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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문해력! 우리는 제대로 읽고 있을까? 조 병용

업글할매의 책방 이야기

by 업글할매


난 책을 사면, 가장 먼저 표지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제목의 폰트, 배치된 이미지, 색감, 그리고 작은 문구들까지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살펴본다.


새로운 책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즐거움인 것이다.


표지는 단순한 겉모양이 아니라, 책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첫인상이다.


어떤 책은 표지만 봐도 궁금증이 생기고, 어떤 책은 표지가 주는 분위기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나는 늘 표지를 충분히 감상한 뒤에야 첫 장을 넘긴다.


《기울어진 문해력》의 책 표지를 보는 순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눈앞에 놓인 텍스트가 있는 대로 기울어져 보였다.


검은색 테두리가 한쪽으로 쏠려 있고, 마치 무언가가 비뚤어진 세상을 암시하는 듯한 디자인이다.


게다가 제목 또한 강렬하다.

《기울어진 문해력》


‘세상에, 문해력이 기울어질 수도 있나?’, 이런 궁금증을 안고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을 쓰신 조병영 교수는 리터러시(문해력) 연구 분야에서 권위자로 꼽힌다.


다양한 강연과 방송 출연을 통해 “문해력 해결사”로도 불리는 조병영 교수님께서 던지는 질문은 지극히 단순하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읽고 있는가?”


그런데, 여기서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아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빠르게 읽고,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맥락을 놓치고, 왜곡된 정보 속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교수님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기울어진 문해력”이라 정의하신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균형 잡힌 문해력을 가질 수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조병영 교수님께서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단은 무조건 책을 사라“는 말씀이 참 재미있다.


안 읽어도 좋으니. 먼저 책부터 사라고 하신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 책을 읽고 싶은 날이 온다는 말씀에, 웃음이 나면서도 왠지 가슴 한 쪽이 서늘해진다.


어느 인터뷰에서 조병영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유독 가슴에 남았다.


“지구가 허락한 유일한 과소비가 바로 책이다”


맞다. 책은 쌓아두어도, 넘쳐나도, 낭비가 아니다.


한때는 나도 자칭 ‘책 전도사’가 되고 싶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한테 꽤나 책 선전을 하고 다녔다.


밀리의 서재, 교보문고, yes24시 같은 곳에서 처음 한 달은 무료로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이런 시스템도 한번 이용해 보라고 제법 아는 척을 하고 다녔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무료인데도 읽지를 않는다.

일단 신청은 해놓고도, 책 한 권 읽는 것이 왜 그리도 힘든지, 그러다 무료 기간이 끝나면, 아예 그런 사이트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맣게 잊어버린다.


처음엔 안타까웠고, 나중엔 답답했다.

하지만 이제는 포기했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꼭 정치나 종교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라는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책을 읽어야 해.“ ”책 속에 모든 답이 있어.“

아무리 말해도, 결국은 사이만 어색해질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책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지구가 허락한 유일한 과소비가 바로 책이다”


우리는 모든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음식은 남기고, 옷은 쌓아두고, 물건은 금세 질려 버린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엔 기꺼이 지갑을 열면서, 유독 책 앞에서는 머뭇거린다.


한 끼 값도 되지 않는 책 한 권이 아깝다며, 지식을 얻을 기회를 스스로 닫아버리는 사람들, 그 현실이 가슴 시리도록 안타깝다.


교수님 말씀처럼, 일단 무조건 책을 사자!

까짓것, 과소비 한 번 해보자!



목차
1부: 새롭게 읽을 수 있을까
2부: 어떻게 읽어야 할까
3부: 진정한 문해력
4부: 잘 읽으면 행복해질까


문해력/ genspark에서 만든 이미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문해력 수준은 31개 참여국 중에서 22위란다.


OECD 평균 점수는 260점인데, 우리는 그 조차도 넘지 못한 249점이었다.

게다가 한국 성인의 약 30% 가 최저 수준의 문해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한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대한 문자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칭송받고, 한글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글을 쓰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문해력은 22위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현실인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문해력 저하가 국가 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그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와도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이제서야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대한민국처럼 교육열이 높은 나라가 또 있을까?

오죽하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한국 엄마들의 교육 열정을 본받으라고 했을까?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국민이 이러한 엄마들 극성으로 고등교육을 받았고, 지식수준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이토록 떨어지는 걸까?


아마도, 우리나라는 생각하는 공부가 아닌, 외우는 공부를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문해력은 단순히 읽기 능력이 아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의 생각을 읽고, 나만의 의견을 만들어 가는 힘이다.


그 힘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 “배운 국민”이 아니라, 그저 “글자를 아는 국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문해력 이라는 것은 것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란다.


원래 문해력 뜻은 “literacy”에서 온 말로, ”읽기+쓰기“를 합친 합성어라고 교수님은 설명해 주신다.


이미 오래전부터 문해력에 대한 심각한 상황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라고 했더니, 무슨 사과를 그리 심심하게 하느냐는 댓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혼숙을 금합니다.“라는 문구에 왜 혼자 자는 것을 막느냐는 항의 전화도 온단다.


게다가 “대관절”이라는 것을 크기가 큰 관절이라고 알고 있고, “개편하다”는 매우 편하다는 뜻으로 이해를 하고 있단다.


하기사 요즘 이 “개”가 들어간 신조어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웃어넘길 일인지 살짝 걱정이 된다.


작가님 말씀에 의하면, 사람들의 문해력이 떨어졌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무너지거나 삶이 부서지는 것은 아니란다.


하지만, 우리의 문해력이 나약해지고 기울어지면, 우리가 세상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일도 허술하게 기울어진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을 한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힘, 그 힘이 사라질 때,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삐딱하게, 그리고 왜곡된 시선으로 마냥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기울어지지 말자!

똑바로 서자!


가짜 뉴스 genspark에서 만든 이미지

뉴미디어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왜 가짜 뉴스에 속을 까란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우리의 “기울어짐”을 더 심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쪽으로 쏠린 정보만 반복해서 보다 보면,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힘이 사라지게 된다고 《기울어진 문해력》의 조병영 교수님은 강조하신다.


결국,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는 대신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이 더 쉬워진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정치, 종교 이야기는 웬만하면 꺼내지도 말라고 한다.

괜히 잘못 말했다가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진짜 문해력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 같다.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힘, 가짜 뉴스를 걸러내는 능력, 이 모든 것이 결국 문해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울어진 문해력》 이 책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읽는 인간의 정체성 / 기울어진 문해력

읽는 인간의 정체성 5가지!에 대한 작가님 설명이 참 재미있다.


첫째, “텍스트 해독자”다.


우리가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그게 언어이든, 시각 언어든, 영상 언어든, 그래프 등, 일단 거기에 있는 그 언어들을 잘 알아야 한단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를 풀어내는 사람을 “텍스트 해독자”라고 한다.


두 번째, “텍스트 참여자”라는 말은, 텍스트를 통해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그냥 앉아서 눈으로만 대충 보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이게 무슨 말이지 ~~, 어떤 의미지~~, 나한테 어떤 가치가 있지~~”, 이런 것들을 아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해보려고 생각하는 사람을 “텍스트 행동자”라고 하는 것이다.


세 번째, “텍스트 사용자”라는 것은, 텍스트를 삶에 이용하는 사람을 말한단다. 많은 경우에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어떤 실용적 가치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알고 읽을 때, 그때 비로소 글이 굉장히 가깝게 들어오는 것이다.


네 번째는 “텍스트 비평가“다.


요즘에는 너무 거짓이 많단다.

허위 정보도 많고, 편향된 내용도 많은 것이다.


그래서 글을 읽거나, 영상을 볼 때 그것이 얼마나 믿을 만한가, 얼마나 타당한가, 과연 합리적인가, 이런 것들을 질문해 볼 수 있는 그런 비평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교수님은 힘을 주어 말씀하신다.


다섯 번째는 “텍스트 행동가”이다.


단지 정보를 읽고, 그것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배운 뭔가를 가지고 실제 삶에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텍스트 행동가”라고 말한단다.


즉, 텍스트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대목인 것 같다.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 것이다.


기나인/기못인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재미있는 말이 등장을 한다.


기나인 ( 기계보다 나은 인간 )이 될 것인가?

아니면 기못인 ( 기계보다 못한 인간 )이 될 것인가?


문제는, “기나인”이든, “기못인”이든지간에, 이게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똑똑한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세상에 살고 있다.


AI 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챗봇은 논리적으로 말하고, 번역기는 웬만한 문장을 아주 자연스럽게 변환해 낸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기계보다 나은 문해력을 갖추고 있는지, 아니면 기계보다 더 깊이 사고하고,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감을 못 잡겠다.


“기나인”이 될 것인가, “기못인”이 될 것인가,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인가 보다.


문해력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꼭 텍스트만 기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요즘은 모든 것이 기울어진 것 같다.


마음도 살짝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고, 정서도 흔들리고, 생각도 자꾸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이다.


왜 자꾸만 기울까 고민하던 것을, 조병영 교수님께서 간단하게 해법을 제시하신다.


역시나, “무조건 책을 읽으라”는 것인데, 그 이유가 참 흥미롭다.


첫째, 책은 길다.

요즘처럼 짧고 자극적인 정보에 익숙해진 시대에는, 긴 글을 끝까지 읽는 것 자체가 인내심 테스트다.


하지만 이 과정을 견뎌내면서 우리는 집중력을 기르고, 깊이 생각하는 힘을 키우데 되는 것이다.


둘째, 책을 읽으면 생각이 활성화된다.

그저 눈으로 활자를 쫓는 게 아니라, 문장을 곱씹고, 맥락을 이해하고, 나만의 생각을 더해가는 과정이 된다.


이게 바로 문해력을 키우는 최고의 훈련이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리고 희소식 한 가지는, 문해력은 유전이 아니란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읽고, 쓰느냐에 달라진다는 말씀에 괜히 없던 용기도 다시 생긴다.


만약 “기울어짐”이 유전이었다면, 이건 거의 심각한 병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누구나 노력하면 바꿀 수 있는 문제다.


그러니, 세상이 기울어졌다고 조상님 탓할 게 아니라, 당장이라도 책을 읽으면서 나부터 중심을 잡아야겠다.



이 책을 덮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단순히 문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이런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지침서일 것 같다.


빠른 정보 소비에 익숙해진 사람

타인의 말이나 글을 자주 오해하는 사람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사람


단순한 독서법이 아니라, 삶을 읽는 방식 자체를 바꿔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문해력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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