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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 김선생님 Mar 18. 2022

3월이 설레는 이유

 또다시 시작이다. 교사에게 새해의 시작은 1월 1일이 아니라 3월 2일이다. 3월은 설렘과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예방주사를 맞으러 간 아이가 팔뚝을 걷어올리고 알코올 솜으로 깨끗하게 정리된 뒤 바늘이 따끔하기 직전의 상태가 된 것처럼, 사실 주사를 다 맞고 나면 별거 아닌데 눈을 질끈 감아서라도 순간을 잘 버티고자 하는 마음이 든다. 꽤 여러 번의 3월을 마주했지만 3월은 여전히 설레고 막연히 두렵다. 

 3월 2일, 보통은 정신없는 입학식부터 시작된다. 적당히 숙련된 교사의 직감으로 입학식장에 들어와 앉아있는 아이들을 슥~ 훑어보고 나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 올해는 잘 버틸만하겠군! 혹은 올해는 망했구나. 옆반도 힐끔 쳐다보며 비교를 해보지만 이런저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새 학기의 시작은 살랑한 봄바람만 큼이나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교실, 새로운 아이들, 새로운 학부모. 교사라면 누구나 새롭게 시작한 이 학년도가 무사히, 그리고 훌륭하게 마무리되길 바란다. 3월을 잘 다듬어서 학급을 만들어두면 그 안에서 아이들은  1년 동안 쑥쑥 잘 자라난다.

그래서 3월은 정말 중요한 달이다. 아이들과 신뢰를 쌓아서 우리 선생님이 좋고, 우리 유치원이 좋아서 매일매일 유치원에 가고 싶은 아이를 만들어줘야 하고, 선생님이 너무 편한 나머지 버릇없이 굴지 말아야 할 적당한 위계를 잡아야 되기도 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선생님은 다른 애들보다 특별히 너를 훨씬~더 사랑하지만 이건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야.'라고 믿게 하고, 아이들과 끊임없이 밀당을 하게 되는 3월이다. 양다리 문어다리, 분명 연애에는 소질이 없었는데 말이다.  

 "수리수리 마수리~ 너는 나를 사랑하게 된단다. " 

 처음 보는 아이들의 이름을 재빨리 외워야 하고, 아이 하나하나의 성향을 파악하려고 보고 또 본다. 비슷한 듯 다른 듯,  아이들의 성향도 대충 어느 카테고리에 집어넣어야 할지  감이 온다. 예민한 아이, 조금 느리지만 순한 아이, 과격하지만 마음은 여린 아이,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조용히 사고 칠 수 있으니 예의 주시해야 하는 아이 등 매년 새로운 아이들이 오지만 신기하게도 미리 설정한 카테고리에 적당히 가려 넣어볼 수 있다. 리고 그에 따라 학부모의 성향도 얼핏 가늠해 볼 수 있다. 보통 양육자가 예민하면 아이도 덩달아 예민한 경우가 있고, 여유로우면 아이도 무난할 확률이 높다. 나는 아이들의 등원 첫날, 개인물품을 가지고 올 때 꼭 칫솔의 크기를 살펴보는 편이다. 나이에 맞지 않게 혹은 덩치에 맞지 않게  칫솔의 크기가 아주 작으면 긴장이 된다. 보통 유아의 칫솔은 아주 작은 것부터 적당히 작은 것까지 사이즈가 세분화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자람에 따라 점차 바꿔 구입하게 되기 마련이다. 아이가 덩치가 커지고 자랐음에도 여전히 아주 작은 칫솔을 쓰고 있는 경우, 몇몇은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부모의 모습이 보인다. 아, 물론! 이것은 지극히 편견이 가득 들어 있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 누구든 칫솔 선택과 부모의 양육태도에 대해 논문을 좀 써서 연구해 주길 바라본다. ) 양육자의 눈에는 그 아이가 아직 '어린 아가 '이기 때문에  모든 걸 다 해줄 수밖에 없어서 그런 아이들의 경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다. 혼자 신발을 벗기도 힘들어하거나 가방을 정리하는 등의 간단한 일도 주변의 어른이 다 해주길 바란다. "네가 한번 해봐. 할 수 있어." 쭈뼛쭈뼛 나는 못해요 하던 아이가 가방을 들어 고리에 걸고 나면 그렇게 뿌듯해 할 수 없다. 가방 고리에 가방을 거는 일이 뭐 그렇게 큰일인가 싶어도, 그 순간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알게 되어서 새삼 유능한 자신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잘했어 이 녀석아. 이제 나랑 이렇게 커 가는 거야. 잘 커보자."

한편, 그 어떤 카테고리에도 들어갈 수 없는 특별한 아이들도 있다. 범하지 않아서 미있는 녀석들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적어도 1년은 내 속을 박박 긁고 있을 녀석들이다. "아우, 이 녀석아. 내가 몬산다." 외치다가도 그 엉뚱한 매력에 빠지게 될 그런 아이들이 신기하게도 매년 꼭 있다. 어항에 비눗물을 부어 물고기 목욕을 시켜주고,  가지 말라는 곳에 꼭 들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흙을 뒤집어쓴다거나,  교실 밖으로 도망가는 망나니까지, 흥이 넘치고 끼가 넘치는 아이들이 늘 존재하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감사하다.

 

 경력이 차오를수록,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지는 신념이 있다면 "아이들은 참 예쁘지 않을 수 없다. "라는 것이다. 모든 아이는 하나하나 다 소중하고,  그 아이의 삶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 래서 유치원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내가 유능한 사람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실수해도 별거 아니니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세심하게 살펴봐야 칭찬할 일이 생기고,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아이의 의도를 파악하고 잘못된 일을 가르쳐서 바로 잡을 수 있다.


이렇게 3월을 지내고 있다.

어서 빨리 이 분주한 시간들이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 4월이 되고 5월이 되면 또 별거 아닌 게 되는 3월이니까. 제발 빨리 지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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