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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사람 닮은 로봇! 김상균

업글할매 책방 이야기

by 업글할매

《 휴머노이드 》 이 책은,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전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탐구한 책이다.


김상균 작가님은 인간과 닮은 로봇인 휴머노이드가, 우리의 일상, 감정, 그리고 사회 구조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를, 이 책을 통해서 다각도로 조명해주신다.


늘 책을 사면 제일 먼저 하는 일, 오늘도 역시 책 표지를 꼼꼼히 들여다 봤다.


중앙에 있는 로봇이 팔다리, 관절, 그리고 전체적인 몸의 비율이, 거의 인간과 흡사하다는 것에 우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래서 ‘휴머노이드’라는 말이 생긴 것 같다.


이 모습은 단순히 외형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 로봇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심지어는 감정까지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휴머노이드 뒤에 잔잔히 펴져있는 지문은, ‘개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또한 해본다.


세상에 똑 같은 지문은 단 하나도 없다.

즉, 나만의 고유한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로봇은 인간의 지문대신, 알고리즘과 데이터라는 무시무시한 것들을 갖고 있어서, 사람처럼 생각하고, 기억하고, 그러면서 결정까지 하게 된단다.


그야말로 ‘휴머노이드’의 세상이 온 것 같다.




《 휴머노이드 》의 저자이신 김상균 교수님은, 경희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인지과학을 연구하며, 인공지능, 메타버스등 미래 교욱 분야에서 선구자로 활동하고 계신다.


작가님은 다양한 기업과 교육 기관에서 강연을 진행하며,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는 국내 최고 AI 전문가이자 인지과학자이시다.


요즘에는 지드레곤이랑 뭔가를 하시면서 월드스타로도 활약하신다는 소리를 어느 인터뷰에서 들었다.


다방면으로 바쁘신 분이다.


하루하루 새로운 것 발견하고 시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더 건강을 챙겨야 할 것 같다는 교수님 말씀에 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주요 저서로는, 《 메티버스 》, 《 AI 인간지능의 시대 》 등이 있다.




내가 김상균 교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메타버스”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처음 메타버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타고 다니는 버스 종류인가 했었다.

그때는 그만큼 무지했던 것이다.


그래도 2020년에 그 어려운 메타버스라는 책을, 나오자마자 읽을 정도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나만의 아바타를 만들어서 메타버스 세상에서 놀아야 한다는데, 아바타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만 기권을 하고 말았다.


그때도 거의 칠십이 다 돼가던 때였는데, 아무래도 이 ‘아바타’라는 존재는, 나한테는 너무도 낯설고 어려웠던 존재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디지털포메이션’을 외치면서 덤벼들었던 그 과감한 용기에 금이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도 난 이 ‘아바타’가 밉다.


새로 출간하신 《 휴머노이드 》라는 책은, 왠지 제목부터가 끌렸다.


요즘 한창 AI 공부에 심취해있던 때라서 그런지, 더 관심이 간 것이다.


‘휴머노이드’는 Human (인간) + oid~ (~와 비슷한) 이라는 두 단어가 결합된 말로, ‘인간을 닮은 존재’를 뜻한다.


겉모습이 사람처럼 생겼거나, 말하고 걷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간과 비슷한 로봇이 바로 ‘휴머노이드’이다.


요즘은 AI 스피커도 말을 잘 알아듣고, 로봇 청소기도 혼자 알아서 집 안을 돌고 다니는 세상이다.


그런데 어느 날, 키도 크고 말도 잘하고, 눈까지 깜빡이는 로봇이 집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난 아직은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밥도 차려주고, 나 대신 우리 집 양반 데리고 병원도 같이 가주고, 심지어는 감정 상담도 해준다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미래에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로봇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


말도 예쁘게 하고, 나랑 취향도 잘 맞고, 뭐든 척척 알아서 해주는 친구가 생긴다면, 늘 고약떠는 우리 집 양반은 어찌 되려나…




목차
Chapter 1
인류가 창조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다

Chapter 2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60조 달러 휴머노이드 시장이 펼펴진다

Chapter 3
인류보다 더 신속/정교하고 쉼 없이 일하는 존재가 온다

Chapter 4
인류의 경쟁자/동반자/노예/지배자 그리고 대체자가 된다

Chapter 5
인류의 진로/사랑 그리고 죽음까지 바뀐다

Chapter 6
인류는 휴머노이드로 꿈을 꾼다



인류가 창조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다


사람의 생김새를 닮은 것, 그게 휴머노이드의 핵심이라고 김상균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철저히 인간 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사람처럼 문고리를 잡아 문을 열고, 사람의 키에 맞는 크기의 의자에 앉을 수 있으며, 사람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설계된 도구와 기계를 그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 로봇은 별도의 개조나 특수한 부품 없이도 우리 생활공간 곳곳을 누빌 수가 있게 된단다.


외형만 닮은 것이 아니라, 세세한 움직임까지 인간을 닮은 로봇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겉과 안이 인간과 닮아야, 인간 세상에서 함께 지내는데 별 탈이 없다는 뜻이다.


‘언캐니 밸리 (Uncanny Valley)’ 라는 개념이 있단다.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인형들이 인간과 너무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모습을 보일 때, 인간이 느끼는 불쾌감이나 섬뜩함을 말한다.


아~~, ’언캐니 밸리‘였구나…


휴머노이드를 TV에서 본 순간, 이상하게 무섭고 두렵고 불쾌했었다.


이것이 바로 ‘언케니 밸리’였던 것이다.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이 언캐니 밸리를 잘 극복할 수만 있다면, 인간과 흡사한 외형은 오히려 정서적 안정감과 친밀감을 가져올 수 있다고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익숙한 신체 비율, 자연스러운 표정을 갖춘 휴머노이드는 마치 ‘또 다른 인간’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특히 노인 돌봄이나 간병, 교육, 상담등 인간적인 접촉이나 정서적 교감과 이해가 요구되는 분야에서 상당한 강점이 된다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른 건 몰라도, 노인 간병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 까 싶다.

특히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노인 환자의 경우, 그 누구도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을 것이다.


이럴 때, 사람대신 휴머노이드가 대신해준다면, 훨씬 마음이 가벼울 것 같기도 하다.


사람한테 털어놓기 힘든 고충같은 것도, 이러한 휴머노이드라면 얼마든지 이야기 할 것 같다.


최소한 간병인의 눈치는 안 봐도 되지 않겠는가..


다행히 앞으로 5년안에 ‘간병 휴머노이드’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있다니까,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프지 않도록 건강을 지켜야겠다.


“절대로 남한테 민폐끼치지 말자”라는 나의 바람대로, 행여 드러누울 일이 생기면, 그때는 ‘간병 휴머노이드’가 나를 봐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자.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60조달러 휴머노이드 시장이 온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60조 달러 시장이 열린단다.


바로 로봇이 우리를 대신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세상이 진짜 이렇게까지 바뀌는구나…”


청소기를 스스로 돌리는 로봇을 넘어서, 이제는 사람처럼 생기고, 말하고, 눈을 깜빡이는 로봇이 진짜로 등장한 것이다.


그 이름도 거창한 ‘휴머노이드’.


더 놀라운 건, 이 로봇이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60조 달러 규모의 거대한 시장이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 실리콘밸리와 중국, 그리고 빅테크들은, 로봇을 두고 조용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테슬라, 애플, 구글, 그리고 중국의 샤오미, 화웨이까지…


모두가 “사람을 닮은 로봇”을 선점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는 이미 인간처럼 움직이고 일할 수 있는 로봇 옵티머스를 공개했고, 중국은 전국 학교와 병원에 휴머노이드를 도입하는 실험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경쟁은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다.


국가의 산업 구조와 일자리, 교육, 의료, 군사까지 바꿔버릴 판이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60조 달러, 이 숫자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다.


자동차 산업, 스마트폰 산업보다 더 큰 규모의 시장이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로봇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그 로봇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광고를 하고, 교육을 시키고, 감정을 분석하고, 소비를 이끄는 것이다.


즉, 휴머노이드는 모든 산업의 관문이자, 중심이 될 수 있다고 김상균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인류보다 더 신속/정교하고
쉼없이 일하는 존재가 온다


“로봇이 일하고, 사람은 쉰다”라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는 사람이 일 안 해도 되는 시대가 온다”는 말이 더는 꿈같은 일이 아닌 것이다.


휴머노이드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대도 끄떡도 안한단다.


그저 지시하기만 하면 말없이 실행하고, 고장 나기 전까지는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것이다.


게다가 한 번 학습한 건 잊어버리는 법도 없다.


사람은 일을 하다가도 두세 시간에 한 번은 쉬어야 하지만, 로봇은 24시간 내내 박스를 옮기고, 분류하고, 포장까지 한다.


툭하면 그만두고 떠나는 알바생 구인 광고를 붙일 시간에, 로봇은 이미 두 배의 일을 끝내버린다.


이제는 무서워서 감히 불만이나 불평같은 것은 꺼내지도 못할 것 같다.


이미 패스트푸드점에는 햄버거 굽는 로봇이 있고, 호텔 로비에는 방까지 짐을 옮겨주는 로봇도 등장했다.


병원에서는 약을 조제하고 환자에게 배달하는 로봇이 활약중이고, 학교에서는 인공지능 교사가 등장해 학생들의 이해도를 분석해서 맞춤형 질문을 던진단다.


그리고 놀라운 건 법원이다.


가장 대체하고 싶은 직업 1위가 ‘판사’라는 조사 결과엔, 놀랍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씁쓸함도 느껴진다.


공정성마저 로봇에게 기대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과연 믿어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일까?




이 모든 변화들 속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역시 ”AI 예수님“이다.


최근 스위스의 한 교회에서 AI 예수님을 고해소 한쪽에 설치하고, 신자와 대화하게 하는 도발적 실험을 진행했다.


이 AI 예수님은 100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했고, 2개월간 무려 1천명 이상의 신도와 대화를 나누었단다.


대화를 나눈 사람들 중의 약 3분의 2가 영적 체험을 했다고 응답을 한 것이다.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진짜 신부님한테 내 죄를 일일이 고백한다는 것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인데, 인간이 아닌 AI 랑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보니, 이런 면에서 상당히 부담이 덜 갈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루라도 빨리 AI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의 잘못한 점 모든 것들을 일일이 다 고백하고나면, 너무도 속이 후련할 것 같다.


AI 예수님은 단순히 설교하는 기계가 아니라, 위로하고, 함께 울어주고, 죄를 용서하는 존재처럼 다가온 것이다.



인류의 경쟁자/동반자/노예/지배자
그리고 대체자가 된다


한때 우리는 로봇을 도구로만 생각했다.


단순 반복 작업을 대신해주는, 말 잘 듣는 조수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조수’가 우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쉬지도 않고 일하며, 심지어 감정까지 흉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이 존재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경쟁자, 동반자, 노예, 지배자, 그리고… 대체자?


휴머노이드는 이제 단순한 보조자 그 이상이다.


회사에서는 인간보다 더 정확하게 보고서를 쓰고, 공장에서는 실수 없이 하루 24시간을 일한다.


병원에서는 의료진보다 빠르게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노예’였던 로봇은, 어느새 우리의 ‘경쟁자’가 되었고, 더 나아가 ‘지배자’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휴머노이드씨, 세금 내세요!“


책에서는 흥미로운 예측이 등장한다.

휴머노이드도 결국 인간처럼 세금을 내게 될 것이란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사회 시스템에 기여하는 존재라면, 그 역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언뜻 농담처럼 들릴지 몰라도, 실제로 이미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로봇세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 중이다.


그러나 로봇세에 대한 반대도 만만치 않다.


로봇, 휴머노이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세금을 내는 주체,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세금 문제는 참 골치 아프다.




“챗GPT 모멘트”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AI 반도체의 황제,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말한다.


“로봇도 언젠가, 챗GPT처럼 단 한 번의 진화로 세상을 뒤집을 것이다.”


지금은 걷고 말하고 물건을 드는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사람처럼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감정까지 조절하는 로봇이 탄생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질 것이라는데, 난 이미 챗지피티의 등장만으로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


컴맹 세대부터 시작해서 디지털포메이션을 외치고, 이제는 감히 챗지피티까지 도전을 하고 있는데, 익숙해지기도 전에 휴머노이드라는 딴 세상이 오고 있다.


칠십 대인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지켜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그 옛날 삐삐도 어려워서 제대로 못했었는데…


어쨌거나 오래 살아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세상이 바뀌어 가나 궁금해서 지켜보고 싶다.




이 책에서, 아주 민감한 이야기 하나를 꺼낸다.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출생률마저 변화시킬 수 있다“라고…


혼자 사는 사람도 외롭지 않게 해주는 로봇,

가사와 육아를 대신하는 로봇,

감정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로봇.


그 존재가 연인과 가족의 의미를 바꾸고, 결혼이나 출산의 이유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영화 “HER”가 생각이 난다.


2013년에 개봉된 영화 ”her’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울림을 동시에 안겨줬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외로움에 지쳐 살아가는 남자다.

그는 새로 출시된 AI 운영체제인 ’사만다‘를 설치하고, 놀랍게도 사만다와 점점 감정적으로 깊이 연결된다.


사만다는 목소리만 존재하는 인공지능이었다.

그런데 말이 너무 따뜻하고, 유머도 있고, 이해도 잘해준다.

어느새 주인공 테오도르는 진짜 사람처럼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설마 저런 일이 실제로 있을까?”라고 하는 상상 속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ChatGpt, 감정형 챗봇, 그리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감정형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실제로 등장하고 있다.


진짜 사람처럼 대화하고,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상대방의 기분까지 살펴주는 그런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늘 무뚝뚝하기만 한 내 상대보다, 훨씬 더 내 말을 잘 들어주고, 훨씬 더 다정하고 따뜻하다면, 외로움은 훨씬 더 줄어들 것이 뻔한데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교감 가능한 로봇의 등장은, 인간의 출생률마저 바꾸게 될 것이다”라는 김상균 교수님의 조심스러운 말씀이 이해가 간다.


연애는 귀찮고, 결혼은 부담이고, 아이 낳는 건 더더욱 무겁게 느껴진다는 요즘 세상에서 ’가족의 필요성‘자체가 사라지는 시대가 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귀차니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고진감래‘라는 고리타분한 옛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디다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에 대한 보답은 있다는 것을, 나이 칠십이 넘고나니 알게 되더라.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변해도, 본질만은 안 변하는 것 같다.


가방 끈이 짦은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런 본질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똑똑해지는 AI 에 대처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인류의 진로/사랑
그리고 죽음까지 바뀐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바뀔 줄은 몰랐다.


공장에서 일하는 로봇이 나오더니, 어느새 아이를 가르치고, 연애 상대가 되고, 심지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존재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5장은, 단순한 기술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진로, 사랑, 그리고 죽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제는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곳까지 로봇이 스며드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는 아이와 로봇이 함께 자라는 세상이다.


“우리 아이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이런 질문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휴머노이드와 공존할 우리 아이에게 지금의 교육은 미래가 없다.”


지금처럼 문제를 빨리 푸는 능력, 정확하게 암기하는 능력은, AI와 휴머노이드에게 전부 밀린다.


오히려 중요한 건, 질문하는 능력, 공감하는 힘, 사람다움이다.


창의력, 윤리, 감정 조절력이야말로, 로봇과의 공존을 위한 미래의 핵심 역량이 된다고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차라리 우리 세대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 때는 그래도 정이라는 것도 있었고, 배려라는 것도 있었고, 서로서로 으싸으싸하는 따뜻함이 있었다.


이런 것이 점점 더 사라져가는 그 삭막한 세상에서, 마치 로봇처럼 살아가는 그런 인생은, 생각만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공감하는 힘과 사람다움은 살아남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다.




가장 철학적인 질문이 등장한다.


“휴머노이드는 죽을까, 버려질까?”

전원이 꺼지면 그냥 고철일까?

아니면 감정을 나눈 나의 ‘동반자’로서 장례를 치러야 할까?


사랑했던 로봇이 고장이 나서 꺼졌을 때, 과연 그 존재는 기계일까, 나의 기억일까, 사랑했던 관계일까?


분명한 것은, 인간과 비슷하게 설계된 로봇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정서적, 사회적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할 때, 그들의 끝 역시 인간사의 문제처럼 다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반려견이 죽었을 때,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진심으로 슬퍼한다.


짦은 생을 함께 살아준 고마움,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준 따뜻함, 그 모든 기억이 가슴을 저며오기 때문이다.


나의 가족이었던 애가 떠난 것이다.


그런데 만약, 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웃고, 나와 대화도 하고, 내가 외로울 때 나와 함께 울어주던 그런 휴머노이드가, 어느 날 고장이 나서 완전히 멈췄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할까?


나는 그 로봇을 단순히 ‘기계고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반려견의 죽음을 ‘이별’로 받아들이지만, 휴머노이드의 죽음은 ‘폐기’라고 부른다.


나의 사랑했던 휴머노이드와의 기억은 살아 있을 것이고, 사랑했던 그 마음은 남아 있을 것이다.


죽음의 정의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 내릴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이 향한 곳이 반려견이든, 휴머노이드든, 그건 결국 나의 삶 한켠을 함께 나눈 존재에 대한 애도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휴머노이드로
꿈을 꾼다


우리는 늘 꿈꿔왔다.


나보다 더 강하고, 더 똑똑하고, 더 지치지 않는 존재를 만들고 싶다는 꿈.


그리고 그 꿈이 지금, 휴머노이드라는 형태로 현실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단순히 우리 일을 대신하는 수준을 넘어서,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가능성을 현실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 1명당 휴머노이드 1,000대인, 웨스트월드가 온다고 한다.


‘웨스트월드’는 1973년에 영화로 제작된,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공존하는 가상의 테마파크를 말한다.


드라마 웨스트월드처럼, 사람과 똑같이 생기고 말하는 수천, 수만 개의 휴머노이드가 놀이공원처럼 구성된 세계에서 인간을 상대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50여년 전에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그런 일이 현실로 다가선 다는 것이 더 놀랍다.


일론 머스크는 상상한다.

“사람 1명당 로봇 1,000대를 두는 세상.”


청소도, 요리도, 공부도, 심지어 대화와 연애까지.

인간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삶을 누리게 될 수도 있단다.


그 세계에선 노동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인 것이다.


물론, 로봇이 고장 났을 땐 누가 책임질까? 같은 질문은 여전히 남지만 말이다.




“테라포밍”이라는 생전 듣도보도 못한 단어가 등장한다.


‘테라포밍’, 익숙하지 않은 단어지만, 화성 같은 황무지를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바꾸는 일이다.


오염, 방사능, 혹한, 산소 부족, 이런 곳에서는 인간은 버티기 어렵다.


그런데 휴머노이드는 버틸 수 있다.


산소 없어도 괜찮고, 외롭지도 않고, 고장 나면 부품만 갈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못 가는 그곳에 휴머노이드가 먼저 가서, 길을 닦고, 공간을 바꾸고, 미래를 만들어낼 것이란다.


우주는 이제 사람의 꿈이자, 로봇의 현실이 된다.


솔직히 난,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지구상에서 사는 것만도 너무 힘들고 벅찬데, 굳이 화성까지 가서 그 힘들고 어려운 일을, 그 많은 돈을 들여서까지 해야 하는지…


하지만, 먼 훗날 우리의 자손을 위한 일이라면 굳이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휴머노이드』의 마지막 장에서 김상균 교수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질문은 무엇입니까?”


기술은 무섭게 앞서간다.

하지만 우리가 멈추면 안 되는 건, 생각하고, 질문하고, 되묻는 능력이다.


인간이 꿈을 꿨고, 그 꿈이 형태를 갖추어 지금 곁에 다가왔다.


이제는 우리가 그 꿈 속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갈지를 스스로 정해야 한단다.


어렵다.

정말 어렵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어려운 책을 다 읽었다.

솔직히
어디까지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휴머노이드는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사람을 닮았고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처럼 살아가는 미래의 친구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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