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책방 이야기
제11회 교보문고 출판 어워즈에서 올해의 작가 상을 수상한 두 명의 작가가, 독자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선사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신 한강 작가님과 개그맨에서 작가로 변신한 고명환 작가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강 작가님의 ‘올해의 작가 상’은 이미 예견돼있었지만, 고명환 작가님의 수상 소식은 의외의 반전 스토리로 많은 사람들한테 놀라움과 기쁨을 안겨다 준 것 같다.
고명환 작가님은, 매일 아침 7만 명이 작가님의 유튜브 강의를 찾아 듣고, 한 달에 20여 차례 전국 강연장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이 시대 최고의 강연자로도 유명하신 분이다.
작가님은 지난 2005년에 교통사고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경험을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작가님은, “34년 동안 세상에 끌려다니며 살았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고, 이후부터는 세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전을 탐독하기 시작하셨단다.
《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 이 책은 작가님이 고전을 통해 얻은 삶의 통찰과 자신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로, 예약 판매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고명환 작가님은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시간을 지배하며 살아가는 방법, 그리고 누구나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길에 대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하신다.
목차
1부: 나는 누구인가
2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역시 나를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순간순간 노출되는 내 약점을 막아줄 존재는 없다고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수천 년의 지혜가 녹아 있는 고전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에게 묻지 말고 고전에 물으라고 가르침을 주신다.
고전은 느리지만 정확하다.
잘못된 길로 갔다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없단다.
오로지 “성장”이라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나아가는 것이 고전이며, 고전은 직접 가르치려 하지 않고, 독자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라고 작가님은 설명해 주신다.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면서, 부디 방향을 잃지 말고, 고전이라는 나침반을 심장에 묵직하게 박아두기를 바란다는 말씀에, 앞뒤, 좌우할 것 없이 고전 책을 나열해 본다.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책이 <돈키호테>란다. 읽어보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이 책을, 작가님은 강연 때마다 가장 많이 인용한단다.
작가님이 <돈키호테>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이 바로 돈키호테의 나이라고 하신다.
세르반테스 작가가 왜 하필 돈키호테의 나이를 ‘쉰’으로 설정했을까?
16세기 유럽인의 평균 수명 나이가 30~40세임을 감안하면, 그 당시의 쉰이라는 나이는 지금 기준으로 90세 이상인 것이다.
90세면 죽음에 가까운 나이인데, 그 나이에, 죽기 직전에 돈키호테는 처음으로 깨닫게 된단다. 본인이 기사로 태어났음을.
돈키호테는 읽고 싶은 기사 소설을 구입하기 위해서 수많은 밭을 팔아버릴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다는 말씀에,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실은, 모든 길은 책 속에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으며, 하루를 살아도 내가 믿고, 내가 깨닫고, 내가 결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 옛날의 돈키호테도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녹슬어 사라지지 않고, 닳아서 사라지는 게 훨씬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엄청나게 많은 양의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돈키호테처럼, 나 역시 죽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본다.
《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 이 책을 읽기전 까지는, 우리 세대는 흔히 돈키호테를 한낱 허황된 꿈을 쫓는 몽상가로 알고 있었다.
미친듯이 풍차를 향해 달려들고, 기사도 정신에 홀려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웃어 넘겼던 적이 있다.
그러나 고명환 작가님의 《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를 읽으면서 돈키호테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돈키호테는 그 옛날 내가 알고있던 단순한 몽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끝없고 힘든 여정에 나선 용감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인생의 황혼기라 할 수 있는 90세에 가까운 나이에 말이다.
새해가 밝아오면서 72세가 된 난, 늘 마음 속으로는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고 있지만, 알게 모르게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노쇠 현상으로, 가끔 내 뜻과는 다르게 많이 움츠려든다.
하지만 고명환 작가님 덕분에, 이제는 조금 더 용기가 생기는 것같다.
90세에도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났는데, 이제 칠십대 초반에 들어선 내가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싸움은,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란다.
나이를 이유로 멈추지 말자!
세상이 뭐라고 하든, 나만의 길을 가자!
AI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라, 전적으로 의지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작가님은 강조하신다. AI는 AI대로 이용하고, 우리는 더욱 깊은 사유를 통해 인간이 나아갈 길을 스스로 개쳑해야 하는 것이란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확신을 스스로 가지라고 당부하신다.
AI는 AI대로 우리가 활용을 해야만 하는 도구다. 그러나 그 도구에 우리의 모든 판단과 선택을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감정이라든가, 직관, 윤리적 사고, 그리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 같다.
AI는 정답을 계산하지만, 우리는 질문을 던진다.
고명환 작가님께서 쉬지 않고 강조하시는 “늘 질문을 하라!”는 말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 이 책을 읽으면서 더 확실히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고명환 작가님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교통사고 후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마도 작가님은 요식업의 대표나 강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측은 하셨단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작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단다. 그것도 해외로 작품을 수출하는 그런 작가가 된다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에서 우사인 볼트를 이기고 금메달을 따는 것만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명환 작가님은 책을 읽기로 결정을 하는 순간, 바로 실행에 옮기신 것이다. 그러면 된 것이란다. 그때부터는 두려워하지 말고 바로 결정하고 바로 실행하면 되는 것이라는 작가님 말씀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결정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즐기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즐거워지며, 이 원리를 깨닫게 될 때 사람은 인생에서 무서운 게 없어진단다. 인생이 지루하지 않으며, 지루할 겨를이 없다는 작가님의 생각에 백 번, 아니 천 번 만 번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박수를 치고 싶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잘못된 선택일까 봐, 실패할까 봐, 혹은 아직은 익숙하지가 않아서라는 수많은 이유들을 갖다 댄다.
하지만 고명환 작가님의 철학은 명확하다. 무조건 결정하고 따라가보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것을 즐기는 과정은 생각보다 바쁘고 분주하다. 책 한 권을 읽기로 결정하면, 그 안에서 또 다른 배움과 질문들이 꼬리를 물며 새로운 길로 이끌어준다.
또 무언가를 배우기로 마음먹으면, 어느새 그것이 나의 하루를 꽉 채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인생이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이다.
깨달은 자는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동안 움직이지 않던 몸이
절로 움직여진다.
이것이 책의 힘이다.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인간은 나이 들수록 행복해야 한다고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글쓰기와 요리하기!
이 두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은퇴 후에도 얼마든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섬에 고립될지라도 얼마든지 제대로 요리해 먹으며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잘 먹고 건강하면 120세까지 글쓰기로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 두 가지를 하고 있으면서도 난, 아직도 글쓰기로 돈 벌 재주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쓰는 글은 그저 일기장에 머무르거나, 블로그에 책 리뷰를 하는 정도이다. 가끔은 주저리주저리 노인네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마음마저 생긴다. 꼭 돈을 벌지 않아도, 누군가 읽어주지 않아도, 그저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글이라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글쓰기는 결국 나와의 대화이며, 세상과의 작은 연결이 아닐까?
고명환 작가님의 말씀을 곱씹어 본다.
“글쓰기와 요리하기!
천만다행으로, 칠십 대가 되고 나서야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다.
요리는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글쓰기는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이 두 가지를 계속해서 붙들고 있다면, 언젠가는 나도 나만의 속도로 멋진 삶의 그림을 그릴 수 있진 않을까라는 기대 또한 살포시 해본다.
오늘도 업글할매는, 부엌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아일랜드 식탁에 놓여있는 아이패드로 짧은 글을 쓰며, 나 자신한테 속삭여본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
지금 이대로 충분히 멋진 삶을 살고 있어!
결심은 미래로 도망치는 것이란다. 내일부터 책을 읽겠다고 다짐하는 건 내일로 도망간 것이다. 그냥 지금 당장 읽기 시작하라고 작가님은 강조하고 또 강조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쓰겠다고 결심을 하면, 주문한 일기장이 도착할 때, 그때부터 일기를 쓰겠다고 한다. 이때도 역시 고명환 작가님은 일기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아무 종이나 꺼내서 일기를 쓰라고 하신다. 그리고 일기장이 도착하면 옮겨 적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지금은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룬다.
그러나 고명환 작가님은 이럴 때 우리한테 답을 주신다.
바빠서 책을 못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을 안 읽어서 바쁜 것이라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바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는 말씀에 아마도 선뜻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결심이 도망가기 전에 해야 하는 것이다.
“Just Do It!”
내일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좋은 시작의 순간인 것이다.
고명환 작가님은 하루도 책을 읽지 않은 날이 없었단다. 아무리 피곤하고, 심지어 술을 많이 마셨어도 무조건 책을 읽으셨단다.
어떤 날은 고단해서 술 한잔하고, 지친 몸을 침대에 내던질 때도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은 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작가님의 손에는 늘 책이 있었고, 작가님의 눈은 항상 활자를 따라간 것이다. 그것은 고명환 작가님의 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었고, 그리고 배움에 대한 끝없는 갈증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책이라는 것은, 작가님한테는 삶의 동반자였고, 스승이었으며. 친구였던 것 같다.
고명환 작가님한테는 아주 큰 꿈이 있는데, 바로 300억이 모이면 도서관을 지으실 예정이란다. 작가님이 꿈꾸시는 도서관은 기존의 도서관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모습이다.
이름도 이미 지어놓으셨다.
“엉망진창 도서관”
작가님이 말씀하시기를, 조용한 도서관은 이미 많단다. 그래서 고명환 작가님이 만들고 싶은 곳은, 왁자지껄한 도서관인 것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역세권이다.
“엉망진창 도서관”이라는 곳에서, 책을 읽고, 끊임없이 토론이 이어지며,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자유롭게 떠들며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가님의 꿈인 것이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가기도 전부터 엄숙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연상이 되는데, 고명환 작가님의 “엉망진창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막혀있던 숨통이 확 트이는 느낌이다.
“엉망진창 도서관”이 하루빨리 완성이 돼서, 나 역시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내 생전에 이런 희한한 도서관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
고명환 작가님한테 ‘고전’이란
얼마나 오래전에 쓰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신다.
바로 어저께 출간된 책이라 해도
내가 읽고 깨달음을 얻고
인생에 적용하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이라면
그것이 바로
작가님만의 ‘고전’이라는 말씀에
고전이라는 것이
너무 멀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