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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은 늘 ‘더’ 하라고만 할까?

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by 업글할매

세상은 참 끊임없이 요구한다.


조금만 멈춰도 안 된다고 다그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고 소리친다.


얼마 전 나민애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가 마음을 콕 찌르는 말씀을 들었다.


“세상은 자꾸 뭘 더 하라고 한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마치 답답한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는 말 같았다.


요즘 젊은 세대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더 쌓아야먄 인정받는 사회.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데, 자꾸만 모자란다고 채찍질하는 세상.

그래서일까, 많은 젊은이들이 오늘도 어깨가 무겁다.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서울대 교수님이신 나민애 교수님은 강의 도중 이런 이야기를 꺼내셨다.


“서울대생들조차도 질문에 자신 있게 손을 못 든다.”


처음 들었을 땐 조금 의아했는데, 이유를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혹시라도 완벽한 답을 못할까 봐 두렵고, 틀렸다는 낙인이 찍힐까 봐 아예 입을 꾹 다문다는 것이다.


사실 지식의 세계에서 ‘틀림’은 새로운 깨달음으로 가는 출발점이다.


넘어져야 일어나는 법을 배우듯이, 잘못 말해야 더 정확한 답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회는 그 틀림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한 번의 실수에도 따가운 눈총이 돌아오고, 완벽한 답만 요구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러니 젊은이들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괜히 잘못 말했다가 창피만 당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앞서니, 무언가를 시도하기보다는 차라리 안전한 침묵 속에 숨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더 해야 한다"라는 강박이 도전의 싹을 잘라버린다.


손을 드는 순간 열릴 수도 있었던 기회들이, 조용히 접힌 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고, 또 해왔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런데도 세상은 멈추라고 하지 않는다.


멈춤의 순간을 허락하기는커녕,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세우라 하고 더 높은 성과를 내라며 독촉한다.


과연 이런 세상 속에서 젊은이들이 편히 숨 쉴 자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나민애 교수님의 그 물음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교수님 말씀대로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미 충분히 잘해왔고,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데 말이다.


우리가 쌓아온 성취와, 매일을 살아내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실은 행복할 수 있음을, 많은 이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를 요구하며 사람들에게 만족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결국 젊은이들은 성취와 환희를 누리기보다 지독한 피로를 안은 채 살아가고 만다.


지금 이대로도 빛나고 있고, 이대로도 충분히 존귀하다.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세상이 자꾸 “더”를 요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끊임없는 비교 때문이라고 나민애 교수님은 말씀하신다.


SNS를 열면 누군가는 더 잘나가고, 더 멋진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에서는 성과를 수치로 비교하고, 학교에서는 등수를 매겨 학생들을 줄 세운다.


이 비교의 잣대가 사람들을 몰아붙이는 것이다.


나 자신이 이미 충분히 괜찮다는 사실은 가려지고, 남들과 비교했을 때 모자란 부분만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쉼 없이 달리지만, 도착지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결과, 요즘 젊은 세대는 설자리를 잃고 있다.


쉼 없이 달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 속에서, 잠시라도 멈추면 낙오자가 된다.


그러니 매 순간 불안하다.


언제나 더 잘해야 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행복을 느낄 틈조차 없는 것이다.


사실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인정받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더 높은 스펙, 더 많은 능력, 더 큰 성취를 요구한다.


그럴수록 젊은 세대의 삶은 점점 더 고달파지는 것이다.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그러나 행복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가진 것에서 만족하고, 작은 성취를 기뻐할 줄 알 때 행복이 찾아온다.


세상이 더 하라고 부추길 때, 오히려 잠시 멈추어 서서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나민애 교수님의 가르침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삶은 경쟁이 아니라 여정이다.


더 멀리 가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


”나는 이대로 충분하다"라고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설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나민애 교수님 말씀처럼, 세상은 끊임없이 뭔가를 더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들고 보니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잠시 멈춰도 괜찮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이 한마디가 젊은 세대에게는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세상이 더 하라고 말할 때, 우리 스스로 ”이만하면 충분하다"라고 말해주는 연습을 하자.


그래야 젊은 사람들이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다시 웃으며 살아갈 힘을 얻을 것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너무 많이 아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넘어지며 배우는 것도 의미 있지만, 굳이 피 흘리며 버텨야만 청춘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저릿할 만큼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 모습이 안쓰럽고, 또 안타까워서 나의 가슴까지 아려온다.


청춘이 꼭 아픔으로 증명되지 않기를, 그들의 오늘이 조금은 더 따뜻하고, 조금은 더 가벼웠으면 좋겠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나민애 교수님은 특별한 처방을 내리신다.


그럴 때는 책을 쓰고, 글을 쓰라“는 것이다.


어쩌면 고통은 말로 다 꺼내지 못해 더 무겁게 가슴을 누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하면, 아픔은 문장 속으로 스며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서서히 해소된다.


마치 상처 난 곳에 바람이 닿으며 서서히 아물듯이, 글은 마음을 다독이고 삶을 치유하는 힘이 된다.


그래서일까.


펜을 드는 순간, 눈물은 잉크로 바뀌고, 고통은 한 편의 이야기로 피어난다.


그렇게 쓰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은 조금 가벼워지고, 세상은 다시 견뎌낼 만한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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