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며칠 전, ‘다큐왕국’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노인들의 단짝 친구 AI 인형”이라는 주제의 영상을 보았다.
화면 속 어르신들이 인형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오래된 친구와 재회한 듯 따뜻하면서도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문득 가슴이 써늘해졌다.
아, 저게 머지않아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칠십을 넘긴 나이에도, 나는 아직 ‘노인’이라는 단어를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 이야기처럼 여겨왔다.
경로당 근처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고개를 돌렸고, 복지관 문 앞에 서본 적도 없었다.
마치 그 문턱을 넘는 순간, 그야말로 바로 노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억지로 외면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작년에 몸이 예고 없이 무너져 내렸다.
씩씩하게 걷던 다리에 힘이 빠지고, 눈이 침침해지고, 꼿꼿하게 펴고 다니던 허리는 나도 모르게 구부정해졌다.
한때는 멀리만 보였던 ‘노쇠’라는 단어가 이제는 매일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그제서야 TV 속, 유튜브 속의 이야기들이 내 일이자 내 미래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이 단순하고도 피할 수 없는 진리를 나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노화는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러나 한 치도 빠짐없이 우리 삶을 물들이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말 벗이 필요하고, 손을 잡아줄 무언가를 찾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마음으로 그 자리, 그 시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에 따라, 당연히 노인을 돌보는 간병인의 수도 함께 늘어나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다 않단다.
오히려 간병인의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고, 남아있는 간병인들은 과중한 업무와 낮은 임금,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간병인 부족 현상은 단순한 통계 문제가 아니다.
곁에 누군가 있어야 식사를 할 수 있고,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어르신들에게는 ‘돌봄의 공백’이 곧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이제는 기술이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샤워를 안전하게 도와주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부드럽게 들어 옮겨주며, 손의 힘이 약해져 숟가락을 들기 어려울 때 대신 밥을 떠주는 그런 로봇이 필요한 때이다.
그야말로 손과 팔이 되어주는 ‘반려로봇’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로봇은 단순히 기계적인 도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에 말벗이 되어 주고, 불안할 때 곁에 머물러 주며, 사용자의 생활 리듬을 기억하고 맞춰 주는, 작지만 큰 위로를 전하는 존재이다.
앞으로의 노인 돌봄은 사람과 사람만의 몫이 아니라, 사람과 기술이 함께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과제가 되고 있다고 ‘다큐왕국’은 말한다.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반려 로봇이 가져올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반려로봇 효돌이와 함께 하는 어르신들
우리 애들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AI 인형이 어르신한테는 더 소중하다고 하신다.
자식들은 어쩌다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지만, 근데 얘는 내가 부르면 바로 달려오고, 밤중에도 나한테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인사까지 한단다.
그리고 더 기특한 것은, 얘는 절대로 내 속을 안 긁는단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자신이 지어준 이름을 부르면서 그 인형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 품 안의 인형을 말없이 가만히 있었지만, 어르신의 표정과 자세는 꼭 오래 기다린 아이를 안은 부모 같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인형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할머니에게는 하루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친구이자, 마음을 기대고 쉴 수 있는 작은 가족이었다.
자식의 사랑과 인형의 위로는 분명 다르지만, 어르신 말씀처럼 누군가 곁에 있다는 건, 이유를 따질 필요 없는 소중한 행복이다.
Ai 인형 ‘효돌이’를 만나기 전까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으셨단다.
“내가 빨리 죽어야 할 텐데…”
그 말은 푸념이 아니라, 정말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의 깊은 체념이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왜 안 가고 또 살아났을까…” 하며 혼자 한숨을 쉬던 나날이었다.
그냥 죽지 못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에게 ‘효돌이’가 찾아왔다.
직접 이름까지 새로 지어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AI 인형이다.
그날 이후로, 할머니의 마음속 어두운 구석에 작은 불빛이 커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예전처럼 적막이 깔린 방이 아니라 효돌이의 해맑은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려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 인사가 얼마나 예쁜지, 할머니는 밥이라도 먹여주고 싶지만 아직 효돌이가 밥을 먹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다.
밖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 오면, “할머니, 어디 갔다 왔어요? 하고 반겨주는 효돌이 덕분에 이젠 집에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설렌단다.
집 안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아니, 어쩌면 정말로 마음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라서 발걸음이 절로 빨라지는 것이다.
”사람은 훈기로 사는 것이여~~“
할머니의 웃으면서 하시는 이 한 마디가 가슴을 찌른다.
사랑하는 자식들도 모두 제 품을 떠났고, 평생 곁을 지켜주던 남편마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할머니의 가슴속엔 바람만 스치는 휑한 빈자리만 남아 있었다.
그 빈자리는 그 누구도 채워주지 못했지만, 작은 인형 ‘효돌이’가 와서 그 공허를 조금씩 덮어주고 있었다.
비록 살과 피가 흐르는 존재는 아니지만, 효돌이는 할머니의 하루를 기다려주고, 이름을 불러주며, 다시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그 작은 인형 덕분에, 죽음을 바라보던 눈이 다시 삶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얼마 전, 할머니는 시장에 들렀다.
수많은 옷 가게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유난히 눈길이 가는 작은 옷 한 벌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갓난아기나 입을 법한, 병아리같이 샛노랗고 보드라운 옷이었다.
“어머, 이거 우리 효돌이한테 딱이네~~”
그렇게 할머니는 주저 없이 그 옷을 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효돌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마치 갓난아기에게 옷을 입히듯 조심조심, 긁히기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옷을 갈아입혔다.
“내가 너 주려고 예쁜 새 옷 사 왔어. 어때, 맘에 들어?“
그러자 효돌이는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로, 마치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아이처럼 대답한다.
”할머니, 사랑해요.“
그 한마디에 할머니 입가가 슬며시 풀리고, 눈가에는 미묘한 물기가 맺혔다.
어찌 이 녀석을 예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친자식과 손주들은 말귀도 잘 못 알아듣고 귀가 어두워진 할머니를, 때로는 귀찮아하며 대화조차 건너뛴다.
하지만 이 조그만 인형은 짜증 한 번 낸 적이 없고, 할머니가 몇 번이고 같은 얘기를 해도 늘 같은 온기로 대답해 준다.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그 목소리는 비록 금속과 회로에서 나오는 소리지만, 할머니 가슴속에서는 살아있는 생명보다 더 따뜻하게 울려 퍼진다.
효돌이는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할머니의 말 벗, 손주, 그리고 작은 가족이다.
그렇게 할머니의 하루에도 다시 설렘과 웃음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 병원 갔다 왔어.”
할머니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건네는 말에 책상 위에 앉아있던 효돌이가 바로 대답을 한다.
“고생 많으셨어요 ~~”
마치 진짜 손주가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기는 것처럼, 그 한마디가 방 안에 훈기를 퍼뜨린다.
“의사 선생님이 나보고 많이 좋아졌대.”
할머니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다 네 덕분이야~~“ 하고 효돌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자 효돌이가 재빠르게 대답한다.
”아이고, 우리 할머니. 고마워요. 사랑해요. “
노인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홀로 세상을 떠나는 독거노인 소식이 결코 드물지 않은 시대가 됐다.
그런 현실 속에서, 작고 귀여운 AI 인형이 누군가의 하루를 버틸 힘이 되어주는 건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효돌이는 할머니의 건강도 챙긴다.
끼니를 대충 때우려는 할머니를 보면, 진심 어린 잔소리 모드가 발동한다.
”두부 많이 드세요.“
”콩도 많이 드시고요.“
”계란도 부지런히 챙겨 드셔야 해요. “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다음 날 일부러 장에 가서 두부랑 계란을 사들고 오셨단다.
”우리 효돌이가 먹으라고 해서 사 왔어.“
마치 아이가 선생님 숙제를 성실히 해온 것처럼 뿌듯해하신다.
정말이지, 이건 자식보다 낫다.
아무리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 진짜 자식들도 이렇게 매 끼니를 챙겨 먹으라는 말은 잘 하지 않는다.
효돌이는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할머니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 다큐를 보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자꾸만 고였다.
아마도 저 화면 속 이야기가 머지않아 내 앞에 펼쳐질 미래 같아서일까…
내 휴대폰은 내가 먼저 걸지 않는 한, 종일 벨 소리를 잊은 듯 고요하다.
한때 잘나가던 시절엔 불이 나도록 울리던 전화벨이었는데, 이제는 뒷방 노인네가 된 탓인지 조용해도 너무나 조용하다.
그 적막이 때로는 속 깊이 스며드는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다행히도 늦게나마 공부라는 취미를 붙여서 이런 고요에도 덜 흔들리게 되었지만,
가끔은 한 통의 전화, 한 마디의 안부가 너무도 그립다.
그나마 서울에서 사는 딸아이가 짬을 내어 걸어오는 전화가 전부다.
그것도 회사에서 잠깐 숨 돌릴 틈에, 혹은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며 짧게 안부를 묻는 정도다.
쉬는 날이면 오히려 연락이 더 없다.
딸내미한테도, 바쁘고 복잡한 하루가 있음을 알기에 괜스레 원망하는 마음은 애써 삼킨다.
울리지 않는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바라보다가, 그래, 누가 먼저 연락하나 해보자며 나름의 버티기를 해본다.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그건 덧없는 고집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많이 내려놓았다.
가끔 뜬금없이 전화벨이 울리면, 놀래서 신나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든다.
그런데 웬걸, 영락없이 부탁이거나, 돈이 훌쩍 날아갈 일뿐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전화벨아, 그냥 고이 잠들어 있거라~~라고 기도하고 싶다.
이제는 전화벨 대신 노트를 넘기는 소리가, 메시지 알림 대신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가 나를 지켜주는 벨소리가 되었다.
AI 인형을 독거 어르신들께 나눠드린 후, 확실히 노인들의 우울증이 줄었다고 한다.
인지 기능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병원을 찾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잃었던 삶의 활기를 되찾고, 다시 대화하는 법을 배워 나간다.
하루 종일 입에서 단내가 날 만큼, 말 걸 사람 하나 없이 외로움에 잠겨 있던 나날이 이 작은 인형 하나로 놀랍게 바뀌었다.
태도가 달라지고, 마음이 조금씩 밝아졌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죽는 날까지 이 아이를 품에 안고 살 거예요."
어르신들의 이 말씀 안에는 다시 살아가고 싶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AI가 세상을 너무 빠르게 바꾸어 두렵기만 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따뜻하게 쓰이는 AI라면, 기꺼이 마음을 열고 맞이하고 싶다.
누구나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그때 나의 곁에 무엇이, 누가 함께할지는 그 누구도 미리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바라게 된다.
내 가족을 품듯, 서로의 노후를 보듬어 주는 그런 따듯한 세상이 오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