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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인들의 단시(短詩), 짧지만 깊은 울림!

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by 업글할매

일본의 노인들은 짧은 시, ‘단시(短詩)’를 통해 마음을 전한다고 한다.


단시는 그야말로 짧은 시,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한 줄 시조나 짧은 인생 에세이처럼 느껴진다.


한 줄 안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며, 슬픔도, 웃음도, 깨달음도 담담하게 건네준다.


일본에서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단시 공모전을 열곤 하는데, 이때 모아진 작품들은 현실감 넘치는 공감과 재치, 때론 눈물 나는 인생의 농축액이 되어 다가온다.


‘병원은 놀이터, 약은 친구’처럼 노인의 일상을 웃음으로 풀어내고,‘정보 유출보다 오줌 유출이 더 걱정’이라는 식의 위트로 웃픈 현실을 건드린다.


단시는 인생의 마지막 챕터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솔직하고 담백한 기록이 된다.


그 짧은 문장 속에서, 긴 세월을 살아낸 이들의 무게와 따뜻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짧은 시들이 전하는 깊은 울림이, 우리에게도 다시 삶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묵직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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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일본 노인들의 단시)


어느 날, 한 할머니가 느닷없이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하더란다.


혹시 이 나이에 연애 감정이라도 싹튼 것인가 싶어, 가슴은 살짝 설레고, 머리는 괜히 걱정이 됐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웃으며 한 마디 하시더란다.


“사랑이 아니고요, 부정맥입니다.“


심장이 설레는 게 아니라, 고장이 난 거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부정맥을 달고 살았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새삼스럽게 심장이 뛰어도 사랑 때문일 거라는 착각은 애초에 안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소(?) 힘든 남편을 오랫동안 모시고 살다 보니, 사는 것도 벅차다.


이런 남편 덕에 내 심장은 이미 피로 누적이고, 뇌는 스트레스로 과부하 상태다.


신경 쓰고 머리 아픈 일은 신랑 하나로도 충분한 것이다.


이런 집에 무슨 사랑이 들어올 자리나 있겠는가~~


사랑 때문에 새로운 부정맥 생길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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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랑 펜 찾는 사이에
쓸 말 까먹네

(일본 노인들의 단시)


아침 햇살이 포근하게 들어오는 서재에 따끈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우아하게 앉았다.


조금 전 유튜브에서 들은 근사한 명언 하나가 참 멋져서, “이건 꼭 적어놔야겠다‘!”싶었다.


아이패드를 열고 정리하려고 하니까, 세상에나, 명언이 아니라 명언의 그림자조차 머릿속에서 증발해버렸다.


“뭐였더라~~”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영감은 이미 도망가 버린 뒤였다.


노안은 글씨를 흐리게 하지만, 건망증은 생각 자체를 통째로 지워버린다.


결국 오늘도 스스로 다짐한다.


영감이 오면, 무조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도망가기 전에 붙잡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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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일본 노인들의 단시)


많은 어르신들의 공통 고민 중 하나가, 아침에 눈을 떠도 “오늘 뭐 하지?”라는 허무한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거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냉장고를 열었다 닫고, TV 리모컨만 괜히 만지작거리다 보면 어느새 저녁, 그리고 잘 시간.


그렇게 하루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다.


다행히 나는 조금 다르다.


사람들이 “백수가 과로사한다!"라고 하는데, 그 말이 꼭 내 얘기인 것 같다.


새벽 4시 전에 일어나서 스트레칭, 일기 쓰기, 6시 아침 식사, 식후 한 시간 걷기, 샤워 후 공부와 글쓰기…


점심 준비, 식후 운동, 책 읽기, 남편 비위 맞추려고 트로트 감상까지, “바쁘다, 바빠~~"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5시부터는 또 저녁 준비, 식후 운동, 그리고 하루 마무리 공부, 밤 9시 침대에 눕기까지 그야말로 풀 스케줄이다.


하지만 이렇게 바쁘게 살아도, 남는 건 밥 세끼 준비한 기억뿐이다.


삼식이 아저씨를 모시고 살다 보니, 외출은 거의 없고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다.


뒤늦게 공부에 맛을 들였지만, 삼시 세끼 준비 과정이 내 황금 같은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할 일이 없어 멍하니 하늘만 보는 것보다는 삼식이 아조씨 밥해주느라 바쁜 게 훨씬 낫다는 생각도 든다.


“백수가 과로사한다?”


딱 지금의 나를 두고 하는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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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닥 없지만
전액 다 내야 하는 이발료

(일본 노인들의 단시)


머리숱도 별로 없이 이발소 의자에 앉아있는 우리 집 양반을 보면, 마음 한켠이 괜히 짠하다.


그래도 거울 앞에서 머리 모양을 고르고, 빗질 한 번에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아무리 머리카락은 줄었어도 멋은 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절로 웃음이 난다.


그런데, 머리숱이 많건 적건, 요금은 무조건 똑같다는 이 현실에 많은 어르신들이 한목소리로 말한다.


“싸게 안 되나요? ”


여자 머리도 사정은 같다.


나이 들면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힘이 없어지고, 여기저기 휑~한 두피가 보일 때 그 허전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하고 쓸쓸한 법이다.


비용을 떠나서 그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르신 특별 디스카운트!”

“어르신 무료 이발 데이!”


이런 이벤트는 왜 안 생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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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농약에 집착하면서
먹는 내복약에 쩔어 산다.

(일본 노인들의 단시)


주변을 보면, 무농약 채소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참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람들일수록 무농약 반찬에 “약‘이라는 양념장을 곁들여 먹고산다.


하루 세 번, 밥상 위의 반찬처럼 내복약을 한 주먹씩 먹고사는 사람들을 보면, 내 일이 아니더라도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노인 내과’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이 병원은 일단 환자가 먹는 약 목록부터 싹 들여다본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줄인다.


”약은 줄이고, 삶은 늘리자!“가 모토인 것이다.


나는 원래 약이랑 사이가 좋지 않다.


그래서 지금도 고혈압약이랑 골다공증 약, 딱 두 가지만 복용하며 생활한다.


사실 약을 전혀 먹고 싶지 않았지만,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그런 안전한 노후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복용하고 있다.


온몸이 여기저기 경고등이 켜져 있지만,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건 약 대신 제철 음식과 운동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나는 계절이 주는 ‘처방전’을 가장 사랑한다.


약병 대신 채소 바구니를 열고, 처방전 대신 운동화를 꺼내 신는 나만의 생활 습관이 오늘의 나를 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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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건
정보 유출보다 오줌 유출

(일본 노인들의 단시)


젊었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나이가 들면 현실이 된다.


집 밖을 나가면, 하루 종일 긴장하며 화장실 위치 확인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병원에서는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자연스러움이라는 말 뒤에 숨겨진 서글픔은 감출 수 없다.


누군가는 웃으며 농담으로 넘기지만, 실제로는 매 순간 사소한 사건에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인생의 정보는 이미 다 경험한 것 같은데, 오줌과의 싸움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보가 부족하다.


“심각한 건 정보 유출보다 오줌 유출!”이라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웃기지만 서글프다.


인생의 마지막 챕터가 이렇게,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긴장감으로 채워질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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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 다 쓸 때까지
남지 않은 나의 수명

(일본 노인들의 단시)


LED 전구가 요즘은 10년을 버티다는데, 내 수명은 어쩌면 그보다 더 짧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해본다.


노인이 되기 전까지는 이런 수명 같은 걸 계산하며 마음 졸여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전구 다 쓸 때까지 남지 않은 나의 수명“이라는 단시를 읽고 나서는, 왠지 모르게 예민해져 나의 남은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엉뚱한 고민까지 해보게 된다.


아직 해야 할 일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행여 새로 산 전구보다 내 빛이 먼저 꺼질까 봐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웃어야 할 순간에도, 전구가 깜빡일 때마다 마음 한켠에 작은 서글픔이 번진다.


하지만 이내 다짐한다.


”인명은 제천이다!“


지레 겁먹고 힘 빼지 말자.


그저 반짝이는 예쁜 전구처럼, 순간순간 빛나는 시간을 감사히 받아들이자.




짧은 글인데
왜 이렇게 오래 남을까…

웃음 나다가,
문득 울컥했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이젠 이런 글이
참 깊고, 참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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