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설계와 골든타임(golden time)
‘골든타임’은 최고의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심근경색의 골든타임은 5분이라고 의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심장이 멈춘 후 4분이 지나면 뇌 손상이 온다. 5분이 지나면 사망률로 이어질 확률이 급격하게 상승한다는 것이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처럼 골든타임은 생명과 연관되어 자주 회자된다. 은퇴설계는 다소 작위적(作爲的) 일 수는 있지만 생명과 유관하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여유 있는 노년! 지루함과 외로움보다는 매사가 즐겁고 신명 난 노년! 유병장수(有病長壽)가 아닌 무병장수(無病長壽)! 모두가 바라는 노년의 모습이다. 다만,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가 떠먹여 주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책임지지도 않는다. 노년의 삶은 철저한 자신의 몫이다. 국가나 사회는 거들뿐이다. 스스로 준비해야만 한다. 은퇴 이후 삶은 하루하루 살아온 일상이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다. 성인병이 생활습관이듯 말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노년의 삶은 오로지 자신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그래서 사전 준비 필요함을 아무리 강조해도 심하지 않은 것이다.
골든타임은 4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
그렇다면 언제부터 준비하는 것이 적당할까! 1958년 비영리단체로 출범한 미국 은퇴자협회(American-Association of Retied People. AARP)는 은퇴설계의 골든타임으로 40대 중반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험업계에서는 ‘4말 5초’라고 한다. 즉,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가 은퇴설계 골든타임으로 본다. 정답은 없다. 다만, 사회적 객관화된 수치가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를 가리키고 있다. 왜 그럴까? 사실 40대 중반쯤 되면 퇴직 이후 삶이 가끔 소주 안주로 주문되는 경우가 있다. 누구의 입맛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느 누군가 갑자기 퇴직한 선배를 소환하면서 은퇴 이후 삶에 대한 동경 또는 자책성 발언을 한다. ‘할 줄 아는 것이 없는데!’, ‘준비한 것이 없는데!’, ‘아이들 독립할 때 어떻게 해야 하지?’,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라고 말이다. 술자리 걱정은 빈 소주병과 비례한다. 한탄과 남 탓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걱정만 할 뿐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왜일까?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장수 3대 리스크는 질병, 가난, 외로움이다. 질병은 육체적 건강을 잃었을 때 발생한다. 가난은 경제적 건강은 상실했을 때, 외로움은 정신적 건강이 쇠약해지면 찾아오는 질병이다.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은퇴설계를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도 빠르면 40대 중반부터 늦어도 50대 초반부터는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사회는 강조한다.
'마부처자'와 은퇴설계 중요성
베이비부머 세대는 ‘마부처자’라는 신조어가 따라다닌다. 마지막으로 부모를 공양하고 처음으로 자녀를 부양하는 세대라는 의미이다. 소위 ‘낀세대’이다. 전 세대를 아울러 가진 것이 가장 많은 부유한 세대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마부처자’를 감내할 만큼은 아니라고 본다. 천정부지의 부동산가격으로 외형적으로 보이는 자산가액이 높아 보일 뿐이다. 대부분 집 한 채가 전부인 중산층이다. 2023년 국민대차대조표에 따르면 1인당 가계순자산 2억 4,427만 원이다. 이 중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비율이 75.5%를 차지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가용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이다.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체계적으로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는 넘친다.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이 오히려 고민이다. 문제는 실천 의지이다.
육체적 건강의 중요성
3대 건강(육체적, 경제적, 정신적)은 은퇴 이후 삶에 주춧돌이자 대들보이다. 어느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순차적으로 준비한다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부터 동시 다발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육체적 건강으로 매일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내일부터라고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은 유리공과 같다. 깨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원상복구는 상상할 수도 없다. 반면에 정신적 건강에 해당하는 ‘관계’는 고무공과 같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탄성의 차이는 있지만 복원력이 있다. 건강은 그렇지 않다. 한 번 무너지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2024년 복지부 ‘암 등록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암 유병자가 250만 명을 상회하면서 국민 20명당 1명이 해당된다고 발표했다. 평생 암 발생할 확률은 38.1%로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다. 버킷리스트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싶은 것도 건강할 때 가능하다. 그만큼 건강은 모든 것의 디딤돌이다.
경제적 건강
나이 들어 경제적 건강을 상실하면 회복이 더디다. 원상복구가 안된다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육체적 건강만큼 조심해야 할 영역이다. 남은 삶 동안 허덕이면서 지낼 수도 있다. 삼층석탑에서부터 주택연금을 포함한 사 층 석탑까지 등장했다. 인생 한방이라고 주식이나 코인에 올인하면 패가망신하기 딱 좋다. 일확천금이 말처럼 그렇게 쉽겠는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 경제적 건강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부자(富者)는 모두의 부러움 대상이다. 다만, 부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근검절약은 기본이고,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돈이 쫓아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시장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 보다 ‘돈을 보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자와 투자수익률, 환율의 변동 추이, 채권의 흐름, 금을 비롯한 원자재 값 추이 등 돈이 흐르는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준비가 필요하다.
정신적 건강
마지막으로 정신적 건강이다. 정신적 건강을 상실하면 외로워진다. 외로움이 가중되면 우울해진다. 우울증이 심화되면 현대 의학계에서도 손사래 치는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정신적 건강유지가 아주 중요해졌다. 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자신이 나이 들 듯이 상대방도 나이 먹으면서 역할이 변한다. 그것을 인정해야 편해진다. 자식은 품 안에 있을 때 예쁘다. 성장하면서 독립 객체로 자립하기 위해 몸집에서부터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이 아니다. 부모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관계의 속성은 그대로이지만 강도가 변한다. 배우자도 빈집증후군을 겪은 후 달라졌다. 정신적 피로감을 떨쳐 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50대 초반부터 가족들과 자주 대화를 하고 관심사항을 공유하면서 관계 유지에 애써야 한다. 퇴직 이후 서운함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애썼다는 것의 당연함에 기대어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기를 기대한다면, 그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대화만이 답이다. 그것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은유적 대화는 또 다른 오해의 실마리만 제공할 뿐이다.
이런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뚝딱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시기가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이라고 사회는 얘기하고 있다. 늦었다고 포기하기보다 지금이 가장 빠른 시기라는 각오로 늦은 만큼 더 열심히 준비하면 된다. 인생백세시대는 세상을 마감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발달한 의료기술이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 유병장수 시대가 열렸다. 무병장수로 지낼 수 있는 은퇴설계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愚)를 범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