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역사보다 사람을 남긴 영화

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by 업글할매

늘 집에만 있으려는 남편 덕분에 우리 부부는 정말 가뭄에 콩나듯이 영화를 보러 간다.


“굳이 나가서 뭘 보러 가느냐~~”가 이 양반의 인생 철학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장안의 화제라는 소리에 큰 맘 먹고 남편한테 말을 꺼냈다.


“여보, 이 영화 안 본 사람은 우리 밖에 없어. 보러 갑시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단종 이야기잖아. 대한민국에 단종 이야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 뻔한 걸 뭐 하러 봐.“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단종은 이미 다 아는 이야기였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고,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어 짧은 생을 마친 비운의 임금.


남편은 조선 역사에 대한 책을 수도 없이 읽어온 사람이라, 영화가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괜히 속이 상했다.


거창한 감동이 아니라, 그냥 나란히 앉아 같은 화면을 보는 시간이 좋았을 뿐인데…


혼자 삐져있으니, 안돼 보였던지 남편이 말을 바꿨다.


“그래,가자~~”


그 한마디에 나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준비했다.


나는 배우 유해진을 좋아한다.


번듯한 미남은 아니지만, 사람 냄새나는 연기와 묵직한 깊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 집 양반은 다르다.

그에게 배우란, 최무룡, 신성일, 장동건처럼 잘 생기고 단정해야 한다.


예전에 유해진 배우님이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에서 지독하게 얄미운 일본군 앞잡이 역할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걸 또 얼마나 실감 나게 연기했던지, 보는 사람 속을 뒤집어 놓을 정도였다.


그때부터였다.

우리 집 양반 마음에 괜히 ‘미운 살’이 박혀 버린 것이.


배우가 연기를 잘한 죄밖에 없는데, 그 역할이 너무 완벽했던 게 문제였다.


해방을 겪고, 전쟁까지 치르며 살아온 세대에게 일본 앞잡이라는 단어는 그냥 설정이 아니다.


그건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상처에 가까운 단어다.


그러니 아무리 연기라 해도 그 모습이 쉽게 지워질 리 없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 유해진 배우님이 주연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남편은 대놓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 사람이 나와?”


결국 이번 극장행은 미운 마음을 슬쩍 접어 두고 마지못해 따라나선 발걸음 이었다.


chatgpt&그록에서 만든 이미지

영화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궁궐이 아니라, 영월의 바람 부는 청령포.

왕이 아니라, 유배된 소년 이홍위.

그리고 그를 감시해야 하는 촌장 엄흥도.


배우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는 권력자가 아니다.


그저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한 사람.

처음에는 의무로, 나중에는 마음으로 그 소년을 지켜본다.


말수가 줄어드는 장면, 눈을 피하다가 다시 마주치는 순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뒷모습.


옆자리에 앉은 남편의 모습에서 나는 새로운 표정을 발견한다.


웃음이 터지는 장면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다.


눈이 반달이 되고, 어깨까지 들썩인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그렇게 웃던 사람이 가슴 아픈 장면이 나오자 말없이 눈가를 훔친다.


참으려는 기색도 없이, 그저 조용히 눈물이 흐른다.


나는 그 모습을 흘끗 바라보았다.


신기하다.


무뚝뚝하고 현실적이고,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여겼는데 아직도 이런 부드러운 감성이 남아 있었다니…


세월이 사람을 단단하게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안에는 여전히 울 줄 아는 마음이, 웃을 줄 아는 순한 얼굴이 살아 있었다.


나는 영화보다 옆자리에 앉은 한 사람을 더 오래 바라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남편이 낮게 말했다.


“유해진이 , 저렇게 연기를 잘했나… ”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단종의 비극이 아니라, 그 곁에서 함께 살아야 했던 사람의 마음이 남편을 움직인 것이다.


그날 우리는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역사를 아는 것과, 역사를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연합뉴스 에서 가져온 이미지

이 영화는 뻔한 단종 이야기가 아니었다.


왕이 폐위된 이후,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몇 달을 조용히 비춘다.


권력을 잃은 자리에서 단종은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감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이 밥을 나누는 존재로.


왕이었을 때에는 수많은 신하와 군사가 있었지만, 유배지에서는 몇 사람의 백성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마지막 시간에야 그는 진짜 사람의 따뜻함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마을의 먹을거리를 위해 시작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한 끼라도 배불리 먹이겠다는 촌장의 소박한 마음.


그러나 경계는 연민이 되고, 연민은 존중이 되고, 마침내 충성과 의리로 이어진다.


힘에 굴복한 충성이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에 마음을 바치는 선택.


그 변화가 가슴을 뚫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이제라도 영월에 사람들이 많이 갔으면 좋겠다. 영월이 좀 혜택을 보면 좋겠어~~”


나는 순간 놀랐다.


사극을 싫어하던 사람이, 권모술수를 싫어하던 사람이, 조용히 지역을 걱정하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니, 이미 청령포로 향하는 배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부부, 눈물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이래저래 늙긴 늙었나보다.



600년 전, 촌장은 그저 마을 사람들이 따뜻한 밥 한 끼 먹기를 바랐다.


권력도, 명예도 아닌 밥 한 그릇의 평안.


그 소망이 세월을 건너 이제야 다시 빛을 보는 것 같다.


역사는 끝난 줄 알았다.


책 속에만 남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왕은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 곁을 지키던 사람의 마음은 지금도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역사를 본 것이 아니다.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결국 세상을 이기는 것은 칼이 아니라 마음이고, 권력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600년이 지나도 사람의 따뜻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을 끝내 이기는 건 힘이 아니라 착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노인 아닙니다 아직도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