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교사하면 떠오르는 것들

by 상냥한 김선생님

어버이날, 어린이날, 생일, 텃밭, 추석, 설날, 김장, 크리스마스!

그것은 카네이션 만들기, 선물포장, 생일 카드 만들기, 추석 송편 만들기, 농사짓기, 설빔 만들기, 배추 절이기, 트리 꾸미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마다 어울리는 예쁜 말 동요를 가르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반복하고, 왜 양치질을 정성 들여해야 하는지, 어른을 보면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또 가끔은 격하게 요란을 떨면서 칭찬도 하고, 귀여워서 웃음이 피식피식 피어오르는 와중에 근엄한 척 눈을 부릅뜨고 야단도 친다. 구석구석 교실 먼지를 쓸고 닦고, 교실 안 동물들을 살펴보고, 유치원 밖 새싹들을 돌아보며 물통을 이고 지고 물을 준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지 가르치고,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를 직접 보여준다. 요즘에는 컴퓨터과학의 원리와 센서의 역할을 놀이로 가르치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유치원교사로 살아가면서 "잘 노네. 자~알 논다. 유치원은 맨날 노는 구만."을 가끔 들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내가 해내고 있는 저 많은 일들을 생각한다.

"어머, 선생님은 유치원선생님 안 같아."

15년째 유치원교사로 살고 있는 나를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말이다. 유치원교사라고 하면 대체로 예쁘고, 친절하고, 밝고 맑은 기운을 가득 담아 미소를 띤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이상하다. 나는 대체로 다정하고, 우리 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하는데 유치원 선생님 안 같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치원교사가 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좋고, 호들갑 떨면서 칭찬하고 안아주는 일도 너무 좋아하니까 말이다. 나는 왜 유치원교사가 되려고 했을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늘 애매했다. 피아노를 좋아했지만 손가락이 아담해서 아주 어려운 곡, 그러니까 손가 락을 길게 늘여 쳐야 하는 구간이 들어있으면 책을 슬그머니 넘기곤 했다. 연습곡으로 쓰이는 결혼행진곡 중에는 손을 크게 벌려 도에서 그다음 옥타브의 레 건반을 함께 눌러야 되는 구간이 있는데 아무리 손가락을 늘려봐도 레까지 닿지 않았다. 재빠르게 트릴 정도로 때우기에는(트릴은 꾸밈음 같은 것인데 다른 두 음을 번갈아가며 빠르게 연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이후의 곡은 더 어려운 지경이었다. 더 어렵고 멋진 곡을 치고 싶었지만 적당히 배우고 그만뒀다. 그래서 창작동요를 적당히 화려하게 연주할 수 있다(bravo!)


발레를 배웠다. 발레의 우아하고 가냘프지만 힘찬 동작들을 정말 좋아했다. 한쪽 다리를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뒤로 곧게 들어 올리고, 나머지 다리로 중심을 잡은 채 팔과 몸을 유연하게 뻗어 균형감과 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아라베스크 동작은 정말 멋져서 예쁘게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예술은 타고나야 한다. 노력으로 채울 수 없는 지점이 분명 있다. 전공을 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으나 전공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며 취미로 하는 것이 어떻냐는 선생님의 현실적인 조언이 있었다. MBTI가 대문자 T임이 분명하다. 예술하는 딸을 보고 싶었던 엄마는 동의할 수 없었던 것 같지만, 아담한 손가락으로 결혼행진곡을 칠 수 없었던 것처럼, 팔다리 또한 길어야 발레 동작도 예쁘다. 현실적인 선생님의 말에 발레를 그만뒀다. 하지만 그때 배워둔 발레 동작과 스트레칭은 율동을 가르칠 때 가끔 잘 써먹는다. 공부해 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역시 진리다.


그림에는 분명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국 대회도 나가서 상도 여러 번 받아봤다. 곧 잘 그리긴 했지만, 정작 입시 미술 학원에 들어간 첫날, 커다란 도화지에 사선을 끊임없이 그리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반항하지 않고 꾸역꾸역 끝까지 잘 그려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가지 않았다. 나의 재능을 사선을 그리는 데 낭비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미화하고 싶지만 그냥 입시 미술이 하기 싫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영역이든 사선 그리기와 같은 지난한 과정은 분명 필요하다. 기본에 충실해야 무엇이든 그 이상을 잘 해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선을 내리 그리던 그날, 눈앞에 무심한 듯 놓인 아그리파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우, 저 눈 쳐진 아저씨 표정만큼 지루하다! 내 길이 아닌갑다.' 비겁한 변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매번 만들기를 하면서 아이들보다 더 신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그때 도망치지 않았으면 나는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유아명화감상 수업에 진심이 되었다.


사실 어설프게, 잡다하게 알아두었던 많은 지식들이 오히려 내가 유치원 교사를 ‘천직’이라 여길 수 있게 만든다. 아주 특별한 한 가지의 숙련된 재능보다는, 다양한 영역의 소소한 재능이 골고루 필요한 곳. 유치원은 바로 그런 빈틈없는 다재다능함이 요구되는 현장이다.

물론 모든 유치원 교사가 나처럼 애매한 건 아니다. 지금 나는 ‘애매한 나’가 가진 이 특별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다. 어쩌면 바로 그 애매함 덕분에, 나는 유치원 교사라는 일을 천직이라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 ‘유치원 교사’라는 존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도 다시 묻게 된다. 그러고 보면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은 세계를 품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음악도, 미술도, 몸을 쓰는 일도, 말 한마디도 모두 중요한 도구가 된다. 나의 경험들, 좋아했던 것들과 조금은 서툴렀던 것들까지도 지금의 유치원교사로서의 나를 버티게 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의 또 다른 유치원교사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된다.

내가 졸업한 대학에는 사범대학 안에 유아교육학과와 교육학과, 체육, 영어, 가정교육과가 있었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이 모든 과가 함께 했다. 선배들은 오티현장에서 새내기를 기다리면서 대충 멀리서 걸어오는 실루엣만 보고도 어떤 과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대략적으로 그 기준은 들어맞았다. 그때 멀리서 걸어오는 곰 같은 녀석이 있었다. 체육교육과에서 일찌감치 "저 녀석은 우리 과군." 하고 맞으러 갔단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온통 털괴수 같은 느낌의 이 친구는 환하게 웃으며 "저는 유아교육과입니다."라고 말했고, 그 자리에서 모두를 황당하게 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빨리 전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친구는 전과도 하지 않았고, 과대표를 하면서 성실하게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유치원선생님이 되었다. 처음엔 ‘남자 유치원 선생님이라니, 학부모들이 편견을 가지면 어쩌나’ 걱정도 있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학부모들도, 아이들도 그를 무척 좋아하고, 20년이 다 되도록 지금까지도 현장을 잘 지키고 있다.

현장에서 알게 된 선생님 중에 하나는 그렇게 퇴근 이후에 춤을 추러 간다. 현대무용이든 발레든 퇴근 이후에 레슨을 받으려고 지방에서 KTX와 지하철을 번갈아가며 타고 매일 서울을 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열정이다. 그 반의 아이들은 선생님의 그런 열정을 어떤 형태로든 배우고 있을 테지 생각해 본다. 그림책에 진심이 되어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하고, 생태환경수업에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소중한 지구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마다의 능력으로, 유치원 교사라는 소임을 다해내고 있다.

‘유치원 교사’라는 이름 아래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있고, 다양한 방식의 잘함이 존재한다. 나는 그중 나만의 방식으로 오늘도 교실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하지만 매번 새로운 하루를 아이들과 함께 살아내며, 웃고 배우고 자라는 일. 그 일에 여전히 감사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일을 사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머, 선생님은 유치원 선생님 안 같아." 이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 말엔 ‘근사하다’, ‘뭔가 다르다’, ‘유쾌하다.' 같은 온갖 특별한 뜻이 숨어 있다는 걸.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답게, 내 방식대로 유치원 교사로 살아가야겠다.
조금 엉뚱하고, 가끔 웃기지만, 아주 진심으로.


매거진의 이전글고흐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