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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Dec 29. 2023

초보 노인입니다

업글할매 책방 #15

초보 노인이라는 말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냥 노인이라고 하면 약간 쓸쓸한 느낌이었을 텐데 노인이면서도 초보 노인이라니까 미안한 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뭐든지 초보라는 말에는 이상하게 관대해진다.


김순옥 작가님은 교사 은퇴 후에 실버 아파트에 입주할 당시만 해도 ​자신을 노인이라고 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를 않으셨단다.

제10회 브런치북 수상작인 “초보 노인입니다”는 ​이제 막 노년기에 진입한 60대 저자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 작품이다. 아마도 이 책은 젊은 노인들을 위한 지침서가 될 것 같다.


작가님은 은퇴 후에 실버아파트를 알아보다가 ​전국 최대 규모의 분양형이라는 설명과 ​아파트에서 병원까지 전용 통로가 있고 ​내려다보이는 병원 뒤통수에 장례식장이 있다는 약간 조심스러워하는 직원의 말에 ​여기서 살다가 바로 장례식장으로 직행하면 되겠네라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그렇게 바로 실버아파트에 입주를 하셨단다.

노인이라고 불리는 분들한테는 이 실버타운이라는 곳이 최적화된 최상의 곳이겠지만 ​이제 막 60에 접어든 작가님한테는 아주 낯선 세계였다고 하신다.

내가 생각해도 이제 막 60에 접어든 사람들한테는 너무 이르지 않나 싶다. 이제 정말 노년기에 접어든 우리 부부도 평소에 실버타운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하다가 때마침 미국에서 아는 지인이 한국의 실버타운을 알아보기 위해서 일부러 방문을 한 덕분에 같이 실버타운을 돌아다녔다. 막상 자세히 보면서 다니다 보니 팔십 대인 우리 집 양반과 지인들도 자신들이 노인이라는 것은 잊어버린 채 아직은 실버타운이라는 곳이 많이 낯설어서 들어가기가 싫다고 했다. 그러니 이제 막 60인 초보 노인께서 벌써 실버타운에 들어가신다는 것은 당연히 많이 낯설었을 것이다.

100세 시대에 이제 막 60은 젊어도 너무 젊은 세상이다. ​작가님은 전혀 노인으로서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그냥 시작된 실버아파트에서 ​노인이 아닌 관찰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실버아파트의 생활을 이야기하신다. ​결국 2년 7개월 만에 실버아파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시고 떠나게 된다.




이미 많은 노인분들이 이런 실버타운이라든가 실버아파트에 대해서 많이들 생각하고 계실 것 같다.

당장 나부터도 하루 세끼 영양사가 해주는 밥 먹으면서 ​아무 때나 그냥 내려가서 즐길 수 있는 사우나가 있고 ​헬스장도 있으며 ​노인들한테 가장 중요하다는 대형 병원이 바로 코앞에 있는 ​이런 실버타운을 어찌 꿈꾸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계속 싫다고 우겨대는 신랑을 이길 자신이 없어서 우리는 일찌감치 포기를 했다.


무심코 들어왔던 실버아파트라는 곳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셨던 요양원과 너무도 닮은 모습에 ​내가 실버타운이 아니라 양로원에 들어왔구나.. 라면서 ​절로 한숨을 쉬셨다는 작가님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팔십에 접어든 우리 집 양반도 노인들만 있는 곳에 죽어도 가기 싫다고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데 ​이제 막 60을 넘긴 분한테는 당연히 너무 낯설고 이상할 것 같다.


단지 내에는 골프 연습장도 있도 수많은 동호회도 있단다. ​하다못해 “수다를 떱시다”, “소주 한 잔”이라는 동호회도 있단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곳이 탁구장인데 늘 만원인 데다가 ​탁구 선수 같은 복장과 표정의 노인들이 탁구장을 채우고 있는데 ​감히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해서 아예 탁구장에를 안 가신단다.

나 같아도 못 갈 것 같다.

일단 들어가면 전부들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이 할까 봐 겁부터 날 것 같다.


​작가님 남편 되시는 분이 어느 날 기타 동호회에 가입을 하셨는데 ​가자마자 회장이 되셨단다. ​이전 회장이 돌아가시자 남자는 오직 남편분 혼자시고 제일 젊으니까 ​그냥 회장 하라는 할머니들의 성화에 할 수 없이 맡으셨단다. ​평균 연세가 80 중반이시다 보니 남편분 하실 일이 태산이란다. ​기타를 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노래와 사람을 만나러 오신단다.

“회장은 죽어야 그만두는 건가?”라는 남편분의 말씀에 ​웃을 수도 없고 웃기기도 하고  ​참 난감하다.




우리가 노인인 걸 우리만 모른단다. ​어쩌면 노인이 홀대받는 시대이기 때문에 ​노인이 되어가는 현실을 일부러 외면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가슴에 쓸쓸함으로 남는다.

이렇게 작가님은 노인이 되는 법을 배워가신단다.


어느 날 작가님 남편분께서 작가님 생일이 하루 지난 월요일에 한참 멋을 내고는 하시는 말씀이 ​농협에 지하철 무료 교통카드 신청하러 가자고 하셨단다. ​와이프가 이제야 비로소 국가 공인 노인이 된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면서 마냥 즐거워하셨단다.

남편분이 정말 멋지시다. ​모든 결정권을 와이프한테 맡기는 것도 대단하시고  ​실버아파트에서 생활하시는 동안에도 다른 노인분들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시는 모습도 정말 존경스럽다.

우리도 이 무료 지하철 교통카드라는 것이 받기 전에는 그 기분을 잘 몰랐었다. ​하지만 이 교통카드를 갖고 처음 지하철을 이용했을 때의 ​그 이상 하리만치 감동스러웠던 기분을 잊지 못한다. ​국가로부터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세대들에 대한 일종의 보상 같은 것을 느껴서일까…

어깨 펴고 허리 꼿꼿이 세워 당당하게 쓰도록 하자.

지금은 제주도로 이사를 와서 이 귀한 카드를 못 쓰고 있지만 ​그래도 서울 나들이할 때를 대비해서 아주 소중히 잘 간직하고 있다.




얼마 전에 작가님 딸네 사돈께서 제주도로 패키지여행을 신청했는데 거절당하셨단다. ​이제 80 정도 되셨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였단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조금 편한 여행을 해볼까 하고 패키지를 신청한 것인데 거절당한 것에 ​작가님과 함께 모두들 충격이 컸다고 하는데 ​나 또한 엄청난 충격이다.

이제까지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해봤는데 ​혹시라도 이제부터라도 여행 갈 일이 생기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속이 상한다. 비즈니스 하는 방식들에 조금 융통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조건 나이로 안된다고 못 박을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육십을 조금 넘겼어도 전혀 여행을 못할 정도로 힘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 집 양반처럼 비록 팔십은 넘었어도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노인도 있다. 나이 먹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아직도 신체 활동 멀쩡한 사람들을 노인에 해당되는 나이라는 이유만으로 참가 불가라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실버들, 특히 초보 실버기에 들어선 이들이 나처럼 당황하지 말고, 끝까지 담담하며 당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셨다는 작가님의 초보 노인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노인이 되어가다 보면 자꾸 뒤처진다는 생각만 드는데 이렇게 초보라는 말을 듣다 보면 뭔가 새로 시작하는 신나는 기분 또한 들지 않을 까…


노년의 시작은 여전히 노력해야 하는 삶의 중요한 여정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라는 작가님의 말씀이 참 좋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실버타운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올 수도 있다.


그런 순간을 미리미리 대비하는 마음에서 읽기 좋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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