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찾기
늘 품안에 있던 아들이 요즘 처음 사귄 여자친구를 만나러 휴일이면 가족들의 움직임엔 아랑곳 없이 콧노래를 부르며 데이트를 하러 가는 모습을 보면서.
생리주기가 불규칙해 지면서 석류를 초조하게 입에 털어놓고 좋은건지 싫은건지도 모른채 있다가 괜시리 눈물이 핑돌아 그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가톨릭 신자이며 피정도 1년에 몇번 다니는 나, 신부님이 집으로 오셔서 식사도 함께 하고, 묵상기도를 한다며 성서를 열심히 보지만, 시간이 나면 유튜브로 존경하는 스님들의 법문을 즐겨듣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하루중에 많은 시간이 여유롭다면 스님들의 법문을 무진장 집중하며 듣고 있는 나.
손님이 오면 거실에 있는 책장을 먼저 딲고 거실에 '대'자로 누워 흐뭇하게 책을 보면서 제목들을 읽다가 어쩌면 저렇게 어렵고 긴 책들을 읽었을까 혼자 대견해 하지만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여지없이 무너지는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준 낮은 행동들로 쌓여져 있는 책을 무너질수 밖에 없는 도미노로 만들어 버리는 나.
당신의 티는 왜 이렇게 잘 보이는지 잘 따지며 말로 표현하지만 않을뿐 시시비비는 머릿속에서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상대를 향해 휘두르지만 결국엔 머리가 아파 쓰러지는건 나다.
어릴적의 상처들로 아버지와 화해조차 제대로 못한채 돌아가신후 엄마에게 매일 2번씩 전화를 하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것인지 엄마를 위한 것인지 헷갈린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달리기만 하고 있다. 여기 저기
좋은것만 하고 싶고 싫은것을 하려고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듯 더 피하고 싶기만 하다.
새로운것, 신선한것, 예쁜것, 재미있는것, 젊은것보다는 오래된것, 불편한것, 검소한것, 작은것, 여백이 있는것을 더 원한다고 말하지만, 어느새 스마트한것들에 스며들어 살아가는 나를 본다.
기타등등
이런 시간들을 보내며 방향성을 잃게 되어 버린 나를 본다.
주류의 움직임에 불편해 하며 나의 길을 고집하다 어떤것은 깊이 패인 나의길이 생기기도 하고 어떤것은 주류의 움직임에 발맞추지 못하는 나를 불안해 하기도 한다 또 어떤것은 분명히 주류속에 있기도 하다. 이렇듯 어느것 하나 나를 규정할수 없고 규정되어 지지도 않는데 난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수많은 선택속에서 판단을 하는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것인데 그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조금 조금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를 바라보고 싶다. 조금 거리를 두고
그 시작을 이곳에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