 15일에 드디어 대한민국 해방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고는 이듬해 4월에 귀국선을 타고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와오긴 했지만, 배를 탈 때 일본에서 번 돈을 모조리 빼앗기는 바람에,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로 시작을 해야만 했다.
엄청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라, 사람들은 소나무 껍질이나 쑥을 뜯어 죽으로 연명하기가 일쑤이고, 땔감마저 부족해 산이란 산은 죄다 붉은 몸뚱이를 드러낸 상태였다.
‘초근목피’라는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그 어린 나이에도 작가님은, 비에 무너져 내리는 산의 붉은 속살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단다.
1941년생인 우리 집 양반 역시 그 시절의 사람이라,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가슴 한 편이 뭉클해져 온다.
해방은 됐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전쟁으로, 그 어린 사람들이 보리 밥과 밀가루 음식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미국의 밀가루 원조 덕분에 국수, 수제비 등을 만들어 먹었지만, 우리 집 양반 표현에 의하면, 없는 사람들은 이것 또한 귀해서, 시장에서 팔지 못하던 누렇게 변한 배우 껍질 등을 얻어와서는 수제비에다 넣어 양을 늘려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때의 그 참담했던 심정이 떠올려져서인지, 지금은 별미로 찾아다니는 칼국수나 수제비를 전혀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면순이 인 나는, 유난히도 칼국수랑 수제비를 좋아하지만, 이런 남편의 아픈 추억 때문에 어쩌다 볼 일이 있을 때 혼자 나가서 한 번씩 먹곤 한다.
권정생 작가님의 고달팠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남편을 비롯해 그때 그 시절,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밑거름이 되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권정생 작가님은 ‘강아지똥’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선생님의 삶과 작품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작가님이 단순히 동화 작가라는 수식어로만은 설명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권정생 할아버지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님의 삶 속에서 발견한 소박한 진실을 글로 옮겨,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과 따뜻함을 심어주던, 진정한 이야기를 전하는 분이시다.
작가님의 가장 대표작인 ‘강아지똥’은, 버려진 강아지똥이 결국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동화이다.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서 소외받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 또는 스스로를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선생님의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
정지아 작가님이 아니셨으면 그 누가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가 있었을까?
권정생 작가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신지도 벌써 십수 년이 지났지만, 정지아 작가님의 아주 섬세한 시선으로 다시 우리들 곁으로 나타나신다.
우리는 흔히 ’이야기‘를 그냥 책이나 글로써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야기는 그것을 발견하고, 기록하고, 전하는 사람이 없이는 세상에 빛을 발하지 못한다,
권정생 할아버지의 따뜻한 삶과 철학을 우리에게 전해준 정지아 작가님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 누가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줬을까?
정지아 작가님만의 섬세한 손끝에서 탄생한 이 글은, 단순히 기록을 넘어, 잊힐 수도 있었던 선생님의 삶을 다시금 우리 곁에 되살려준다.
정지아 작가님은 단순히 권정생 선생님의 이야기를 적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야기를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고, 삶으로 공감하며, 세상에 전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셨다.
《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 이 글 속에는 권정생 선생님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감사합니다.
정지아 작가님!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의 버킷리스트에 새로이 등장한 것이 있다.
정지아 작가님이 살고 계시는 구례를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 찾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위스키 한 병 들고…
《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
이 책은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순수한 영혼과
따뜻한 이야기가 배어있는 에세이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부드러워지는 경험을
느끼고 싶은 분들한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