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예전에는 문해력이라고 하면,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뜻했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세상은 점점 디지털화되면서 문해력의 범위가 확장되었다.
단순히 활자를 읽고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넣고, 태블릿으로 자료를 읽으며, 유튜브에서 정보를 찾고,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힘까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문해력이다.
예전엔 글자를 몰라서 생겼던 문맹이, 이제는 기계를 다루지 못해서 생기는 디지털 문맹으로 바뀐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철저히 디지털 문맹이었다.
소위 말하는 컴맹 세대이다.
책을 통해서만 모든 지식을 전달받았던 그런 때를 보낸 것이다.
책장을 넘기며 세상을 배웠고,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지혜를 익혔다.
다행히 책과 늘 가까이 지내다 보니, 덕분에 기본적인 문해력만큼은 잃지 않고 살아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전환점이 찾아왔다.
김난도 교수님의 “2020 트렌드 코리아”에서 만난 단어, 바로 “업글인간”이었다.
인간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말, 그 짧은 문장이 내 마음에 깊은 파문을 일으켰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
”나도 변해야 한다. 그대로 머물러선 안 된다.“
그 순간, 다짐이 생겼다.
그때부터 나는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새로운 배움의 길을 걸었다.
요즘 가장 중요한 건 AI 리터러시다.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능력이 새로운 문해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요즘 세상은 ‘리터러시 (literacy)’라는 단어가 여기저기 붙는다.
디지털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유튜브 리터러시, 심지어 키오스크 리터러시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런 리터러시에 도전하고자 아이패드를 사고, 태블릿 리터러시를 쌓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했다.
단순히 미디어를 보는 것을 넘어서,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글도 남겨보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익혔다.
유튜브 세상도 그저 들여다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검색도 하고,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대로만 보지 않고, 내가 주체적으로 필요한 것을 찾아나가는 유튜브 리터러시 또한 쌓아나갔다.
덕분에 이제는 두렵고 낯설기만 했던 “AI 리터러시”라는 새로운 도전에 당당히 맞설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여러 종류의 AI 리터러시가 있지만, 사실 우리 삶 속에 가장 먼저 자리 잡은 리터러시는 따로 있다.
바로 키오스크 리터러시다.
요즘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주문하려 해도 화면을 눌러야 하고, 맛집을 찾아가면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마중 나오는 건 점원이 아니라 자동화 기계다.
이제는 글자만 읽고 쓸 줄 알아서는 세상을 헤쳐나가기 어려워진 것이다.
나 역시 처음 키오스크 앞에 섰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거의 외식이라는 것을 하지 않다 보니, 이런 낯선 기계를 마주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집에서는 나름 아이패드를 자유자재로 다룬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처음 보는 기계 앞에서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화면을 천천히 살피며 주문을 시도하는 사이, 내 뒤에 길게 늘어선 손님들의 눈빛이 따갑게 꽂혔다.
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손가락은 더 굼떠졌다.
그때의 당혹감은 마치 시험장에 앉아 문제를 풀지 못할 때 느끼는 압박감과도 같았다.
“왜 이렇게 느리냐~~”라는 말은 없었지만, 등 뒤에서 전해지는 초조한 기운은 말보다 더 무거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사람은 배우면 달라진다.
처음에는 일부러 맨 뒤에 서서 내 뒤에 손님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조심스레 주문을 시도했다.
그때의 나는 마치 연습생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메뉴를 고르고 결제 버튼을 힘들게 찾아 눌렀다.
지금 생각하면 웃픈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그 조차도 작은 전쟁 같았다.
그런 과정을 지나고 나니, 이제는 키오스크가 그리 두렵지 않다.
메뉴를 고르고, 결제까지 척척해내는 내 모습을 보면 스스로도 뿌듯하다.
작은 기계 앞이지만, 그것을 해내는 순간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어르신들에게 키오스크는 ‘산 넘어 산’이다.
글자는 읽을 줄 알아도, 화면 구성과 절차는 도통 알 수 없는 새로운 언어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수 있는 “AI 리터러시“에 대한 공부를 해야만 한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이런 변화를 대비할 줄 아는 나라다.
읍사무소, 주민센터, 평생학습관 곳곳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강좌가 많이 있다.
친절한 강사들이 하나하나 가르쳐 주고, 때로는 손을 잡고 도와준다.
덕분에 머지않아 많은 노인들이 키오스크 앞에서도 당당히 설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단순한 기계 사용법이 아니다.
어르신들이 사회 속에서 당당히 살아가는 자존심을 지켜주는 일이다.
기계 앞에서 스스로 주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고르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 앞에서 ”나도 여전히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작은 혁명이다.
이제는 아무리 노인이라도, 키오스크 앞에서는 당당해야 한다.
안 그러면 그저 주문 한 번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는 민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AI 리터러시가 거대한 시대의 화두라면, 키오스크 리터러시는 노년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실천적 지혜다.
문해력이 글자를 읽는 힘이었다면, AI 리터러시는 AI를 다루는 힘이다.
단순히 검색창에 글자를 치는 것을 넘어서, AI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지, AI가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고 어디서부터 한계를 가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AI 리터러시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질문하는 힘이다.
질문은 아무렇게나 던진다고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어느 정도 핵심을 알고 있어야, 그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질문이 나온다.
예를 들어 “오늘 날씨 알려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건강 상태와 오늘 날씨를 고려했을 때, 오늘은 어떤 운동이 적절할까?”라는 질문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런 질문은 내가 이미 조금이라도 기본 지식을 갖추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AI 리터러시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깊은 사고와 인간적 역량을 함께 요구하는 새로운 문해력이다.
AI가 많은 것을 대신해주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럴수록 인간의 깊이가 더 필요하다고 김난도 교수님은 “2026 트렌드 코리아”에서 강조를 하신다.
얕은 지식은 AI가 줄 수 있지만, 감동과 사유, 공감은 오직 사람만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AI 리터러시를 키운다는 건 단순히 도구를 배우는 게 아니라, AI와 협력하면서도 인간다운 능력을 지켜내는 일이다.
지금 나는, 문해력에서 AI 리터러시까지, 디지털 문맹 탈출이라는 긴 여정을 걷고 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미 넘어지고 일어난 경험이 많아서 크게 겁나지 않는다.
꿰매고 또 꿰매며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배우면 된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배우는 태도인 것 같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듯, 더딜지라도 꾸준히 가면 언젠가는 가까이 다가설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디지털 문맹 탈출의 작은 승리를 향해 계단을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