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를 뽑는 공고를 유념해 살펴보면 ‘일정 조율이 가능한 자‘라는 조건이 있는 경우가 있다. 굳이 이 글귀를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정을 조율하는 게 무엇이 그리 중요하다고. 그런데 이 일정을 조율하는 게 편집자의 일 9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다.
책의 마감 날짜를 지키는 일. 물론 100퍼센트 지키는 일은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 날짜에 가능하도록 만드는 일은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책은 시간을 앞두고 마감한 뒤 책이 만들어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
책의 마감뿐 아니라 번역 기한을 지켜야 하는 경우도 있고, 디자이너나 외주 편집자, 제작 상황, 마케팅 전략 등 편집자는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일정을 소화해야만 한다. 편집자가 일정을 놓치기 시작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일정을 놓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난다.
출판사에서 사람들 뽑을 때는 디자이너, 마케터, 편집자, 제작자, 경리계 등 여러 사람들을 뽑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많이 보이는 건 편집자다. 왜냐하면 편집자가 없으면 우선 책을 기획하거나 그 기획된 책을 글자로 옮기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원고가 있어야 무언가를 하든지 말든지 할 수 있다.
아마도 아무도 모를 수 있는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요즘 난 <냉장고를 부탁해>를 즐겨 본다. 셰프들이 게스트의 냉장고에서 재료를 선택해 15분 안에 요리를 만드는 일이다. 처음 나온 셰프들은 15분 안에 뚝딱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15분 안에 요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셰프는 실수하기도 하고, 어느 셰프는 음식의 양을 줄이기도 한다.
내가 놀랐던 건, 어느 셰프가 ‘배 찜’을 15분 안에 만든 일이었다. 보통 배 찜은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그 셰프는 압력솥을 이용해 15분 안에 배 찜을 만들어 승리를 쟁취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맛있는 음식을 내어준다는 점을 보며 ‘바로 이게 쉐프지!’ 싶었다.
주어진 일들이 눈앞에 닥친 듯 몰려올 때가 있다. 아니, 지금도 일들은 눈앞에 쏟아질 듯한다. 자신이 맡은 일들 이외에도 많은 일들을 쳐내야 하는 직장인, 아니 꼭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에게 주어진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15분으로 이 일을 하라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게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스타셰프의 삶이다. 그리고 시청자도 그것을 즐기고. 이 상황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주어진 시간 안에 일을 헤쳐나가는 것, 그게 다른 사람 보기엔 즐거운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