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노후
마당 곳곳에 피어난 꽃들과 푸르게 돋아나는 잔디를 바라보며, 나는 매일같이 봄을 만난다.
햇살 한 줄기에도 생명이 숨 쉬고, 바람 한 자락에도 기쁨이 실려오는 이 봄의 계절은, 그 어떤 화려한 그림보다도 따뜻하고, 어떤 값비싼 장식보다도 아름답다.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긴 지도 벌써 이 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세찬 비바람이 낯설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느새 몸에 익어, 새소리에 눈을 뜨고, 잔잔한 햇살을 따라 마당을 천천히 둘러보는 하루가 내 일상이 되었다.
그 길목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난 것을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어머, 벌써 꽃이 피었네?” 하고 절로 감탄이 흘러나온다.
그 순간, 내 마음에도 조용히 봄이 스며든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전원주택에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층간 소음에 있는 대로 예민해지고, 이웃의 발소리 하나에도 숨죽여야 하는 그런 아파트 생활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자유와 평온이 이곳에는 있다.
그리고 자연이 주는 작고 소박한 행복이 가득 넘쳐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마당을 가득 메운 분홍빛 꽃잔디는, 우리 집 양반이 손수 하나하나 정성 들여 심은 것이다.
팔십 대 노인네가 허리 굽혀 흙을 다듬고, 뿌리 하나하나, 자리에 잘 자리 잡도록 심을 때마다 마치 자식을 돌보는 듯한 사랑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물을 주고, 말없이 돌보며 보낸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 우리 마당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부시게 피어났다.
여기서 함께 잘 살아보자는 우리의 바람을 들었는지,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해마다 꽃들은 더 풍성하게, 더 화사하게 피어난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은 또 얼마나 찬란한지…
이래서 우리 노부부는, 꽃망울이 터지기도 전부터 아침마다 마당을 돌며 “언제쯤 피려나” 하고 속삭이듯 묻는다.
그런 기다림이 설렘을 주면서, 하루를 더 따뜻하게 밝혀준다.
마당 한쪽, 수도 옆에 조심스레 심었던 작은 해당화 한 그루가 어느새 화려한 자태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소박하게 시작된 한 그루가, 지금은 마치 오래 이곳에 뿌리내린 듯 당당하게 봄을 수놓고 있다.
‘해당화’라는 이름 자체가 참 곱다.
예부터 문인들이 이 꽃을 사랑해서, 시와 노래에 자주 등장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존재다.
트로트를 사랑하는 우리 집 양반은, 이미자 선생님이 부르신 ‘섬 마을 선생님’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해당화를 듣고 더 좋아졌다고 한다.
“해~당화 피고 지는 ~~ 섬~마을에 …”
노래도 좋고, 꽃도 예쁘고…
옅은 분홍빛에서 붉은빛까지 오묘한 색감을 지닌 해당화는, 은은한 향기까지 머금어 바람에 실려올 때마다 마음까지 환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 옆에 나란히 있는 철쭉도 질세라 살랑살랑 꽃망울을 흔들며 자태를 드러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꽃이 피어나기까지의 기다림, 그리고 마침내 꽃이 되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찰나의 찬란함, 이 모든 것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는 기쁨이란, 그야말로 전원생활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우리 집 안팎만 챙기기에도 바쁜 세상인데, 우리 집 양반은 동네 입구부터 이웃집 담벼락까지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풀을 뽑고, 나무를 다듬고,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 잎들을 치우면서 조용히 자기 일처럼 움직인다.
그 덕분에, 우리 동네는 입구부터 환하다.
누가 와도, 참 깨끗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자기 집만 신경 쓰고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서, 이렇게 내 집 아닌 동네 전체를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었나를 새삼 느낀다.
뒷마당 너머에 있는 작은 야산에 심은 개나리가, 이 봄 들어 이렇게나 화사하게 피어났다.
그 노란 물결을 볼 때마다, 작년 이맘때 다녀간 큰딸과 남편이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땅을 고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알래스카에 살고 있던 큰딸이 잠시 제주에 내려왔다가, 아빠와 둘이서 죽기 살기로 삽을 들고 나선 것이다.
제주도는 워낙 돌이 많은 땅이라, 꽃 한 송이 심는 것도 여간한 고생이 아니다.
자기 아빠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큰 딸은 자연을 사랑하고, 땅을 가꾸는 일에 진심이다.
둘이 함께 땀 흘려 일군 그 자리에, 이제는 개나리가 봄마다 황금빛 웃음을 자아낸다.
예전엔 잡초만 무성했던 썰렁한 자락이었는데, 사람의 손길이 닿으니 이렇게나 근사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깨닫는다.
비어있던 땅이 사람의 사랑과 정성으로 채워지듯, 마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누군가가 따뜻한 손길을 내밀면, 아무리 황량한 곳도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난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 집 마당에는 구석구석, 어느 한 곳도 우리 집 양반의 손이 닿지 않은 자리가 없다.
돌 틈 하나, 나무 그늘 하나까지 남편의 정성이 스며있다.
공간을 어떻게 채우고 어떻게 비워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손재주 하나는 타고난 것 같다.
특히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송이 화산석, 그 붉고 독특한 돌들은 남편의 손길을 만나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빨간 돌과 초록 잎이 어우러진 그 풍경은 마치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그런 돌들 사이로 봄이 되자 파릇파릇한 새순들이 고개를 내민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겨낸 작은 생명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저 식물이 아니라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뼘의 땅이 이토록 아름답게 피어나기까지, 그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집 양반의 손길과 정성이 녹아있다.
생명의 신비는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우리 집 작은 마당, 그리고 그 마당을 사랑하는 남편의 정성 속에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것이다.
잔디밭도 어느새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다음 달쯤이면 어김없이 잡초 하나 없는, 푹신푹신한 자연 카펫이 완성될 것이다.
마치 호텔 정원처럼 가지런하고 단정한 잔디밭이 집 앞을 반짝이게 할 것이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마다 마당의 잔디를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잔디밭이 있냐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심지어 미국에서 살 때도, 그 까다로운 미국 사람들조차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을 한 실력이다.
남편의 손이 닿은 곳은 단순한 마당이 아니라, 자연과 마음이 함께 자라는 작품이다.
가끔 너무 집에만 있으면서 일만 한다고 구박도 하지만, 막상 마당을 둘러보면 그런 말이 쑥 들어간다.
남편의 손길이 닿은 잔디며 나무며 돌담까지, 어느 것 하나 감탄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다.
감탄과 동시에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남편의 이런 노고가 없었더라면, 우리 노부부,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아갈 수가 있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보답이라곤 하루 세 끼, 정성 가득한 밥을 해주는 일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 집 양반이 먹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
전원생활의 기쁨이라는 것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뉴스보다 먼저 마당이 알려준다.
꽃이 피고, 풀잎이 자라고, 나무가 흔들리는 풍경 하나하나가 우리에게는 고요한 기쁨이자 감사의 순간이 된다.
도시에서는 결코 만끽할 수 없는 삶의 리듬,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이 하루하루는, 늦은 인생에 찾아온 뜻밖의 선물 같다.
마당을 둘러보며 다시금 느낀다.
내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남편이 얼마나 고생했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