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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것, 유지할 것, 챙길 것

- 요리하는 남편, 빵 굽는 아빠 -

by 개미와 베짱이

우리 일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은 순환하다. 그리고 반복한다. 거창하게 불교의 ‘윤회(윤회)’까지는 거론하지 않더라도 모든 것은 이어진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가 보다. 모든 것이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삶이란 호기심으로 새로운 것을 배워 채우고, 그것을 일정 기간 활용하면서 유지 발전시키다가, 새로움에 눈을 뜨면 옛 것의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우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렇지 않다면 삶은 고인 물과 같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 사계절도 마찬가지이다. 겨우내 추위를 이겨내고 새싹과 꽃을 피우면, 꽃이 열매가 되고, 그 열매가 가을의 따스한 햇살을 받아 농익으면 수확한다. 겨울에는 모든 것을 대지에 돌려주고 앙상한 몸뚱이로 겨울을 맞이한다. 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도 일맥상통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자라는 명제 말이다. 시간은 변화라는 사이클에 얹혀서 비우고 유지하고 챙김을 반복하면서 역사를 만들고, 그 역사가 켜켜이 쌓여 세상을 이룬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유한한 삶이 가치있고 보람되려면 버릴 것과 유지할 것, 새롭게 챙겨야 할 것들이 때를 잘 맞춰야 한다. 비록 그때를 놓쳤다 하더라도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깨달음을 얻었을 때가 가장 빠른 시기라고 했다. 오늘이 내 생애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늦었다고 한숨 짓거나 포기할 일이 아니다. 지금이 가장 빠를 때이니까. 오십이 넘으면 막연하게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의 빗장이 풀리면서 스멀스멀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늘 더디다. 생각이 많아서이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허락도 받아야 하는 등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첩첩산중이다. 그러다보니 망설이게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다. 먼저 주변을 정리하는 것으로 도전의 첫걸음을 떼어 보자. ‘요리하는 남편’, ‘빵을 굽는 아빠’라는 타이틀이 갖고 싶다고 가정해 보자.


첫째, ‘버릴 것’이다. 오랜 기간 ‘경험’ 또는 ‘경력’이라는 이름으로 쌓아 두었던 것 중에 시간이 지난 것들은 과감하게 용도 폐기하자. 베이비부머 세대는 농경산업시대에 태어나 디지털이 주요 수단이 된 4차 산업혁명시대에 중장년이 되었다. 세상이 변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와 모습으로 말이다. 기존의 셈법으로는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어릴적 밥상머리 교육으로는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저녁 소주 안주로 자주 등장했던 ‘라떼문화’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졌다. 4차 산업혁명시대는 새롭게 단장해야 한다. 재활용이 안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분리수거가 아니라 쓰레기봉투에 넣어 소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요리는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성별적 칸막이가 과연 타당한 얘기일까? 버려야 할 것에 미련을 두지 말자. 언제가는 쓸 데가 있을거라는 믿음을 버리자. 비움은 잃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이 덧되어지는 과정이다.


요즘 TV에는 먹방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요리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보이고 있다. 아울러 제빵에 관한 프로그램도 심심찮게 방영되면서 다양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이분법적 논리처럼 성별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어림없는 얘기이다. 어디에서도 성별적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21세기이다. 굳이 ‘누구(who)의 몫’으로 구역을 나눌 이유가 없다. 관심이 있거나 할 수 있으면 아무나 도전해도 된다. 요리와 제빵은 대화를 풍성하게 해 주는 마중물이다. 그동안 서먹했던 가족과의 칸막이를 들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집안이 떠들썩하고 꽉 찬 분위기였다. 아이들의 부산함에서 가족은 웃음꽃을 피우고 부부의 대화는 풍성했다. 자녀들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둥지를 찾아 부모 곁을 떠난다. 자연의 이치이기에 서운해 할 이유가 없다. 그 빈 공간을 헤집고 들어오는 것이 ‘빈집증후군’이다. 부부의 대화는 빈약해질 뿐 아니라 썰렁한 분위기에 공기조차 냉랭해진다. 이럴 때 ‘남편이 만든 요리’나 ‘아빠가 갓 구워낸 빵’이 뜸해진 부부의 대화 쏘시개로서 안성맞춤이다. 나이 들면서 가장 든든한 후원군이자 파트너는 배우자이다. 배우자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잘 지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요리는 배워야 한다. 배우자와 소원해지면 노년은 외롭고 슬퍼진다. 건강한 관계는 존중과 배려, 인정과 기다림에서 형성된다. 이것과 상관없는 것들은 버리자.


둘째, ‘유지할 것’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호기심은 젊은 노년을 유지하는 종합비타민제이자 새로움이 덧되어져 ‘차별화된 노년’이 될 수 있는 든든한 후원군이다. 호기심은 익숙함에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때 제맛이 난다. 호기심은 일반적으로 유아기 때 최고 정점을 찍었다가 나이와 반비례하면서 나이 들면 호기심도 열정도 바닥을 보인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이런 선입견을 넘어서 보자. 모두가 맞다고 할 때 아닐 수도 있다고 고개를 들어보자. 인생백세시대이자 4차 산업혁명시대의 디지털은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갈아 엎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더욱 키워야 한다. 호기심은 차별화의 디딤돌이자 무한대의 시발점이다. 그 끝이 어디인지 가보지 않은 자는 말할 수 없다. 예단도 금물이다. 지금까지 왕성한 사회활동으로 키워 온 호기심을 유지해 보자.


요리와 제빵에서 호기심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창의성’이다. 자신만의 색깔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김치찌개에 치즈를 넣어보자. MZ세대가 좋아하는 메뉴이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제빵용 밀가루 대신 국산 통밀가루를 사용해 보자. 일반 제빵 레시피로는 생각한 빵이 추출되지 않을 수 있다. 이때 통밀가루 성분을 연구해 보자. 그리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호기심이자 도전이다. 이러면서 성장한다. 다른 종류의 빵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오늘 하루도 보람된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배우자와 자녀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는 대화가 밥상머리에 은은하게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챙길 것’이다. ‘트렌드’이다. 기술이던 모양이던 맛이던 최근에 유행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이다. 매년 자동차 신규 등록수는 증가한다. 하지만 자동차를 수리하는 카센터는 감소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바로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 출시가 증가하면서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정비기술은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21세기의 현실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기술로 인생백세시대를 견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식과 경험의 유효기간이 점점 단명하고 있다. 평생교육이 생긴 배경이기도 하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때는 50세를 갓 넘긴 나이이다. 이 때부터 남은 50여년을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려면 ‘할 일’이 있어야 한다. 그 일을 위해서는 시대 트렌드를 배척할 수 없다. ‘나는 몰라도 되!’라고 손사래를 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 또는 하고 싶은 것의 트렌드를 잘 읽고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준비한 자만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


요리나 제빵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유행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여 새로운 맛과 모양에 도전해 보면 정신적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관찰하다 보면 관심이 생긴다. 그 관심이 부부 관계와 부모 자녀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주는 시금석이다. 3차 산업혁명시대까지는 튀는 것보다 둥글둥글하게 모나지 않고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회적 미덕이었다. 획일성과 동질성이 인정받던 시대였다. 이제는 ‘두더쥐 잡기’와 같은 오락게임은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 튀어야 산다. 두드러져야 보인다. 차별적 요인이 있어야 관심을 갖는다. 트렌드에 자신의 호기심을 더하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노랫말처럼 나이가 든다는 것은 뭔가 새롭지만 세상의 이치에 잘 부합하는 결과물을 창조할 수 있는 연륜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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