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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글할매 Jan 09. 2024

니체와 함께 산책을

업글할매 책방 #24

《 니체와 함께 산책을 》 이 책의 저자이신 시라토리 하루히코 작가님은 철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시다. 독일에서 철학, 종교, 문학을 공부하신 일본 최고의 니체 전문가이기도 하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작가님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어떻게 인류의 생각과 삶을 바꿨는지 연구하시다가 “명상”, “관조”, 그리고 “깨달음” 이 세 가지의 방법임을 찾으셨단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역시 위대한 사상가들처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니체를 읽을 생각은 감히 엄두도 못 냈었다. 이동진 작가님의 독서법처럼 무조건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철학적인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니체의 말이 그렇게 가슴에 와닿을 수가 없다. 옛날의 딱딱하면서 무섭게 느껴졌던 그 니체가 더 이상 아니었다. 어느새 친근한 나의 멘토가 되어서 늘 내 곁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신기하다.


이렇게 어려워하지 말고 자주 니체의 책을 접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 또한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안고 오늘도 이 책을 읽는다.


캔바

《 니체와 함께 산책을 》

이 책의 화두는 “정해진 명상법은 없다”라는 것이다. 앉아 있든 무엇을 하고 있든 아무 상관이 없단다. 그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면 그것이 바로 명상이라고 하신다. 명상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는 순간이다.


노인 건강을 위한 3대 조건으로 수면, 운동, 가벼운 명상이 꼭 필요하다고 했는데 수면하고 운동은 그럭저럭 할 것 같았는데 이 명상이라는 것이 꼭 철학의 대가들만 하는 것 같아서 조금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으면 된다니까 이제 조금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종의 멍 때리기도 명상으로 이름 지울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서 아주 유행하고 있는 각종 멍 때리기에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불멍, 물멍, 숲멍, 바다멍, 향멍등 멍때리기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다행히 우리 집의 내 서재에서 먼바다를 바라보면서 멍때리기 하기가 아주 좋다. 특히 여름철에는 저녁이 다가오면 환하게 불을 밝힌 오징어배들을 바라보면서 멍때리는 것이 너무도 근사하고 행복하다. 그러면서 내 마음 깊은 곳의 나를 바라보게 될 때 비로소 내 삶이 자리를 찾기 시작하나 보다.


캔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단다. 그래서 수많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그리도 쉬지 않고 걸었나 보다. 비록 니체가 거닐었다는 스위스의 호숫가는 못 가봤어도 그래도 하늘이 내려주신 노후의 선물로 사방 천지가 걷기에 최상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제주도에 살고 있다.


중산간이라는 조금 높은 곳에서 살고 있는 덕분에 우리 집에서 조금만 차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바로 눈 아래로 바다가 펼쳐져 보인다. 뒤로는 아름다운 오름이 보이고 달리는 양옆으로는 말 목장과 초원이 맘껏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굳이 스위스까지 안 가도 될 것 같다.


단지 하나 걱정되는 것은 이런 천혜의 아름다움과 함께 걸으면서도 왜 나는 니체처럼 철학적이지도 않으면서 깊은 사색에 잠긴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지 그것이 염려스러울 뿐이다.


기껏 한다는 것이 그저 예쁘다, 좋다는 감탄사만 연발하면서 잘 찍지도 못하는 사진 찍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리고는 행여 넘어질까 봐 조심하고 또 조심을 한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는 철학자하고는 거리가 좀 먼 것 같다. 더 이상 욕심부리지도 말고 니체를 알고 있다는 것과 니체가 그전처럼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삼도록 하자.


캔바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깨달음이 불현듯 찾아온단다. 내 딴에는 제법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고 자부하면서도 아직도 완전한 깨달음이 안 온 것을 보면 내려놓을 것이 더 있나 보다.


그래도 많이 깨닫기도 했다. 생각 외로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고, 이 세상은 내가 없어도 여전히 잘 돌아갈 것이라는 대단한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점점 더 노인이 돼가면서 아무리 고약한 남편이라도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부부밖에 없다는 억만금을 주고도 못 깨달을 엄청나게 중요한 것도 깨달았다. 그 덕분에 아주 많이 편안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약한 인간인지라 아직도 못 내려놓은 것 또한 많다.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것이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이것도 서서히 나아지고 있다.


그저 내려놓자.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박경리 선생님 말씀처럼 다 내려놓고 가뿐하게 살자.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깨달음이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캔바

니체는 하루 여덟 시간을 자연과 함께 했단다. 니체에게 산책은 자연 속의 명상이었던 것이다. 혼자 산과 들을 걸으면서 무의식중에 명상 상태로 들어가면 “나‘와 ”자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어느새 하나로 녹아든단다.


명상이라고 해서 반듯이 앉아서 하는 것은 아니란다. 이렇듯 걸으면서도 얼마든지 명상을 할 수가 있단다.


니체가 사랑했다는 자연의 광대함과 고요함 그리고 햇빛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니체는 산책하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수첩에 메모를 했단다. 니체가 쓴 글에 격언이 많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 서란다. 산책할 때의 명상이 니체를 니체답게 만든 것이라는 시라토리 하루히코 작가님 말씀이 참 멋있다.



모든 일을 온화한 표정으로 마주하란다. 이렇게 모든 일을 온화한 표정으로 마주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 또한 사라질 것 같다.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는 것이 그나마 온화한 표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의 “천당역‘이라고 불린다는 분당에 언니가 살고 있어서 어쩌다 한 번 서울 나들이를 다녀오면 이건 천당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 같지가 않다. 너무도 복잡하고 표정 없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저절로 아파진다.


이렇게 한 번씩 나들이를 갔다 와야 제주도라는 곳이 얼마나 지상 천국인가를 알 수가 있다. 서울만 가면 찌푸러졌던 얼굴이 제주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저절로 펴진다. 우리 언니들은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산골에서 어떻게 사냐고 혀를 내두르지만 우린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자연과 함께하다 보니 인상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 온화한 표정 짓기 또한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가 않다.



나만 특별해지려고 해서는 안 된단다. 타인과 달라도 안되니까 남이 하는 것도 하라고 한다 나 혼자 특별해지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닌데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다 보면 저절로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여겨져서 본의 아니게 따돌림을 당하곤 한다.


칠십이라는 나이에도 공부를 하려는 동생에게 큰 언니가 하던 말이 생각이 난다. 공부는 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면서 우리 나이에는 그저 백화점이나 돌아다니고 유명 맛집 돌아다니면서 사는 게 최고라는 말에 갑자기 벽이 생기는 것 같았다.


소위 일류 대학을 나오고 원 없이 살아온 언니한테는 공부에 대한 한이 없겠지만 가방끈이 짧아서 고생하던 나는 평생을 공부 못 한 것이 늘 가슴에 한으로 남아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은퇴라는 것을 하자마자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혼자서라도 뭐든지 배우자라는 마음에 죽기 살기로 공부를 시작했다. 이것이 비슷한 나이에서는 별나게 보이기도 했나 보다.


언니 말마따나 그 나이에 참 별나게도 산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바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남을 존중하려는 마음은 늘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산다. 나 혼자만 특별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원래 튀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매의 디지털포메이션 선언이 더욱더 보기 싫었나보다.


남들이 하는 것도 하면서 살라는 말을 난 나대로 해석하고 있다. 아무리 할매라도 노인처럼 살지 말고 젊은 사람들 하는 것도 흉내라도 내면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흰머리 소녀의 디지털화를 꿈꾸는 모습도 난 봐줄 만하다.



사람을 싫어하거나 귀찮아하지 말란다.

너무 사람을 좋아해서 탈이었다. 예전의 우리 집은 동네에서 아지트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늘 사람으로 북적거렸었다. 워낙 음식 하는 것을 좋아하고 함께 모여서 즐겁고 신나게 먹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무슨 건수만 생기면 우리 집으로 모였다.


사람들한테 손이 크다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그 작은 손에서 어쩜 그리도 손 크게 살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하다.


아직도 사람을 싫어하거나 귀찮아하지는 않는다. 이것 역시 타고난 성격이라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지만 이제는 조금 신경을 쓰면서 사람을 대하려고 한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한 것이다. 어떨 때는 사람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는 말도 지금의 현실이다. 사람 자체를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마음은 안 갖고 있어도  늘 조심은 하자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참 쓸쓸한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서 베푸는 것처럼 행복한 일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남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베푸는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베풂 또한 습관이 되도록 되자. 아낌없이 베풀되, 호구는 되지 말자.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아첨하지 말란다. 워낙 타고난 팔자가 외로워서인지 늘 사람이 그리웠다. 그러다 보니 행여 다른 사람의 눈에 들지 않을까 봐 쓸데없이 눈치도 많이 보고 살았다. 크게 아첨한 것 같지는 않다. 늘 밥을 샀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들이 항상 내 곁에 있으려니 했다. 살다 보니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굳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아첨까지 하면서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남이 고마워하길 바라지도 말란다. 바라는 순간 그동안의 모든 수고는 그야말로 도로아미티불이 돼버린다. 베푸는 자체로 만족하면서 절대로 바라지를 말아야 하는데 인간인지라 가끔씩 너무도 서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저 수양하고 도를 닦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니체를 비롯한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의 말씀을 듣다 보면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틀린 말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것도 사실이다.

나한테 맞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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