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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어화 May 13. 2022

야외에서 마스크 벗었더니...

나의 코로나19 사례

5월 5일 어린이날.

5월 6일 중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 학교의 재량휴업일.

5월 7일 토요일.

환상의 연휴 기간이었다.


우리 가족은 남해와 산청에 숙소를 잡고 가족여행을 떠났다. 차가 많이 밀렸지만 이것 또한 여행이기에 겪는 불편이라 기쁘게 감수했다.

5월 2일부터 야외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어서 남해 바다를 보며 마스크를 시원하게 벗었다.

2년 만에 마스크로부터 해방되니 새로운 세상 같았다.

시원한 바람이 코로 바로 들어오고 얼굴의 피부와 맞닿는 바람이 새롭게 느껴지며 나를 가린 것이 없으니 더욱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여유는 잠시였고 아직은 바닷바람이 차가워 마스크를 다시 썼다. 역시 마스크가 바람막이에는 최고였다.

그렇게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자니 조금은 얼굴이 자유로워지는 기회를 누리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벗었다와 썼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습관이 무섭다고 양 떼 목장 옆 편백숲을 걸으면서도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내려오면서야 마스크를 벗었다. 무의식 중에 열심히 쓰고 있었던 것이다.

진한 편백의 향기가 내 코를 거쳐 편도와 폐로 깊숙이 들어왔다.

"아, 공기 너무 좋다. 편백향이 정말 진하네."

아이들은 내가 이렇게 말해도 마스크를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이제 습관이 되어버려서인지 마스크를 쓴 이상 벗기조차 귀찮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사춘기 자녀님들이 같이 온 것이 어디냐 싶어 내버려 두었다.

다행히 편백숲은 한산했고 나는 눈치 보지 않고 맨얼굴로 걸어 내려왔다.

맑은 공기로 정화시킨 나의 허파를 조개 캐기 체험장에서 열심히 들숨과 날숨으로 작동시켰다.

편백숲과는 상반되게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바닷바람이 차가워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찬 지 따뜻한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조개를 캐기 위해 열심히 호미질을 했다.

몇 년 전보다 조개가 많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 허리를 굽혀 갯벌을 호미로 파헤치며 캔 조개 바구니를 마을의 어르신께 드리자 조개를 커다란 물통에 넣어 씻어주며 말씀하셨다.

"며칠째 사람들이 많이 캐가서 조개가 없었을 거야."

"네. 큰 조개는 거의 없고 잘잘한 조개만 캤어요."

"그래도 한 끼는 끓여먹겠는데."

"네. 다행히요."

나는 웃으며 깨끗이 씻어진 조개가 담긴 비닐을 넘겨받았다.

"바닷물에 밤새 해감해서 내일 아침에 끓여 먹어요."

"네. 수고하세요."

그렇게 한바탕 노동을 하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정원이 예쁘게 잘 가꿔진 펜션으로 침대방 하나에 거실, 화장실, 미니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곳곳에 바깥 주인장의 유화작품이 걸려있었고 텃밭에는 적상추가 풍성하게 자라 있었다.

침대방이라 바닥용 요와 이불이 모자라 우리 부부는 거실 바닥에서 얇은 이불만 덮고 잠을 잤다.

바닥에 보일러가 들어오고 완연한 5월의 봄이라 춥지는 않았는데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설치는 예민함 때문에 깊은 잠을 자진 못했다.


일찍 잠에서 깨어 씻고 아침 산책을 나갔다.

아침의 따스한 햇살과 바람에 자연스레 촉촉했던 머리카락이 마르고 찰랑찰랑 날리기 시작했다.

인근의 절에 도착하니 높은 소나무 가지에 등을 주렁주렁 달아놓아 크리스마스 트리와는 다른 정겹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5월 8일이 석가탄신일이지. 올해는 어버이날과 겹쳐서 별로네."

나는 혼잣말로 공휴일이 하루 날아간 것을 아쉬워하며 절안을 구경하고 두 손을 모아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다행히 나를 위해 절을 통째로 내어준 것처럼 인기척조차 없었고 색색의 등 들은 절의 앞마당 하늘을 덮고 있어 절로 감탄이 나왔다.

무엇보다 아기자기한 표정과 다양한 동작의 동자승들이 반겨주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크진 않지만 그러기에 더 운치 있는 예쁜 절이었다. 절 구경을 뒤로하고 산책을 마치며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 조개탕은 너무나 시원하고 맛있었다.

조개가 싱싱해서 조개와 물, 부추와 땡초만 넣었는데 이제까지 먹어본 조개탕 중 단연 최고였다. 

'이 맛에 힘들어도 조개 캐기를 열심히 하게 된다니까'

조개탕을 다 비우숙소의 짐을 정리했다. 


우리는 산청으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산청 동의보감촌.

입구에 다다르자 입이 쩍 벌어졌다.

생각보다 부지도 넓고 시설과 건물도 많고 공원과 산책로, 무릉교 등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동의보감촌에서는 마스크를 벗었다. 넓기도 했고 주변에 사람들도 많지 않았고 야외였기에.

하지만 그날부터 목이 약간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정도는 아니었고 약간 부은 정도?

나는 어제 조개 체험 및 숙면을 취하지 못했기에 일시적인 몸살 기운으로 생각하고 잘 먹고 잘자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마침 동의보감촌 내 한의원이 있어서 뜸을 배 위에 올려 몸을 데워주고 불편했던 곳에 소금 주사도 맞아서 몸의 피로가 풀렸다.

목 안의 불편함은 그대로였지만 한의사님께 말할 정도가 아니어서 진료를 마치고 나왔다.

동의보감촌의 가족호텔의 시설은 5성급 호텔처럼 깔끔하고 실내가 넓었다. 더블 배드가 두 개였고 시트와 이불의 촉감이 너무 좋아 이불의 브랜드 상표  찍어두었다. 호텔은 조식의 기쁨이라지만 나는 이 뽀송뽀송한 침대 시트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저녁이 되자 목이 좀 더 부은 것 같았다. 아픈 건 아닌데 목소리가 살짝 잠기면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정도. 예전 같으면 코로나에 걸릴까 봐 마스크를 벗지 않고 실내에서도 계속 썼을 텐데 이젠 달랐다.

우리 집 두 청소년은 이미 코로나에 걸려 45일이 지나지 않았기에 크게 걱정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들과 지내며 나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코로나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이들 자가 격리하는 동안 한 집에서 지냈는데도 안 걸렸는데.'

하지만 딸과 한 침대에서 자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등을 돌려 누워 잤고 코로나 증세면 어쩌지 하고 신경이 쓰여 잠을 설쳤다.

이틀째 숙면을 하지 못해 조금 피곤했지만 공기 좋고 땅의 기운이 좋은 곳이라 생각보다는 덜 피곤했다.

잠을 설친 덕분에 새벽 커튼을 젖히고 밖을 바라보다 겹겹이 쌓인 산들 로 따스한 기운이 올라옴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몇 시야. 해가 뜨려는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5시 41분이었다.

휴대폰의 카메라를 켜고 동영상 촬영을 하며  순간을 담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와~산청에서 일출을 보다니. 올해는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온 가족들 건강과 무탈, 아이들 공부 열심히 하고 모두 행복하게 지내게 해 주세요.'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원을 빌었다.

신랑과 아이들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너흰 일출 못 봤지? 나는 봤지요~!"

어제 아침의 산책도 오늘 아침의 일출도 모두 나에게 경품 같은 깜짝 선물을 주는 것 같았다.

떠오른 해를 감상하고 젖은 머리카락을 산청의 아침 햇살에 말렸다.

아침은 건물 내 조식 코너에서 뜨끈한 소고기 얼큰 해장국과 도가니탕으로 먹었다. 조식 후 호텔 침대에 누워 마지막 게으름을 피운 후 숙소의 짐을 정리하고 11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동의보감촌 투어를 시작했다.

무릉교는 빨간색의 흔들 다리로 길이가 100m는 족히 넘어 보였다. 아찔한 높이이긴 했지만 무섭진 않았다. 문명의 기구에 대한 무한신뢰랄까?

'안전한데 뭐가 무서워. 안 떨어지게 만들어놨어요~~~.'

나는 아들과 중간중간 사진을 찍으며 여유 있게 다리를 횡단했다. 딸은 건너지 않겠다고 했다.

한 두 번 같이 건너자고 청했지만 싫다고 해서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중2 사춘기 소녀를 건드려 무엇하랴~~~

여기가 무릉도원이구나~~~'

육각형의 빨강 철골 링들이 다리를 받쳐주고 있어서 초록의 산세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였고 그래서 흔들 다리가 더 예뻤다. 링으로 된 터널을 지나가는 느낌이라 다리로만 구성되어있는 흔들 다리보다 훨씬 안정감이 있어 솔직히 사람들의 이동으로 인한 흔들림과 진동이 있었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신랑은 홀로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그냥 이 다리를 빨리 건너가야겠다는 일념인 것 같았다. 다리 중간쯤 위치에 도착하자 손잡이를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장교 출신이지만 고소공포증은 어쩔 수 없나 보네.' 

애들 아빠보다 높은 곳에 대한 담력은 내가 더 강하다는 것에 나는 한껏 으쓱해졌다.

"이제 다시 건너가자."

"아니, 난 산책길로 갈게. 먼저 간다."

아니나 다를까 애들 아빠는 다리로 되돌아오지 않고 우회의 산길을 선택했다. 

다리를 다시 건너오니 딸은 내가 마음대로 사진을 찍을 것이 싫어서 다리를 안 건넜다고 했다.

'누가 물어봤냐고요. 네가 건너기 싫었겠지. 그리고

지금 너의 예쁜 모습을 찍어두지 않으면 언제 찍냐? 지금 이 시간도 흘러가버리면 그만인데.'


동의보감촌의 볼거리와 투어를 마치고 부산으로 내비게이션을 설정했다.

그때부터 마른기침이 한두 번 정도 나왔다.

두어 시간 정도 걸려 집에 도착하자 짐을 풀고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그리고 자가 키트를 해보았다.

"헐. 두줄이야!"

"뭐?"

가족들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토요일 오후 3시라 보건소로 갔다.

보건소는 텅텅 비어있었다.

전화를 하니 이제 주말엔 9~13시까지만 검사를 한다고 했다. 허탕을 치고 내일 다시 검사를 받으러 야 했다.

집에 돌아와 생수 10병과 애들 코로나 처방 후 먹다 남은 약, 수저 및 기본 식기, 양치도구 , kf94 마스크 1통, 주방세제와 수세미 등을 안방으로 비치하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두 줄로 떠서 인지 바이러스가 활성화를 시작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목의 불편함은 따끔따끔의 통증으로 바뀌었고 두통과 근육통이 시작되었다.

평소 좋지 않았던 신체부위들부터 통증을 보냈다.

난시로 눈의 피로가 많았던 두 눈은 눈알도 아팠고 고열은 없었지만 눈 주변을 타고 올라가는 이마 옆쪽 라인의 통증으로 인한 두통, 뇌가 머리뼈 안에서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려 두 손으로 머리를 조여 주기도 했다. 오른쪽 어깨와 엘보가 있는 팔꿈치는 통증이 더했고 뼈 마디 등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하지만 견딜만했다.

나의 통증은 딱 독감 수준이었다.

마침 아들과 딸이 먹다 남은 코로나 처방약이 있어서 토요일 저녁부터 먹었다.

생수를 자주 마시고 목이 건조해서 기침이 나올 것 같을 때마다 생수로 목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다행히 침대가 흙침대여서 온도를 높여 하루 종일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끙끙 앓으며 밤을 보냈다.


날이 날인지라 몸도 안 좋은데 마음도 안 좋았다.

어버이날인데 친정에도 못 가고 시어머니께도 못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물이랑 용돈도 다 준비해 놓았는데...

내가 부모이고 자식 된 나이가 되고 보니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이 모두 5월에 있어 가족의 달이라 부르지만

자식이자 엄마이자 아내이자 학부모인 입장에서는

'왜 5월에 모두 넣은 거야. 좀 분산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기념일이 너무 많았다.

다 챙기고 사는 건 아니고 다른 날들은 안 챙겨도 무방하지만 어버이날은 챙겨야 하는데 생각할수록 죄송했다.

그렇게 나는 어버이날 부모님을 뵈러 간 것이 아니라 아침을 먹자,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먹고 약 먹고 잠자기를 반복했다.

인후통과 두통, 근육통은 더 심했다.

인후통이 심해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열감이 해소되었다. 편도가 부었을 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효과가 있는 것처럼.

생수를 열심히 마시고 화장실에 가서 자주 배출하고 프로폴리스 사탕과 비타 500을 마셔주며 목의 따가움을 해소하고 비타민 보충을 해주었다.

9일 월요일 오전, 양성 확진이란 문자를 받았다.

"알고 있거든요."

문자의 링크를 클릭해서 정보를 입력하고 이번 주에 있었던 3건의 출장 상신을 기결 문서 취소하였다.

'이 좋은 5월에 웬 코로나!'

속상하기도 했지만 이번이 쉬어가라는 기회인 것 같아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누워서 생각해보니 나도 부모인데 어버이날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사춘기 아이들에게 카톡으로 받고 싶은 선물 4가지를 알렸다.

1. 규칙적인 생활(근면), 2. 바른 언어습관, 3. 공부 열심히(성실과 끈기), 4. 공부할 때 휴대폰 보지 않기(자기 조절 및 관리능력)

선물 하나로 때우는 게 아이들 입장에선 쉬울 테지만 나는 이 네 가지 중 1번 선물만 실천해 주어도 기쁠 것 같다. 그럼 나의 잔소리도 줄어들 테고 아이들도 잔소리 덜 들을 테고.


월요일 아침은 아이들 등교가 신경 쓰여서 평소대로 6시에 일어났다. 애들 아빠가 깬 걸 확인하고 시락국을 꺼내 데워달라고 했다.

6시 30분부터 줄줄이 울려대는 알람들.

자가검진 입력

6시 40분 아들 기상

7시 딸 기상

아들이 조금 늦게 일어나 7시가 다 되어 화장실로 들어가 머리를 감고 있으니 여동생이 틱틱거렸다.

"오빠, 빨리 씻어. 먼저 씻고 나왔어야지."

'지지배, 말 좀 예쁘게 하지.'

다행히 오빠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고 얼른 씻고 나왔고 그때부터 화장실은 온전히 딸이 접수해 독차지하고 있었다.

애들 아빠가 바빴다. 시락국과 햇반을 데워 방으로 넣어주고 스팸을 굽기 시작했다. 후드를 켜지 않아 스팸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다.

7시에 방에서 여유로운 아침을 먹고 안방 화장실에서 나의 그릇과 수저는 따로 설거지를 해두었다.

'애들 아침 차려줘도 안 먹는데... 그냥 음료수 하나 마시고 갈 건데...'

미리 말했는데 애들 아빠는 나름 열심히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연극이 끝나고 모두 무대에서 사라지고 난 방 문밖으로 나왔다.

모든 창문부터 열어 환기시키고 소독약을 뿌리고 설거지를 하고 식탁 위를 정리했다.

인후통과 근육통이 남아있었지만 누워있을 정도는 아니었고 약을 먹은 지 3일째가 되어가니 한결 몸상태가 좋았다. 맑은 콧물이 새롭게 등장하긴 했지만 근육통이 약해지니 움직일만했다.

저녁은 애들 아빠의 수고를 덜기 위해 00고 죽을 데워달라고 전화했다.

"오늘 저녁은 전복죽, 내일은 단호박죽,  버섯 야채죽 등등. 난 저녁엔 죽 먹을게요.

애들과 당신은 의논해서 시켜먹든 사 먹든 알아서 먹어요."


화요일, 4일째인 오늘은 아침을 복국으로 시원하게 시작했다. 여행 가기 전에 사두었던 시락국과 복국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다니 다행이었다. 오늘도 구렁이 각시처럼 모두가 나간 다음, 방 밖으로 나와 환기를 시키고 설거지와 식탁 정리를 했다. 아침의 부엌은 애들 아빠의 처절했던 전투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데워진 복국이 냄비에 남아있었다.

"아침에 밥 먹는 걸 부담스러워하더구먼. 안 먹고 갔나 보네. 이런 날들도 있어야지. 점심때 내가 먹어야겠네."

부엌 정리를 마치고 먼지포로 바닥청소를 했다. 아들방, 거실, 안방.

'딸방은 들어가면 난리 치니까 패스~!'

널려있던 빨래를 정리하며 TV를 켰다.

제20대 대통령 취임식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앞마당에 수천 명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입장에서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는 것만 보고 TV를 껐다.

"핵심만 보면 되지 긴 취임식을 다 볼 필요 있어?"

나 홀로 복국과 햇반, 김치로 점심을 먹고 약을 챙겨 먹었다. 오전에 집안일을 해서인지 낮잠을 잤다.


수요일이 되니 약 때문인지 코로나19 때문인지 입안 달라붙어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혀는 입천정 위쪽에 입술 안쪽 피부는 치아에 풀로 붙여 놓은 것처럼... 입 주변을 움직이고 입을 여니 찍찍이 테이프에서 떨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벌컥벌컥 생수를 들이켰다.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입안은 메마른 상태였다. 수시로 물을 뿜고 마시기를 했다. 가끔씩 목에 걸린 경미한 가래, 코로나19의 시체들이 밖으로 나왔다. 코를 풀거나 입을 닦거나 나의 분비물이 묻어있는 것들은 모두 변기의 소용돌이를 통해 내려보냈다.

없어졌던 두통도 가볍게 왔다가 사라지고 목요일에는 운동도 하지 않았는데 양쪽 종아리가 아팠다. 운동하고 알이 배겨서 아픈 것처럼.

다양한 증상이 매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

아, 수요일부터의 새로운 증상은 입안이 건조하면서 쓴 맛이 느껴졌다. 입안 전체가 쓰면서 음식을 먹어도 쓴 맛이 항상 함께 느껴졌다. 혓바닥은 거칠거칠하고 혀를 들어 올리면 아래의 근육은 당겨서 따가운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쓴 맛이 심할 때는 달달한 믹스커피도 마시고 사탕도 하나씩 먹었다.


오늘은 금요일.

가족이 다 출근, 등교를 하고 나는 거실로 나와 바닥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아침 설거지를 했다. 가벼운 집안일을 해도 될 만큼 몸은 회복되고 있지만 방심해선 안됨을 느꼈다. 아직은 내 몸속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남아 활동하고 있음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한 도움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물 수시로 마시기(생수 20통 방에 두기)

둘째. 세끼 잘 먹고 약 잘 챙겨 먹기

셋째. 양치 후 리스테린으로 목안까지 가글하기

-가글이 도움이 많이 됨. 입안 세균을 99.9% 잡아주어서 인가?-

째. 인후통엔 아이스크림이나 프로폴리스 사탕(약국에 판매함) 먹기

다섯째. 비타 500 아침 식전, 취침 전 마시기

-비타민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과하면 배출되는 영양소이기에-

째. 몸을 따뜻하게 하고 먹고 마시고 자기

-이때 필수 먹거리는 햇반, 데워먹는 죽, 라면 등-

"내일 점심엔 라면 끓여먹어야지~! 라면도 쓰려나?"

-잠이 오면 그냥 자기. 생각보다 금방 피곤해지고 자가격리 중이라 잠만 자도 누가 뭐라 하지 않으니... 그건 좋다.-


그리고 영순위. 마스크 쓰기

야외에서도 꼭 써야 한다~!!!

방심하다 코로나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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