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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 김선생님 Feb 22. 2022

창백한 푸른 점

그럴 때가 있다. 특별히 뛰어나지도, 눈에 띄지도 않지만 자꾸만 마음이 가고 신경이 쓰인다. 현명한 선택을 한답시고 버려두고 와도 이상하게 생각이 나서 결국은 돌아가서 집어오게 되는 물건처럼. 계도, 반려동물도, 사람도 마찬가지.  그렇게 함께하게 되면 내내 기분이 좋아지고 마냥 감사하게 되는 인연으로 게 된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오직 사람의 판단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닌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나름의 종교가,  나름의 신이 , 나름의 인연들이 결국은 모두 연결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러니까 어느 순간이든 모든 것을 진심으로 대해야겠다는 다 해본다. 억지로 되는 일이 없고, 어차피 될 일은 알아서 차곡차곡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나는 그저 소소한 행복이나 찾아보겠다.


 우리 집 물건 중에서 제일 연식이 오래된 물건인 피아노는  작고 낮고 소박한 모습으로  피아노 매장 구석에 놓여 있었다. 아주 오래되었지만 심지어 새 피아노만큼이나 가격이 비싼 중고 피아노.  화려한 새 피아노들 틈에서  굳이 왜 할같은 피아노를 골라놓고 있는지 피아노 매장 사장님은 떨떠름해하셨던 것 같도 하.

 사실 피아노가 오래될수록 좋은 악기 인지도 모르겠고, 브랜드가 어디인지, 어떤 나라에서 만들어진 물건인지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노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고, 그저 그 피아노가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홀린 듯 결제를 했다. 제를 할 때는 조금 현실적인 인간이 된다. 10개월 할부되나요. 모든 책임은 열 달 후의 내가 질 거예요.  지금의 나는 담담히 저지를 수 있다. 좋다.


은퇴 이후의 삶을 함께 해줄 친구를 좀 일찍 만났다고 하기엔 퇴직은  아직도 20년이 남았고, 그때가 되면 이 피아노는 거의 백 살 가까이 된다......(내가 미쳤지......)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


창백한 푸른 점,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티끌 같다. 티끌 속의 나란 사람은 한없이 작아지고  겸손해진다. 더 신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쓸데없는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이 가는 곳으로 방향을 튼다.

이렇게 넋 빠진 소리를 할 수 있는 온갖 여유로움 감사하다가 10개월 할부를 생각해냈다.

아참, 열심히 살아야다.

열 달 후의 내가 나의 멱살을 잡지 않으려면.


(그러니까 피아노는 코스모스 때문에 지른 것이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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