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책방 이야기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 이 책의 표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연두빛 나무와 푸른 식물들이 가득한 풍경이다.
빽빽하게 채워진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듯한 그림은, 단순한 자연의 모습이 아니라 인생 후반부의 여유와 평온을 상징하는 듯하다.
표지 전체의 분위기는 화려하지 않고 참 따뜻하다.
나무의 푸른빛, 사람들의 평온한 모습, 그리고 담백한 서체는 이 책이 무겁고 어려운 철학서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다가가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마치 오랜 친구가 건네는 위로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책이기에, 책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해마다 나이 드는 건
자연의 이치이지만,
해마다 나아지는 건
나의 선택입니다.
(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
띠지에 이렇게 멋진 문장이 적혀있다.
나이 드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흐름이다.
햇살이 지고 달이 떠오르듯이, 계절이 돌고 도는 것처럼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할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인 것이다.
결국 인생은 자연이 주는 시간 위에 내가 어떤 색을 칠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이치이지만, 나아지는 건 언제나 가능한 기회가 아닐까…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의 저자 이서원 교수님은,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으셨다.
이후 고려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계셨고, 현재는 서강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계신다.
나우리가족상담소 소장으로 30년 넘게 상담전문가로 활동해 오셨다.
이서원 교수님은 오랜 시간을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온 분이시며, 교육자로서 대학과 방송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을 해오셨다.
그리고 또한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지혜와 위로를 나누는 분이기도 하다.
대표 저서로는 《 말과 마음 사이 》, 《 나를 살리는 말들 》, 《오십, 나는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 《그 말이 듣고 싶었어 》등이 있다.
이번 신작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는, 작가님이 지난 30년 넘게 상담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쌓아오신 상담과 경험을 통한 삶의 지혜가 담긴 70개의 문장을 엮은 인문 에세이로, 삶의 후반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목차
1장 : 마지막 모습을 그려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들
2장 : 인생은 뜻대로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는 축복
3장 : 다 때가 있다더니, 이제 내 때가 왔다
4장 : 뛰어갈 땐 들리지 않았던 계절 바뀌는 소리
5장 : 늦게 피는 꽃이 더 오래도록 향기롭다.
6장 : 터널이 길수록 출구의 빛이 다 눈부시듯이
7장 : 그 모든 파도가 내 삶을 아름답게 조각했네
읽는 이에게 행운이 오기를 비는 마음으로 ‘러키 세븐’ 일곱 개 장으로 만드셨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졌다.
더욱 재미있는 건,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벌써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는 점이다.
아니나다를까,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부담감이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홀가분함으로 은근히 입꼬리가 올라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정말 그 말대로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마음 한구석이 포근해진다.
작가님의 의도대로 ‘러키 세븐’이 행운의 기운을 불러오는 것일까.
왠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오늘 하루에도 작은 기적이 숨어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결국 좋은 책이란, 읽는 이를 웃게 만들고, 웃음 속에서 희망을 다시 찾게 만드는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이서원 작가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로 나의 일부가 죽으니, 살아 있는 일부를 아름답게 만드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죽은 것 보다 살아 있는 일부를 생생하고 크게 살아나도록 만드는 것이 오십 대의 즐거운 숙제다.
숙제 같은 오십 대 인생을 축제로 만드는 비법은 언젠가 나도 죽는다는 사실을 더 즐겁고 생생한 삶을 산다는 결단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가족의 죽음은 어쩌면 살아 있는 나의 삶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윤활유다.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 p 25)
이 문장을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가슴이 뜨겁게 울렸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나의 삶이 덩달아 시들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겨진 나를 더 단단하게 빛나게 만든다는 고백이 마음 깊숙이 파고 들었다.
정말 그렇다.
이별은 분명 눈물의 순간이지만, 동시에 남겨진 삶을 더 아름답게 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언젠가 나도 죽는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삶을 더 생생하게 살아내려는 결단으로 삼는다면, 숙제같은 인생도 축제같은 순간으로 바뀌지 않을까…
흰머리는 지혜의 상징이 아니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다.
제대로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면 나이만 먹고 경험만 쌓일 뿐 지혜가 생기지 않는다. 흰머리가 지혜가 되려면 자신이 경험하는 일이 알려주는 삶의 가르침을 곱씹을 줄 알아야 한다.
오십은 늘 깊이 있게 사유하는 습관을 지녀야 할 나이다.
그래야 지혜롭게 나이 들 수 있다.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 p 67 )
흰머리가 절로 지혜가 되는 줄 알았던 나에게, 작가님의 말씀은 따끔한 일침처럼 다가왔다.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고, 세월이 쌓인다고 반드시 지혜가 깃드는 것도 아니다.
지혜는 그냥 나이와 함께 오지 않는다.
경험을 가슴에 새기고,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길어 올릴 때 비로소 흰머리에도 빛이 깃든다.
거의 십년 전부터 나는 머리 염색을 안하고 흰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요즘은 ‘그레이 헤어’가 하나의 멋으로 자리 잡아, 당당히 흰머리를 휘날리는 젊은 할머니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시작할 때만 해도 그런 모습은 보기 드물었다.
그 시절에는 오히려 주변에서 더 난리였다.
“왜 그렇게 초라하게 흰머리로 다니냐~~”는 핀잔이 따라붙곤 했다.
별로 내세울 것이 없어서인지, 난 오히려 남들 안하는 흰머리로 다니는 것이 내딴에는 멋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폼 잡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숨고 싶은 마음이 든다.
흰머리는 지혜의 상징이 아니라 그저 나이가 들었다는 표시일 뿐이라는 깨달음에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때의 선택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비록 나의 흰머리가 지혜를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흰머리를 감추지 않겠다는 내 고집 속에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용기가 숨어 있었다.
남들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나답게 살고자 했던 작은 발걸음, 그게 바로 세월이 나에게 가르쳐준 또 다른 지혜였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흰머리를 무슨 빛나는 훈장처럼 달고 다닌다.
흰머리가 꼭 지혜를 증명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나를 솔직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어준다.
오십을 훨씬 지나 칠십 대에 선 지금, 나 또한 늦게나마 배운다.
나이 듦은 자연의 법칙이지만, 지혜롭게 늙어가는 것은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행불행을 좌우한다.
내가 가진 것을 작게 느끼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며, 크게 느끼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오십이 넘으면 내가 가진 것을 크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크게 보면 내 것은 언제나 차고 넘치는 법이다.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 p 105 )
읽는 순간 마음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손에 쥔 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사람인지라, 종종 없는 것에 시선을 빼앗겨 필요없는 허전함을 키우지만, 가진 것을 크게 바라보는 순간 그 허전함은 채움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이서원 작가님께서는 오십이 넘으면 끊임없이 채우려 애쓰는 대신, 이미 내 곁에 있는 것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아야한다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돌이켜보는 나의 오십은, 채우기는 커녕 늘 모자라고 부족함 투성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
지금의 오십은 우리 세대와 달리 훨씬 현명하고 지혜로우니, 작가님의 가르침대로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진다.
작게 보면 모자람뿐이지만, 크게 보면 늘 차고 넘친다.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삶은 충만해지고 나 자신 또한 더 단단해질 것이다.
그간 숨죽이며 살았던 소소한 일상들이 반짝이는 기적의 옷을 입고 내 하루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 p 151 )
이 문장을 읽자마자 떠오른 사람은 바로 우리 집 양반이다.
요즘들어 남편이 자주 중얼거리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평생 행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해방을 맞이했고, 이어 6.25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었다.
피난살이의 고단함, 하루하루 버텨내야했던 생존의 무게, 그 모든 세월을 오로지 일만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이제 팔십을 훌쩍 넘어 평온한 나날을 보내면서, 문득문득 행복을 두려워하듯 중얼거린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아마도 오랜 세월 몸에 밴 고난의 습관 때문일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이 자신한테는 전혀 누려본 적이 없었던 낯선 손님같은지, 혹여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날까 조심스러운 가보다.
나 역시 젊은 날엔 무엇이 그리도 급했던지, 고개 들어 하늘 한 번 바라볼 틈조차 없이 살아왔다.
한없이 맑고 푸른 하늘, 그 위에 수놓은 듯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들의 아름다움조차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바쁘게 달려가기만 했던 것이다.
계절도 마찬가지였다.
봄이 오면 그저 봄인가 보다, 여름이 오면 또 더위가 시작되는구나,그렇게 받아들이는 정도였다.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쯤이면 어느새 겨울의 매서운 찬 기운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저 지나가는 시간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뛰던 걸음을 멈추고, 한 발자국씩 천천히 걷다 보니, 그동안 내 마음이 흘려 보냈던 계절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결을 따라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 햇살이 비추면서 은근히 따스해지는 공기의 숨결까지도 내 마음을 파고 든다.
이제야 알겠다.
계절은 단순히 바뀌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노래하고 위로하는 자연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늦게 피는 꽃이 더 오래도록 향기롭다”
왜 나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할미꽃’이 생각이 났을까?
젊었을 땐 그런 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눈에 들어오는 건 언제나 화려한 장미, 있는대로 들판을 물들이는 코스모스 같은 꽃들이었다.
늘 봐서 즐겁고 눈부신 것만 쫓다 보니, 구석에서 조용히 피어난 할미꽃같은 존재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이들고 나서야 비로소 할미꽃을 제대로 마주했다.
‘할미꽃’이라길래 처음엔 한없이 시들고 마냥 고개 숙인 꽃일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나…
자줏빛 꽃잎이 우아하게 흩날리고, 은빛 솜털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얼마나 기품 있는지, 그때 나는 놀라움에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아, 할미꽃이 이렇게 고운 거 였구나.”
그날 이후, 내 마음 한구석에 할미꽃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나도 혹시 어디가면, 늙었어도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참 여자 마음이란 게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나이 일흔, 여든이 되어도 ‘예쁘다’라는 말 한마디에 금새 마음이 들뜨고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할미꽃은 늦게 피지만 오래도록 향기를 남긴다.
그 향기는 화려하지 않아도 은은하고, 오래 곁에 두고 싶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라는 이서원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하게 된다.
밝은 달도 나무가 울창한 숲속에서는 쓸모없다.
내 방법이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한다는 생각은 고집이자 교만이다.
그때그때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게 성숙한 삶의 지혜다.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 p 227)
“밝은 달도 나무가 울창한 숲속에서는 쓸모없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한 가지 진리가 모든 상황에 절대적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에 집착하고, 그것을 어디서나 적용하려 한다.
하지만 숲속에서는 달빛이 빛을 발하지 못하듯, 상황과 환경에 따라 같은 방법이 무력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교만에 불과할 것이다.
성숙된 삶이란 고정된 답을 쥐고 사는 것이 아니라, 순간마다 다른 길을 찾아내는 능력에 있다.
어떤 때는 침묵이 지혜가 되고, 또 다른 때는 단호한 말이 용기가 되기도 한다.
삶의 무게는 언제나 바뀌고, 그 안에서 유연하게 맞춰가는 태도가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코로나가 내게 남겨준 가장 큰 변화는 버킷리스트 1번을 바꾼 일이다.
그전에는 유럽여행이 늘 첫머리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꼰대가 되지 말자!”라는 다짐이 가장 중요한 자리에 올랐다.
내 방법이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할 거라는 착각이야말로 고집이자 교만이라는 작가님의 말씀은, 결국 꼰대가 되지 말자는 나의 다짐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건방진 생각을 해본다.
밝은 달도 나무가 울창한 숲속에서는 쓸모없다.
고정된 방식만 고집하지 말고, 그때그때 다르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삶의 지혜이자 내가 추구하는 새로운 버킷리스트이 빛이다.
사람은 살면서 수도없이 많은 어려움을 만난다.
그런 어려움을 헤쳐나갈 때 필요한 것이 꼭 헤치고 나가겠다는 의지다.
의지가 소신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지혜가 필요하다.
소신의 결과는 나도 웃고 남도 웃는다.
고집은 남이 찡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도 찡그리게 된다.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 p 269 )
칠십을 넘긴 지금 돌아보면, 내 삶에도 수많은 굴곡과 고비가 있었다.
지혜는 부족했지만, 다행히 “죽기살기로~~”라는 나만의 특기 하나는 늘 있었다.
바로 그 의지가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고, 남의 나라에서 살아남게 한 원동력이었다.
특히 이민 생활은 그야말로 생존의 연속이었다.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나를 지키며 가정을 일구려면, 오직 “죽기살기로”라는 정신이 더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만약 그때 조금만 더 지혜가 보태졌다면 고생을 덜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결국 그 고생 덕분에 오늘의 평온함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그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세월이 흘러 이제는 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내 마음을 한없이 뿌듯하게 만든다.
우리가 살던 시절만 해도 한국인은 중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 음식을 보면 마늘 냄새난다면서 기피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 식당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고, 분식집도 대박을 치고 있다.
예전에는 동양인이라며 업신여기던 아이들이 이제는 한국 친구를 찾아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단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모든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나 흐름이 아닌 것같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고생하며, 삶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이한 교포들의 힘이 쌓이고,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닐까.
그 숱한 어려움을 헤쳐 온 개인의 의지가 모여 한국의 위상을 알리고, 그 힘이 다시 우리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이제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지혜는 부족했을지언정, 끝까지 버텨낸 그 의지가 있었기에 지금 나는 웃을 수 있고, 세상도 함께 웃을 수 있다고.
죽기살기로 살아낸 그 인생이, 결국 나를 축제의 무대로 데려다 주었다.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 》
제목이 참 멋있다.
숙제 같은 인생이라니,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이서원 작가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책을 쓰면서 이렇게 행복해보기는 처음이었다고.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오직 명답만 있기에, 부담 없이 작가님만의 명답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너무나도 즐겁게 하셨단다.
그런 과정이 쌓여갈수록 기쁨도 커지고 책이 완성되어가는 보람도 커졌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나 역시 읽는 내내 그 따뜻한 행복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학교 다닐 때 단 한 번도 숙제를 빼먹은 적이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이라 믿었고, 아무리 하기 싫어도 매번 꼬박꼬박 해냈다.
그 덕분에 고단할 때도 많았고, 때로는 억지로 끌려가듯 살아야 했지만, 숙제를 끝냈을 때의 뿌듯함만큼은 분명 내 것이었다.
아마 인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젊은 시절엔 하루하루가 숙제였다.
해야 할 일, 감당해야 할 책임, 놓치지 말아야 할 약속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늘 앞만 보게 했다.
그러나 칠십 대에 들어선 지금, 나는 깨닫는다.
그 숙제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이제는 그 숙제를 축제로 바꾸어 즐길 수 잇는 시간이 찾아왔음을.
해야만 하는 숙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고르는 축제의 시간이다.
좋아하는 책을 고르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하며, 하루하루가 내 선택으로 꾸며지는 무대가 되었다.
숙제의 무게를 지나왔기에, 지금의 이 축제같은 시간이 더 화려하고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제는 다짐한다.
앞으로의 인생은 숙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빛나는 축제 같은 인생으로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