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책방 이야기
늘 하던 버릇대로 책 표지부터 살펴봤다.
‘책장속북스’라는 출판사 이름이 마치 오랜 벗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어른의 어휘 공부’라는 제목과도 절묘하게 어울려, 마치 오래된 책장 한켠에서 발견한 책처럼 느껴진다.
책 표지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파란 바탕 위에 제목을 올린 디자인이 아니라, ‘어휘 공부’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한 섬세한 의도가 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표지 가운데를 크게 감싸며 원을 그리듯 길게 늘어선 글씨들이다.
“많다, 숨기다, 허락하다, 비일비재하다…”같은 단어들이 마치 은은한 회오리처럼 배경에 배치되어 있다.
이 단어들은 흐릿하고 잔잔하게 처리되어 있어서, 우리 일상 속에 무심코 흘려보내는 수많은 말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
“어른의 어휘 공부”라는 문구가 주는 울림은, 이제는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단계에 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전체적으로 이 표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차분하고 단정함이 먼저 느껴진다.
그러나 조금 더 바라보면, 배경에 흐릿하게 숨겨진 단어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원을 따라 나열된 단어들이 서서히 머릿속에서 읽히다 보면, 어휘를 새롭게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 피어난다.
《 어른의 어휘 공부 》의 저자 신효원 작가님은 오랫동안 ‘한국어’라는 언어를 탐구하고 가르쳐오신 분이다.
지난 18년간 서강대학교 한국어교육원과 각국 주한 대사관에서 한국어 교육을 맡으며, 세계 곳곳에서 온 학생들에게 우리말을 전했다.
조금이라도 더 새롭고, 다양하며, 더 품격 있는 한국어 어휘를 배우려고 애쓰는 외국인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정작 우리는, 우리 한국인인 우리는, 우리의 어휘를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을까?”
그 물음에서 시작된 사유가 바로 이 책의 씨앗이 되었다.
저서로는 《 아이의 말하기 연습 》이 있다.
목차
한국인이 흔히 사용하는 어휘 ㄱ,ㄴ,ㄷ
한국인이 흔히 사용하는 어휘 ㅁ,ㅂ
한국인이 흔히 사용하는 어휘 ㅅ,ㅇ
한국인이 흔히 사용하는 어휘 ㅈ,ㅊ,ㅎ
편하고 익숙만 단어만 자꾸 쓰다 보면, 우리의 어휘는 점점 더 메말라 갈 수밖에 없다고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다 보니 글은 자연히 힘을 잃고 지루해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말 세상에는 참으로 다채롭고 정교한 단어들이 가득한데, 나 역시 늘 “많다, 너무 많다, 진짜 많다” 같은 똑같은 표현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제라도 이 밋밋한 나의 언어 세계에 여러 빛깔을 입히고, 생기를 불어넣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감싸다‘를 대신할 수 있는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 자식을 무조건 제대로 크지 못한다.
• 그는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일단 친구를 나섰다.
• 경찰이 오히려 가해자 측을 나서서 논란이 일고 있다.
• A 기자는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을 기사를 써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문장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참으로 기가 막혔다.
적절한 단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제일 먼저 스친 단어는 늘 써오던 ‘감싸다’와 ‘두둔하다’ 정도였는데, 정답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감싸다’는 말 그대로 전체를 둘러서 싼다는 뜻으로 남의 흉이나 허물을 덮어줄 때, 혹은 누군가를 두둔할 때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 자식을 무조건 감싸면 제대로 크지 못한다.
이 글에 네모 상자가 3개였으면 난 아마도 당연히 ‘감싸면’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네모가 3개가 아니고 4개이다 보니 머리를 싸맬 수밖에….
도무지 네 글자로 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자식을 언제 어디서나 두둔하고 감싸는 상황에서는 ‘가엾게 여기어 도와주다’라는 의미를 담은 ‘두남두다’라는 단어가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이 작가님의 설명이었다.
곰곰이 떠올려보아도 나는 살면서 ‘두남두다’라는 말을 써 본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글을 써왔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신기하다.
* 자식을 무조건 두남두면 제대로 크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제대로 된 문장이 완성된다.
언제나 자식을 무조건 감싸는 것 같았던 상황이, ’두남두다‘라는 멋진 단어를 만나는 순간 전혀 다른 울림을 가지게 된다.
“가엾게 여기며 도와준다"라는 따뜻함이 깃들고, 그 안에 부모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나오니, 문장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 그는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일단 친구를 감싸고 나섰다.
이 문장 역시 네모가 3칸이었으면, 당연히 ‘감싸고’가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오롯이 감싸주고 편을 들어 지킨다는 뜻의 ‘옹호하다’가 ‘감싸다’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단다.
* 그는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일단 친구를 옹호하고 나섰다.
* 경찰이 오히려 가해자 측을 감싸고 나서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역시 3칸 일 때는 ‘감싸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4칸에 맞는 단어를 찾으려니까 금방 떠오르지를 않았다.
이럴 때는 ‘편을 들어 감싸 주고 역성을 들어 주다’라는 뜻의 ‘두둔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작가님은 설명을 해주신다.
* 경찰이 오히려 가해자 측을 두둔하고 나서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냥 다 써져있는 글을 볼 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생각나는 단어들이, 왜 가려놓고 찾으려니까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 A 기자는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을 감싸는 기사를 써 비판을 받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이럴 때 역시, ‘편을 들어서 감싸주고 보호한다’는 뜻의 ‘비호하다’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단다.
* A 기자는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을 비호하는 기사를 써서 비판을 받고 있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문장으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감싸다’라는 단어 하나에도, 그 속을 파고들면 놀라운 세계가 숨어 있었다.
“두남두다, 옹호하다, 두둔하다, 비호하다”같은 단어들이 줄줄이 따라나오면서, 한 문장이 단번에 품격을 입고 멋들어지게 변신하는 것을 보니 그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이 갑자기 선명한 컬러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나는 글을 쓰면서 그저 ‘감싸다’같은 단어 하나만 붙잡고 버텨왔는데, 알고 보니 그 뒤에는 더 깊고 넓은 어휘의 숲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마무리하다’를 대신할 수 있는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 9회 말 김 선수가 나와 경기를 .
• 우리나라와 필리핀 간의 자유무역협정을 최종 .
• 그는 마침내 이혼 소송을 합의로 .
• 그는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되어 작품을 못한 채 숨졌다.
• 그는 항상 일을 제대로 않아서 욕을 먹는다.
• 삼천포로 빠진 말을 어떻게 할지 몰라 진땀을 뺐다.
생소한 단어가 또 등장했다.
“매조지다”라는 말은, 스포츠 뉴스를 보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되는 단어라는데, 나한테는 왜 이리도 생소한지 모르겠다.
“일의 끝을 단단히 단속하여 마무리한다"라는 뜻이다.
* 9회 말 김 선수가 나와 경기를 매조졌다.
난, 아직도 ’매조졌다‘라는 단어보다는, ’마무리했다‘라는 단어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일 것이다.
* 우리나라와 필리핀 간의 자유무역협정을 최종 타결했다.
일을 무사히 끝맺기 위해서는 서로의 의견을 어느 정도 양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럴 때는 ‘마무리하다’보다는 탸결하다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하신다.
*그는 마침내 이혼소송을 합의로 매듭지었다.
매듭은 끈이나 실 등을 매어서 생긴 작은 마디를 뜻한다.
매듭을 지어 바느질이나 포장을 마무리하듯, 어수선하게 펼쳐진 일들을 순서에 따라 마무리할 때 ‘매듭짓다’라는 말을 쓸 수 있다.
그저 평범한 단어인 줄 알았던 ‘매듭’이, 이렇게 정리와 끝맺음의 깊은 의미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뜻을 제대로 알고 나니, 문장 속에 담긴 울림이 훨씬 더 선명하게 가슴 깊이 새겨진다.
*그는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되어 작품을 완결하지 못한 채 숨졌다.
책이나 예술 작품은 완전하게 마무리해야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데, ’완결하다‘는 말처럼 끝맺음은 늘 함께한다.
그래서 미완성 상태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작가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완결하다‘라는 단어가 짐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
* 그는 항상 일을 제대로 끝마무리하지 않아서 욕을 먹는다.
일을 제대로 못하면 앞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반복되면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끝마무리하다’는 일이 잘 마무리되었음을 확실히 말할 때 쓰인다.
* 삼천포로 빠진 말을 어떻게 마물러야 할지 몰라 진땀을 뺐다.
‘마무르다’는 물건의 가장자리를 꾸며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일의 끝을 정리한다는 의미다.
삼천포로 빠진 말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진땀 흘린 상황이 그대로 전해진다.
‘마무리하다’라는 말 하나에도 “매조지다, 타결하다, 매듭짓다, 완결하다, 끝마무리하다, 마무르다”등 수많은 표현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니, 우리말의 깊이와 풍성함에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살펴보다”를 대신할 수 있는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 복잡해 보이지만 보면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 아이들이 보는 만화 영화를 성평등 관점에서 문제 되는 부분이 많다.
• 우리 회사는 하반기 유럽 수출 가능성을 보고 있다.
• 서울시는 코로나19로 변화된 사회 여러 모습을 위한 포럼을 개최했다.
역시 새로운 단어가 등장한다.
* 복잡해 보이지만 숙찰해 보면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자세히 살펴 깊이 이해할 때는 ‘숙찰하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숙찰하다’는 단순히 ‘살펴보다’보다 더 세밀하고 진지하게 탐구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 아이들이 보는 만화 영화를 뜯어보면 성평등 관점에서 문제 되는 부분이 많다.
아이들 만화영화를 성평등 관점에서 살펴보면,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때 ‘뜯어보다’는 표현을 쓰며, 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내면을 깊이 검토하는 뜻이다.
* 우리 회사는 하반기 유럽 수출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자세히 따져 생각해 볼 때는, ‘타진하다’라는 단어가 적당하다.
속시원히 알 수 없는 남의 마음이나 사정, 미래에 있을 일에 대해 살펴볼 때 어울리는 단어다.
* 서울시는 코로나19로 변화된 사회 여러 모습을 톺아보기 위한 포럼을 개최했다.
‘살펴보다’보다 더 면밀하게 현상이나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을 때는 ‘톺아보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하신다.
‘톺아보다‘는 틈이 있는 곳마다 모조리 뒤져서 찾아본다는 뜻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히 살펴본다는 뜻이다.
알고 보니 내 성격과 찰떡같이 맞는 단어인데,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지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게다가 발음도 만만치 않아, 입을 오물거리며 몇 번이고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혀가 꼬여 절로 웃음이 났다.
이토록 재미있고도 내 성격을 그대로 담아내는 단어를 이제라도 만난 것이 다행이라 여겨진다.
‘자랑하다’를 대신할 수 있는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 확실치도 않으면서 망신만 당했다.
• 그는 계약을 성공리에 성사시키고는 사무실로 들어왔다.
• 그는 능력은 있지만 뭐든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
• 그는 여기저기에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다닌다.
• 좋은 사업보다 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발굴해 내야 합니다.
• 그는 이번 일은 자기가 아니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며 한참을 .
* 확실치도 않으면서 으스대다 망신만 당했다.
자랑이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내세울 만한 것이 있을 때만 해야 빛이 난다.
욕심만 앞서 어울리지 않게 우쭐거리며 뽐낸다는 뜻의 ‘으스대다’라는 표현이 꼭 맞는단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으스대다가 들통나면 두고두고 부끄러움을 안게 될 것이다.
어쩌자고 지금까지 ‘으시대다’로 알고 있었는지, 참 한심하다.
* 그는 계약을 성공리에 성사시키고는 득의양양하게 사무실로 들어왔다.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면 괜스레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싶어진다.
게다가 일에서 큰 성과를 얻었다면 더욱더 자랑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럴 땐, ‘자랑하다’라는 말보다 ‘득의양양하다’라는 단어를 써보는 것이 좋단다.
* 그는 능력은 있긴 하지만 뭐든 젠체해서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
자랑도 정도가 넘어서면 잘난 체가 된다.
지나치게 뽐내며 잘난 체하는 사람에게 ‘젠체하다’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고 하신다.
‘잘난척한다’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젠체한다’라는 말은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낯설면서도 묘하게 정겨운 그 뉘앙스가 참 좋다.
* 그는 여기저기에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며 재며 다닌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자랑하며 으스대고 뽐내고 다니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무엇일까?
이럴 때는 ‘재다’라는 단어를 써보란다.
* 낯내기 좋은 사업보다 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발굴해 내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 자기 이름을 날리고 내세우려고 할 때 쓸 수 있는 말에는 ‘뽐내다’라는 말도 있지만, 더 잘 어울리는 단어는 ‘낯내다’이다.
조금 생소한 단어인 것 같았는데, “수해 복구 현장의 여야 낯내기 행사”라는 작가님의 표현에 금방 이해가 됐다.
신문 기사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단어다.
* 그는 이번 일은 자기가 아니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며 한참을 공치사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생색내면서 스스로 자랑한다는 뜻의 단어가 있다.
바로 ‘공치사하다’이다.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다.
‘내 어휘력이 이렇게 빈약했었나’하는 자책이 밀려왔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내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을 떠올리니, 괜히 죄송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달라졌다.
이제는 문장을 쓸 때, 어떻게 하면 더 적확하고 깊이 있는 표현을 할 수 있을지, 그 단어를 찾기 위해 조금 더 궁리하는 습관을 가지기로 했다.
결국 어휘 공부는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아는 차원이 아니라, 내가 가진 생각과 감정을 더 깊이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된다.
책 속에서, 일상 대화 속에서, 그리고 나만의 기록 속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배우고 다듬어가는 일이 결국은 더 넓고 풍성한 삶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우리에게 어휘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더 잘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여정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