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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an 10. 2024

그럴 수 있어 ( 양희은 )

업글할매 책방 #25

그럴 수 있어…
그러라 그래…


대학교 1학년인 1971년에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로 가수로 데뷔한 양희은 작가님!


같은 시대를 살아오신 양희은 작가님의 그 청아한 목소리로 부르시는 노래를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음색과 중후한 성량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기도 한 가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주옥같은 명곡들이 많이도 금지됐었던 기억도 난다.


99년부터는 거의 25년 동안 “여성시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DJ 로도 활약 중이시다. 어쩜 그렇게 한 방송에서 오랜 세월을 할 수가 있냐는 질문에  “못생긴 나무가 숲을 지킨다! “라고 웃으시면서 답하시는 모습에 진정한 거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원래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아마도 라디오 방송을 사랑하는 마음이 25년이라는 세월을 버티게 해 준 것 같다고도 하신다.




얼마 전에 양희은 작가님의 “그러라 그래…”도 너무 감명 깊게 읽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신간인 “그럴 수 있어…”가 나오자마자 바로 구매를 했다.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


이 두 책이 던져주는 인생의 의미가 아마도 비슷해서일까… 하나만 읽어서는 안 되는 것 같았다.꼭 두 책을 나란히 놓고 같이 읽고 싶었다.


“그러라 그래….”도 책 제목이 너무 좋아서 구매했었고 “그럴 수 있어…” 또한 책 제목에 끌려서 무조건 구매부터 했다.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 속 뒤집어 놓는 상대가 생길 때는 그저 꾹 참고 “그러라 그래…. 너 잘났어..” 이 한 마디만 속으로 내뱉어도 얼마나 시원한 지 …. 다들 경험 한 번쯤은 해 보셨을 것이다.


“그럴 수 있어…” 이 한 마디가 주는 의미는 또 얼마나 대단한지…


그냥 무심코 “그럴 수 있어…”라고만 내뱉어도 모든 것이 쉽게 이해가 돼서 더 큰 화근을 불러오는 것을 미리 막을 수가 있다. 이처럼 말 한마디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


이 바쁜 세상에 굳이 많은 말 섞으면서 복잡하게 살지 말고 이 두 마디만 잘 섞어가면서 살다 보면

크게 다칠 일은 없을 것 같다.




사람이 서로
용서하고 안아주고 다독이는 일도
다 살아서의 얘기다.
강 건너 저쪽과 이쪽은
어찌할 도리가 없잖은가!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아프자 갑자기 들었다는 이런 작가님의 생각에 너무나도 공감이 간다.아마도 작가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 아닐까…


오래 같이 살아가다보니 때로는 남편이 너무도 미운 적도 많았고 그러다보니 여자들끼리 모이기만 하면 남편 흉보기가 일상이었다. 그러면서 남편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곤 했었다.


그런데 막상 나이를 먹어보니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을 떠나보내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에 괜히 미리 눈물 뽑고, 밤 잠 설치고, 생전 안 하던 짓들을 하게 된다. 어쨌거나 오래오래 같이 살아있어야 미워도 하고 안아도 주는 것이다.


늙고 나면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부부밖에 없다.


양희은 작가님 또한 칠십이 넘으니까 이제 좀 숨이 차다는 느낌이 드셨고 본격적으로 힘들다고 느낀 것은 65세가 되면서부터였다고 말씀하시는 작가님의 생각에 이것 또한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공통적인 느낌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역시 스스로를 무수리라고 칭하면서 정신없이 달려만 오다가 65세가 넘으니까 걸으면 숨도 차고, 그렇게 수월하게 했던 집안일들도 약간 힘들어지지 시작하더라.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것 같다. 쓸쓸해지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늘 마음만큼은 젊게 살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엄살도 피우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건 타고난 성격을 바꾸지 않는 한 안 되는 것이기에 포기하기로 했다. 쓸데없이 여기저기 막 연줄 걸듯이 살지 말라 신다. 살면 살수록 더 절실히 느껴지는 것이 인간관계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니까 쓸데없던 인간관계는 저절로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이제서야 비로소 참다운 나로 남을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다. 바닥에까지 나동그라져서 자빠져봐야 그때 비로소 하늘이 보인다는 옛 어른 들 말씀처럼 나 역시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치고 올라온 인생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매일매일을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인생살이 모든 것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계곡이 깊을수록 봉우리는 높고 봉우리가 높을수록 계곡이 깊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양희은 작가님의 책을 읽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또 한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이 시려오기도 한다. 아마도 같은 시대를 살아오면서 오랜 세월을 가까이서 봐왔기 때문일까?


81년에 섣달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40년을 살아오셨다는 양희은 작가님!


누군가가 투병 일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 너 같으면 있겠니? ”라고 솔직하게 맞 받아치시던 작가님! 역시 양희은 작간님만의 멋짐이다.


작가님한테도 오직 한 가지 후회로 남는 것이 있다면 너무 일만 하고 살아왔다는 것이란다.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아마도 다 그랬을 것이다. 그냥 죽으라고 일만 하고들 살았다.


그때는 다들 그랬다!



양희은 작가님이 너무도 처절한 대학생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고 회상하면서 더 유명해지기도 했던 곳이 있다. 바로 “오비스 캐빈”이다. 청바지와 통기타, 생맥주와 장발의 시대로 불렸던 70년대의 “오비스 캐빈”이라는 곳은 단순한 맥줏집이 아니라 젊은 지성들이 꿈을 펼치고 대화를 펼쳐나갈 수 있는 장소였던 곳이다.


당시 최고의 보컬이었던  “히식스 He6”와 이은하 그리고 그 당시에는 신인 가수들이었던 송창식, 서유석 같은 신예 가수들이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는 라이브쇼라는 말이 없고 “생음악”이라는 말을 썼던 것이 어렴풋이나마 기억이 난다.


그때가 그리워진다.


아무리 “라떼는 말이야…”라고 뒤에서 웃는다고 해도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서 폼 잡고 근사하게 생맥주 한잔하고 싶다.


바로 이 유명한 명동의 전설적인 곳에서 양희은 작가님이 그 당시 선배 였던 송창식의 주선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젊고 어렸던 대학생 시절에 학비와 빚쟁이들의 빚을 갚기 위해 무척이나 고생하셨다. 젊은 시절의 작가님의 가수 생활은 일반적은 다른 가수들하고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단지 대학을 계속 다니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가수 생활이었다 보니 늘 편하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청바지를 입어야 했고 한쪽에는 책가방, 다른 한쪽에는 밥 줄이라고 하셨던 기타를 메고 항상 만원 버스에 시달리면서 다녀야 하니까 운동화를 신을 수밖에 없으셨단다.


이 시대를  같이 살았던 분들이라면 이 광경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참 힘든 시절이었다.


이런 모습의 양희은하고는 같은 무대에 설 수 없다는 원로가수들의 따가운 시선도 오래 받으셨단다. “ 예나 지금이나 왜 이런 것은 안 사라지는지…. ”


나이 서른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돈을 주고 내 옷을 사봤다는 작가님의 젊은 시절이 떠올라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제는 만원 버스를 탈 일도 없고 기타 케이스를 둘러매고 뛸 일이 없어졌는데도 그때 그 시절의 추억 때문일까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청바지를 즐겨 입으신단다.


단지 바뀐 것이 있다면 “고무줄 청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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