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디지털표류기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디지털 포메이션”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죽기 살기로 따라가느라 진땀을 흘렸었다.
아이패드 붙잡고 새로운 기능 배우느라고 머리를 싸매고, 스마트폰 앱 하나 설치하는데도 하루가 걸리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젠 “AI 트랜스 포메이션”이란다.
“AI 트랜스 포메이션”이란, 쉽게 말해서 기업이나 조직이 인공지능 (AI)을 활용해서 일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
힘든 의사결정이나, 까다로운 고객 서비스 등을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바꿔주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예전엔 사람이 일일이 하던 것을, 이제는 AI가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객 상담을 챗봇이 대신하고, 상품 추천도 AI가 고객 취향에 맞게 해주고, 공장 운영도 AI가 데이터를 분석해서 더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AI 기술을 회사 전체에 적용해서 더 빠르고 똑똑하게 움직이도록 바꾸는 걸 “AI 트랜스 포메이션”이라고 한단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디지털 포메이션“이 ”디지털 기술 도입“이라면, “AI 트랜스 포메이션”은 그걸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서 ”AI 중심으로 혁신“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난,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난 기업도 아니고, 조직도 아닌 일개 개인인데, 굳이 이런 어려운 것을 알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할매도 알면 도움이 되는 것이 많단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은 기업이든, 학교든, 가정이든 할 거 없이 AI가 점점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가까이에 온 것을 미처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AI로 매일같이 건강 관리 앱도 쓰고 있고, 운동 기록도 하고, 혈압도 체크해 주고, 쓰잘데없이 많은 사진도 알아서 정리를 해준다.
게다가 운동 루틴이나 식단 관리까지도 AI가 도와준다.
번역이나 영상 편집도 이미 AI 가 도와주는 시대인 것이다.
이러니, 개인이든 누구든, AI랑 잘 지내는 사람이 앞으로 더 똑똑하고 편하게 살수 있다는 얘기에 그저 고개만 끄떡인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매일 새로운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우리 집 양반 말대로, 이 나이에 굳이 그런 어려운 걸 왜 배우려고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런 것 몰라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친구 만나서 밥 먹고 수다 떠는데도 전혀 문제가 안되고, 텃밭 가꾸는 데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살다 보면, 일일이 젊은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것조차도 민폐 끼치는 것 같고, 나 스스로 너무도 초라하고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배우려고 노력을 한다.
누구에게도 피해 안 주고, 내 손으로 내 일을 하나씩 해내는 그 맛, 그것이 나한텐 큰 자존감을 안겨다 준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씩 배우고, 또 잊어버리면 다시 익히고,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디지털 포메이션“을 선언하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 이제는 어디 가서 키오스크 앞에 서 있어도 전혀 어리버리하지 않는다.
워낙 외식을 안 하는 남편 덕에, 처음 키오스크를 만났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메뉴 찾느라 손이 덜덜 떨리고, 뒤에서 한숨 쉬는 소리 들릴까 봐 마음이 조급했는데, 지금은 주문할 때 메뉴 찾느라 당황하지도 않고, 음식 고르고 결제까지 그야말로 “척척”이다.
흰머리의 할매가, 애플 워치를 차고, 아이폰까지 들고, 이렇게 키오스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보고는, 뒤에 줄 서있던 젊은이들이 살짝 놀라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이럴 때 느끼는 쾌감이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
사실 예전엔 늘 가방끈이 짧은 게 한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가 제주도 우리 집에 놀러 오기로 했는데 큰일 났다면서 연락이 왔다.
아들 며느리가 여행을 간 바람에 제주도행 티켓을 끊을 수가 없단다.
걱정 말라고 해놓고, 내가 제주도에서 아예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결제까지 해서 카톡으로 보내줬다.
이것 갖고 공항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일류 대학을 나온 친구의 말이 참 재미있다.
“어쩜, 넌 이런 것도 할 줄 아냐? ”
내가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리인 “나”와 공주마마 “친구”의 차이 나는 삶이 아니다.
이제는 노인 대열에 들어서더라도,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비상 상황이 벌어졌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유난히 학력을 따지는 대한민국에 돌아와서 처음에는 고졸이라는 것이, 사람을 속상하게 만든 적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에서 완전 벗어났다.
학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꾸준히 노력하는 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새로운 걸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나.
하루하루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참 좋다.
이 나이에도 이럴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제 조금 익숙해질만 한데, 이제는 “AI 트랜스 포메이션”이라는 새로운 단어 등장에 어질어질하다.
디지털이라는 말도 겨우 이해했는데, 이제는 모든 것 앞에 “AI”가 붙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의사도 인공 지능이 대신하고, 판사도 AI가 옆에서 도와주고, 그림도 그리고, 심지어 글까지 쓴다.
나는 “디지로그”라는 말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님을 워낙 존경하고 사랑하다 보니, 그분이 만드신 ”디지로그“라는 단어도 덩달아 아끼게 되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아우러진, 그런 따뜻한 기술이 너무 좋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걸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싶은 마음은 아직 없다.
사람 손길이 닿은 이야기, 사람 마음이 담긴 그림, 사람의 감정이 배어 있는 글, 그런 것들이 여전히 더 정겹고, 더 믿음직스럽다.
그래도 의사는 AI 의사였으면 하는 기대도 살짝 있다.
왜냐하면, 정말 환자 입장에서 병원 가기가 싫을 정도로 서운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진료실에 들어서면 인사는커녕 눈도 안 마주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고, 잘못한 것도 없는 나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내게 된다.
괜히 오래 앉아 있으면 간호사 눈치 보이고, 다음 환자 기다리는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너무도 불친절한 현실, 패스트푸드처럼 3분 안에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진료, 환자의 얼굴은 안 보고 모니터만 보는 의사….
이런 것들이 너무 싫어서 병원 가기가 싫은 나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의사라면, 오히려 눈치 안 보고 마음 놓고 속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AI 의사는 아마도 시간 재촉을 안 할 것 같은 희망도 품어보는 것이다.
대한민국 병원에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제일 중요한 “문진“이라는 것을, 인공지능 의사는 제대로 해 줄 것 같다.
”어제 잠은 잘 주무셨어요?
“요새 기분은 어떠세요? ”
“많이 힘드시지요?
이런 질문을 꼼꼼히 해주는 AI 의사.
환자의 말도 성의 있게 듣고,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곤조곤하게 설명해 주는 AI라면, 오히려 그 편이 더 마음이 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감정이 없는 기계니까, 내가 좀 어리버리하게 말해도 눈 흘길 일도 없고, 속에 담긴 이야기를 실컷 해도, “다음 환자~~”안 부를 것 같다.
이런 AI 의사라면, 난 진심으로 반가울 것 같다.
물론 진짜 사람 의사가 환자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그런 따뜻하고 친절한 의사가 있다면 최고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이런 상상이라도 해본다.
요즘은 그림도 AI가 대신 그려주는 세상이다.
덕분에 나처럼 붓 한번 제대로 못 쥐어본 사람도 멋진 일러스트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그저 고맙고 신기할 뿐이다.
그런데, 글쓰기는 좀 다르더라.
나 역시 chatgpt를 쓰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의존하진 않는다.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기도 하고, 머릿속에서 맴도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할 때, 혹은 어떤 사건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을 때, 그럴 때 가끔 도움을 받는다.
그것도 chatgpt한테만 물어보면 가끔 엉뚱한 답변도 나온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난 늘 네이버에서 다시 한번 확인을 한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은, 참 많은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나도 호기심에 “글도 써준다니까 한번 맡겨볼까?”라는 생각에 시켜봤다.
어쩜 그리도 글을 잘 쓰는지, 할 말을 잃게 했다.
문장도 매끄럽고, 표현도 근사하고, 마치 칼럼니스트처럼 멋지게 써서 내놓더라.
근데 이상한 것은,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를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그 글엔 “내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겉보기엔 내가 쓴 글보다 멋있고, 더 유식하고, 더 멋진 글이었지만, 그건 결국 내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잘 만든 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 이상의 욕심을 안 부리고 그냥 나답게 내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긴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내 글을 보고, chatgpt도 한 말하더라.
“인기 글처럼 줄여드릴까요?”
“ No, thank you!”가 내 답이다.
나는 내 길을 갈 것이다.
비록 남보다 시간은 두 배 세배가 더 걸리더라도, 내 이야기가 담긴 글을 쓰고 싶다.
AI가 너무 잘 써준 글에 의존하다 보면, 그 편안함에 젖어들어, 언젠가는 아예 나의 글을 못 쓸 것 같다는 두려움이 찾아와준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어딘가 매끄럽지 못하고, 촌스럽더라도 나만의 글을 써 내려가자.
그렇다고 AI라는 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레 겁먹고 두려워할 대상도 아니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내가 친구 하자고 손을 내밀었을 때는, 왜 그리도 내 말을 못 알아듣고, 괜히 버벅거리면서 사람 속도 꽤나 뒤집어놓고 하더니, 인내심을 갖고 자꾸 쓰다 보니까, 이제는 이 친구도 마음을 열었는지, 말도 잘 통하고, 뭐든 도와주려고 해서 점점 더 정이 간다.
이렇게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참 좋다.
우리 세대처럼 세상 변화를 실감하며 살아온 사람이 또 있을까?
흑백 TV에서 칼라 TV로, 공중전화에서 휴대폰으로,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처음 이런 변화가 올 때마다 못 따라갈 것 같았는데, 결국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게 또 일상이 되고, 어느새 적응이 되더라.
결국 “AI 트랜스 포메이션”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나이 들었다고 새로운 걸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젊었을 때보다 모든 것이 다 느려졌다.
하루 죽어라고 배운 거, 다음날이면 영락없이 까먹고, 또다시 보고, 또 까먹고…
속상해하면서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익숙해지더라.
AI도 마찬가지겠지….
하루에 하나씩만 알아가도 그게 나중엔 반드시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디지털 포메이션에서 AI 트랜스 포메이션으로 업그레이드하느라고, 여전히 가끔 헷갈리고, 머리 복잡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칠십 대라는 나이에, 이 흐름을 타고 있는 내가 참 기특하다고 느껴진다.
변화는 늘 두렵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는 어떤 나이에도 꼭 필요한 것 같다.
“지금이 딱 시작하기 좋은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