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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Dec 30. 2023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업글할매 책방 #16

《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김달님 작가님의 이름이 너무 예뻐서 예명인가 했더니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본명이란다. 곧 이 세상에 태어날 아기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환하게 비춰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란다.


달님! 너무도 따뜻하고 예쁜 이름만큼 김달님 작가님의 착하고 예쁜 마음씨가 이 책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나는 주인공이 약점을 극복하고 가족을 지키며 세계를 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등신대의 인간만이 사는 구질구질한 세계가 문득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을 그리고 싶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


어떤 글을 쓰고 싶으냐는 질문에 항상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의 말을 떠올린단다. 김달님 작가님 역시 이 세계가 아름답다는 말보다 구질구질하다는 말에 더 마음이 간다는 것에 왜 내 마음 또한 같이 움직이는지 잘 모르겠다.


작가님은 이런 사람들을 쓰고 싶으시단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살면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는 말씀이 참 따뜻하게 와닿는다,


봄이 오면 나무에 나뭇잎이 어떻게 자라는지 유심히 보는 사람, 긴급재난금으로 브랜드 쌀을 사는 사치를 처음 부려본 사람, 임종을 앞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본 사람,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싶단다.


무심코 스쳐 지나갈 이야기들이지만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어느 날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보라색 들꽃을 지나치면서 김달님 작가님은 생각하셨단다. 계절을 아름답게 하는 존재의 이름을 익히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익히는 일인 것 같단다.


지난가을에 처음으로 제주도 새별오름의 억새풀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차로 지나다니면서 무심코 봤던 억새풀이라는 것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러면서 또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말이 생각이 나서 갈대와 억새의 차이점을 검색해 보기도 했었다.


이런 것이 필요한 것인가 보다. 그냥 아름답다고 스쳐 지나가지만 말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검색을 해서 알아보던지 아니면 사진으로 찍어서 보관이라도 해야겠다. 알아야 할 것에 또 하나가 추가가 됐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져다주는 삶의 아름다운 것들을 부지런히 적어두자.


김달님 작가님은 진해 바다 앞을 지나갈 때면 늘 열여덟에 처음 물질을 시작해서 45년 동안 해녀로 살아오신 미숙님을 떠 올린단다.


자신의 숨만큼 살다 오는 바다에서 미숙님은 사람 속보다 바닷속이 더 편안하다고 하신다. 그 안에서는 속상한 일도 다 잊을 수가 있어서 바다가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된단다.


그래서 많은 해녀분들이 그 오랜 세월을 그 힘든 바다랑 함께 하시나 보다.


인터뷰하고 글을 쓰시는 작가님한테 어느 날 동료분이 물으셨단다.  왜 이 일이 좋으냐고… 그때는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다고 대답을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대답하는 순간에 알게 되셨단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어떤 삶들과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과 내가 모르는 인생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찾아오던 그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함께 하면서 그러면서 또렷하게 생겨나는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 그런 것이 좋으셨단다.


언젠가 인터뷰를 나오는데 어떤 분이 말씀을 하시더란다.

“ 작가님, 오늘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살아가세요. “


앞으로도 잘 살아가세요. 작가님은 이 말을 ”앞으로도 잘 들으며 살아가세요 “라는 말로 바꿔 듣기로 하셨단다. 잘 듣고 잘 살아가기. 이런 일이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잘해보고 싶으시단다.


이미 충분히 잘 듣고 잘 살아가시는 작가님이시다.


남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어준 다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잘 듣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


달님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작가님이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앞으로 다시는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는 작가님의 말씀에 목이 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당시에는 충격이 커서 당장의 슬픔이 오히려 무딘 것 같다가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떠나보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뼈에 사무치도록 가슴이 와닿기 때문에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병원에서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순간 초대한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할아버지한테 말해줬단다. 항상, 항상 고마웠고 할아버지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다고… 앞으로도 잘 살 테니까 아무 걱정 하지 하지 마시라고… 그러니까 우리 또 만나요, 할아버지.


할아버지한테 사랑을 흠뻑 받고 자란 손녀딸 김달님 작가님의 마지막 인사가 너무도 애틋해서 눈물이 절로 난다.


우리 또 만나자는 말, 과연 나는 들을 수가 있을까?


만약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노트북을 앞에 두고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말씀에 왜 그리 웃음이 나왔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나는 왜 굳이 글을 쓰러 카페에 가는지 이해를 잘 못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는 한다. 누구든지 자기한테 펀하고 글이 잘 써지는 곳이 있다는 것을 중요시하려고 한다.


나는 워낙에 눈치를 보고 살아온 사람이라서 그런지 바쁜 카페에 앉아 있으면 괜히 안 봐도 되는 눈치를 보게 된다.  그래서 필요 없이 이것저것 시키기도 한다.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지도 모르겠고, 아이패드를 꺼내놓고 글을 쓰려면 남이 신경 쓰여서 알고 있던 것도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내 집의 내 서재가 가장 편하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조차도 글을 쓸 일이 있으면 일부러 카페로 간단다. 그러면 글이 더 잘 써진단다. 참 희한하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이다. 어디든지 글만 잘 써진다면 대 환영이다.


김달님 작가님의 할아버지는 겨울을 가장 싫어하셨단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픈 계절이라 싫으셨단다. 할아버지한테 작가님이 나는 무슨 계절 같으냐고 물으니까 가을이라고 하시더란다.


조용하면서도 살아있는 것들을 꼭 끌어안고 있어 서란다.


참 따뜻하고 멋진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난 후의 김달님 작가님의 쓸쓸함과 그리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책이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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