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까지 일을 할 것인가? -
왜 다양성(diversity)과 포용성(inclusion)일까? 2020년대 화두이다. 개인이 갖춰야 할 소통능력 중 으뜸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 갈수록 고집이나 아집이 아닌 이타적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스스로 소화시킬 역량이 필요하다. 다양성과 포용성은 옥토제너리언(octogenarian)에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다. 영화 ‘인턴(intern)’ 의 시작은 좌충우돌이지만, 70대 인턴의 연륜과 30대 CEO의 참신 발랄한 아이디어가 ‘다름과 차이’라는 큰 틀에서 소통과 이해를 매개로 잘 버무려져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된다. ‘너 틀렸어’가 아니라 ‘나와 다르구나’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다양성의 시발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입을 닫고 귀를 열어야 한다는 이유는 뭘까?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도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고 강조한다. 기하급수적으로 변화하는 트렌드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귀를 열어야 한다. 진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 때는 말이야’와 같은 케케묵은 지식과 경험은 과감하게 떨쳐 버리자. 새뮤얼 아브스만이 강조한 유효기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장년층의 지식과 경험에 최근 다양한 트렌드를 입혀 자기 것으로 소화한다면 아주 새로운 영역의 해법이 탄생될 수 있다. 바로 장년층이 옥토제너리언으로 지낼 수 있는 비결이다. 노년의 행복은 경제적 여유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경제적 여유는 필요충분조건이라기 보다, 없으면 노년이 비참하기에 필요할 뿐이다. 경제적 풍족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회적 쓰임새와 세대간․성별간․개인간 돈독한 관계 유지와 개선을 위해 다양성과 포용성은 노년에 반드시 챙겨야 할 덕목이다. 지나간 계급장에 연연하지 말자. ‘예전에는’이란 화법은 사용하지 말자. 이타적 의견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더 이상 대화가 진전되기 쉽지 않다는 자조 섞인 판단으로 말문을 닫는다. 다양한 주제와 대화 통로가 닫히게 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에 갑자기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뭘까? 글로벌 선두권 기업일수록 더 높은 관심을 보인다. 인사관리나 조직문화에서 강조하는 키워드이다. 그 이유는 ‘협업’이다. 협업은 성공을 보장하는 보증서이다. 협업은 공동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존 조건 중 하나이다. 동질적이고 획일적인 중심의 조직은 지시와 명령에 의해 협업이 이뤄진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필요한 조직이다. 명령이 곧 조직 생사와 직결되는 군대 조직과 같은 곳 말이다. 하지만 이런 조직은 지구촌에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소수만 남았다. 이제는 달라졌다. 비빔밥처럼 남녀노소의 다양한 의견을 아울러야 한다. 어떠한 장벽도 조건도 있어서는 안된다. 인공지능이 장벽과 조건을 파괴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학벌은 조만간 무너질 것이다. 2024년도에 제1금융권에 인공지능이 신입사원으로 채용되었다. 인사카드에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나이와 학력, 지역, 성별을 말이다. 스스로 변해야 한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받아 들일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구조조정 1순위가 될 뿐 아니라 재취업은 물 건너 간 것이나 진배없다. 그 만큼 생존에 필요충분조건이 되었다. 다만, 다양성과 포용성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 전문성이 있어야 다양한 의견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으며 폭식하지 않고 골고루 소화시킬 수 있다. 장년층에게 유리한 영역이기도 하다.
최근 글로벌 기업의 구조조정 1순위가 일머리가 있더라도 협업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재미난 통계를 봤다. 일을 잘한다고 하더라도 독불장군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과 10여년전만 하더라도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었다. 입사연도 또는 나이, 성별, 학력 등의 보이지 않는 인구통계학적 요소에 의해 상대적 순위가 매겨졌다. 이제는 의미가 없다. 나이 어린 리더와 일을 못하겠다거나, 나이 많은 인턴과 협업을 못하겠다고 하는 순간 해고 대상이 된다는 것을 글로벌 기업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멀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이유는 인구구조 변화와 디지털 발전이다. 1950년대 말 1960년대 출생한 세대는 매년 백만명에 육박했다. 2019년은 출생아 30만명 저지선이었다. 2020년도부터는 20만명대이다. 2023년도에 23만명이었다가 2024년도에 반등하여 23.8만명이다. 지금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하는 2002년도 이후 출생자수는 50만명이 되지 않는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반토막 수준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사회에 진출할 때에는 인구수는 곧 생산성지수와 비례했다. 힘(power)과 지식(knowledge)이 생산력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튀는 행동은 사악한 것으로 간주했다. 동질성과 획일성이 강조되었던 시대로 일사불란한 조직 또는 말 잘 듣는 인적자원이 각광 받던 시절이었다. 출신학교와 성적이 채용조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그 결과 대학교 진학률이 매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사교육이 번창한 근원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이후 출산율이 낮아졌다. 생산성을 책임졌던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생산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생산인구 감소는 사회 몰락이라는 등가식으로 사회 곳곳에서 위험신호를 보내 왔다. 21세기는 다르다. 2000년대 이후 출생 세대는 힘(power) 보다 지혜(wisdom)에 의존한다. 지혜는 지식에 경험(experience)이 덧 되어진 산출물이다. 지식이 동질성과 획일성이라면, 지혜는 개인의 경험에 따른 다름과 차이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다양성(diversity)’이다. 다양성이 4차 산업혁명의 마중물이다. 다양성을 포용하느냐 못하느냐가 개인이든 조직이든 생존의 갈림길이 되었다. 최근 몇 년간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 이유도 개인의 다양한 경험을 사기(buy) 위함이다. 신입사원이 하던 일정한 패턴의 반복된 단순 업무는 인공지능 또는 로봇이 대신하는 것이 기회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판단에 의해서 말이다.
다양성이 존중받으려면? 적정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적정거리는 90cm를 의미한다. 90cm는 어릴 때 애지중지했던 비닐우산의 직경과 같은 거리이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임을 직감할 수 있다. 이 공간을 침범하지 말자. 인정하고 존중하자. 오롯이 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이가 계급이었던 시절을 그리워하지 말자.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자. 배울 수 있을 때 기꺼이 배우자. 평생교육시대이다. 경력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또 하나는 차별과 편견이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나이, 성별, 학력, 지역, 국가와 같은 인구통계학적 요소에 따른 편견을 배제하자. 나이가 계급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 ‘인턴’이 얘기하고 있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는 순간 한 발자욱도 앞으로 전진할 수 없음을 말이다. 더더군다나 지식(knowledge)의 대명사였던 형식학습의 학업성적과 졸업장은 그 의미가 쇠퇴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대학교 졸업장과 성공보장이라는 등가식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인공지능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 그것에 의존한다면 조직이나 개인 모두 발전할 수 없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 만큼 세상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달라지고 있다. 1980년대를 20대를 맞이했던 베이비부머 세대와 지금의 20대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영화에서나 상상했던 세상이 오늘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무인자동차가 시내를 활보하고, 로봇이 백 댄서를 대신하는가 하면, 사람과 컴퓨터가 세기의 바둑대회가 개최될 만큼 달라진 세상에 살고 있다. 그 누가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겠는가. 또 어떤 내일이 다가올지 모르기에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만 엄습해 올 뿐이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아울러야 한다. 비빔밥처럼 말이다. 전주비빔밥만 비빔밥이 아니다. 지역마다, 계절마다, 개인 취향에 따라 비빔밥 종류가 다양할 뿐 비빔밥이 아닌 것이 아니다. 모두 비빔밥이다.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갈 수 있도록 걸림돌을 빼서 디딤돌로 만들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숫자에 불과하려면 변해야 한다. 퇴직하면 닥쳐올 현실은 잘 알고 있다. 시험문제를 예산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것도 오픈북이다. 준비만 하면 된다. 어제는 바꿀 수 없지만, 내일은 선택할 수 있다. 문제도 알고 답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디지털의 발전과 일터 기준의 진화, 평균수명 증가와 은퇴준비 미흡 등 닥쳐올 위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진정한 걸림돌은 행동으로 옮기는 ‘머뭇거림’이다. ‘변화 지체 현상(change lag phenomenon)’이다. 정년퇴직하면 쉬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 있다. 동질성과 획일성으로 사회적 잣대를 들이대던 아버지 세대 전략으로 나의 미래를 설계하지 말자. 절대로 맞지 않는다. 다름이 아니라 틀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소한 80까지는 일해야 한다고 말이다. 세계적으로 옥토제너리언(octogenarian)이 트렌드이다. 은퇴 없이 현업에 종사하는 80대를 뜻하는 신조어이다. 옥토제너리언의 일원이 되려면 이타적 의견을 ‘옳고 그름’보다는 ‘다름과 차이’로 바라보면서, 내 것으로 녹여낼 수 있는 포용성이 내재화될 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