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토록 아픈 인생이 계속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간신히 하나의 산을 넘었다고 안도한 순간, 그 끝엔 또 다른 산이 어김없이 버티고 있었다.
고갯마루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이제 좀 괜찮아지겠지, 이제는 좀 평탄하겠지…” 싶었는데, 참으로 인생이란, 그렇게 쉽게 마음 놓을 틈을 주지 않는다.
작년 이맘때, 골다공증 중증이라는 진단을 처음 들었을 땐 마치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절대 넘어지면 안 된다, 기침할 때도 가슴을 붙잡고 하라”는 주의 사항을 들으면서 눈앞이 캄캄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고통과 두려움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 특기인 ‘죽기 살기~~“로 운동하고, 식단을 바꾸고, 약을 꼬박꼬박 챙기며 생활을 완전히 다시 설계했다.
그렇게 필사의 노력 끝에, 겨우 위험 수치를 벗어나 “이제는 좀 편안해지겠지…“ 하며,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또 하나의 산, 그것도 더 낯설고, 더 무섭고, 더 지독한 고통을 안고 있는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이름이 불쑥 내 앞에 솟구쳐 올랐다.
며칠 전에, 오른쪽 발가락 위가 불덩이처럼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열이 오르고, 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 밤이 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무지 외반증이야 늘 달고 살던 고질병이라, “이번에도 그냥 조금 아프다 말겠지…” 하고 애써 넘기려고 했다.
히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건 예전처럼 욱신거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한 걸음조차 뗄 수 없는 고통에, 서 있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무언가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끔찍한 통증이다.
남편이 이런 내 발을 보더니, 웬일로 당장 병원 가라고 호통을 친다.
발 전문의를 검색해 봤더니, 우리 집에서 꽤나 먼 곳에 병원이 있다.
자그마치 왕복 1시간 반 이상이 걸린다.
하필 오른발이라서 도저히 운전을 못할 상황이라 주저하고 있었더니, 웬일로 우리 집 양반이 데려다주겠단다.
병원에서 기다리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양반이라, 난 늘 혼자서 병원을 다녔다.
수면 내시경도 혼자 가서 했었고, 심지어는 백내장 수술도 혼자 갔었다.
백내장 수술하러 혼자 갔다는 소리에, 주위에서 하던 말이 생각이 난다.
아무리 사이가 나쁜 부부라도 백내장 수술만큼은 함께 간단다.
하루 걸러 양쪽을 다 수술받고 나서, 혼자서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헤매면서 집으로 향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다행히 육지에서 살 때라, 교통편이 괜찮았다.
“이래서 백내장 수술만큼은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함께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슬픈 미소를 짓던 생각이 난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이가 나쁜 부부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남편에 대한 지나친 배려로 혼자 청승을 자처한 것이다.
그랬던 양반이 웬일로 자기가 먼저 병원을 데려다준다고 해서 놀랬다.
일반 가정에서는 아마도 지극히 당연한 것일 텐데, 이런 대접을 못 받고 살았던 나한테는 너무도 감동스러운 순간이다.
별게 다 감동이다.
그러면서 기어코 또 한마디 한다.
“잔디 깎아야 하는데… ”
다른 때 같았으면 마누라 병원보다 잔디가 우선이었을 텐데, 이 사람도 이젠 늙나 보다.
마나님 병원이 우선인 것을 보면…
그렇게, 든든한 남편을 보호자로 옆에 두고 병원에 도착했고, 진료를 받았다.
당연히 무지 외반증의 급성 염증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들은 의사 선생님의 진단은, 류마티스 관절염이었다.
또 한 번 머릿속이 하얘졌다.
또다시 시련이 찾아온다.
아마도 이번엔 더 길고, 더 고통스럽고, 완치라는 단어조차 애매한 류마티스라는 병과 또 싸워야 한다.
그나마 골다공증이나 당뇨, 녹내장 같은 병은 이토록 끔찍한 고통이 동반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노력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조금 수월하게 넘긴 것 같은데, 이번엔 다르다.
류마티스라는 병이 끔찍한 통증을 함께 하는 것이다.
통증이 삶을 찢고 들어온다.
욱신 거리면서 쑤시는 것이 너무도 기분이 나쁘다.
류마티스는 내가 생각했던 단순한 관절염이 아니었다.
“자가면역질환”
즉 내 몸의 면역체계가 헷갈려서 적이 아닌 나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병이었다.
심장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폐까지 침범할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들의 강의에 마음이 있는 대로 가라앉았다.
생각해 보면,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내 몸이 세월 따라 늙어가듯, 그 안에 있던 든든한 면역세포들 역시 이제는 나처럼 지치고, 헷갈리고, 힘이 부치는 게 아닐까…
젊은 시절엔 감기 바이러스만 스쳐도 “네 이놈, 네가 바로 적이구나~~” 하며 기세등등하게 맞서 싸우던 내 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골 하나, 관절 하나조차도 낯설게 느껴졌는지 그걸 적으로 오해하고 공격하는 걸 보면, “그래, 너도 나처럼 늙었구나..” 하는 마음에 왠지 짠한 연민이 밀려온다.
적과 아군도 구분 못할 만큼 헷갈리는 내 몸 안의 늙은 병사들, 그들도 평생 나를 지켜주느라 지쳤을 테니, 그저 고맙고, 미안하고, 안쓰럽다.
칠십 대에 접어드니, 기다리는 사람은 소식이 없고, 부르지도 않았건만 반갑다며 먼저 찾아오는 손님들이 생긴다.
이름하여, 백내장, 녹내장, 골다공증, 근감소증, 퇴행성 관절염, 통풍, 그리고 류마티스 관절염.
이쯤 되면 거의 단체 방문이다.
커피라도 한 잔 내어드려야 할 판이다.
정말이지, 초대하지도 않았고, 기다리지도 않았건만 이 친구들은 꼭 약속이나 한 듯 슬그머니 찾아와 내 몸 구석구석 자라를 잡는다.
어쩌겠는가…
이미 들어앉은 손님이라면 억지로 쫒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기왕이면 정 붙이고, 사이좋게 지내보는 수밖에.
함께 걷고, 함께 달래며, 가끔은 투덜대도 결국은 내 삶의 일부로 안고 가야하는 친구들이다.
이 병은 하루아침에 나을 병이 아니고, 앞으로 내 삶에 또 어떤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아직 시작일 뿐인데, 벌써부터 마음이 지친다.
간신히 산을 넘었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또 마주친 산이라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탈진 상태다.
“이젠 제발 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이젠 그냥 조용하고 편안한 날들을 살고 싶다.”
“더 이상은 버티기도 힘들다.”
이런 마음이 스르르 올라온다.
왜 내 인생은 이토록 고달플까…
그렇게 열심히,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아왔건만, 왜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그래도 또 살아야겠지…
그래도 나는 안다.
나는 버텨낸 사람, 아니, 이겨낸 사람이다.
허리 통증도, 뼈 속 깊은 골다공증도, 언제 무너질지 몰랐던 당뇨도, 움켜쥘 수 없어 속상했던 내 손가락의 장애까지도, 나는 모두 넘어섰다.
그 고비마다 나를 다시 일으킨 건 약도, 병원도 아닌 내 안에 살아 숨 쉬던 ‘의지’라는 힘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또 한 번 나를 살려볼 참이다.
지난번 골다공증과 당뇨를 기적처럼 이겨내서인지, 다행히 이번에는 중증은 아니란다.
아직은 희망이 보인다.
그 한 줄기 빛을 놓치지 않고 나는 또다시 일어설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정성으로 인내로, 그리고 내 안의 꺼지지 않는 의지로…
아직은 우리 집 양반의 보호자라는 타이틀을 지켜야 하니까…
하늘이 도와주시리라 믿는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프고,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지만, 산을 넘으면 또 산이지만, 그 산 중턱에도 분명 들꽃은 핀다.
오늘은 울어도 괜찮다.
내일의 나는 웃을 것이다.
끝이 아니라, 여정이다.
산 넘어 산, 이토록 아픈 인생일지라도, 그래도 살아야 한다.
아직 난 우리 집 양반의 보호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