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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Dec 23. 2023

미국에서 온 손님들 제주도 표류기

행복한 역이민 생활

드디어 오늘 미국에서 온 손님들의 7박 8일 여정을 생각보다 무사히 끝냈다. ​아침에 공항까지 모셔다 드린 것으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한 것이다.

그냥 얼굴 한 번 보기 위해서 잠깐 들른 것이 아니라 ​자그마치 7박 8일을 함께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미루어 짐작할 것 같다.

육지에서의 2박 3일은 그나마 호텔에서 있었고 나머지 5박 6일은 온전히 제주도 우리 집에서의 숙식제공 풀옵션이었다.​

그전에 어떤 노부부가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난다.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시는 분들인데 명절 때마다 찾아오는 아들 며느리랑 손자 손녀가 찾아올 때는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쳐나갈 정도로 찾아와 준 것이 고마웠다가 ​막상 며칠을 난리를 치면서 지내다 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줘서 더 고맙다는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노부부가 둘이서 조용하게 지내던 것이 이미 몸에 익숙해져일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간다.

완전 내 생활의 패턴이 바뀌는 것이다. 내 모든 루틴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 대신 그 덕분에 집에만 있던 우리 집 양반이 지인들 덕분에 자그마치 7일을 밖에서 걸어 다니고 하루 한 끼는 외식을 할 수가 있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7박 8일의 여행은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남과 함께 여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다.

그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 우리 집을 찾아왔지만 기껏해야 2박 3일 정도 머물고 간 것이 전부였다. ​7박 8일을 함께 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미국에 사는 가족들은 왔다 하면 한 달 이상 머물고 간다.

굉장히 까탈스럽고 사람 낯가리기가 심한 사람이 희한하게도 누군가가 한국에 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무조건 우리 집으로 오란다. ​그러고는 숙식 제공을 한다. 나머지는 약간 모자란 마누라가 알아서 한다. 어쨌거나 우리 집 양반의 친구분 내외 덕분에 모처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2박 3일의 육지 여행을 마치고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오는데 제주도가 가까워지자 어디서 큰 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친구분이 놀라서 물었다. 저기 저 큰 섬이 뭐냐고~~ 옆에 계시던 분이 제주도라고 하니까 미국에서 오신 두 사람의 눈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기네는 섬이 너무 커서 어디 인천 같은 데로 잘 못 가는 줄 알았다고 해서 전부들 한바탕 배를 잡고 웃었다.

미국에 사는 많은 한국 교포들이 대한민국의 변한 모습을 TV에서나  봤지 막상 와서 직접 눈으로 경험을 못하다 보니 ​한국이라는 곳은 자기네들이 떠났을 당시의 모습으로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개중에는 여유들이 있어서 가끔 한 번씩 한국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직도 미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현실은 비행기 표가 너무 비싸서 20~30년을 살아도 한 번도 한국에 못 나오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의외로 많은 것에 놀랄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너무도 잘 살고 너무나 물가가 비싼 나라가 됐다는 사실이 다시 돌아오고 싶어도 못 돌아오게 발목을 붙잡고 있기도 한다.


어쨌거나 제주도가 이렇게 큰 섬이었다는 것을 가까스로 인지를 하면서 배에서 우리 차로 갈아타고는 드디어 제주도 땅을 밟았다. ​도착한 시간이 저녁 6시였는데 이 시간의 제주도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길이 얼마나 복잡하고 험난한 가를 제주도 사는 우리조차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제주도에 산다고는 하지만 시골구석에 살다 보니 저녁에는 전혀 나올 일이 없이 살던 사람들이라 제주도의 시내의 밤 풍경을 어찌 그려봤겠는가~~ ​서서히 제주도 시내에 들어서니까 차가 막히기 시작하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우리 지인들 눈이 얼마나 커지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친구분 하시는 말씀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본인은 제주도라고 해서 예쁜 바닷가 근처에 집 몇 채 정도만 있는 줄 알았단다. ​그동안 서울은 여러 번 왔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변한 모습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제주도가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모르셨단다.

우리 집 양반의 한 마디에 또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미국 촌놈들이 한국에 와서 출세했단다.

아마도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미국에서의 이민 1세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들을 했는지, ​한국 사람이라고 업신 당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은 피눈물들을 흘렸는지, ​그렇게 일만 하고들 살다 보니 한국처럼 여기저기 많이들 놀러 다니지를 못했다. 그래서 한국에 오면 자연히 미국 촌놈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인터넷 세상이 되었다. 지금 당장 미국에 이민 간다고 해서 크게 한국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 때만 하더라도 언제 이민 왔냐에 따라서 그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가 완전히 틀렸었다.

60년도에 이민 간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생각들이 60~70년도에 머물러 있었고 ​90년도에 온 사람들은 90~2000년도 수준에 머물고 했었다. ​고정관념이 박혀서 바뀌지를 않았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꼰대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초 스피드 시대가 되어서 LA 같은 데서는 한국에서 아침에 유행하는 것이 있으면 저녁에는 그 물건들을 받아 볼 수가 있을 정도로 이제는 미국에서 사나 한국에서 사나 변화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

우리 집 양반이나 친구분이나 미국에서 고생 고생하다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이 20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하니 그렇게 힘들게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얼마나 들 놀랬을까가 상상이 간다.

그래도 그때는 미국에서 왔다 하면 대단한 환영을 받았단다. 미국 신사 왔다고 ~~

지금은 미국 촌놈으로 바뀐 것뿐이다.


복잡한 시내를 간신히 빠져나와서 애월에 있는 바다뷰 치킨 맛집이라고 소문난 오태식 해바라기 치킨집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의 자랑 “치맥”이다. 누가 그 이름을 “치맥‘이라고 했던가 ~~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맛!

영원한 친구의 맛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우리 곁을 지켜주고 위로해 주는 남의 편인 남편보다 더 따뜻한 친구이다.

​​​​

육지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기대에 부풀었던 전주 한옥마을의 수제 맥주를 기어코 못 먹고 왔다. ​그 한풀이를 하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치맥을 반드시 먹을 것이다라면서 용감하고 당당하게 들어갔다.



내가 오태식 해바라기 치킨의 애월점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 오다리 튀김 때문이다. ​처음에는 “오다리”가 뭔지 몰라서 조금은 이상하고 생소한 이름에 망설였는데 오징어 다리 튀김이라는 소리에 맘 놓고 시켰더니 너무도 맛있어서 우리 집 양반까지 덩달아 놀랬었다.

그다음부터는 이 오다리 튀김이 먹고 싶어서 가끔 한 번씩 들러서 포장을 해 갔었다. ​외식을 죽어라고 안 하는 양반이지만 이렇게 포장을 해서 가져가서 먹는 것은 뭐라 안 한다.

하지만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라 튀김류는 무조건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고래 심줄 같은 우리 집 양반의 고집을 꺾을 재간이 없길래 ​그래도 못 먹는 것보다는 포장이라도 해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가끔 들리는 곳이다.

역시나 미국 촌놈들께서 비주얼과 맛에 놀라서는 모처럼 체면 불고하고 아주 맛있게 잘 드셨다. ​감자튀김은 우리 집 양반이 좋아해서 시켰다. 미국에서 자주 사 먹던 서민 음식인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가 ​미국에서는 질려서 먹기가 싫더니 막상 한국에 다시 나오니까 그때 그 시절 미국에서 먹던 음식이 거꾸로 생각이 난다. 그래서 가끔 한 번씩 프렌치프라이를 사 먹는다.

비록 이름은 조금 이상했지만 특이하게 아주 맛있는 오다리 튀김은 아마도 앞으로 오랫동안 나의 사랑하는 안줏거리로 자리 잡을 것 같다.

다이어트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늘 윙을 시킨다. 그것도 반반 윙으로 주문한다. ​한쪽은 크리스피로 하고 다른 한쪽은 간장 치킨이다. 나는 크리스피를 좋아하는데 우리 집 양반은 간장 양념이 맛있단다. ​어쩜 이리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도 오랜 세월을 같이 하고 있는지 이것 또한 모를 일이다.

제주도에 도착하니까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서 조금은 쌀쌀한 느낌까지 들어서 김치 어묵 우동이라는 것도 시켰다. ​이게 또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모두들 배불러 죽겠다면서도 전부 다 비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불러서 죽었다는 사람은 못 봤다. ​있을 때 먹고 땡길 때 먹고 싶은 만큼 먹자. 절대 안 죽는다. ​오랜만에 먹은 치맥이 엄청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만난 저녁 식사가 아주 기분 좋고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해 줬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는 이렇게 비가 멈추고 제주도 특유의 상쾌한 공기가 멀리서 온 손님들을 맞이해 줬다. ​답답한 호텔에서만 있다가 이렇게 조용하고 한적한 집으로 오니까 너무 편안하고 좋아서 잠을 잘 주무셨단다.

어제까지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제주만의 상쾌하고 싱그러움에 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국의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먹고는 실버타운에 대해서 공부하고 계획까지 세우면서 단단히 각오하고 오셨다는 분이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마음이 바뀌었단다. ​실버타운은 잊어버리기로 했단다. 그 대신 제주도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해서 또 한바탕 웃었다.

아침은 집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로 해결을 하고 제주도에 왔으니까 우선은 바닷가부터 가보자고 해서 산방산 쪽으로 향했다.

제주항에서 시내를 지날 때 하고는 전혀 다르게 확 뚫린 도로에 차도 별로 안 다니면서 경치 또한 기가 막힌 것에 미국 촌놈들 또 놀란다.​ 이런 곳 같으면 우리도 운전할 수 있겠다고 해서 또 웃었다.

그 오랜 세월을 미국에서 무사고로 운전했던 사람들이 한국에만 오면 겁이 나서 운전들을 못한다. ​우선은 도로 폭이 너무 좁아서 꼭 차가 부딪힐 것 같아 불안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그다음은 죽어라고 양보 안 해주는 것이 힘들고 무슨 서커스 곡예 하듯이 달리는 차들이 무섭다고 한다. ​게다가 무슨 도로가 오거리 육거리가 있냐면서 놀라느라고 정신이 없다.

우리도 처음에 왔을 때는 도저히 운전을 못 할 것 같았는데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운전하고 다닌다. ​누구나 미국에서 오면 처음에는 후면 주차라는 것을 겁이 나서 못한다.​지난번에 미국에서 동생이 놀러 왔을 때 제주도에서 운전해 보고 싶다고 해서 핸들을 넘겨줬는데 주차장에서 기어코 내리더니 나보고 차를 대란다. 영 자신이 없어서 뒤로 못 대겠다고 해서 웃었던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생전 가야 후면주차를 하는 경우가 없다. 워낙 주차장이 넓다 보니 휙 가다가 아무렇게나 차를 앞으로 세워도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이 그냥 주차가 된다. ​그만큼 간격이 넓다. 차 댈 곳이 없어서 주차장을 찾아다니는 일도 없다.

어디를 가나 기본적으로 어마어마한 주차장이 있다 보니 전혀 주차하는 데 스트레스를 받아 본 적이 없다가 한국의 주차난이 심각한 것에 그만 운전할 자신이 없어진단다.

게다가 제주도에는 유난히 좁은 골목들이 많아서 이 골목들을 지나갈 때마다 미국 촌놈들의 “ 오 마이 갓 !” 이라는 곡성이 터져 나온다. ​이제는 느긋하게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웃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제서야 우리도 진정한 제주도 도민이 됐구나 하는 자부심이 들기도 한다.


미국에서 온 손님들이 산방산의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지를 못한다. 무슨 산이 이렇게 희한하게 생겼냐면서 마냥 신기해한다. 이 근처가 겨울부터 봄까지는 완전 유채꽃으로 뒤덮이면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서 티비로 봤다면서 사진 찍기 위해서돈을 내고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너무도 신기했단다.



저기 보이는 두 섬이 이곳의 명물인 형제섬이라고 했더니 나이 차가 좀 있어 보인다 해서 또 웃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이래서 좋은가보다. 괜히 실없이 한 마디 툭 던지고는 마냥 즐거워하는 것이 마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해서 기분이 참 좋았다.


산방산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다 보니 어느덧 점심때가 되어서 산방산 근처 맛집인 젠 하이드어웨이 식당으로 향했다. ​육지에서 손님들이 오면 무조건 들리는 곳이다. 절대 실패하지 않을 만큼 근사한 곳이다.

우리 집 양반 하는 말이 육지에서 온 손님들 기 죽이고 싶으면 여기로 데리고 오면 된다고 해서 또 웃었다.

우물 안 개구리라고 우리는 주로 여기만 와 본 사람들이라서 다른 곳에 더 근사한 곳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그래도 정말 맛있고 뷰 또한 근사해서  일단은 손님만 모시고 오면 무조건 대 만족들을 하신다.

역시나 미국에서 오신 손님들 기가 팍 죽었단다.

물론 서울에 가면 더 근사하고 맛있는 곳이 널려 있겠지만 이런 제주도 만이 갖고 있는 특별함은 아마도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다음 날은 제주시에서 꽤 유명하다고 알려진 동막골 동태탕 집을 일부러 찾아갔다. 인터텟에 뜬 사진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찾아갔는데 역시나 최고였다. 우리 손님들 또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미국에서는 이렇게 맛있는 것을 못 먹는다면서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한다.

아무래도 모든 것이 냉동 상태로 오래된 것 들이 많다 보니 한국에서 먹는 것처럼 싱싱하고 맛있지가 않다는 것이 많은 이민자들의 공통된 생각 같다. ​이런 동태탕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파는 많은 식품들이 한국에서 먹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미국에서 살 때도 워낙 누룽지를 좋아해서 한국 마트 가면 늘 누릉지를 사 오곤 했었는데 그때는 모르고 먹었던 것이 막상 한국에 나와서 누룽지를 사 먹었더니 그 맛이 완전히 다름에 놀란 적이 있었다. ​신선도가 틀린 것이었다. ​어쨌거나 동막골의 동태탕들을 먹으면서 뭐니 뭐니 해도 신토불이가 최고다를 외쳐본다.


제주도를 이야기하면서 오름을 빠트릴 수가 없어서 당연히 새별오름으로 향했다.​​ 이날따라 어쩜 그리도 하늘이 맑고 예쁜지 하늘만 쳐다봐도 행복했을 텐데 걸으면서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의 아름다운 모습에 다시 한번 감탄들을 하면서 걸었다.

진짜 제주도의 하늘은 예술 그 자체이다.

노인네들이라 걱정을 했는데 다들 노익장을 과시라도 하듯이 아주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다음 날은 애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담 해안 도로를 걸었다.그 먼 미국에서도 “효리네 민박”을 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니 효리 덕분에 제주도가 참 많이 알려진 것은 사실이다.

우리 같이 이효리가 누구인지도 몰랐던 사람들도 이제는 제주도 하면 이효리가 먼저 생각날 정도이다.

애월 바다의 아름다움에 또 한 번 놀라고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에 다시 또 놀란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들 한다. 여기가 제주도야? 하와이야?

물론 우리 미국 촌놈들은 아직까지 하와이도 못 가봤다.그러면서 하와이냐고 물어본다.


애월의 유명한 노을을 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흐려진 구름 때문에 타는 노을은 볼 수 없었지만 구름 사이로 간간히 스며나오는 햇빛과 어두운 구름의 조화가 또 색다른 멋을 풍기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멋있고 신비롭다.어쩜 그리도 매일 보는 하늘이 이토록 매 순간 다를 수 있는지 이것 또한 모르겠다.



걷기에 최적의 장소를 뽑으라면 아마도 한담 해안 도로를 뽑을 것 같다. 경사가 높지 않은 데다가 걸으면서 아주 가까이에 있는 바다를 볼 수 있고 제주도의 특징인 검은 돌에 부딪히는 파도를 감상하면서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낭만의 길을 걸을 수가 있다.

이 예쁘고 걷기에 좋은 한담해변도로가 우리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복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단지 삼식이 아저씨라는 변수만 빼면 제주도라는 곳은 섬 전체가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곳이다.



한담 해안 도로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꽃이다. 난생처음 보는 희한하게 예쁘게 생긴 꽃 앞에서 우리 일행은 동시에 그 꽃 앞에 멈춰 섰다. ​도대체 이 꽃이 뭔지 아무도 몰랐다. 참 바보 같다. 네이버렌즈를 키면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생각을 못 했었다.

아마도 손님 치르느라고 피곤해서 내 정신이 아닌 데다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수준에 맞추다 보니 내가 이런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어버린 것 같다. ​이래서 늘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집 양반이 왜 그토록 실버타운을 안 가려고 하는지 이제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이 묘한 꽃 앞에서 전부들 한 마디씩 한다. 이게 만든 것일까 ~~ 자연산일까~~ 어떻게 한 곳에서 두 가지 색이 원을 만들었을까~~노인네들끼리 아무리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해봤자 답이 없어 아쉬움을 남긴 채 발 길을 돌렸다.



이번에 미국에서 온 손님들은 나하고는 다르게 입이 굉장히 짧았다.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먹는 양도 아주 작았다.저렇게 먹고 어떻게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건강에 대해서는 워낙 철두철미해서 아무런 대책 없이 먹어대는 나보다는 오히려 더 건강한 것 같다.

애월에 있는 고기 왕이라는 곳을 전에 한 번 와봤는데 고기의 질이 아주 좋아 맛있게 먹었던 기억에 특히나 돼지고기를 잘 안 먹는다는 손님들을 용기를 내서 모시고 와봤다. ​제주도에 오면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라면서 제주도의 흑돼지 구이를 추천했다.

별로 기대를 안 하고 온 사람들이 어쩜 그리도 잘 먹는지 웃음이 날 정도였다. 멸치 젓에 고기를 찍어 먹는 것이 신기했는지 계속 찍어서 먹어본다.

물론 미국에도 근사한 바비큐 식당들이 많지만 이렇게 제주도의 흑돼지를 제주도에서 직접 먹을 수가 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분위기와 맛이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맛있다고 하면서 생각 외로 잘 먹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처럼 찾아온 제주도의 여행이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이 됐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이번에는 월령리 선인장 마을이라는 곳을 다녀왔다.어떻게 바닷가에 있는 돌에서 선인장이 이토록 잘 자랄 수 있는지 올 때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또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 집 양반의 설명에 의하면 아마도 먼 멕시코 만에서 파도를 타고 흘러온 것이 바위에 붙어서 정착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정확한 사실이 아니니까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마지막 날에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협재에 새로 생겼다는 “웨이뷰”라는 베이커리 카페를 찾아갔다. ​제주도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미국 촌놈들 또다시 기가 팍 죽는 순간이었다. 우선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협재 바다를 끼고 바로 코앞에 비양도가 보이는 어마어마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날만 흐리지 않았더라면 더 근사했을 텐데

흐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멋있는 곳이다.



요새 제주도 카페가 이런 수준이라고 설명해 주면서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제주도 여행을 할 때

아예 카페투어라는 것을 한다고 아는 체를 했더니 또 놀라서 입을 다물지를 못한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 하도 입들을 많이 벌려서 입술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이다.바셀린을 준비해 줘야겠다.


친구분 와이프가 미국에서도 워낙 빵을 좋아해서 빵순이라고 한다. 다행히 한국의 베이커리 빵이 미국보다 훨씬 더 맛있다고 한다. ​나도 미국에 살 때는 미국 빵은 거의 안 먹고 한국 빵집을 찾아다녔다.소위 미국에서 샌드위치를 팔던 사람이 미국 빵을 안 먹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가게에서 장사를 할 때는 할 수 없이 먹지만 가게 밖을 벗어나면 이상하리만치 한국 음식만 찾게 되고 한국 빵집만 다니는 것이 아무리 미국 땅에 살고 있어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인 것이다. ​미국 빵은 크기도 엄청나고 값도 싸지만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달아서 못 먹을 정도이다. 어떨 때는 목이 아플 정도로 단것들도 있다. ​미국 음식의 특징을 대라면 달고 짜고이다.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한국에 와서 보니 빵도 맛있고 분위기도 근사하지만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모두들 또 놀란다. 그냥 계속 놀라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다. ​앞으로 처음 제주도를 찾아오는 미국 촌놈들한테는 바셀린을 선물할 예정이다.



육지에서의 우왕좌왕 2박 3일의 여행하고 제주도에서의 우리 집 숙식제공 풀옵션의 5박 6일 여행까지 합쳐서 7박 8일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 그럭저럭 행복하고 즐겁게 마무리가 되었다. ​

마지막 떠나는 날 공항 가면서 또 놀란 것 빼고는 ~~​


제주도 공항의 복잡한 모습을 보더니 왜 공항이 하나 더 안 생기냐고 뭐라 한다. ​얼마 전에 읽은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생각이 난다. ​환갑 넘은 빨갱이들이 무슨 혁신 어쩌고저쩌고 하냐고 ~~그러면서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고 하신 말씀이 이번 미국 지인들의 제주도 표류기를 통해서 그대로 재현이 됐다.

팔십 대 노인들이 그것도 한국에서 쭉 살아온 것도 아니고 머나먼 이국 땅에서 반 평생을 훨씬 넘게 살아온 사람들이 무슨 공항이 생겨야 한다, 한국의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등 ​이제 와서 무슨 혁신 운운하는지 이거야말로 정지아 작가님 말씀처럼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리 몸은 이국 만 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뼛속까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힘든 이민 생활을 견디면서도 시간만 나면 한국의 뉴스를 보고 한국 방송을 틀고

노래도 듣고 드라마도 보면서 향수를 달래는 것이다.

이민자의 설움이라는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다.

이제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점심 한 끼만 나가서 해결하고 아침저녁은 우리 집에서 내가 만든 음식으로 대접을 했다.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는 사람들의 집밥에 대한 그리움을 알기에 자청해서 나선 것이다. ​힘들지만 보람 또한 있었다.

평소 우리 집 양반의 늘 점잖고 예의 바른 것만 보다가 막상 한 집에서 허물 다 벗고 편하게 지내다 보니 ​드디어 평소에는 전혀 상상조차도 못했던 마누라한테 고약 떠는 우리 집 양반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친구분이 기어코 한 마디 하셨다.

거참 해도 해도 너무하네.나 같으면 진작에 쫓겨났을 거라면서 부처님 같은 마누라한테너무 힘들게 하지 말라고 아주 따끔하게 한 말씀하신다. 우리 집 양반의 오래된 친구분 덕분에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 것이다.

물론 다 깔깔거리고 웃었지만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신이 나서 그분 좋아하시는 것 물어보고는 부지런히 만들어서 계속 날랐다.

우리 집 양반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친구분이 맛있는 것 먹고 싶어서 괜히 나 창찬 한 것이니까 나보고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말란다. 좌우지간 고약한 남편이다.

우리 집 양반만 빼고 다들 고생했다고 해준다. 앞으로 육지에서 2주 정도 더 머물다 간다니까 이 사람 기어코 또 한마디 한다.


​가기 전에 한 번 더 오라고 ~~

이 사람도 늙어가 나보다. 그토록 사람 기피증이 심했던 사람이 이제는 사람이 그리운가 보다.

이러다가 미국에 있는 지인들 다 불러들일 것 같다. 이참에 커뮤니티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라는 당치도 않은 생각을 또 해본다.

이제는 서로서로 건강만 챙길 나이들이 됐다. 아무쪼록 서로들 아무 탈 없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남은 인생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아무리 남의 편인 남편이라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부부밖에 없다는 것을 이번 지인의 방문으로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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