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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an 11. 2024

오색 찬란 실패담 ( 정지음 )

업글할매 책방 #26

《 오색 찬란 실패담 》의 저자이신 정지음 작가님은 제8회 브런치 북에서 대상을 받았던 《 젊은 ADHD의 슬픔 》이라는 책의 작가님이시기도 하다. 이 책을 시작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하셨단다.


아무래도 나 역시 얼마 전에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나서는 브런치 대상을 받은 작품들에 대해서 관심과 애정을 갖고 부지런히 읽고 있다. 그러다가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RHK‘출판사에서 출간된  《 오색 찬란 실패담 》을 보고는 또 무조건 내 서재에 담았다.


이 책에서 정지음 작가님은 실패의 색깔에 대한 색다른 정의를 내리신다. 흔히들 실패라고 하면 우중 중한 잿빛을 연상하지만 정지음 작가님은 실패를 딛고 두려움을 이겨낸 후의 진짜 색인 “퍼스널 컬러”를 만들어가신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하찮지만 괜찮은, 억척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작가님의 실패들이 읽는 독자들의 삶에도 녹색 불을 띄워 줄 것을 희망하시면서 이 책을 쓰셨단다.


차례
1: 빨갛게 물든 수치심쯤이야
2: 덮으면 흑역사, 까보면 코미디
3: 노란 불이 없는 내 신호등
4: 무지를 수호하는 백지 전략


어느 날 정지음 작가님이 거울을 보니 그야말로 꼴이 가관이었단다. 그토록 엉망이 된 몸은 작가로서 열심히 일한다는 증거라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 역시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만 갖고 있으면서도 정말 작가로서 아주 열심히 일했는지 내 꼴 역시 볼만해졌다.


작가라는 직업이 이런 부작용도 가져온다는 것을 또다시 실감하게 된다. 정지음 작가님 역시 안되겠다 싶어서 무조건 비뚤어진 몸을 고치기 위해서 요가학원을 등록하셨단다.


처음에는 망가진 몸을 고치러 간 요가원이었지만 요가를 하면서 몸보다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고 한다. 마음의 “여유”또한 생기셨단다. 작가님의 재미있는 성격이 늘 어디를 가면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를 살피셨다는데 요가를 하면서 그런 습관도 없어졌단다.


나 역시 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한데 집 가까운 곳에 이런 요가원이 없다 보니 가볍게 맘먹고 다니기가 힘들다. 이래서 사람들이 “역세권”을 외치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집에 앉아있다가 운동하고 싶으면 그냥 입은 채로 가방 하나 달랑 매고 요가원으로 달려갈 수 있는 사람들이 새삼 부러워진다.




정지음 작가님이 첫 책을 내고 일을 시작할 때에는 작가님한테 악플이라는 것이 달릴 줄 꿈에도 몰랐단다. 악플이 달릴 만큼 책이 팔릴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하셨단다. 하지만 예상외로 데뷔작인  《 젊은 ADHD의 슬픔 》이 예상보다도 훨씬 많은 반응을 얻으면서 악플 또한 엄청나게 늘어났단다.


악플에도 카테고리와 성격이 다양했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재미있기도 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왜 그렇게 심한 악플들을 달아야 하는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간다. 그 사람의 인성하고도 관계가 깊을 것 같다.


한 번 악플을 달기 시작하는 사람은 아마도 그 버릇을 고치기 힘들 것 같다. 아무렇지도 않게 올린 악플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의 고통을 어떻게 하면 그 사람들이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무 댓글보다는 악플이 낫다"라는 말도 있지만 난 차라리 댓글이 없더라도 악플은 안 달렸으면 좋겠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어떤 것으로도 상처받고 싶지 않다. 이제 간신히 자리 잡고 마음 편히 살고 있는데 악플이 달리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 것 같다.


정지음 작가님은 악플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나를 고민하시다가 한 가지 방법을 택하기로 했단다.


“최대한의 무대응” 


정지음 작가님은 어릴 때부터 별별 욕을 다 먹으면서 자랐지만 이렇게 온라인이란 가상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쌍욕을 먹은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는 말씀에 그 심정이 어땠을까가 이해가 된다.


온라인 세상이라는 것이 가져다준 편리함과 즐거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갈수록 이상해지는 지금 세상에선 약간의 두려움 또한 주는 것도 사실이다.


편한 만큼 위험해진 현실에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공부인 것 같다.


“최대한의 무대응”

내가 생각해도 가장 현명한 방법을 택하신 것 같다.




앤 헬렌 피터슨의 저서  《 요즘 애들 》에서 작가가 말하는 “요즘 애들”이란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라고 한다. 무리하여 고등 교육을 받은 후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고 있지만, 납득할만한  만한 댓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보니 “요즘 애들”의 번아웃이 함께 온다는 정지음 작가님의 말씀이 참 아프다.


“요즘 애들”은 체력과 정신력과 시간을 한계까지 끌어올려야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말에 비록 세대는 틀리지만 진심으로 공감이 간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힘들게 사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서 “참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었다. “갓생!”을 외치면서 살아가는 본인들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 또한 든다. 하지만 이런 “갓생”을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가 주어질 것이라고 오래 살아온 나는 확신한다.


정지음 작가님은 계단에서 구르며 괜찮음을 배우셨단다. 일곱 살 때 엄마 심부름으로 마트에 가다가 계단에서 굴러서 기절까지 했으면서도 그 어린 나이에도 계단에 구르는 것보다 엄마한테 조심 안 했다고 혼나는 것이 더 무서워서 말을 못 했다는 작가님 말씀에 부모들도 이제는 아무리 자식이라도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야겠다는 반성이 밀려온다.


잘 알고 지내는 어느 지인이 어릴 때 막걸리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면서 막걸리를 다 쏟아부었단다. 행여 엄마한테 혼날까 봐 두근거리면서 집에를 갔는데 엄마께서 그 몰골을 보시더니 얼른 안아주셨단다. 어디 다치지 않았냐고 하시면서 안아주시던 그때의 기억이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이 되신다고 했던 말씀이 참 가슴에 와닿았었다.


미국에서 오랜 이민 생활을 했던 우리 눈에는 아직도 어린아이들끼리 도로를 건너고 학교를 다니고, 자기네들끼리 놀러 다니고 하는 것이 너무도 놀랍고 불안하다. 심지어 어린아이 혼자 마트에 심부름을 다닌다는 것은 미국에서는 상상조차도 못하는 일이다. 그랬다가는 부모가 그대로 경찰에 붙잡혀간다. 아직도 어린아이들에 대한 사고 소식을 접할 때는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이제는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인 만큼 어린이를 보호하는 마음 또한 선진국이 됐으면 좋겠다.


《 오색 찬란 실패담 》에서 정지음 작가님은 회사를 퇴사하면서 느낀 거대한 감정은 프리랜서로서의 삶의 홀가분이었단다.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어디서나 작업할 수 있는 작가로서의 “디지털 노마드”라는 세상이 너무도 좋았단다.


그러다가 온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로 자판만 두들기는 날이 많아지니까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라는 말씀에 왜 갑자기 “동병상련”이라는 단어가 떠오를까…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는 이유로 삶의 필수적인 일들이 전부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집 안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고, 배달음식에만 의존하는 형편없는 식생활이 계속되면서 정지음 작가님은 그제서야 통제 없는 자유는 감옥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셨단다.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무방비한 자유가 작가님 스스로를 잡아먹고 있었다는 말씀이  참 안타깝다.


여기에서 나를 다시 한번 돌아다보게 된다. 늘 삼식이 아저씨 때문에 내 자유가 박탈당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투덜거리던 것이 어쩌면 그런 삼식이 아저씨 덕분에 건강한 나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 양반이 없었다면 아마 나도 글 쓴다고 하면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하루 세끼 건너뛰고 대충 먹고살았을지도 모른다.


혼자라서 편한 것도 있고 맘껏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그래도 옆에서 밥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타의에 의해서라도 하루 세끼 챙겨 먹게 된다는 것이 새삼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다행히 사람이 너무도 그리웠던 작가님은 다시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가셨단다. 자유보다는 사람을 택했고, 고요보다는 소란을 택하셨다는 작가님이 안정을 찾으셨으면 좋겠다.


 《 오색 찬란 실패담 》을 겪으면서 정지음 작가님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리셨단다. 여전히 “다독, 다작, 다상량”이 글쓰기의 근간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작가님이 찾으신 것은 글쓰기에 제약이 될 수 있는 규칙을 설정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무규칙 상팔자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쓰는 것이 작가님이 찾은 작가님만의 스타일이다. 이제는 작문이란 실력보다 스타일의 문제라고 생각하신단다. 잘 쓴 글들은 작가가 자신의 스타일을 잘 찾은 글이고, 못 쓴 글들은 작가가 추구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말씀에 왠지 모르게 희미하게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안개가 걷힌 느낌을 받았다.


요즘 들어서 늘 강조하고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일종의 “콘셉”이나 “콘텐츠”라는 것도 이런 맥락일까? 이런 것이 바로 나만의 스타일하고 연결이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정지음 작가님의 “무규칙 상팔자”라는 말이 참 좋다. 나 역시 얼마 전에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참 많이도 헤맸었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은 있지만 전혀 기본조차 안 돼있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부지런히 벤치마킹이라는 것을 해 보니까 괜히 지레 주눅이 들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냥 멘붕 상태가 왔다.


그래서 나 역시 나대로 내린 결론이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나 쓰고 싶은 대로 쓰련다.”였다. 일종의 무규칙 상팔자라는 것을 나도 원했었나 보다.


이러면서 커 가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글이라는 것이 일일이 규칙을 세워놓고 그 틀안에서만 써내겨간다면 아마도 재미라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규칙 같은 것 완전 무시하고 즐겁게 써 내려가는 것이 더더욱 의미 있는 글쓰기 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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