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 한 그릇의 시간여행”

사이다보다 특별했던 할머니표 냉국물

by 몽구

겨울이면 늘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연탄불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군고구마와,
그 뜨거움을 식혀주던 할머니의 동치미 한 사발이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사이다가 없었다.
탄산이란 건 소풍 날 김밥과 함께 마시는 특별한 음료였고,
평소에는 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국물이 최고의 별미였다.
할머니는 항상 그것을 퍼다 주셨고,
뜨거운 고구마와 차가운 동치미는 어린 입맛에도 이상하리만큼 잘 어울렸다.

그땐 몰랐다.
이 두 음식이 내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궁합이었다는 걸.

지금 나는 겨울이 오면 냉면을 자주 만들어 먹는다.
냉동고엔 늘 냉면사리가 준비되어 있고,
영하 15도의 날씨에도 찬 육수를 들이켜며 몸속을 스치는 냉기를 즐긴다.
어느 날, 문득 동치미 맛이 그리워 시장에서 한 통 사왔다.
15일 동안 발효시킨 뒤, 냉면을 말아먹었더니
쌉싸름하고도 시원한 그 시절의 맛이 돌아왔다.

평양면옥도, 을지면옥도 좋지만
그날 내 입에 닿았던 동치미 냉면은 그 무엇보다 완벽했다.
총 원가는 2천 원도 되지 않았고,
맛은 시간이 만들어준 레시피였다.

나는 여전히 식초와 다시다의 분량을
종이에 메모해가며 조절한다.
그 맛을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잊고 있던 기억을 천천히 떠올리는 일과 닮았다.

그 후로 나는 이 냉면을 먹을 때면 늘
가볍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국물을 먼저 마신다.
그리고 면을 한 가닥씩 음미한다.
중독되면 매일 먹게 된다.

가끔은 김밥을 만들고
미지근한 병 사이다를 한 병 꺼내 마신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작은 부엌의 연탄불 앞,
할머니와 마주 앉아 있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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