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냥한 김선생님 Sep 17. 2022

해외 초빙 교사 적응기

재외국민한국학교에서 있었던 일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중국으로 초빙교사를 다녀왔다. 교사를 시작할 때부터 재외국민한국학교에 근무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경력이 쌓이면 꼭 지원을 해보고 싶었다. 유치원의 경우는 채용 인원이 많지 않고 그나마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아 매년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얼결에 초빙교사에 합격하여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초빙교사에 합격하면 교육청에 고용휴직을 신청할 수 있고, 교육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교육부는 재외국민 자녀의 교육을 위해 34개의 재외국민한국학교를 설립했다. 대부분 아시아 국가에 있고, 유초중고의 학교급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재외국민한국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는 형태는 교육부가 권한을 갖고 있는 파견과 현지 학교장이 채용권한을 갖고 있는 초빙과 현지채용이 있다. 해마다 재외국민한국학교에서는 초빙 공고를 내고 한국에서 교사를 초빙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멋모르는 자의 용기로 시작한 중국 생활은 참 당찼다.  원래 무식한 놈이 용감한 거랬다.

 오래된 유행가에서 들어봤던 이얼싼스, 인사할 땐 니하오, 농담할 땐 니취팔러마~ 중국어 실력이라고는 그게 다였지만, 막연한 자신감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사람 사는 곳은 모두 똑같지 뭐.’ 매일매일 여행하는 것처럼 생활하면 되겠지! 정말 용감하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용감할 수 있을까?

나의 역할은 중국에 있는 한국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 및 유치원 교육과정(누리과정)을 가르치는 일이었고, 우리 반 아이들은 아빠는 한국인, 엄마는 중국인으로 절반은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아이들을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처음 맡은 반은 만 3세 반, 즉 한국 나이로 다섯 살 반이다. 기관에 처음 오게 된 아이들이기 때문에  기본생활습관을 주로 가르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기관에서 하루를 잘 적응하고 안전하게 생활하고 돌아가는 일이 이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올바른 행동을 알려주고, 바르지 못한 행동에 대해 잘 설명해주어야 한다.

老~师!” 선생님을 마구 불러댄다. 아마도 친구가 때렸다고 이르는 모양이다. 지금은 무슨 말인지 당장 알아들을 수 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전혀 못 알아들었다. “뭐라고? 잘 모르겠는데 다시 말해줄래?” 한참을 중국어로 설명하던 아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뭐야 이 사람은’이라고 온몸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한국말로 말해봐요.”

친절한 말투로 불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아이들은 내 앞에서 한국어만 쓰려고 노력하기 시작하고, 몇몇 아이들은 영리하게도 입을 닫고 바디랭귀지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니임~ ” 부르고 나서 인상을 쓰고 손가락으로 다른 아이를 가리키더니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설명이 안될 때에는 아주 쉬운 중국어 단어를 나열해 가며 나에게 중국어로 말했다.

태어난 지 36개월 된 아이가 눈을 부릅뜨고 짧은 손가락과 통통한 두 볼, 예쁜 입술에 힘을 주며 한 단어 한 단어, 자기들 딴에는 제일 쉽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머릿속으로 선택하여 나열하는 모습! '제발 알아들어라. 이 선생님아~!' 간절함이 느껴지는 다급하고 느릿한 중국어!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미안하다. 얘들아, 잘 살고 있지? )

선생님이 중국어를 하나도 못하셔서 너무 좋아요!


이것은 욕이었던가, 칭찬이었던가!

중국에서 학부모 상담을 했을 때 들은 말이다.  한국인이지만 한국말을 못 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한국어 습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한국에서 살게 되었을 때 한국의 교육과정을 무리 없이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한국어를 잘할 수 있게 되길 바랐던 것이다. 이 아이들은 후에 재외국민특례전형을 통해 한국의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책 없는 자신감으로 중국어도 모르고 중국 학교에서 버티던 나는 반성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교육의 시작은 래포형성이지만 나의 생각만을 강요하는 한 친밀한 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다.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이루어지는 교육은 이미 교육이 아닌 거라고, 스무 살에 처음 배웠던 교육철학을 생각해 보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래, 친밀한 관계 형성을 위해 일단은 내가 먼저 중국어를 배워야겠어!   


중국어는 외계어 같았다. 적어도 생전 처음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나에게는 그랬다.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발음기호는 영어의 파닉스와 헷갈리기도 하고, 성조를 알아야 하고, 한자를 외워야 하는데 심지어 늘 배우던 그 한자가 아니다.  출근하기 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인터넷을 켜고 중국어 인터넷 강의 사이트를 열었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강의를 노려보았다. 퇴근하고 나서는 중국어 선생님과 집에서 수업을 했다. 한자문화권이기에 비슷한 의미와 발음을 가진 단어들도 많고, 단어를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중국어의 효율적인 문장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기를 몇 주, 신기하게도 아이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놀이에 중간중간 끼어들어 발음은 어설프지만 한 마디씩 거들면, 아이들은 신이 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정확한 발음을 알려주기도 했다.  부모님들의 메시지에도 중국어로 답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번역 앱을 통해 어설픈 문장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돌아오는 부모님들의 메시지에 다정함이 늘어났다.

몇 달이 지나자 나의 중국어가 늘어가듯 아이들의 한국어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빠른 아이들은 중국어와 한국어를 통역할 수 있을 만큼 잘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아이들은 수업 중간중간에 나의 말을 한국어를 못 하는 다른 친구에게 중국어로 전달해 주었다. 예를 들면 “ 야, 선생님이 너 조용히 하래.”, "선생님이 바깥놀이 갈 거니까 화장실 다녀오래." 수업 진행에 도움을 주는 기특한 도움말이다.

 중국어로 복잡한 문장을 말할 수는 없지만, 문장을 들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고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즈음, 언어 획득에 대한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보통 하나의 외국어를 배우게 되고 그 능력치를 1이라고 하면, 영어, 중국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3이라는 능력치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국어를 열심히 배우면 배울수록 한국어가 어눌해지고, 영어 단어가 맴맴 맴을 돌았다. 마치 나의 언어능력이 한국어 0.5, 영어 0.25, 중국어 0.25, 그래서 총능력치는 다시 1이 되는 거다.  이 말은 한 개의 언어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나는 '0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반 아이들의 경우에도 이런 아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학기 초에는 멀쩡했던 아이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응, 어, 라오~슈, 어,,, 어... 쟤 가...” 보는 사람이 숨을 참게 되는 기막힌 광경! 또 어떤 아이는 중국어와 한국어를 한 문장에 섞어 쓰게 되었다. 중국어는 문장 끝에 “吗('마'라고 읽는다)”라는 글자를 붙이면 의문문이 된다. 수업시간에 과제를 다 끝낸 한 아이가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나 놀아吗?”  

선생인 나도 가끔 "워 더 쇼지 어딨냐? (=내 핸드폰 어딨냐?) "와 같은 몹쓸 습관이 붙었다. 몹쓸 습관은 떼 버리기 힘이 든다. 다이어트가 힘든 것처럼.


일 년 가까이 되자,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물론 중국어 성조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말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듯이 성조를 넣어 말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내가 아~안(아↗안↘) 그랬어요.” 가끔은 그게 재미있어서 저도 혼자 몰래 따라 하게 되기도 하더랬다. 중국어를 기반으로 한국어를 배우다 보니 단어 선택도 어색할 때가 있다. 한 아이가 창문 밖을 내다보더니

“선생님, 바람이 엄~청 커요.”라고 말했는데 중국어에서는 바람이 세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크다고 표현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중국어를 배워두지 못했더라면 그 아이가 왜 바람을 크다고 이야기하는지 몰랐을 테지만 중국어를 배운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지금 중국어식 한국어를 하고 있는 거다. 그럼 그 아이에게 다시 말해줄 수 있다. “아~ 지금 바람이 엄~청 세게 불고 있구나?”


 한편, 중국어에는 의외로 존댓말이 없다. 이 존댓말을 아이들이 이해하기가 좀 힘들 때가 있고, 적절한 단어 선택이 힘든 경우도 있다. 그래서 1년이 다 되어도 존댓말을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소문난 장난꾸러기였던 이 녀석은 사고를 칠 때마다 나에게 반말로 반성하곤 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할게. 미안해. 선생님”

 “알았어요. 선생님, 다신 안 할게요.라고 해야지 이 녀석아.” 그럼 씩 웃고 고쳐 말해준다.

 “알았어요. 다신 안 할게요. 근데 선생님 너 이제 집에 가는 거야? ”  에휴, 존댓말 다시 배우자.  


그래, 너희에게도 힘겨운 시간이 되고 있구나. 내가 배우는 중국어가 어려운 것처럼, 너희가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이런 어려운 느낌이겠구나.


코로나로 급히 돌아와야 했지만, 가끔 중국에서의 생활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엉터리 선생님을 만나 한국어와 중국어가 섞여버려서 고생했던 우리 반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말이다. 코로나가 끝이 나고 다시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꼭 아이들을 다시 만나러 가고 싶다. 존댓말은 많이 배웠을까? 궁금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