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할까 -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존 팀퍼리(John Timperley)는 자신의 꿈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이루는 길은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의 연계성이라고 강조하였다. ‘무엇을 아느냐(know what)’보다 ‘누구를 아느냐(konw who)’가 더 중요한 시대라고 말이다. 흔히 얘기하는 인맥이다. 정보기술이 발전할수록 사회는 더 세밀하게 분열한다. 분열과 협업이 수시로 발생하는 것이 협업이다. 분열된 각자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면서 협업이 이루어지고, 협업의 결과로 사회가 발전한다. ‘누구를 아느냐’는 단순히 부탁하는 수준이 아니라 적재적소의 전문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과의 연결기반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신체 기능은 쇠퇴하고 경험은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새로운 트렌드로 업스킬(up skill) 또는 리스킬(re skill)되지 않았을 때 사회적 은퇴시기는 점점 짧아진다. 일은 3대 건강(신체적․경제적․정신적)의 마중물이자 디딤돌이다. 일이 없어지면 자존감은 떨어지고 고립이 된다. 나이 들어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가 ‘고립’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사람과의 연결고리이다. 이 연결고리가 은퇴라는 두 글자를 중심으로 크게 요동친다. 은퇴 이전의 관계는 정리(整理)하고 은퇴 이후 새로운 관계는 정립(定立)할 때가 바로 은퇴이다. 은퇴 이전에는 명함을 중심으로 하는 비즈니스적 양적(量的) 관계라면, 은퇴 이후에는 진정성을 담은 인문학적 질적(質的) 관계로 변신해야 한다.
명함과 비즈니스 관계 명함은 주된 일자리에서 빼 놓을 수가 없는 필수품이다. 소속과 직책, 이름이 새겨져 있는 명함은 아바타이다. 명함은 비즈니스에 자신의 알리는 수단으로서 권한과 책임의 범위를 담아 낸 증표이다. 그만큼 비즈니스에서는 명함이 갖는 위력은 대단하다. 주된 일자리에서 근속기간 만큼이나 받은 명함의 숫자는 비례한다. 비례의 기울기는 개인마다 직무마다 천양지차일 수 있지만 양적 관계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숫자는 많지만 마음을 터 놓고 소주잔을 마주 할 수 있는 관계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다른 직무로 전출이 되면 받았던 명함의 효력이 상실되고, 상실된 효력은 굳이 연락할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므로 명함은 무용지물이 된다. 비즈니스적 양적 관계에서 나눴던 대화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그렇게 많지 않다. 기분 좋은 말,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말로 그럴 듯 하게 포장된 말잔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말에 귀 기울이는 순간 그동안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경계해야 한다.
또 한 번 명함의 기능이 상실되는 이벤트가 주된 일자리에서의 물러남이다. 희망퇴직, 정년퇴직은 명함의 종말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 많던 명함이 퇴직과 함께 공중분해 된다. 퇴직하고 3개월이 채 안되는 시점에 명함의 70% 인맥은 사라진다. 하루 종일 호떡 집에 불나듯 울려대던 스마트폰은 무색할 정도로 조용하다. 답답하고 초조해진다. 나머지 30%도 1년이 채 걸리지 않아 정리된다. 양적인 관계는 주된 일자리 근속기간과 비례해서 숫자가 증가하지만, 퇴직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는 눈사태 나듯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짐을 경험한다. 급할 때 손을 내밀어도 손을 잡아 줄 연결고리가 약한 것이 바로 양적 관계의 한계이다. 소속과 직책이 없어지면 바로 소멸하는 것이 양적 관계의 특징이다. 퇴직에 임박하면 양적 관계에 기댈 생각은 하지 말자. 양적 관계는 반대급부가 기다리고 있다. 준 것 만큼 받으려는 심리보상이 기저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퇴직이 가까울수록 기존의 관계를 서서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도 달라질 것은 없다.
3명의 진정한 벗 은퇴 이후에는 양적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신적 건강 지킴이가 필요하다. 건강은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이다. 그 교두보를 만들어 주고 보수해 줄 있는 진정한 벗이 필요한 시기가 은퇴 이후이다. 질적 관계는 절제가 필요하다. 건강은 좋은 것을 찾아서 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 맞지 않는 것을 안 먹어야 한다.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만나서 불편하다면 굳이 만날 이유가 없다. 시간과 체력, 그리고 재정적 소모를 하면서까지 만날 필요가 없다. 정서적 소비는 체력과 함께 정신적 피로감으로 이어진다. 조금이나마 가슴에 품고 있던 기대감이 서운함으로 변질될 때 감정적 소모는 너무 크다. 나이가 들면 진정성 있는 소수의 벗이 있어야 한다. 숫자에 연연하던 양적 관계에서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할 만큼 질적 관계로 전이되어야 한다. 질적 관계의 맨 꼭대기에는 가족이다. 가족 중에서도 배우자이다. 가족과 돈독한 관계는 은퇴 이후 삶을 평온하고 풍요롭게 꾸며준다. 가족 이외에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벗이 있어야 한다. 가슴에 응어리를 언제라도 나눌 수 있고, 만나면 늘 웃을 수 있는 행복한 벗 말이다. 그 벗은 정신적 건강 지킴이다. 고립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는 건강지킴이! 고립은 외로움으로, 외로움은 우울증으로, 우울증은 치매로 연결되는 하나의 고리이다. 그 원천이 질적 관계가 무너지면서 찾아오는 고립이다. 건강이 무너지면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는가는 무의미하다. 사회 활동의 마중물은 신체적 건강이다. 육십이 넘은 ‘선배시민(최근 노인 또는 고령자를 대신 지칭하는 말)’을 받아 줄 만큼 인프라가 아직은 부족하다. 가장 큰 이유는 일터에서 재해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23년 산업재해 사망자(2016명) 중 60세 이상 비중이 52.1%(1051명)에 달할 정도이다.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기에 경력과 역량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받아 줄만한 일터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건강을 추스릴 수 있는 명약이 자신의 분신과 같은 질적 관계이다. 당장 돈 천만원이 급할 때 이유를 묻지도 않고 언제 갚을지 따지지도 않고 선뜻 돈뭉치를 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옆에 있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자.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라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